하나님의 거부에도 감사하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7장 18-29절(구 473쪽)
찬송: 310장(아 하나님의 은혜로; 통410), 384장(나의 갈 길 다; 통434)
설교: 2021012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주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TV에서 방송하는 「인간극장」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작년에 이 프로그램에서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방송했습니다. 선교사님은 의사인데, 몽골로 가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또 의료시설이 없는 몽골 오지를 찾아 치료하며 선교하고 있습니다.
의사라고 하면, 어느 나라에서나 최고의 대우를 받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되는 과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되고 나면 충분히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로 일하며, 교수로서 학생들까지 가르쳤다면 가장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젊을 때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몽골을 향했습니다.
몽골은 남한의 열 배 이상으로 넓지만, 인구수는 남한의 10분의 1도 안 될 만큼 적습니다. 비율로 계산하면, 남한 전체에 30만 명 정도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구가 많아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만, 인구가 적으면 문제는 훨씬 더 커지고 심각해지죠? 땅은 넓고 인구가 적으면, 잘 살기 어렵습니다.
이를 잘 드러내듯 몽골은 빈곤합니다. 경제 수준으로 순위를 매기면, 몽골은 전세계 195개국에서 135위 정도입니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의료 혜택을 전혀 못 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평생 의사를 한 번도 못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선교사님은 이런 곳을 찾아다니며 선교하는 것입니다. 먼 곳은 자동차를 타고 15시간 이상 가야 한다고 합니다. 땅이 넓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나 도로사정이 워낙 안 좋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도, 자동차 3대에 의료장비를 나눠 싣고 7,8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운전하는 차 앞바퀴가 비뚤어지는 고장이 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차가 고장나면, 보험회사를 부르면 간단하게 해결되죠? 하지만 몽골은 휴대폰 통화가 안 되는 지역도 많을 뿐만 아니라, 보험회사가 와서 처리해 주는 제도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몽골은 추운 것으로 유명하죠? 얼마 전에 우리나라도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서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런데 몽골은 영하 20,30도로 내려가는 경우가 흔하다 합니다. 타이어가 펑크 나서 교체하는 일마저도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 쉽게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도시로 들어가서 차를 정비소에 수리하고, 하루 숙박한 후에 다음 날 일찍 출발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습니다.
만약 이때 ‘내가 그 선교사님의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이라면 무슨 생각을 품고,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선교사님이 몽골에서 사역하는 건 철저히 사명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사와 교수로서 우리나라보다 몽골에서 지내는 게 좋을 바 없어 보입니다. 몽골에서도 얼마든지 편하고 쉽게 살 수 있습니다. 병원장으로서 병원 하나만 정직하게 잘 운영해도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수백 킬로 떨어진 곳까지 달려갑니다. 그렇게 봉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과정들을 책임져 주시고, 모든 과정이 잘되고, 평탄하도록 인도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안이고, 사명을 위해 사는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선교사님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히려 감사하다 합니다.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정을 수정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도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고장난 거라, 도심으로 들어가 차를 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공영방송이라 다른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 선교사님이 겪은 여러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감사하는 이유는 분명 더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그 동안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알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송 중에 그분이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잠깐 꺼냈습니다. 자신이 가난하고 어려운 몽골로 온 것에 대해 가족들이 아쉬워한다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의사 하나만 있어도,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이 많죠? 마음도 든든하고, 또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몽골 선교사로 와서, 그런 부분에 전혀 도움을 못 주기 때문에, 가족들로서는 많이 아쉬워할 거라 고백했습니다.
이를 보면, 그분의 가정 형편도 돈 걱정 없을 만큼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어려운 형편에서 의사가 되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고, 괜찮은 가게 하나만 운영해도 인정을 받을 수 있는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을 고치는 의사, 그것도 남을 위해 헌신할 만한 의사가 되게 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나올 처지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앞으로 하나님이 베푸실 은혜와 사랑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고 수고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복을 베푸시겠습니까? 무엇보다 구원을 받아 영원히 살 수 있는 은혜를 보장받았고, 더불어 넘치는 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이를 알고, 인정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어려움 중에도 불명과 원망보다는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 본문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베풀어 주셔서, 나라가 더욱 강해지고 안정되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사람인지라,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만한 길을 생각해 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싶은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기에, 하나님이 머무실 자리가 필요한 건 아니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상징하는 법궤를 건물로 지은 성전에 모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나단 선지자와 상의했고, 나단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만약 여러분이 본문 속 다윗의 처지였다면 어떤 생각을 하셨겠습니까? 만약 제가 본문 속 다윗의 입장이었다면, 속이 답답하다 못 해 분노했을 듯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목적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해서, 사울이 방치했던 법궤를 새로운 성으로 들여왔습니다. 그것도 첫 번째 시도에서는 실패해, 책임자가 죽는 사고를 겪었음에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반해서 들여왔습니다. 다윗이 이를 얼마나 기뻐했는지, 옷이 내려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들여온 법궤를 방치한 것도 아닙니다. 정해진 대로, 성막 안에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막으로 된 성막은 치장하기는 어렵고, 훼손되기는 쉽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펄럭이고, 강한 비와 바람에 쉽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화려하고 웅장하고 튼튼하게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드러내는 법궤를 보관하고, 그것으로 나라의 기반을 삼고 싶었습니다. 법궤를 성전 안에 두면, 많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와서 기도할 수 있고, 제사드릴 수 있습니다. 성막에서보다는 건물로 세워진 성전이 훨씬 더 엄숙하고 경건하고 튼튼합니다. 건물로서 지어지는 성전이 가죽과 천막으로 만들어진 성막보다 나쁠 게 전혀 없어 보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이 모든 일을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다윗이 성전 짓는 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고,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짓도록 하셨습니다만, 사실 기본적인 모든 준비는 다윗이 다 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성전을 짓는 데 필요한 나무와 금, 은, 동, 철 등을 다윗이 모두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만에 성전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바꿔 보면,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 한 까닭은, 다윗이 이를 준비하고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이 거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을 지을 만한 충만한 능력과 마음이 다윗에게 있었고, 그럴 충분한 여건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전쟁 중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에 짓지 말라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다윗의 순수한 마음과 믿음을 하나님이 거부하셨다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마음과 능력이 있는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게 훨씬 더 잘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들 솔로몬에게 미뤘다가는, 성전을 건축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거부하셨는데, 다윗의 반응은 우리의 계산과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뜻을 고집하며, 하나님께 불평을 쏟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18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라고 시작된 감사의 기도는, 29절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헌신을 계획했음에도, 하나님의 거부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던 다윗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 의외입니다.
하나님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처럼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었던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는, 지난날들에서 받은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입니다.
다윗은 여덟 형제들 중에서 막내였습니다.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저도, 형제들 중에 홀로 먼 들판에 남아서 양을 지켜야 했던 처지였습니다. 외모로만 봐도, 멋들어진 그의 형들과는 달리 다윗은 어린 소년에 불과했고, 가능성이 없는 맨 마지막 서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가운데 있는 수없이 많은 이들 중에서 다윗의 가문을 선택하셨습니다. 또 위의 일곱 형들이 있었음에도, 하나님은 이들을 외면하시고, 작고 어린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런 과정을 우연으로 여기지도 않았고, 당연하다고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선택으로 여겼고, 은혜로 여겼습니다.
우연히 이루어졌다거나 당연하게 여기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어떤 계획이나 의도 없이 이루어질 때 ‘우연히’라고 하는데, 우연히 이루어졌다면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게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누구에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좋은 계획마저 하나님이 거부하셨음에도 다윗이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두 번째 까닭은, 27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라는 말씀처럼, 앞으로 하나님이 베푸실 은혜와 복이 있음을 믿고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이 되기까지, 이스라엘이 강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가문에 베푸실 은혜와 사랑도 크고 놀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말씀과 계명에 따라 살면, 다윗의 집안에 복을 주셔서, 왕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하기까지 다윗의 가문으로 하여금 왕위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복되고, 형통하기 위해서는, 다윗과 같은 수준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거부마저도 인정하고 따를 만한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노력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꾼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의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아무리 좋은 계획과 뜻을 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뜻과 계획이 틀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먼저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다르죠? 마냥 편하고 즐겁고 행복한 일들로만 채워진 사람은 없죠? 돌아보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들 있지 않습니까? 내 힘과 능력과 지혜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있었죠?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처럼 여겨지던 고난과 아픔의 파도가 휩쓸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금도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바꿔 보면, 그럼에도 지금 살고 있습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던 고난과 아픔을 모두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풀 수 없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견뎌오지 않았습니까? 내 힘과 능력으로 한 게 아니고, 우연히, 당연히 이루어진 게 아니니,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에 지금까지 잘 견뎌냈고,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앞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셨고, 믿음 가운데 살면, 다윗과 그 후손까지 함께하셨던 것처럼, 각자의 삶과 가족의 삶까지 함께해 주시고, 복되게 하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있으니, 이제는 우리가 감사할 수 있고, 앞날을 소망하며 살 수 있습니다.
지난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힘들고 아픈 날들이 많았습니다. 고난 자체만 보면,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다윗이 우리에게 보여준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럼에도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앞날까지 간섭하시고, 함께하시는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담대하게,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오늘 다윗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아무리 큰 고난과 아픔이 있어도, 우리의 계획과 뜻에서 벗어나더라도, 지켜주신 것에 감사하고, 함께하신다는 약속에 감사함으로써, 다윗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과 복이 우리 모두의 삶에 덧입혀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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