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 사무엘하 11장 1-13절(구 478쪽)
찬송: 419장(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333장(충성하라 죽도록)
설교: 20210307.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운행하는 교통수단들 중에 여객기와 여객선이 있습니다. 이 둘은 많은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더불어, 이 임무를 잘 감당하기 위해 세 계층으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먼저는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기장과 선장이 있습니다. 여객기와 여객선이니 당연히 승객이 있죠? 그리고 그 사이에 승무원이 있습니다.
간혹, 여객선이 침몰할 위험에 처하거나 여객기가 추락할 위험에 처하는 경우들이 있죠? 이때 기장과 선장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승무원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아십니까?
배가 침몰하게 된 경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배가 침몰할 위험에 처하게 되면, 구명보트를 내리는데, 이때 승객, 승무원, 선장 중에 누가 가장 먼저 구명보트에 오를까요? 승객이 가장 먼저 구명보트에 오릅니다. 승객들 중에서도 임산부나 아이처럼 우선순위가 더 높은 경우도 있지만, 선장과 승무원보다는 승객이 먼저 구명정에 오릅니다.
승객이 모두 구명보트에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도운 승무원은 그 다음으로 구명정에 오릅니다. 그리고 승객과 승무원이 구명정에 오를 때까지, 선장은 끝까지 배에 남아서, 배 안의 질서를 유지하고, 통제하고, 구조 작업을 다한 후 맨 마지막으로 구명정에 오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배와 관련한 직위를 가진 사람, 그것도 높을수록 구조되는 순위가 낮다는 점입니다. 여객선에 오르는 승객은 배와 관련한 아무런 직위가 없죠? 당연히 책임도 없습니다. 직위와 책임이 없는 승객이 오히려 가장 먼저 구조됩니다. 승무원은 승객보다는 직책과 책임이 더 크죠? 그래서 그 다음 구명정에 오릅니다. 배에서 직분과 직책이 가장 큰 선장은, 승객과 승무원이 모두 안전하게 구조된 이후에야 비로소 구명정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객기의 경우는 여객선과는 다릅니다. 비행기가 비상착륙을 해야 하거나, 추락할 위험을 알게 되었을 때, 안전장비를 가장 먼저 챙기는 이는 기장입니다. 기장에게 가장 먼저 지급되며, 가장 좋은 장비가 지급됩니다. 그 뒤를 이어 승무원들이 장비를 착용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일반 승객들에게까지 구명 장비와 수준이 제공됩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배가 위험에 처하면, 승객을 먼저 구조시키기 위해, 승무원들과 선장은 나중으로 밀리는데, 비행기의 경우는 왜 반대로, 기장과 승무원들이 장비를 먼저 착용하고, 승객들의 기회를 뒤로할까요?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여객기와 여객선의 가장 중요한 임무와 사명 즉, 승객을 최대한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운송하기 위해서입니다.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났을 때, 구명조끼를 입으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또 구명보트에 타면, 며칠 동안 살 수 있고, 그 시간 동안에 구조대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바꿔 보면, 오래 있을수록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승객들이 먼저 구조되고 난 후에야, 승무원들이 구조되고, 선장은 맨 마지막으로 구조됩니다.
여객기의 경우, 기장과 승무원들이 구조장비를 먼저 갖추는 것도, 결국은 승객을 가장 많이 살리기 위해섭니다. 비행기를 착륙시키거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장이 있어야 합니다. 승객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고, 기장이 승객들에게 안전장비를 모두 주고, 자기는 안 해서 비행기를 조종할 사람이 없으면, 안전장비를 착용한 승객들마저 살아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낙하산이나 산소마스크 등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비행기 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승무원들이 있어야 합니다. 승무원들이 없으면, 좋은 구조 장비가 있어도 사용법을 몰라 무용지물이 되고, 승객들이 먼저 살겠다고 멋대로 싸우거나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 비행기가 추락하여 모두 사망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객선의 책임자인 선장과 승무원들이 죽을 각오로 안전장비를 양보하고, 늦게 구명정에 오르는 것도 승객들을 위해서고, 여객기를 책임지고 있는 기장과 승무원들이 장비를 먼저 착용하는 것도 역시 승객을 더 많이 살리기 위해섭니다.
여객선의 일꾼들이 죽기를 각오하는 것도 승객을 위한 것이고, 여객기의 일꾼들이 먼저 챙기는 것도 승객을 위해서라는 이런 원칙을 들으면,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있죠? 우리에게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만, 이보다 더 큰 목표, 목적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을 선택하거나 거부하지 않겠다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씀으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는 로마서 14장 8절을 들 수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여승무원들을 영어로 뭐라고 부르죠? ‘스튜어디스’라고 하죠? 남승무원을 말하거나,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승무원’을 뜻할 때는 ‘스튜어드’(steward)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들 중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에서는 ‘일꾼’ ‘청지기’ ‘집사’를 뜻할 때이고, 청지기의 사명, 직무 등을 나타낼 때도 이 말과 연결시켜(stewardship) 나타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일꾼이 가져야 하는 자세와 사명을 알 수 있습니다. 여객기와 여객선의 ‘승무원처럼’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게 승객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다면, 승무원은 자신의 목숨에 욕심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승무원 자신이 사는 게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더 많이 살리는 길이라면, 죽음보다 더 험한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상속이 이미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자녀인 동시에 일꾼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일꾼으로 산다는 건, 주인이 맡긴 사명과 책임과 직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고, 필요하면 가장 귀한 생명마저도 버릴 줄 아는 것을 뜻합니다. 주인을 위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들 경우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사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과 우리야의 행적이 대비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이 둘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다양하겠지만, 기장과 선장처럼 일해야 하는 사람, 승무원처럼 일해야 사람으로 나눠 보면, 다윗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그에 반해 우리야는 얼마나 충성스럽게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이스라엘의 국방장관과 수많은 군사들은 암몬과의 전장에 나가 있었고, 다윗은 자기 성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윗이 저녁 시간이 되어 높은 곳에 올라가서 주위를 보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봤는데, 자기 부하 장수의 아내인 밧세바입니다. 남편이 있는 여성에 마음을 두는 것도 죄고, 게다가 자기 부하의 아내니 그래서는 안 되는데, 다윗은 절제하지 못 하고, 불러서 간통했는데, 이 일로 밧세바가 임신하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윗도 꽤 고민을 많이 했겠죠? 그래서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에게 덮어씌우려 했습니다. 우리아를 불러들여 밧세바와 잠자리를 갖게 하면, 이를 덮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야는 다윗의 계산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부하들과 함께 왕궁 문에서 잤습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불러, 왜 집으로 들어가 자지 않냐고 묻자, 지금 암몬과 전쟁 중이고, 그곳에 이스라엘의 군사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데, 어떻게 자신 혼자만 편하게 집에 들어가 잘 수 있겠느냐며 거부합니다. 초조해진 다윗은 일부러 우리아를 잔뜩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말과 행동에서 절제하지 못 하죠? 우리아가 취하게 하려고 다윗이 얼마나 많은 술을 주었겠습니까? 또 왕이 주는 술을 신하가 거부할 수 없으니, 우리아는 몸과 정신을 가다듬지 못 할 만큼 마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아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의지력이 대단합니다.
오늘 본문 속 이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면, 두 사람의 모습 모두 전혀 예상 밖입니다. 먼저, 다윗은 위대한 왕이기 전에, 얼마나 신실한 사람입니까? 골리앗과 싸우는 과정으로부터, 사울 왕에게 죽음의 위협을 수없이 받으면서도, 얼마나 신실하고, 의롭게 살았는지 모릅니다.
이런 기대로 바라본 오늘 본문 속 다윗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은, 십계명 중 일곱 번째 “간음하지 말라”와 열 번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어긴 큰 죄입니다.
다윗의 낯선 이 모습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유혹에 빠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미 여러 아내와 수많은 처첩을 두었습니다. 왕이니 원하면, 얼마든지 많은 여인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자기 부하, 그것도 목숨 걸고 충성하는 부하의 아내를 건드리고, 이를 덮으려 하며 비겁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아는 오히려 좋은 쪽으로 전혀 예상 밖입니다. 3절에서 우리아를 헷 사람이라고 합니다. 히타이트 민족 사람이라는 뜻이고, 본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의 장군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아는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보다, 왕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성스럽고 신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전장에서 돌아오면, 집에서 편하게 자나 부하들과 불편하게 자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동료와 자기 상관이 전장에 있다는 이유로 끝까지 편안한 침실과 기름진 음식을 거부할 만큼 충성합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먼저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많은 신앙인들이 생각하는 신앙의 연륜과 직분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인 이스라엘 민족일 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왕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자랑하는 모태신앙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럼에도 본문 속 다윗의 모습에서는 신앙의 연륜이 가득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왕다운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이방인’이라 불리던 헷 족속이고, 지위도 한참 낮은 사람이지만, 우리아는 다윗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실하고 의로운 모습을 보입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여객기와 여객선을 책임지고 이끄는 기장과 선장 같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전쟁 중인 상황에서, 남의 아내를 탐내는 정도도 아니고, 자기 부하의 아내를 탐내고, 부정을 저질렀으니, 얼마나 악합니까? 기장과 선장으로서 사명을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욕정과 쾌락을 위해 자기 손으로 승객들을 물에 빠뜨리고, 비행기에서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장군으로서 승무원과 같은 자립니다. 왕보다는 책임과 사명이 적은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아는 오히려 마치 선장과 기장처럼 자기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직분에 넘치는 충성입니다.
이 두 사람 중에 하나님은 누구를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왕인 다윗입니까? 이방 사람으로서 장군이 된 우리아입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저지른 이런 죄마저 무조건 용납하신 건 아닙니다. 뒤에 가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런 죄와 방탕과 사악함을 벌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아는 비록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러나 그 신실함과 의로움만은 우리로 하여금 큰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은, 다윗의 높은 지위와 명예가 아니라, 지위와 명예가 크지 않다 하더라도, 자기 자리에서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우리아 같은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장과 기장에게는 더 많은 책임을 물으십니다. 교회 중직들에게 원하시는 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교회마다 중직을 받은 교인들은 많아졌는데, 중직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사명감과 충성과 변치 않는 마음은 찾기 어렵습니다. 기장과 선장의 직분을 바라는 이들은 많은데, 승무원보다 못합니다. 더 과격하게 말씀드리면, 직분은 기장과 선장이면서도, 마치 승객처럼 받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과 평안이 아니라, 진노로 응답하실 수밖에 없는 모습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교회에서 큰 직분과 책임에 오르려는 욕심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꾼이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들을 사명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일꾼으로서 마땅히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직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나 책임과 사명을 기억하며,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이름과 자리는 있으나, 그에 마땅하게 살지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아처럼 자기 직분을 기억하고, 자기 책임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지위가 크고 높은 사람이 복된 게 아니고, 우리아처럼 사명에 대한 충성을 다한 사람이 복됩니다. 하나님은 지위와 직분에 따라 복 주시지 않고, 사명을 다한 것에 따라 복과 평안을 베푸십니다.
충성을 다하는 자녀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오늘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아처럼 맡은 바 사명을 다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통해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으로 삶을 채워 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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