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평안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13장 1-6절(구 481쪽)
찬송: 288장(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455장(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설교: 2021041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말은 왜 제주도로 보내는 게 좋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는 게 좋을까요?
요즘이야 말을 키우는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습니다만, 이런 기술이 없던 때에는 말을 키우는 게 무척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나마 제주도는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말을 기르기에 적합했고, 그렇게 말을 많이 키우면서, 말을 키우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많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다른 지역에서보다 제주도에서 기르면 더 좋은 말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서울로 보내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서울은 우리나라 수도로서, 인구가 가장 많죠? 이런 현상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사람이 많은 만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고, 많이 배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교육하면서, 서울은 다른 지역보다 사람을 교육하는 데 더 좋은 기술과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말을 기르는 일과 마찬가지로, 같은 능력과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도, 서울에서 더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을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을 서울로 보내면, 다른 곳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은 주위 상황과 사람의 영향을 받고, 바뀐다는 뜻입니다.
‘맹모삼천지교’가 이를 더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중국의 위대한 학자인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서 세 번 이사했다는 뜻입니다. 맹자 가정은 워낙 가난해서 먼저는 값이 싼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매일같이 보는 게 상여를 끌며 곡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자 맹자는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이를 흉내내며 놀았습니다. 이를 본 어머니가 충격을 받고, 집을 시장 근처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맹자가 장사꾼들이 물건을 사고팔며 흥정하는 모습을 따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세 번째 서당 근처로 이사했더니, 맹자가 글을 읽고 쓰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따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맹자가 상여꾼들의 모습, 장사꾼의 모습,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따르고, 이 때문에 어머니가 힘들게 세 번이나 이사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주위에서 자주 보고 듣고 겪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은 주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일 짐승이 주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면, 말을 제주도로 보낼 필요가 없죠? 자기 땅에서 키우나, 멀리 제주도로 멀리 보내서 키우나 똑같은데, 괜한 돈과 수고를 들여 제주도로 보내겠습니까? 사람도 비용과 수고가 더 많이 들어가는 서울로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높이 평가받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아들이 주위에서 많이 보고 듣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이를 그럴 수 있는 일로 넘기지 않고, 너무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이지만, 무리하면서까지 아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희생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지혜로운 안목과 희생을 통해 맹자는 지금까지도 높이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주위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들,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사람들과만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과만 따로 살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몇 배 더 많은 사회에서 섞여 살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앙인들 중에, 고린도후서 6장 14,15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교류와 교제를 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업이나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5장 9,10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귀지 말라는 의미가, 단순히 상대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사귀지 말라는 의미가, 단순히 상대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잘못된 생각과 가치관을 본받거나 배우지 말라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만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멀리하려면, 세상 어디에도 살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나쁜 영향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의외로 간단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좋은 사람들, 신실한 사람들, 진실한 사람들을 선택해 가까이하고, 인격이나 신앙에서 나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멀리하며 사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쁜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 사는 세상에서, 나쁜 모습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에 실패해 비극을 몰고 오게 된 암논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다윗이 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는데, 이는 신앙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죠? 권력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싸우고, 형제끼리 싸우는 왕가, 게다가 어머니가 다르니 더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여러 아내 중에서 태어난 첫째아들인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을 사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이복 남매간의 결혼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모세를 통해 전해진 율법(레 18:9,11)에서는 금지되었기 때문에,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절제가 안 되어, 암논이 병에 걸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상황을 요나답이라는 친구가 알게 되었습니다. 둘은 사촌 관계인데, 특별히 가깝게 지내던 중에, 암논의 상황을 알고,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병든 체해서, 다말이 와서 간호하도록 상황을 만들고, 다말만 남아 있을 때 범하라는 것입니다. 암논은 요나답의 이 말을 그대로 따라, 다말을 범했습니다.
욕망에 따라 저지른 일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처럼, 욕정에 눈이 멀어, 죄악을 심었으니, 거기에서부터 고통과 저주와 절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향한 마음 때문에 병이 생길 정도였지만, 그러나 그렇게 다말을 범한 후에는 오히려 다말을 향해 증오를 쏟아냈습니다. 죄와 욕망의 끝이 어떠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후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2년 동안 이를 숨기고 있다가, 암논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더 멀게는, 이 일 때문에 반역을 일으키고, 다윗은 아들을 피해 도망가야 하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은, 이복누이를 향한 욕정을 가진 암논 때문이고, 더불어 암논의 죄악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추긴 요나답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시간에는 이 두 사람의 죄 중에서도, 특히 암논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암논의 모습 중에, 어떤 면이 잘못으로 보입니까? 물론 이복누이에 대한 음욕을 품는 것도 죄입니다. 그러나 요즘과는 다른 시대고, 또 가족 관계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는 점도 감안할 여지는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암논의 가장 큰 잘못은 좋은 사람을 곁에 두고,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 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도,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간교한 자를 곁에 두고, 그의 말에 따라 행동한 죄가 무엇보다 큽니다.
암논은 다윗의 맏아들로서 왕세자입니다. 다음 왕에 오를 왕자라면, 마냥 편하고 쉬울 것 같지만, 한 나라를 다스릴 좋은 왕으로 만들기 위해서 혹독하다 할 정도로 교육합니다. 그렇게 해야 좋은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암논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이었으니, 얼마나 잘 가르쳤겠습니까?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암논이 원하기만 했으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선택하고 둘 수 있었습니다. 실제 암논 곁에는 좋은 길을 제시할 만한 좋은 스승, 친구, 지인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암논은 꼭 필요하고, 좋은 사람들을 선택해 듣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사악하고 간교한 자를 가까이 두고 귀기울였습니다. 이게 원인이 되어, 암논의 죄는 점차 장성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암논의 선택과 악행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선택하고,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하며, 지혜롭고 신실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우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들을 만한 지혜와 안목이 복과 저주를 나누는 갈림길이 됩니다. 좋은 길을 선택하고, 악한 쪽을 버릴 만한 결단이 삶과 죽음을 가를 만한 출발점이 됩니다.
복된 자리가 따로 있고, 저주가 임하는 자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같은 자리에서 복과 저주가 나뉩니다. 같은 상황에서 삶과 죽음으로 나뉩니다. 상황이 나빠서 실패하는 게 아니고, 같은 상황이지만 좋은 걸 선택하지 않아서 실패합니다. 처지와 형편이 좋아서 성공하는 게 아니고, 같으나 그 중에서 나쁜 걸 멀리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암논은 바로 이런 점에서 철저히 무능하고 악했습니다. 좋은 사람을 멀리하고, 나쁜 사람을 가까이함으로써, 스스로 죄와 죽음의 불구덩이를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복과 평안과 성공을 바라며 꿈꾸며 살지만, 그러나 정작 죄로 가득한 길을 택하며 따라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끝에서 마주하는 실패와 고통을 남 탓으로 돌립니다. 환경과 형편이 좋지 않다며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나 이는 암논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처지와 형편이 안 좋아서, 죄를 짓고, 자신과 가족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고, 실패와 죽음에 이른 게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주위에 있고, 자기 삶을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어 갈 수 있었음에도, 암논은 이 모든 것을 외면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정욕을 인정하고 채워줄 사람을 선택하고 귀 기울였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죄와 절망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갈림길에서 유독 악한 사람을 곁에 두고, 갈림길에서 해서는 안 될 길을 택해 걸으면서도 복과 평안으로 끝나길 바랐다면, 그것만큼 자신을 속이는 말과 행동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복되고 주님의 특별한 보호와 사랑을 받을 길은 분명합니다. 그럴 만한 특별한 자리가 있고, 그럴 만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닙니다. 먼저는 내가 그럴 만한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선택하며 따라 사는 사람들을 곁에 가까이 두어야 합니다. 복과 평안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까이 두며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단순하다 못 해 쉬운 방법임에도, 이에 따라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당장 듣기 좋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자신을 인정해 주고, 편하고 쉬운 길을 제시하는 사람을 가까이 둡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껄끄러운 사람들, 불편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을 멀리합니다. 나의 잘못과 죄마저도 부추기는 사람만 인정하고 가까이 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잘못되었다 지적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닫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마음 편하고, 몸을 즐겁게 해줄 수는 있습니다. 자기 욕망에 따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인간의 본능을 채워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 실패와 절망과 죽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 마지막을 맞이하기 전에, 절망으로 연결된 그 길에서 멈추고 돌아서야 합니다. 죄로 이끄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복과 평안으로 이어주는 이들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입맛에 맞지 않고,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라도, 바른 길을 이야기해주는 이들을 가까이하고, 내 입맛을 기쁘게 하고, 내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만 하며 악한 길로 이끄는 이들을 차단해 나아가야 합니다. 좋은 길, 좋은 사람을 선택하고, 나쁜 길, 나쁜 사람을 끊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선택과 결단이, 처음엔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우리의 영혼과 삶을 망치는 길과 사람들이 더 좋아 보일 수 있고, 영혼이 잘되고, 삶을 풍성케 하는 길과 사람들이 불편해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곁에 누구를 두고, 무엇을 선택하며 살았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정반대가 됩니다. 잠깐의 욕망과 기쁨을 채우기 위해, 악한 자들을 가까이하고, 나쁜 길을 택하며 살면, 본문 속 요나답처럼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는 완성되지 못 했기에, 곁에 어떤 이들을 두고, 무엇을 행하며 사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좋은 것들을 심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사람들을 가까이해야만, 나중 우리의 삶에서 좋은 것들로 풍성해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삶과 주위를 돌아봐야 할 이유이고, 지금이 우리의 앞날을 좌우할 갈림길이 될 수 있습니다.
요나답의 어리석은 선택과 그 결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기억하며, 내일을 위한 복과 평안의 씨앗들을 지금 선택하고, 뿌리고, 심고, 가꾸어 나아감으로써, 나날이 더욱 복되고, 평안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 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0502)유혹을 이기는 지혜(삼하 13장 15-22절) (0) | 2021.05.02 |
|---|---|
| (20210425)사랑의 방향과 방법이 맞아야(삼하 13장 7-14절) (0) | 2021.04.25 |
| (20210411)겸손의 지혜(삼하 12장 26-31절) (0) | 2021.04.11 |
| (20210404, 부활절)주님의 부활로 참된 소망을 삼으십시오(막 16장 1-11절) (0) | 2021.04.04 |
| (20210328)하나님의 아량과 주권을 인정하는 기도(삼하 12장 15-31절) (0) | 2021.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