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10516)선택의 끝을 기억하며 삽시다(삼하 13장 30-39절)

청명하늘 2021. 5. 16. 13:55

선택의 끝을 기억하며 삽시다

 

성경: 사무엘하 1330-39(483)

찬송: 434(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464(믿음의 새 빛을)

설교: 2021051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올 초에 한 살인 사건의 재판이 열려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사고사나 살인 사건 등은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곤 하죠? 일반적인 사고였다면, 재판까지 보도되지 않고 지나가곤 합니다. 재판 결과까지 뉴스에 보도된 까닭은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7월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세 자매가 나무로 된 둔기로 한 여성을 구타해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잠깐 한두 번 때렸는데 피해자가 사망한 게 아니고, 한 번은 거의 세 시간 동안 폭행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거동조차 제대로 못 하는 피해자를 다시 폭행했고, 상태가 나빠진 피해자는 결국 몇 시간 뒤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 내용만으로도 충격적이고,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이 사건이 너무 충격적인 건, 둔기로 폭행한 세 자매는 피해자의 친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세 딸이 자기 친엄마를 몇 시간에 걸쳐 폭행해 사망하게 했습니다. 이 정도로 무자비하고 추악한 사건을 일으켰다면, 아무것도 판단할 줄 모르는 지적 장애인이거나, 판단할 연령이 안 되었을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야기는 전혀 없고, 나이도 44, 41, 39살 먹은 사람들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더 충격적인 건, 세 딸이 자기 어머니를 폭행해 사망케 한 까닭입니다. 자기들이 믿고 따르는 무속인이 그걸 지시했습니다. 세 딸 모두 결혼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그 기운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기를 눌러야 비로소 기운이 열려, 재벌과 같은 좋은 집안과 결혼할 수 있다며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세 딸은 무속인의 이 말을 그대로 믿어, 자기 어머니가 죽을 정도로 폭행을 가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세 딸과 무속인까지 모두 구속되었고, 1월에 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재판에서 첫째에게는 징역 10, 둘째와 셋째에게는 각각 7년이 선고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사주한 무속인에게는 징역 26개월이 선고되었습니다.

 

너무 어이없고, 충격적인 이 사건과 재판 결과를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악의 유혹에 빠지면,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어지고 또 잔인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뜻밖으로 사악한 짓을 사주한 사람보다는, 이를 실행한 이의 처벌이 훨씬 크다는 사실입니다.

 

세 사람이 한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는 것만으로도 잔인하고,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친자매고, 자신들의 친모를 살해하는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사람이 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으로 가득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세 사람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두 자매라도 말려야 하죠. 미친 짓을 저지르는 가족을 어디에 가두거나 입원시켜서라도 못 하도록 막아야 하죠.

 

그런데 어떻게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도 말리거나 반대하지도 않고, 세 사람이 그토록 잔악한 짓에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해 저질렀을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악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부귀영화를 받을 수 있다는 악귀에 쓰이고 나니, 자기 어머니가 사람으로도 안 보이고, 때려 없애야 하는 장애물로만 보였겠죠.

 

두 번째는, 이런 비극을 만들어 내고, 지시한 사람은 무속인입니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세 딸이 말 그대로 미친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사고에서 무속인의 책임이 가장 커 보입니다. 처벌도 가장 크게 받아 마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이를 행동으로 옮긴 이들이 받은 형량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적습니다. 정상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혹 그런 유혹이 있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고, 자기가 선택하고 행한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결과와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일을 사주한 사람은 무속인입니다. 길흉화복을 점치고 알려준다는 사람입니다. 무속인들이야 어느 시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또 앞으로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좋은 일, 나쁜 일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을 알 수 있고, 선택하거나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자신들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한지 여러 가지를 근거로 댑니다. 또 이런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들도 반드시 있습니다.

 

무속인들이 왜 이렇게 자신있게 예언하고, 길흉화복을 자신있게 점치겠습니까? 분명한 한 가지는, 그들의 말을 듣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삶을 책임질 수도 없고, 그런 생각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점치고, 정확히 맞힐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고, 보장하는 것 본 적 있습니까? 만약 자기들이 말한 내용이 틀렸거나, 그 말에 따랐다가 피해를 입었을 때, 그 결과와 피해까지 책임지는 무속인들을 본 적 있습니까? 저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례를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책임질 필요가 없으니 아무 말이나 내뱉습니다. 그냥 대단한 능력인 양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예언이나 하늘의 비밀이라는 말로 포장합니다.

 

그럼에도 이런 어리석은 유혹에 넘어가, 삶을 망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 사건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와 비슷한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 삶을 책임질 능력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없는 이들이 내뱉는 말에 자기 삶을 송두리 맡깁니다. 생명과 성공의 길인 줄 압니다. 온갖 말들로 멋지게 포장해서, 대단하고 특별한 능력이라 믿고 열심히 따릅니다. 그러나 그 끝은 죽음과 패망일 뿐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 속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악의 유혹이 크지만, 그 결과는 결국 본인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은 별다른 말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압살롬은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 동안 별다른 일이 없었던 건, 사건을 잊거나 용서해서가 아니라, 복수를 철저히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복여동생을 범한 암논이 정말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겠죠? 그러나 일단 사고가 일어났다면, 용서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2년 동안의 별다른 일이 기록되지도 않았고, 또 압살롬이 결국 복수한 모습을 보면, 암논은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초대하는 자리로 즐겁게 찾아갑니다. 암논이 얼마나 죄악에 눈이 멀고, 또 영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압살롬은 2년 동안의 복수를 빈틈없이 준비합니다. 자기 양털 깎는 날이라면 형제들을 모두 초대해 놓고, 그 앞에서 암논을 살해합니다. 본래 자기 아버지 다윗까지 그 자리에 초대했습니다. 다윗이 거절해 가지 않았지만, 압살롬의 본래 계획은, 자기 아버지와 다른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암논을 살해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녀들 사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음에도,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이런 방법으로 복수하려 했습니다.

 

결국 기름진 음식과 좋은 술이 가득한 잔치자리가 한순간에 사람이 죽고, 나머지는 도망해야 하는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웃음소리 가득했던 자리는 한 순간에 비명과 고통으로 가득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계획에 따라, 암논은 그 자리에서 죽고, 나머지 다른 형제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나귀를 타고 도망합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났고, 경황이 없는지라, 다윗의 귀에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왕자들이 죽었다고 들려 왔습니다. 다윗을 비롯한 신하들까지 통곡하며 쓰러질 지경입니다.

 

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혼란 중에 있을 때, 한 사람이 이 사건의 원인과 현황까지 정확하게 보고합니다. 압살롬이 자기 친동생 다말 사건 때문에 벌인 사건이고, 가해자인 암논만 죽였지, 다른 왕자들은 죽지 않았을 거라 보고합니다. 그리고 이 말처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잔치 자리에 갔던 다른 왕자들이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여기에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보고한 사람이 요나답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나답이 누군가요? 암논이 자기 누이를 향한 마음을 가졌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 해서 음식도 못 먹고 병이 생길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이때 암논에게 추악한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요나답입니다. 자기 마음을 주체하지도 못 해 병들어 있던 암논은 요나답의 조언대로, 병든 체 하고 있다가, 간호하러 와서 음식을 준비해 먹이려는 다말을 범했습니다.

 

만약 요나답이 암논의 잘못된 생각과 계획을 알고, 바른 길로 이끌거나, 잘못되었다고 바르게 충언했다면, 암논이 자기 누이를 범하는 어리석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감히 그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 여인, 그래서는 안 되는 여인을 탐내 얻는 것보다는, 왕의 자리를 얻는 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옳고, 쉽고, 좋습니다. 다말을 탐내는 일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일입니다. 하나님도 금하신 일입니다.

 

게다가 강압적으로 이 일을 벌이면, 아버지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 할 게 뻔한 상황입니다. 다말은 물론, 압살롬과 다윗과 다른 형제들에게 미움과 증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판단하는 일은 복잡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너무나 명확한 일입니다. 암논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왕세자의 신분이면서도, 이를 실행하지 못 해 병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바로 요나답의 간사한 조언을 들었기 때문에, 암논은 부끄러운 짓을 담대하게 저질렀습니다. 말도 안 되는 무속인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어머니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른 세 여자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유혹의 무서움입니다. 악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해 보이고, 그대로 따르면 잘되고, 복될 거라는 기대를 갖게 만듭니다. 한 걸음만 떨어져 보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저렴하고, 못된 말들이 없음에도, 그 한 걸음을 벗어나지 못 하게 합니다. 한 번 더 생각하지 못 하게 합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성공과 복을 향한 길이 아니라, 죽음과 패망과 절망을 향해 가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는데, 한 번 더 생각조차 못 합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그 순간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악의 유혹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었는지 생각하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들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죽음과 실패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다시 태연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보고하는 요나답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두 번째 생각은, 악을 유혹하는 자보다는, 그 유혹에 넘어가 악을 행하는 쪽이 더 큰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다윗의 자녀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 비극의 책임이 요나답에게도 적지 않습니다. 요나답이 간악한 방법을 알려주고 사주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왕세자라 하더라도 암논이 함부러 그렇게 실행에 옮기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할지 뻔함에도, 그렇게 악한 방법으로 유혹한 요나답도 그에 합당한 수준의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2년이 지나도록 요나답은 별다른 처벌을 받거나, 책임을 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왕 앞에서 직접 보고할 정도면, 그 지위가 여전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요나답이 다윗의 조카이기도 하고, 왕자들과 사촌이라는 점 때문에 그 지위가 유지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왕가에 이처럼 엄청난 문제를 일어나게 만들었으니 처벌을 받든지, 유배를 당하든지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왕 앞에서 여전히 머물러 있고, 직접 보고할 만큼 지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악행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암논 혼자만 지고 죽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악을 사주하는 자보다 악을 행한 자가 더 큰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악행을 유혹한 자나, 악을 행한 자나 비슷한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죠? 그럼에도 앞에서 예로 든 사건에서도, 악을 사주한 무속인보다, 악을 행한 이들이 훨씬 큰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해야 하는 책임이 각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별력을 갖추지 못 해,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고, 해야 할 일을 행하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 책임과 피해를 뒤집어쓰게 됩니다.

 

이게 악의 유혹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기들이 책임져 주지도 않고, 자기들은 큰 피해를 입지도 않으니, 악을 행하라고 쉽게 유혹합니다. 그 결과가 확실함에도, 자기에게는 피해가 크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무슨 말이든 내뱉고, 저지르도록 유혹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악을 사주하고 조언한 요나답은 여전하게 살고 있고, 악을 행한 암논은 죽음으로 끝나는 모습이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사탄은 우리를 언제나 죽음과 실패로 가도록 유혹합니다. 이 유혹은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까지 송두리째 빼앗을 만큼 강력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분별의 능력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고, 선과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 행해야 합니다. 악과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선택의 끝이 어떠할지를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런 유혹에 넘어가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본인이 져야 합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 한 것도 잘못이고, 더불어 악을 선택해 행한 것 역시 벌을 받아 마땅한 죄입니다. 악행과 거짓의 열매인 고통과 멸망을 딸 수밖에 없습니다.

 

간사한 요나답의 유혹, 그리고 거기에 넘어가 결국 처참하게 죽은 암논의 모습을 기억하고, 악의 무서움, 그리고 책임의 무거움을 알고, 영안으로 선악을 분별하고, 철저히 악에서 멀어지고, 모든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살아감으로써, 나날이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