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10523)유사함의 유혹을 이기십시오(삼하 14장 1-24절)

청명하늘 2021. 5. 23. 15:12

유사함의 유혹을 이기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141-24(484)

찬송: 438(내 영혼이 은총 입어), 420(너 성결키 위해)

설교: 2021052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예상치 못 한 사망 원인들 중에 부동액과 관련된 사건들이 알려지곤 합니다. ‘부동액은 자동차나 각종 엔진을 식히려 사용되는 냉각수가 얼지 않도록 여러 가지 첨가물을 섞어 만든 액체입니다. 몸에 닿는다고 해서, 곧바로 병이 생기거나 죽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부동액 때문에 사고가 난다는 사실이 좀 의아하죠? 부동액으로 인한 사고는 이를 음료수나 술로 잘못 알고 마셔서 일어납니다.

 

부동액은 회사와 제품에 따라 다양한 색깔로 만들어 냅니다. 물론 본래의 통에 보관되어 있으면, 이를 일부러 마시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다른 그릇이나 페트병 등에 보관하면, 이게 마실 수 있는 음료수인지, 아니면 죽을 수 있는 부동액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9년 전에는 라면에 부동액이 섞인 물을 넣었다가 한 사람이 죽고, 여러 명이 치료를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2년 전에는 소주병에 보관된 부동액을 소주로 알고 마셔 사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1월에는 미군 11명이 술인 줄 알고 마신 부동액 때문에 병원 신세를 졌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부동액을 마심으로써 생기는 인명사고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느 곳에서나 많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비슷함에서 생기는 혼란과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모양이나 색은 비슷하나, 사실은 전혀 다르거나 정반대 성질을 가진 것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비슷하니 방심하게 되고, 방심하니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고, 마셔서는 안 될 것을 마시다 큰 사고를 당합니다. 아예 전혀 다른 것임을 안다면, 이렇게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겠죠? 부동액을 마시면 죽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사실을 아는데, 누가 그걸 마시고, 그것으로 라면을 끓여 먹겠습니까? 모양과 색 등이 비슷하면 이처럼 혼동을 일으키고, 생명을 앗아갈 만큼 위험합니다.

 

이처럼 쉽고 간단하지만 치명적인 독을 내뿜기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사탄이 이를 이용하겠죠?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범함으로써 시작된 일련의 사건에서, 사탄의 유혹과 특징을 말씀드렸습니다.

 

사탄의 유혹은, 우리의 눈을 잘 속입니다. 좋아 보이고, 유익해 보이고, 갖기만 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처럼 사모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겉을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추악하고, 사악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전략은,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복과 성공을 약속하지만, 그러나 결국 파멸과 죽음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또 다른 전략과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문 앞에서는, 암논이 다말을 범하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이에 복수를 다짐하며 2년을 보냅니다. 그리고 암논의 경계심이 사라질 즈음이 되자, 자기 양털 깎는 날이라며 초대해서, 다른 왕자들 앞에서 암논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후환이 두려워, 이스라엘 밖에 있는 외가로 도망합니다.

 

다윗으로서도 자녀들 사이에서 비극이 계속되니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또 비참했겠습니까? 게다가 이로 인해, 자신을 이어 다음 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큰아들 암논이 다른 아들의 손에 죽고, 다른 민족에게로 도망갔으니, 다윗도 힘들고 마음 아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윗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압살롬이 자기 형을 죽인 사람이지만, 다윗에게는 아들이니 마음이 칼로 벤 것처럼 분명하게 나뉠 수는 없죠. 보고 싶은 마음이 점차 커져 갑니다. 하지만 이를 드러내지 못 합니다. 아버지로서는 아들 압살롬을 불러들이고 싶지만, 왕으로서는 그럴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다윗의 난처한 형편과 마음을 국방장관인 요압이 곁에서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직접 나서지 못 하는 다윗을 대신해 작전을 짰습니다. 한 여인을 가르쳐 다윗 앞에서 연극하라 했습니다. 이 여인이 다윗 앞에서 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자기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였습니다. 그러자 집안사람들이 살인한 아들에게 살인죄를 묻겠다며 내놓으라고 한다는 겁니다. 비록 형제를 죽인 아들이지만, 이 아들마저 처형되면, 자신의 가문이 끊길 수밖에 없습니다. 형제를 죽인 아들이 밉고 벌을 받아야 한다 생각하지만, 그러나 또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그런 아들이라도 남아야 가문을 이을 수 있기에, 곤란한 형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여인의 형편을 감안해서, 남은 아들을 처벌하지 않아 가문을 이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 약속합니다.

 

이때가 되어서야 여인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암논을 죽이고 타국으로 도망한 압살롬을 불러들이지 않고 있는 다윗 왕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여인의 형편을 듣고, 살인한 아들을 용서해 가문을 잇게 하겠다고 약속한 왕의 말처럼, 압살롬을 용서하고 불러들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이 모든 것을 요압이 계획했다는 사실을 알고, 요압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 과정을 들으시면 어떻습니까? 다윗이 잘 한 것 같습니까? 잘못한 것 같습니까? 하나님이 칭찬하실 만한 결정입니까? 반대로 하나님이 벌과 저주를 내리실 만한 결정입니까?

 

요압이 다윗의 마음을 잘 헤아렸습니다. 아버지와 왕의 입장이 다른 다윗이 곤란한 형편에 처한 줄 알고, 해결하기 위해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리고 원하는 대로 결과를 얻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불러들일 명분이 생겼고, 압살롬이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잘 해결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시작되어, 결국 압살롬이 반역을 준비해 일으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기 아들의 칼을 피해 황급히 피해야 했습니다. 요압의 중재와 노력으로 돌아온 압살롬의 마음가짐과 계획이 어땠는지 확인됩니다. 결국, 압살롬을 용서해 불러들이는 요압의 계획, 다윗의 동의와 허락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또 다른 계략을 알 수 있습니다. 비슷함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겉만 닮았으나 그 속은 전혀 정반대입니다. 비슷함을 악용해 미혹하는 방법은 크게 모습의 유사함과 의미의 왜곡을 들 수 있습니다.

 

먼저, 다윗에게 직접 압살롬을 불러들이라 직언하지 않고, 한 여인이 와서 마치 자기 일인 양 말합니다. 이 방법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후 우리아까지 죽게 만드는 죄를 저질렀을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말한 방법과 닮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했던 방법이 요압의 눈에도 꽤 좋아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한 여인을 통해 다윗을 설득했고, 다윗도 요압의 계획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요압이 사용한 이 작전은, 나단 선지자의 방법과 겉은 닮았으나, 그 속은 정반대입니다. 무엇보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에 반해, 요압이 전한 내용은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입니다. 출애굽기 2112절에서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라고 말씀합니다. 뒤를 이어, 고의로 죽인 사람은 하나님의 제단에서라도 끌어내어 죽이라 하셨습니다. 압살롬은 분명한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암논을 죽였으니, 반드시 회개와 용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요압이나 다윗 모두 이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간적인 감정과 판단에 따를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로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했고, 왕의 아들이니 살인죄조차도 마땅히 용서받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요압이 이용한 방법에서 엿볼 수 있는 사탄의 또 다른 특징은 전하는 내용에서 드러납니다. 요압은 여인에게 두 아들을 두었다고 꾸미도록 했습니다. 두 형제 중에 하나가 죽임을 당했으니, 하나밖에 안 남죠? 다윗이 이 여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 살인자 아들이 용서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까닭은, 남은 아들마저 죽으면 대가 끊기는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입장과, 여인이 말하는 자기 처지는 같지 않습니다. 다윗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태어날 솔로몬을 비롯한 아들들까지 생각해 보면, 가문이 끊긴다며 압살롬을 불러들이라는 말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여인의 입을 통해 나온 요압의 판단과 기준은 일부분 맞는 것도 있지만, 절대 동일시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요압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다윗을 현혹합니다. 다윗도 자기 욕심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 슬쩍 넘어갔습니다.

 

14절에서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도 맞는 내용이 있고, 잘못된 내용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고, 일어난 일들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도 맞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쫓긴 자를 어떻게 해서라도 버림받지 않게 하신다는 내용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영생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 하는 교만한 이를 싫어하십니다. 죄악을 여전히 담고, 그러면서도 회개할 줄 모르는 이들마저 모두 받아들이시지 않고, 오히려 누룩처럼 다른 무리들까지 오염시킨다며 싫어하시고 내쫓으라 하십니다. 큰 죄를 짓는 자마저 무조건 품고 지나가라 하시지 않고, 진중에서 쫓아내라 하십니다.

 

요압과 다윗이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하길 원했다면,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는 압살롬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철저히 죄를 회개하게 하고, 이후에야 돌아오도록 해야 했습니다.

 

결국 압살롬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한 요압의 노력은 그 결실을 맺었지만, 그러나 성령과 복과 평안과 화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때문에 다윗의 가정은 물론, 이스라엘 전체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자기희생으로 화평으로 가득해야 할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오히려 죽고 죽이는 전쟁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길과 방향에 따르지 않고, 사탄이 바라고 계획한 대로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사탄이 요압을 통해 이용한 전략을 사이비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겉은 비슷하나 그 속은 완전히 다른 가짜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모양이 아예 다르면, 거기에 속는 사람이 없습니다. 속까지 괜찮다면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양은 비슷하나 속은 정반대면, 겉에 따라 속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해치겠습니까?

 

사이비의 무서움이 바로 이것입니다. 전체가 이상하거나 잘못되었다면, 속아 넘어가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그러나 일부는 정상이기 때문에 속습니다. 바른 교회처럼, 성경도 있고, 예배와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죄와 구원과 부활과 영생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슷함 뒤에, 사탄의 전략인 독을 숨겨 놓습니다. 이 함정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온 사람들은 어느새 중독되고,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 하게 됩니다. 완전히 중독되면, 이제는 자기들이 만든 기준이 진리라 하고, 더 이상 하나님과 예수님은 없게 됩니다.

 

사탄이 사이비를 이용하는 또 다른 계략과 작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섞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적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바르게 해석해야 하고, 적용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사람의 욕심과 기준을 함부로 더하면 안 됩니다. 부담되고 어렵다며,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를 거부하거나 일부만 적용해서도 안 됩니다.

 

이런 점에서 잘못되면, 사이비 이단을 향하게 됩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찾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 곳곳에서, 조금씩 떼어내고, 붙이고, 오려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로 만듭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말은 분명 성경 속에 나오긴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의 말이 되고, 복과 은혜로 이끄는 등불이 아니라, 저주와 죽음으로 이끄는 덫이 되고 맙니다.

 

봄에 나오는 나물 중에 취나물이 있죠? 향도 좋고, 맛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 나물을 소개하면서, 초보자들에게 주의사항이 함께 나오곤 하는데, 바로 독초인 동의나물과 모양과 색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취나물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동의나물을 취나물 사이에 두면, 쉽게 구별을 제대로 못 할 것 같습니다. 비슷함이 주는 위험성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복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복과 은혜 가운데 살기 원한다면, 바로 신앙의 독초를 구별하고, 쳐낼 줄 알아야 합니다. 맛있는 버섯과 닮은 독버섯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알아야 하고, 잘못된 사이비의 말들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단지 교회라는 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서 예배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고, 예배가 되고, 신앙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사탄과 그 무리들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를 하나님의 말씀과 뜻으로 잘못 알고 믿고 따르면, 그 끝은 다윗과 요압의 결국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평안과 은혜가 아니라, 난리와 고통과 저주가 오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자, 우리의 삶을 더 큰 복과 기쁨으로 채우기 위한 조건입니다.

 

요압과 다윗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욕심과 인간적인 기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모양과 형식만 채우려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실수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과 뜻 가운데 살아감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언제나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