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10606)악의 본바탕을 바로 봐야 합니다(삼하 15장 1-12절)

청명하늘 2021. 6. 6. 15:21

악의 본바탕을 바로 봐야 합니다

 

성경: 사무엘하 151-12(486)

찬송: 338(내 주를 가까이), 366(어두운 내 눈 밝히사)

설교: 2021060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의해 강점당했다 1945년이 되어서야 해방되었습니다. 그 후 5년이 지나자 남북으로 갈려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악랄한 일제에서 막 벗어났을 때도 빈털터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곧 바로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처절하고, 어려웠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 전쟁으로, 사망자만 200만 명이 넘었습니다. 1,000만 명 이상이 가족을 잃거나 헤어져야 했습니다. 당시의 인구 수가 채 2,000만 명이 안 되었으니, 절반 이상이 회복할 수 없을 만한 어려움과 아픔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또 잔혹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면, 아군과 적군이 분명하게 나뉘어 싸우고, 죽이고 죽는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아군이거나 전혀 상관없는 민간인을 공격해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하는 사고의 비율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오죽했으면, ‘적의 사격보다 더 정확한 건 아군의 오인 사격이다는 말이 생길 정도입니다.

 

한 자료에 따르면, 오인사고의 비율이 제 2차 세계대전의 사상자 21%, 베트남전의 사상자는 39%, 걸프전에는 52%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다치거나 죽은 10명 중에서, 적어도 2, 많을 때는 4,5명까지 같은 편이면서도, 적이라 생각해 공격하다가 발생할 정도입니다.

 

같은 편임에도 적이라 여겨 공격하는 일들이 이처럼 많다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인데도 적인 줄 모르고, 오히려 같은 편이라 여겨 방심하고, 가까이 하다, 한순간에 공격을 받고, 피해를 입는 경우입니다. 같은 편으로 위장 침투시키는 전략은 전쟁에서 가장 흔하게 이용되죠? 또 그 피해 역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한순간에 생명이 오가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피아식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살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준비하고, 해야 할 일들이 많죠? 좋은 무기도 만들어야 합니다. 또 군인들을 잘 훈련해야 합니다. 좋은 작전도 짜야 합니다. 그러나 무기를 만들고, 군인을 훈련시키고, 작전을 세우는 일보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

 

만일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 하면, 아군을 적으로 여겨 공격할 수 있습니다. 내 편을 내 손으로 해치게 됩니다. 적을 아군으로 여겨도, 오히려 적을 돕고 함께하다가, 그 손에 자신과 아군이 당하게 됩니다. 그만큼 적을 적으로 알고, 아군을 아군으로 제대로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작업이 제대로 안 되면, 우리 편이 만든 가장 좋은 무기가 우리 편을 공격하게 됩니다. 적을 가장 가까이에 두는 형편에 처하게 됩니다.

 

이는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을 적으로 알아야 하고, 우리에게 해로움을 주는지 유익함을 주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 일이 뭣보다 중요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하고, 예배도 잘 드려야 합니다. 기도와 전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눈앞에 있는 게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구별하는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합니다. 그 일이 우리의 영혼과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결국 파멸과 죽음을 향하도록 만드는지를 구분하고, 선을 그을 만한 안목과 지혜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간단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그러나 절대 쉽거나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만큼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면, 누가 이에 속아 넘어가겠습니까? 누가 자기 삶을 해치고 파괴하는 길을 선택하고, 자기 인생을 무너뜨리는 이를 곁에 두며 살겠습니까? 이 작전은, 그에 들이는 수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좋은 효과를 드러냈습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이 이에 속아 넘어가 삶을 망쳤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도 이를 잘 알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실패와 멸망으로 이끌기 위해 이를 가장 많이 이용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도 이를 이용하는 압살롬의 모습과 이에 넘어가 결국 패망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압살롬이 자기 형을 살해하고 도망했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다윗은 얼굴조차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이 국방장관인 요압을 압박해, 다윗도 압살롬과 화해합니다.

 

문제는 이 다음입니다. 압살롬이 자기 형을 살해하고, 아버지 다윗과 화해하려는 노력이 진심에서 우러나왔다면, 해결된 후 더 감사하며 살았겠죠? 하지만 압살롬의 이후 모습을 보면, 압살롬의 속마음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의 용서를 어렵게 받고, 5년만에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된 입장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아버지 다윗의 용서를 받자, 압살롬이 가장 먼저 수레와 말을 여럿 준비하고, 호위병을 50명이나 두었습니다. 요즘 대통령이 어디를 가면, 수십 명의 경호원들과 차량들이 따르죠. 요즘은 총이나 폭발물의 위력이 커졌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의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당시 최고의 무기라 해도 겨우 활이나 창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호위병을 무려 50명을 두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탈 수레와 말들까지 준비했습니다. 요즘으로 보면, 탱크나 비행기를 타고 다닌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멋지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성문 근처에 서서, 왕의 판결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갑니다. 지금은 대통령이나 총리가 정치를 담당하고, 재판은 법원이 담당하지만, 다윗 시대는 이런 체제가 없었습니다. 결국 왕이 최고 재판소의 역할까지 담당했습니다. 바꿔 보면, 왕으로부터 재판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가장 억울하고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이 간절할 수밖에 없죠? 압살롬은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현혹합니다. “당신의 입장이 너무 딱합니다만, 당신의 억울하고 어려운 형편을 왕에게 전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대신 나를 재판관으로 세워 준다면, 당신의 억울함과 어려움을 해결해 줄 것입니다.”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왕은 들어주지도 않고, 전해줄 통로마저 없는데, 왕자 압살롬인 나서서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니, 고맙고 또 마음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엎드려 절하려고 하면, 절을 못 하게 하고, 오히려 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자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할 텐데, 왕은 관심도 없고, 들어줄 길도 없는 자기 이야기를 왕자가 들어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거기다 엎드려 절하는 것도 거부하고, 동등한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했으니,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업을 무려 4년 동안 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백성들 마음속에는 다윗 왕에 대한 권태감은 커지는 데에 반해, 압살롬에 대한 기대와 감사는 더욱 커졌습니다.

 

그렇게 4년이 지나자 압살롬은 드디어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깁니다. 다윗에게 예전에 하나님께 했던 서원을 이루도록 헤브론에 가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기 전, 나라가 둘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때 다윗이 다스리던 곳의 수도가 바로 헤브론입니다. 또 이때 다윗이 낳은 아들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에게는 헤브론이 고향이기도 하고, 친척과 친구들, 지지기반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여러 이유로 헤브론을 선택했고, 다윗이 허락하자 이백 명이 함께 갔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손님이 아니라, 유력인사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이때 압살롬을 따라 간 이백 명이 압살롬의 음모를 알지 못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압살롬이 사용한 전략이 사탄의 전략과 같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압살롬은 화려함, 관심, 겸손을 가장했습니다. 거짓으로 꾸몄습니다. 전혀 그렇지 못 한 본색을 감추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만한 것들로 꾸몄습니다.

 

압살롬의 지위는 한 나라의 왕자이지만, 이미 형제를 죽인 살인자이기에, 많은 호위병을 둘 만한 위치가 아닙니다. 압살롬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처지가 정말 딱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재판을 받으러 오는 이들을 기다려 맞이한 게 아닙니다.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준 사람들의 절을 마다하고, 일으켜 세워 동등하게 대한 까닭도, 자신이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압살롬의 모든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그 결과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작전에 불과했습니다. 이 계획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잘 맞았는지, 압살롬을 따라간 이들 중 그 누구도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 했습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멋있고, 겸손하고, 그래서 가까이 하면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인 압살롬이었는데, 그러나 그 속은 전혀 다릅니다. 추하고, 교만하고, 악합니다. 자기 성공을 위해 모든 사람을 속이고 이용할 만큼 악랄합니다.

 

게다가 압살롬을 따라 간 이들 중 그 누구도 압살롬의 본색을 알아보지 못 했다는 사실이 소름끼치게 무섭지 않습니까? 압살롬을 따라 헤브론까지 간 사람들은 피아식별을 전혀 못 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해치고 죽이는 적을 알아보지 못 하고, 겸손하고, 의롭고, 결단력이 있는 좋은 사람으로 알고 따랐습니다. 이처럼 적을 알아보지 못 하고, 가까이하고 따라갔으니 그 결과야 뻔하지 않겠습니까?

 

성공하고 잘된 것 같고, 바라는 바들을 이룬 것처럼 보여 기뻐했겠죠? 그러나 그 시간이 절대 길 수 없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야 할 만큼, 악의 힘이 강해 보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자, 압살롬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압살롬의 본색을 알지 못 하고, 따라갔다가 반란에 동조한 사람들의 마지막도 크게 다를 수 없습니다.

 

압살롬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를 멸망으로 이끌고자 하는 흑심을 품고, 작전을 펼치는 사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방식은 멋있어 보입니다. 겸손해 보입니다. 유익해 보입니다. 가까이하면 힘이 되고, 잘될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흔히 사탄과 귀신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나 그림에서 본 모습들을 많이 떠올리죠. 보기만 하면 무서워 꼼짝 못 하게 하거나, 역겨워 얼굴을 돌리게 만들 것처럼 마음에 그리곤 하죠?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겠죠? 성경 어디를 봐도, 사탄이나 귀신의 모습이 무섭거나 추해서, 도망하거나 피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사탄과 귀신의 유혹이 얼마나 대단한지, 하나님의 사람들이 속아 넘어간 경우는 많습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지고 화려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삶을 잘되게 할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영의 눈을 뜨지 못 하게 만들 만큼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끝은 반드시 실패와 멸망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유혹에서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 피아식별의 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적과 아군을 제대로 구별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앞에 있는 누군가 혹은 무슨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주고, 결과를 만들어 낼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당장 매력적이냐, 내게 이익을 주느냐의 기준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더 길게는 구원과 영생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친절과 겸손과 유익의 탈을 쓰고 다가오는 것마저도, 그 아래 숨겨 있는 의도와 계획을 바로 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쁜 길을 걸러내고, 좋은 길을 선택해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하고 따르다가는 결국 실패와 좌절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복과 평안으로 세워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여러 가지입니다. 돈도 있어야 가난으로부터 오는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질병으로부터 오는 아픔을 덜 겪게 됩니다. 앞날을 위한 계획을 잘 세우고, 열심히 수고해야,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필요한 일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과, 우리 삶의 모든 순간까지 아시고 이끄심을 믿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도 필요합니다. 받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이런 일들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 만들어 가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너머에 있는 본색과 정체를 확인하고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탄이 만들어 우리를 빠트리려, 평안과 복과 성공으로 덮어 숨겨놓은 함정과 유혹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유혹이 아무리 크고 달콤해 보여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망설이지 않고 돌아설 만한 과감함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탄이 이용하는 방법과 특징을 기억하고, 기미라도 있으면 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압살롬은 친절과 겸손과 유익의 탈을 쓰고 많은 이들을 현혹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끝을 보지 못 하고 따르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압살롬과 그 무리들의 모습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악의 유혹을 분별하고, 좋은 것을 택함으로써, 나날이 복되고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