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
성경: 사무엘하 15장 30-37(구 488쪽); 16장 15-23절(구 490쪽)
찬송: 204장(주의 말씀 듣고서), 335장(크고 놀라운 평화가)
설교: 2021071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다음 대통령 선거일이 약 8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내년 3월이니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장 큰 선거로서 여러 과정들을 거쳐야 하기에, 대통령 선거 일정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대선 의사를 밝힌다고 해서, 대통령 선거에 직접 출마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당이나 단체에서는 후보자 하나만 대선에 출마시키니, 당의 후보자를 향한 과정에 출마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얼마 전에 두 사람이 대선 출마 행보를 보여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데에는 필요한 자격과 조건이 있습니다. 제한 연령이나 기타 몇 가지 조항에서 어긋나지 않으면, 자유롭게 출마할 수 있습니다. 출마 의사를 밝힘으로써, 많은 논란을 일으킨 두 사람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출마해서는 안 될 정도의 문제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토록 많은 비난을 받고, 논란을 일으킨 까닭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공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은 감사원장에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검찰총장으로 있었습니다.
감사원은 나라의 세입과 세출, 행정기관의 회계와 직무 등을 감찰하고 감사하는 기관입니다. 회사의 감사직도 엄청난 힘을 가지는데, 하물며 나라가 사용하는 돈의ㅏ 흐름과 결과를 감사하는 곳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또 거기서 최고 자리인 원장이라면 공무직에서 최고의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전 서열에서도 감사원장은 10번째라고 합니다.
검찰총장도 책임과 권력이 대단하긴 마찬가집니다. 범죄를 수사하고, 범인을 구속하고, 기소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사건을 조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권한이 검찰에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최고의 자리는 총장직입니다.
책임이 크고 중요하기에, 이런 자리에 오르는 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자리가 중요한 만큼 또 그에 합당한 사람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검증 절차를 밟았겠죠. 실력이나, 적합성 면에서 통과되었기에 그런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대선에 출마할 의사를 비쳤다는 까닭만으로 비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앞으로도 여전히 거쳐야 하는 관문이 많이 남아 있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다 할 정도로 검증을 받습니다. 이제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행보를 안 좋게 보는 까닭은, 공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직이란 말 그대로 자기 이익과 출세보다는, 나라와 다수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공직에 있는 이상,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안녕이 가장 큰 목표여야 합니다. 그런데 공직에 있는 동안, 이미 대선에 출마를 향한 계획과 행동을 보였으니, 적절치 못 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판단과 선택은 투표권을 가진 이들의 몫입니다. 각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판단과 기준이 있을 것이고, 검증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뽑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공직을 마치자마자 출마 의사를 밝힌 사람, 혹은 출마 의사를 밝히기 위해 공직을 떠난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과 방향이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또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맡은 바 책임과 자리에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더 높아지고, 더 갖는 일에 욕심을 부렸다는 점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왜 뽑습니까? 일을 많이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까? 이것도 한 가지 이유일 수 있지만, 이유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은 신이 아닙니다. 초능력자도 아닙니다.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고,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역할을 하지, 실제 일은 관련된 사람들이 담당합니다. 대통령에게는 일을 많이 잘 해낼 수 있는 능력보다, 자기 자리에서 옳게 판단하고, 방향을 잘 정하고 이끄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가진 권력과 책임의 범위와 방향을 잘못 이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지금까지 몇 명 안 되는 역대 대통령들을 통해 충분히 확인했습니다. 국민들을 고통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고, 독재를 저지릅니다. 나라와 국민의 발전과 행복은 뒷전이고, 자기가 더 갖고 누리는 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통령을 뽑을 때, 무엇보다 필요한 조건은 바로 맡은 바 책임을 알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이런 덕목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일하는 능력보다 비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최고 자리인 대통령이 되려, 공직에 있을 때부터 여러 언질을 보이고, 실제 그렇게 행동한 두 사람은 바로 이런 점에서 부족해 보입니다. 공직에 있는 동안에, 출마할 듯한 발언과 행동을 보이고, 공직을 떠난 직후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사람을 모으고, 여러 현안에 대해 발언을 쏟아낸 모습들을 좋게 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자기 맡은 바 책임과 사명보다는, 더 크고 높은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과연, 공직에 있는 동안에 공명정대하게 일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생깁니다.
성경에서 좋은 일꾼과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9장 17절에서는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일꾼, 충성된 일꾼으로 인정하시 기준은 분명합니다. 많은 일을 해내고, 업적을 높이 쌓는 일꾼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그게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아주 간단하고 쉬워 보이는 이 조건과 기준이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가 가진 것과 한계에 만족하고 충성하기보다는, 더 많이, 더 높이, 더 넓게 욕심내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가 뱀으로부터 이 유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수많은 것들 중 하나에 불과하면서도, 하나님처럼 되라는 유혹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를 이기지 못 하고, 넘봐서는 안 될 욕심을 품고, 회복할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유혹이 우리 모두에게 본능으로 심어졌습니다.
이를 반대로 이용하면, 좋은 일꾼을 고르는 기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한 사람이 큰일에도 충성한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욕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좋은 일꾼입니다. 자기 맡은 자리보다, 더 크고, 높은 자리를 향해 욕망의 날개를 펼치는 사람은 나쁜 일꾼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후새가 왜 좋은 일꾼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충성을 다한 후새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잘 드러납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다윗이 궁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릅니다. 다윗의 권력이 크고, 왕위가 안정되었을 때는, 아군과 적군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누구 할 것 없이 다윗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씁니다. 그런데 다윗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고, 피난길에 올라야 하는 형편이 되자 그 동안 감춰 있던 본모습이 하나둘씩 드러납니다. 진심으로 충성한 사람은 다윗이 처한 어려움과는 상관없이 계속 충성합니다. 그러나 충성한 척 연기한 이들은, 다윗의 어려움을 틈타 다윗을 조롱하며 비난합니다.
오늘 보는 본문은 두 곳이고, 모두 후새라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기록했습니다. 15장에서 다윗이 막 피난길에 오를 때, 후새가 엎드려 맞이하며 자신도 함께 떠나겠다고 합니다. 후새의 충심이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다윗은 후새에게 함께 피난길을 떠나지 말고, 성읍에 남아서 첩보활동을 해달라고 합니다.
다윗이 다른 사람이 아닌, 후새에게 성읍에 남아, 일어나는 일과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15장 31절에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삼하 11:3, 23:34)였고, 그 동안은 다윗의 자문관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지혜와 책략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본문 앞 12절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처럼,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며 가장 먼저 섭외해 자기 사람으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아히도벨의 지략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이 사람이 압살롬 편에 서자, 압살롬 쪽으로 오는 사람이 크게 늘 정도였습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섰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가장 나쁜 일이었고, 압살롬에게는 가장 좋은 일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아히도벨이 압살롬 편에 섰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윗이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아히도벨에 맞설 만한 능력과 지략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본문에 나오는 후새입니다. 다윗으로서는 후새가 자신과 함께 피난하면, 엄청난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아히도벨의 작전을 무력화시킬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후새에게 남으라 합니다. 남아서 압살롬으로 돌아선 것처럼 위장 전향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후새는 다윗의 요구대로 그대로 행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후새가 얼마나 충성스럽고, 또 훌륭한 일꾼, 신하였는지 잘 드러납니다. 후새로서는 얼마든지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능력도 있었고, 기회도 충분했습니다. 그 동안 다윗을 섬겨왔지만, 다른 사람이 그런 것처럼, 힘을 잃고 위기에 처한 다윗을 버리고, 민심을 얻고, 세력을 키운 압살롬 편에 설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이전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 오르고, 풍요롭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후새는 고난과 눈물이 가득할 다윗과 함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것도 대단한데, 다윗의 요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후새에게 남아 첩보 활동을 하라는 겁니다. 얼마 있으면 반역 세력이 예루살렘 지역으로 들어옵니다. 다윗과 그 세력은 피난길에 올랐으니, 후새가 예루살렘에 남아 있으면, 주위가 반역 세력으로 가득해진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반역 세력에는 지략이 대단한 아히도벨까지 있으니, 후새로서는 생명을 보장할 길이 없습니다.
다윗과 함께 피난길에 오르면, 힘들고 어렵긴 하겠지만, 주위에 같은 편들만 있으니, 훨씬 안심됩니다. 또 다윗과 함께 떠나야, 그곳에서 자기가 가진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이에 반해, 홀로 예루살렘에 남아 적진 속으로 들어가는 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잘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의 지략을 쉽게 펼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후새는 다윗의 이 명령을 군말 없이 받아들입니다. 적들로 가득한 예루살렘에 남았습니다. 중요한 일을 몰래 다윗에게 전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다윗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이 될 만한 계략을 짜서 말했을 때, 이를 막는 역할을 후새가 해냅니다. 아히도벨의 말대로 압살롬이 다윗을 공격했다면, 다윗은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큰 위기였습니다. 왕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한 사람, 자기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는 한 사람 때문에, 다윗은 적을 무찌르고, 다시 왕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후새와 같은 충정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후새 같은 한 사람이 있고 없고에 따라, 회복과 멸망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후새처럼, 끝까지 충성하는 사람 때문에 교회와 나라가 삽니다. 후새처럼, 죽음의 길마저도 감당하는 한 사람 때문에 회복과 성공의 길이 열립니다.
이 시대에도 후새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능력 좋은 사람, 지혜와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끝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충성하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재물과 건강과 여건이 넉넉한 사람보다, 자기의 이익과 성공을 계산하지 않고, 철저히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명을 위해 죽음까지도 감수할 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들 중 하나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많다는 점입니다. 지식과 능력만 보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과 지식을 갖추었으나, 오직 자신의 성공과 높아짐을 위해 애쓰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넓고 편하고 쉬운 길이 있으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위해, 좁고, 불편하고, 어렵고, 험난한 길로 가는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좋은 능력으로 큰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충성스럽다고 인정하시는 게 아니고, 일의 크고 작음을 내 기준으로 나누지 않고, 자기 자리에 감사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충성스럽다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은 많은 일을 이룬 이들에게 큰일을 맡기시지 않고, 작은 일에도 묵묵히 감당해 내는 사람, 끝까지 애쓰는 일꾼에게 큰일을 맡기십니다. 본문 속에 나오는 후새 같은 사람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까닭입니다.
자기 자리와 성공을 위해 나아갈 수 있음에도 철저히 끝까지 충성하고, 맡은 바 역할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된 후새처럼, 우리 모두도 높고 큰 자리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리에 감사하며, 감당키 위해 날마다 수고함으로써,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과 은혜로 삶을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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