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성경: 마가복음 11장 19-26절(신 74쪽)
찬송: 365장(마음속에 근심 있는; 통484),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통455)
설교: 2018070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여기가 행정 구역상으로는 전남 무안군에 속하죠? 무안은 한반도 전체에서 보면 거의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면, 아무래도 인구가 많아서 시로 승격될 수 있고, 또 교통이 발달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무안은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 사람들은 무안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어떤 사람이 ‘전남 무안’ 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몇 사람은 전북이냐, 경북이냐고 묻기도 하고, 몇 사람은 무안의 특산품으로 기억하기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안의 특산물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낙지와 양파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세발 낙지가 목포의 특산물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 와서 보니, 오히려 무안의 낙지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양파도 무안의 특산물로 유명하죠? 요즘은 양파 재배가 점차 북쪽까지 올라가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예전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양파가 이 지역에서 재배되었다고 하는데, 예전엔 전국 양파의 40-50%가 무안에서 생산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예전만큼 양파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무안과 양파를 연결해서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낙지와 양파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무안과 관련해 낙지와 양파를 떠올리는 사람들보다, ‘무안 단물’이라는 답이 더 많이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무안 단물’이 뭔지 아세요? 저는 처음 들어봐서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습니다. 질문이 전남 무안이라는 지역과 관련된 것이고, 그에 대한 답이 ‘무안 단물’이었으니 무안과 연관되었다는 것은 짐작은 가지만, ‘무안에 몇 년째 있는 나도 모르는데,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다른 지역 사람들이 더 잘 아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찾아봤습니다.
해제에서 지도로 가기 위해 좌회전해 조금 가다 보면 무안만민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이 만민중앙교회 목사의 고향이라 세운 교회입니다. 만민중앙교회는 6만여 명이나 되는 대형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유명하죠? 좋은 쪽으로 유명하면 좋은데,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게 두 번입니다. 1999년에 MBC 방송의 PD수첩에서 목사의 비리와 도박 횡령 불법 건축, 불법 대출 등에 대해 방영하려 하자, 만민중앙교회 교인들이 방송국을 점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좀 잠잠한 것 같더니, 이제 한 달 되었죠. 올 5월 31일에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몇 십 년째 여성도를 성추행 및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힌 채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2000년에 해제에 있는 무안만민교회에 식수가 부족해서 기도했더니, 바닷물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했는데, 이것을 성경의 사건과 연결시켜서 ‘무안 단물’이라고 합니다. 이 물을 먹고 마시고 이용해서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고 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간증한 내용들을 보면, 병이 낫고, 원형 탈모증이 없어졌고, 교통사고를 당해 거의 죽을 정도에 있던 강아지가 낫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이 밝아지고, 듣지 못 했던 사람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쌍꺼풀이 생겼다고 합니다. 간증들 중에서 가장 어이없는 것 중 하나는, 고장난 세탁기에 이 물을 부었더니, 세탁기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http://news.manmin.or.kr/n/no241~/no248/spc_01.htm)
이 사람은 정상적인 기독교 목사가 아닙니다.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들이 워낙 잘못되어서, 몇 십 년 전에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주장하는 것들, 살아가는 모습들만 봐도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사람을 위대한 사람, 구세주, 또는 하나님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법을 어겨서 구속되었음에도, 지금도 그 교회에는 수 만명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모습이 일어났겠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사람들의 생각들 중 하나는, 믿음과 능력이란, 하나님이 되는 것 혹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어긴 것보다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다는 것이 훨씬 더 큰 죄입니다.
회사로 생각해 보면, 사장이 자신한테 시킨 일을 어긴 것과, 이제 신입사원인 사람이 자기가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사장을 몰아내고, 회사를 자기 맘대로 이끌려고 하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쿠데타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어기고, 시키신 일을 하지 않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죄는,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처럼 맘대로 하려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죄입니다.
그런데 신앙인들 중에 이런 죄에 빠진 경우가 많습니다.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거기에 따라준다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 능력 있는 목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뜻과 계획을 변경해서 더 많이 응답하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사람의 뜻대로 기도가 응답될수록 기도하는 사람이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능력 있는 사람도 아니고, 능력 있는 목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 위대한 목사로 생각하는 사람도 역시 함께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내용들 중에, 자신이 하나님이 되거나, 하나님처럼 되는 듯한 표현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 내용들을 보면, ‘자신이 아브라함 등 선지자들과 예수의 제자들을 부르면 그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한다 △나의 영이 하나님 보좌 왼편에 앉아 있다 △영안(靈眼)으로 보면 하나님의 모습이 보이는 데 큰 입과 빨려들어갈 것 같은 눈이 나와 닮았다’ 등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람의 인터뷰를 보니, 죄를 씻기 위해서 자기와 육체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자기를 성폭행한 후에는 꼭 미안하다며 큰돈을 줬다는 것입니다. 그 행위가 죄를 위한 것이라면, 미안하다거나 그에 대한 보상이 없어야 하는데, 그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꿔 보면, 피해자라고 생각한 여성도, 담임목사가 돈을 건네거나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성폭행을 통해 자기 죄가 사라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거짓과 교만이 가득한 이를 하나님처럼 믿는 어리석은 모습들 아닙니까? 양심과 상식도 없고, 믿음도 없습니다.
이것은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기도, 능력 있는 기도, 하나님이 응답하실 만한 기도란, 하나님을 내 맘과 뜻대로 이용하거나, 하나님이 내 뜻에 따라 행해주시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란 철저히 나의 생각과 계산과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따라 사는 것처럼, 기도란 먼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이끄심을 믿고 인정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이 3년 반가량의 공생애를 마치시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당시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들어가시기 전에 배가 고프셨는데, 근처에 있던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가셨지만,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는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아직 무화과가 익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나무를 저주하시고, 당시 이스라엘 전국에 하나만 있던 성전에 들어가셔서,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방해하는 장사꾼들과 제물들을 모두 쫓아내셨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성밖으로 나가셔서 하루를 묵으신 후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중에 오늘 본문의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면서 보니, 전날에 열매가 없어서 예수님이 저주하셨던 나무가 뿌리부터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이 놀라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기도, 그리고 기도의 응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으로 설교하면, 보통 한 가지 주제입니다. 믿음의 기도, 응답받는 기도, 능력 있는 기도란, 기도하는 대로 될 것임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 응답받는 기도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기도는, 사람 중심이고, 자기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도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응답의 여부를 사람이 결정하는 것은 사람 중심 기도이고, 응답의 여부를 철저히 하나님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결정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란, 사람 마음먹기와 믿음 여부보다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기도라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첫 번째 조건은 22절의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의 첫 조건이자 마지막 결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기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복되게 이끄신다는 것을 믿는 기도입니다.
이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일을 통해 기도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서 예수님이 저주하신 일에 대해,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13절)고 말씀합니다. 무화과를 얻을 시기임에도, 열매가 없는 나무는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열매를 위해 심었는데, 열매를 얻을 수 없다면, 나무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까닭은, 아직 열매를 얻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저주하시고, 나무가 말라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때와 기준이 오직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하시는 예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계산과 시기에 따르면, 무화과나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자연이 정한 때에 따라 열매를 맺으면 됩니다. 하지만 기준을 하나님의 때에 두면, 예수님이 필요로 하실 때 나무에 열매가 없었다는 것만으로 그 자체가 잘못이고, 그래서 저주를 받아 마땅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오늘 본문 앞에 기록함으로써, 기도와 연관시켜 말씀하신 까닭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모든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열매 맺는 것마저 하나님의 때에 맞춘다면, 기도의 응답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때와 방법을 정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기도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없습니다.
또 기도한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도 마찬가지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이 세상을 그 뜻대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결국은 우리에게 이롭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게 우리에게 유익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복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당장 눈앞에 있는 유익과 편함만을 생각하며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을 뜻대로 이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판단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계획 속에 세상을 이끄시고,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두 번째 말씀은, 다른 사람과의 화평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5절에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하나님께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누군가와의 다툼이나 문제가 있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오늘 본문 앞, 성전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연결된 것인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가지고 있고, 어떤 직분이냐 하는 것과는 별개로, 모두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자녀의 기도에 똑같이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의 병이 낫기를 위해 기도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저와 사이가 안 좋고, 다투고 앙금이 남아 있는 사람이, 저를 미워해서, 제가 더 아프도록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습니까?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저를 미워하는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이고, 저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의 기도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면 저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길은 아주 간단합니다. 서로 다툼이나 갈등이나 문제를 만들지 말고, 혹 그런 문제가 생겼다면 서로 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작정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고,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때문에, 기도하는 중에라도 다른 사람과 걸리고, 부담이 되고, 잘못이 있을 때는 먼저 용서하고 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허물도 용서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일을 우리에게 유익하게 이끄심을 인정하고, 바라는 것이 기도의 참 모습입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갈등과 앙금을 없애야만,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고,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로, 이 세상의 주인으로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며 기도함으로써, 우리를 복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더욱 기쁘고 좋은 열매들을 맺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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