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것이 목적입니다
성경: 사무엘하 24장 1-9절(구 506쪽)
찬송: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321장(날 대속하신 예수께)
설교: 2021112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전도사로서 중고등부를 담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학생이 “Q.T와 새벽기도 중에 무엇이 더 좋아요?”하고 물었습니다. Q.T.는 ‘경건의 시간’이나 ‘묵상의 시간’ 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천천히 읽고, 그 뜻을 조용히 되새기며,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함께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의견이 나뉘었던 모양입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교회마다, 또 신앙인마다 다릅니다.
새벽기도에 열심히 참석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좋아하시고, 응답하신다는 이들도 많습니다. 새벽기도회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전세계에서도 최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데도, 우리나라 교회들에서는 대부분 실시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통해, 복을 받는 신앙인들도 많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새벽기도회에 집중하고, 열심히 해서 성장을 이룬 교회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인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자체가 신앙의 수준을 드러내는 척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를 기준으로, 중직으로 임명하기도 합니다.
Q.T를 강조하는 교회와 신앙인들도 많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가장 큰 유익을 준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벽기도회에 매일 참석해 드리는 기도가 더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Q.T처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되새기며, 그 말씀 속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뜻대로 행동하며 살려는 자세가 더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질문을 듣고, 학생으로서 피곤하고 힘들 텐데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든, Q.T든, 그 외의 그 무엇이든 수단에 불과할 뿐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새벽기도나 Q.T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뜻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바라고 원하는 기도를 응답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만이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목적과 방법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방법은 새벽기도와 Q.T입니다. 목적을 위한 방법들에는, 이 외에도, 수많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식기도, 작정기도 등 기도가 응답을 받는 최고의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경통독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성경을 베끼는 일, 헌금, 봉사 등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방법들은 모두 목적을 위한 수단과 과정에 불과합니다. 방법들을 위해 목적이 있지 않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이 필요할 뿐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수단이 아무리 뛰어나고 좋아도, 목적과 목표에 앞설 수는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이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는 순간, 변질이고, 모든 가치를 잃게 됩니다.
이는 신앙생활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목적과 목표를 잃어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위해 애쓰는 순간, 신앙생활이 변질되고, 이런 변질이 계속되는 순간 신앙이 아니라, 교만과 죄악이 되고 맙니다.
이는 오늘 본문 속에서도 확인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인생에서 두 번째 큰 죄를 짓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삶에서 가장 큰 죄는, 밧세바와의 간음입니다.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서, 미련스러워 보일 만큼 충성한 우리아를 죽인 죄입니다. 이 때문에, 다윗 가문에는 죄악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들의 반란을 피해 도망해야 하는 비극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질책을 듣고, 회개함으로써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던 다윗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그 동안 이루어 놓은 자기의 업적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백성의 수가 어느 정도 되겠다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수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짐작만으로, 나라가 잘되고, 백성들이 많아졌음을 기뻐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이를 파악하고 싶었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고 기록해서, 마치 하나님께서 다윗이 죄를 짓도록 하셨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악과 타협조차 안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달라 보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죄악을 이용하시고,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혹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죄를 짓도록 부추기시지도 않고, 죄에 빠져 죽도록 시험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탄과 귀신의 특징입니다. 역대상 21장에서는,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1절에서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도, 하나님이 악을 이용하시거나, 다윗이 죄를 짓도록 함정을 파고 유혹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사탄이 다윗을 유혹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막지 않고 방관하셨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특별히 베푸시는 은혜들 중 하나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 보호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알려주신 기도에서도,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꿔 보면,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고, 악의 유혹을 막아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는 꽤 믿음과 다짐이 대단해 보일 때도 있고, 웬만한 유혹과 시험을 거뜬히 이길 수 있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우리 모두는 쪽배에 올라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항공모함이나 대형 여객선처럼 거대하면, 웬만한 바람과 파도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수준과 크기는 쪽배에 불과하기 때문에, 작은 물결과 바람만 일어도 금세 흔들리고, 물이 차고, 뒤집힙니다.
세상 가득한 죄악의 파도 가운데에서도,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과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까닭은,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미천한 믿음을 보시고, 사랑하시고,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 선 자처럼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도움을 거부할 때, 하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막지 않으십니다. 이 때문에, 자녀들은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 하고, 쉽게 넘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죄악의 유혹으로부터 자녀를 지키시지 않고, 방관하실 때를 성경에서는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역대상 21장 1절처럼, “사탄이 다윗을 충동하였다”고 할 수 있고, 오늘 본문 1절처럼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격동시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죄악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으실 만큼 다윗이 교만해졌습니다. 왕권이 안정되고, 군사력도 강해졌습니다. 전에는 이웃 민족들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당했지만, 이제는 주위 민족들을 무찔렀고, 나라가 강해진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아졌습니다. 다윗은 이를 직접 조사해서 확인하고픈 교만과 욕심을 이기지 못 하고, 인구조사를 펼치라 명령합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명령한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인구조사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민수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들을 조사하라 하셨습니다. 민수기 26장 2절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총수를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조사하되, 이스라엘 중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이 인구 조사를 명령에 하나님이 진노하셨으니, 인구수를 조사 자체가 아니라, 인구 조사를 명령한 이유 때문입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명령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왕으로서 세운 공로와 업적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있는 동안에, 주변에 있던 많은 적들을 무찔렀습니다. 당연히 땅은 넓어지고, 안정되니 백성들이 많아졌습니다. 점차 다윗의 마음속에 ‘내 덕분’이라는 자세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내 덕분에’ 나라가 성장했고, ‘내 덕분에’ 강해졌다는 계산입니다.
하지만 과연 다윗 덕분에 나라가 안정되고 발전했을까요? 물론, 앞선 왕인 사울에 비해 다윗은 분명 믿음과 성품이 뛰어나긴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윗 한 사람의 능력으로 나라가 부흥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윗의 능력으로 나라를 발전시켰다면, 다윗 때문에 일어난 가족 내의 분란과 반란으로 나라가 기울어지고 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이스라엘 땅이 안정되고, 발전한 까닭은,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겸손하게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싸움을 잘 해서, 다윗 혼자 모든 적들을 무찌른 게 아닙니다. 다윗이 백성들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자기 혼자의 능력으로 나라가 부흥했다는 착각과 교만에 빠졌습니다. 이를 백성들에게 수치로 확인시켜 주고자 인구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명령한 두 번째 이유는, 나라의 발전과 안녕은 군사력에서 온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강대국을 말할 때, 내세우는 기준은, 첫 번째는 경제력이고, 군사력은 두 번째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처럼 무조건 힘으로 침략하고, 빼앗을 수 없는 시대에도 군사력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물며 수천 년 전에는,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다윗도 바로 이 함정에 빠졌습니다. 군사력을 통해 나라의 안녕과 부흥을 이루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다윗이 왕에 올라 오래지 않았을 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8장 4절에서는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다윗은 적과 싸워 많은 포로와 말을 빼앗았습니다. 당시 말 한 마리는 요즘의 탱크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입니다. 적으로부터 많은 말을 빼앗았으니, 이를 자기 군대에서 이용하면, 그만큼 군사력이 강해집니다. 많은 전쟁을 겪은 다윗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100마리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말들의 힘줄을 끊었습니다. 그 말들을 전쟁에 쓰지 않겠다는 뜻이며, 승리가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믿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순수하고, 신실했던 다윗이 갑자기 군사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군사력을 자기 힘으로 키웠으니, 자기 능력이 이스라엘을 살리고, 발전시킨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아닌 다른 무엇을 가장 앞세워 삶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하나님은 ‘교만’이라 하십니다. 다른 무엇보다 무서운 죄로 여기시며 싫어하십니다.
군사력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발전시키는 보조 수단이었지, 절대 목적이나 목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통치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목표와 목적으로 삼고, 군사력을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의 권력을 수단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부흥시키고, 안정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갑자기 이 목적과 수단의 자리를 바꿨습니다. 수단에 불과한 군사력을 목표처럼 여깁니다. 왕의 권력을 목적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착각과 교만에 빠진 다윗의 결국이 우리에게 선택의 방향을 알려 줍니다.
다윗의 판단과 명령으로 나라가 발전되고, 자기의 자리가 더 높아진 게 아닙니다.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다윗에게 가장 큰 자랑거리였던 인구가, 15절에서 칠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수십 년 동안 늘렸다고 자랑하며 교만했더니, 단 사흘만에 스무 명 중 한 사람이 죽는 벌을 받았습니다. 자기자랑을 목적으로 행한 일이 결국 재앙의 원인과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믿음으로 산 다윗마저, 이처럼 쉽게 무너지고, 죄악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통해, 교만과 자기 자랑을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신실한 사람이 죄에 쉽게 빠지고, 재앙의 원인이 된다면, 우리는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다윗처럼 많은 업적과 공로를 쌓았어도, 절대 자랑할 수 없다면, 우리처럼 미천하고, 부족한 사람들은 교만과 자랑 근처에도 가서는 안 됩니다. 흉내마저 낼 수도 없고, 내서도 안 됩니다.
다윗은 좋은 믿음으로 겸손하게 나라를 이끌다, 한순간 방심해 교만과 자기 자랑을 목적으로 삼는 죄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한 고통은, 나라를 큰 위기에 빠지게 할 만큼, 크고 무서웠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사탄의 공격에 방치하실 만큼 미워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삶이 목적과 목표가 되고, 그 외의 모든 것, 심지어는 우리들 자신마저 수단에 불과함을 언제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목적으로 삼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겸손하게, 신실하게 믿음의 삶을 세워 나아감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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