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20306)솔로몬의 복을 모범 삼아(왕상 5장 1-18절)

청명하늘 2022. 3. 6. 15:23

솔로몬의 복을 모범 삼아

 

성경: 열왕기상 51-18(518)

찬송: 292(주 없이 살 수 없네), 384(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설교: 2022030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벌써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만, 초등학교 때 씨름 대회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선수를 목표로 정식으로 씨름을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 특별활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 주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서예나 독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곤 했습니다. 한 학년이라 해봤자 5,60명 정도고, 별달리 할 만한 부서가 없어 씨름부에 들어갔습니다.

 

몇 개월 그렇게 활동하다가 도내 초중학생들의 시합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대회를 목표로 했지만, 시골의 작은 학교인지라 특별한 준비나 연습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씨름 코치도 없었습니다. 씨름과는 아무 관련 없이 막걸리만 많이 드시는, 연세가 아주 많은 선생님이 담당하셨습니다.

 

그 선생님도 씨름에 대해 아는 수준이 저희와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겨우, ‘샅바,’ ‘안다리,’ ‘바깥다리,’ ‘되치기정도만 아셨습니다. 아시는 기술이 없으니, 훈련도 제대로 시키지 못 하시죠. 하시는 거라곤, 학생들끼리 시합을 시켜, 이기는 학생에겐 뽀빠이과자를 좀 더 주는 방법이 전부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준비가 안 된 채로, 전주에서 열린, 1회 전주 KBS국장기 쟁탈전 전북 초중학생 씨름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름도 아주 길지만, 그래도 방송국장이 후원하는 대회여서 전북지역 TV에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별다른 준비나 훈련 없이 참가했지만, 참가한 팀과 학생 수가 얼마 안 되어, 한 번씩 이겼더니,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4강에 오르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밑바닥 수준이었던 실력이, 대회를 기점으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몇 개월 후에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씨름을 잘 한다는 2,3학년 선배들을 아주 쉽게 이길 정도였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렇게 실력이 갑자기 성장한 이유가 단순히 자신감이 생겨서가 아니었습니다.

 

대회 중에, 실업 선수들이 몇 가지 기술을 선보이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이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술을 쓰는지를 이유와 목적과 방법을 곁들여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대로 된 씨름 기술이라 해봤자 TV로 보는 게 전부였는데, 선수들이 일부러 약속된 기술을 선보여, 어떤 기술을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너무 단순하고 무식했죠. 그냥 상대만 넘어뜨리려는 욕심에 힘만 앞세웠습니다. 샅바를 깊게 잡고, 어깨를 상대 아래로 밀어 넣는 과정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이 기술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자, 실력이 크게 올랐습니다. 어느 순간에, 어떤 방향으로 힘을 주어야 하는지, 또 어떤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게 되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씨름을 잘 하니,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 유도를 배워 보라는 2년 선배의 제의도 받았고, 욕심도 생겨 유도를 배우러 갔습니다. 선배가 사범에게 제 이야기를 해서인지, 가자마자 제게 그 선배를 잡고 넘어뜨려 보라고 합니다. 다리를 이용한 씨름 기술로 유도 2단인 선배를 어렵지 않게 넘어뜨렸습니다. 저는 선배가 쉽게 안 넘어가네...’ 정도로 생각하는데, 사범도 선배도 크게 놀라며, 재능이 있다고 인정해 줬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배우다 그만 두었습니다. 체육관에 가면, 몸을 풀고, 낙법을 비롯한 몇 가지 기술만 반복하다 끝났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기는지, 언제, 어느 기술을 쓰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안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씨름은 상대의 무릎 위를 땅에 닿게 하거나, 경기장 밖으로 밀어내면 이깁니다. 목표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유도에서는, 상대의 무릎을 꿇리거나, 넘어뜨려도 이겼다고도 하지 않고, 아무런 설명도 안 해 주니, 배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맛보기정도도 안 되지만, 씨름과 유도를 배우면서 저 나름대로 두 가지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배우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본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반드시 이유와 방법과 목적을 알아야만, 충분한 결과를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로,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서울 도착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방법과 수단이 어떻든 도착만 하면 됩니다. 차를 타고 가든, 걸어가든, 기어가든 목표한 지점에 다다른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방법과 방향에 따라, 가치와 분량에는 차이가 커집니다. 지혜롭게 노력하면, 목표한 곳에 훨씬 빨리 다다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지점을 향해 갈 수 있습니다. 서울만 목표로 한다면, 모로 가든, 기어가든, 뒹굴며 가든 다를 바 없지만, 판단과 결정에 따라, 열매와 모양은 전혀 달라집니다. 너무 늦게 도착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서울을 넘어 더 멀고 좋은 곳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지혜롭지 못 하면, 쓸모없는 과정에 너무 많은 힘을 쏟고,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외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서울 가는 길을 내가 직접 가보지 않아도, 서울 가기 가장 좋은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여러 길로 걸어 서울을 가보고, 그래서 가장 좋은 길을 아는 사람에게 듣고 배우는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피할 곳도 알고, 가장 빠르고 좋은 길도 배울 수 있습니다.

 

삶은 우리 모두에게 초행길과 같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이 땅에서 죽으면, 다음에는 동물이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믿는 종교도 있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습니다. 어차피 모두가 처음 가는 길처럼 삶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느리고 서툴고, 자주 넘어집니다.

 

어차피 느리고, 서툴고, 넘어질 바에야,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처음 겪는 일에서 실수를 줄이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에 가장 좋은 길은, 앞서 걸어간 사람의 모양을 보고 배우는 방법입니다. 내가 직접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아도, 어디에 장애물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헛걸음질 하지 않아도, 어디로 가면 헛걸음을 하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넘어지지 않아도, 자주 넘어지는 곳을 알게 됩니다. 똑같이 넘어지더라도, 덜 다치게 넘어지고, 넘어지는 횟수를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운동을 통해 배운 두 번째는, 단순히 반복하고, 땀 흘려 노력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이유와 방법과 목적을 알아야 가장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이를 잘 알려주어야 하고, 배우는 입장에서는 이를 잘 배우고 기억해야 합니다. 목적과 이유와 방법을 잘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에서 과거와 달리 정신력이야기가 많이 줄었습니다. 예전 운동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정신력’ ‘헝그리 정신이 강조되었습니다. 빈곤하고, 굶주린 상태처럼, 아무것도 없는 듯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선수들의 상황과 실력과 상관없이 정신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면, 모두 부족한 환경과 책임을 피하기 위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수들의 지금 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좋아진 이유는, 무엇보다 훈련하는 과정에서, 왜 이런 훈련을 하고, 왜 동작을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잘 배우고 이해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처럼 단순히 반복하고, 힘을 쓰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언제 어떤 동작을 해야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체계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잘 배우고 훈련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모두가 처음 걸을 수밖에 없는 과정에서, 실수와 착오를 줄이고, 더 크고 좋은 복을 받으려면,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앞서 복을 받은 사람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복을 받고, 어떤 복을 받고, 무엇을 위해 복을 받았는지를 보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하는 내용입니다. 본래 성전은 아버지인 다윗이 지으려 마음먹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다윗은 성전을 지을 기틀을 마련해 놓았고, 솔로몬이 왕이 된 후 드디어 성전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마침 이웃 민족인 두로 왕이 솔로몬에게 사절단을 보내자, 솔로몬은 성전을 위해 필요한 과정에 협조를 구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이 그 동안 무엇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 무엇을 향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부귀영화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담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을 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가 되자, 다른 무엇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발걸음을 곧장 내디뎠습니다. 자기 아버지 다윗이 평생 무엇을 간절히 소망했는지, 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토록 많은 복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앞 3장부터 연결해 보면, 솔로몬이 복을 받은 방법, 내용, 이유까지로 볼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솔로몬이 복을 받는 방법이 나오죠. 많은 신앙인들이 생각하는 바처럼, 단순히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려서 솔로몬이 복을 받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실 만큼,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장에서는, 솔로몬이 받는 복의 종류와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3장에서 약속하신 바처럼, 솔로몬은 지혜도 얻고, 부귀와 영광까지 얻는 내용과 범위가 4장 말씀입니다. 전에 종으로 살던 이집트와 어깨를 맞댈 만큼, 이스라엘의 땅은 넓어졌고, 강해졌고, 부유해졌습니다.

 

솔로몬이 복을 받은 이유를 기록한 3장부터, 복의 종류와 내용을 기록한 4, 그리고 받은 복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를 알려주는 오늘 본문 5장을 통해, 어떻게 해야 복 받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들 중에, 솔로몬만큼 크고 많은 복을 모두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복을 빠짐없이 받았습니다. 지혜도 받았고, 부귀와 영광도 받았고, 오래 사는 복까지 받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바라는 바들은, 솔로몬이 받은 복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솔로몬에게 이토록 큰 복들을 많이 베푸셨을까요? 단순히 솔로몬이 받아 누린 복이 크고 많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일까요? 솔로몬을 복의 모범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솔로몬처럼 복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구하고, 어떻게 살고,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솔로몬을 모범 삼음으로써, 우리는 아직 선택하고 행할 날들 속에서, 복과 저주와 복의 길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복된 길을 알아 선택할 수 있고, 저주를 알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수없이 반복되거나, 혹은 끝없이 오래 살 수 있다면, 모범을 찾아 따를 필요 없습니다. 몇 번은 이렇게도 해보고, 몇 번은 또 다르게도 해봐도 좋습니다. 몇 번은 실패해도 괜찮고, 몇 번은 헛걸음질을 해봐도 괜찮습니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수십 년 살 뿐이고, 이 땅에서 어떻게 선택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으로 나뉩니다. 실수를 되풀이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시행착오를 거친 후, 선별할 만한 시간이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앞선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선택하고 살았는지를 기록해 역사로 배웁니다.

 

영생과 복을 향한 걸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삶이 영원에 가까울 만큼, 삶이 길고 오래 계속된다면, 다양한 길로 걸어볼 수 있습니다. 실패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리 저리 살아봐도 괜찮습니다. 몇 번은 저주와 죽음의 길을 걸어보는 일도 괜찮습니다. 다시 회복하고, 좋은 길을 걸어보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기에는, 우리 삶은 턱없이 짧습니다. 연세가 많을수록 시간이 화살처럼 흐른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죠. 우리 모두가 경험한 바처럼, 세월은 빨리 흐르고, 또 그러면서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사랑하기에도 짧다는 말을 이용하면, ‘실패하고 넘어지기엔 너무 짧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크고 많은 복을 받은 솔로몬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솔로몬이 복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어떤 복들을 받았는지, 또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씀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 만한 믿음과 마음에 이르러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 받은 복을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데에 쓰는 사람이 아니라, 솔로몬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먼저 기억해야만, 비로소 에게 복 주신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솔로몬이 받은 복들을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넘치는 복을 받은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복된 삶을 살아간 내용을 바라는 모습도 좋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들 만큼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 이유, 그리고 받은 복을 하나님을 향한 일에 썼던 솔로몬의 믿음을 기억하는 게 먼저입니다. 복을 위해 기도보다, 그러한 복을 받을 만한 수준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솔로몬이 복 받는 과정을 모범으로 삼고, 따라 살면, 복과 은혜와 평안을 가까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우리에게 복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솔로몬이 그토록 넘치는 복을 받은 이유와 목적을 기억하고, 모범으로 삼아 따라 살아감으로써, 헛되고 어리석은 걸음을 멀리하고, 솔로몬의 수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살아감으로써, 날마다 복과 은혜와 평안을 누리는 자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