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70611)참 안식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막 2장 23-28절)

청명하늘 2018. 4. 2. 00:01

참 안식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 마가복음 223-28(56)

찬송: 483(이 몸의 소망 무엔가; 539), 288(예수를 나의 구주; 204)

설교: 20170611. 주일낮예배

 

 

 

바쁜 일상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말들 중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지 않아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꽤 많습니다. 교회나 예배 중에 사용되는 말들에 대해서는 전에 설명을 좀 드렸습니다만, 모두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복습한다는 의미에서 한 가지 여쭤 볼까요?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틀려도 감점이 없습니다.

 

사도신경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을 사도라고 하는데,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하는 내용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모아서 정리했다고 하는 신앙고백문이자 기도문입니다. 지난 주일오후예배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도신경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는 주기도문은 무슨 뜻일까요? 간단하게 표현하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간단하게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주일이 무슨 뜻일까요? 많이 듣고 사용하는 말이긴 한데, 막상 그 뜻을 표현하려고 하면 쉽지 않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요일로 부르다가, 갑자기 일요일이라고 하지 않고, ‘주일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고, 그 뜻도 쉽지 않습니다.

 

주일에서 는 주인이라는 뜻이고, ‘을 뜻하는 것으로서, ‘주님의 날이라는 의미이고, 요일로 따지면 일요일입니다. 본래 구약성경에서는 주일이 없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요일로 따지면 토요일입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금요일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요일로 따지면 일요일이죠? 그래서 한 주의 첫날에 신자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회의 모임에 함께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로 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토요일에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칠일안식교 같은 곳이 있고, 우리처럼 안식일이 아닌 일요일을 주님의 날로 정하고, 지켜야 한다는 곳으로 나뉩니다. 오늘 읽은 본문 속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구약성경에서 정한 대로 지키고, 거기다 자신들이 추가한 여러 가지 조항을 그대로 따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27절에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자체를 목적을 삼았습니다. 안식일이 목적이 되면, 바리새인들의 말처럼, 매주 마지막 날인 토요일이 안식일로서 지켜지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든지, 어떤 어려움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습니다. 안식일 자체가 목적이 되니,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내 이웃이 큰 고통에 처하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내 가족이 죽어나가도 일하지 않고, 정해진 바대로만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실제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났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성경이 기록된 후 약 400년이 지나서 신약성경의 첫 번째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400년 기간을 중간기라고 하는데,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하고, 제사만 지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적들이 이것을 알고, 나중엔 일부러 안식일에만 공격했습니다. 적이 공격해 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을 막지 않으면, 자기만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 모두가 큰 고통을 당하거나 죽게 되니, 목숨을 걸고 싸워 막고, 적을 무찔러야죠?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서, 적이 공격해 와도 싸우지 않았다가, 거의 전멸하게 될 위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로 당시 바리새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하는 안식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와 제사에 힘쓰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한 주의 마지막 날을 안식일로 지키느냐, 한 주의 첫째 날을 주일로 지키느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날 자체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거룩하고, 또 참된 의미의 안식일을 지키는 거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어떤 날을 지키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거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무엇을 생각하며 지키느냐에 따라, 안식일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사람을 옭아매고 괴롭힐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지켜야 하겠습니까? 바리새인들처럼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기도와 예배만 드리고, 다른 사람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지 않나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며 보내면 될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볼까요? 주일에 예배 시간이 가까워져 여러분이 교회로 오고 있는데, 교회에 안 다니는 분이 혼자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배 시간이 가까웠으니, 구급차를 불러놓고, 예배드리러 교회에 오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예배 시간에 늦거나, 아예 예배를 못 드린다고 하더라도, 곁에서 환자를 보살피고, 빨리 옮길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려주고, 또 병원까지 함께 가는 게 좋을까요? 예배를 제 시간에 드리기 위해 구급차만 부르는 것과, 환자를 지키기 위해 예배를 못 드리는 것 중에 어느 것을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좋아하실까요?

 

좀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대곡교회는 주일에 차량운행을 안 해도 됩니다만, 만약 멀리 있는 교인을 위해 제가 차량운행을 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죠. 예배 시간이 가까워서 제가 무안에서 교인을 태우고 교회로 오는 중에, 옆 동네 사람이 어떤 차에 치여서 쓰러져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목사인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목사고, 예배를 인도하는 위치에 있어서, 제가 제 시간에 못 오면 예배가 늦어질 수도 있고, 더 늦어지면 아예 주일낮예배도 못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목사가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 구급차를 불러놓고, 제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또 설교하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예배에 늦어지거나 심하면 아예 예배를 못 드릴 수 있는데, 환자를 병원에 빨리 옮기고 곁에서 지키고 조치를 취하는 게 맞을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생각은, 사람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니, 늦거나 방해되지 않도록 반드시 제 시간과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 하나님의 것을 지켜간다는 게 바로 사람을 살리고, 유익하게 하고, 지켜가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과 환영을 받으셨지만, 동시에 반대와 핍박과 조롱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그 동안 사람들로부터 외면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병으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 세리와 죄인으로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아왔던 사람들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모든 것을 핑계로 예수님을 노리는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겉모양은 구별되었으나, 좋은 의미에서의 구별이 아니라, 남을 해치고, 남을 죽이는 일에 철저하게 추한 능력을 드러낸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트집 잡았던 일들을 마가복음 2장에서만 찾아보면, 중풍병자를 고치는 일,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 하는 일, 금식하는 일, 그리고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는 일입니다. 조금만 방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일임에도, 왜 그렇게 철저하게 병든 생각으로 가득하겠습니까? 이미 그들의 마음이 병들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출애굽기 2011절에서는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통해, 수고한 사람들을 쉬게 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힘과 능력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날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안식일에 맞는 마땅한 정신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이 날로 온갖 트집을 잡고 비난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혼자 지고 가기엔 너무나 무겁고 힘겨운 짐 때문에 죽을 둥 말 둥 겨우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거나 돕기는커녕, 그 짐들 위에 더 무겁고 아픈 짐들을 얹었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39가지나 되는 세부 규정을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비난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재판관이 되는 것처럼, 안식일에 일하는 이들을 비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텃밭이나 나무에서 고추나 과일 한두 개 따먹는 게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밀밭 사이를 지나며 이삭 몇 개씩 잘라 먹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먹는 것 자체를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안식일에 하는 것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이 되는 양 안식일의 의미를 맘대로 해석하고, 자기들의 입에 맞게 이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한 주에 한 번 일하지 않는 날이 아닙니다. 한 주에 한 번 예배의 의무를 행하는 날이 아닙니다. 참 안식일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사람들에게 치유와 회복과 평안을 전하며 유익을 끼치는 날입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에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날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어떤 형식에 매여 있는 날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옴으로써 형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고통은 아담의 죄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죄가 들어오게 되고, 죄를 지은 인간, 죄를 짓게 만들었던 사탄, 그리고 인간이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모든 자연이 함께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수고하고 땀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심은 것은 잘 안 나는데, 심지 않은 것은 훨씬 더 잘 나고 잘 자라죠? 좋은 것은 쉽게 죽는데, 나쁜 것들은 잘 죽지도 않고, 어느새 씨가 맺히죠?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지은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곁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참된 기쁨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인간은 기쁠 수가 없습니다. 잠깐 쾌락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순간이고, 그 후에는 허무함과 절망감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육체의 쉼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를 지은 자들이지만, 보듬어 주시고, 새 힘을 주시기 위해서 안식일이라는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한 주에 하루만이라도 주님 가까이 다가가고, 주님의 것으로 덧입혀짐으로써, 살아갈 힘과 능력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한 주에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언제든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쁘고 좋은 날을 통해 바리새인들은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날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날이어야 하는데, 이들은 자꾸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안식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주시려는 안식일을 방해하고, 안식일을 빌미삼아 누군가를 해치고, 죽이려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는 이들을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 의미를 지키신 분이십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 들린 사람, 병든 자들, 괴로움 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죄와 사탄, 고통에 억눌려 죽어가는 삶이 불쌍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사는 그들의 삶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하나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의 의미를 가장 잘 아셨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지금 우리도 순종하고 있습니까? 안식일을 복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금 우리도 붙들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배의 형식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까? 더 많은 시간 드려야 합니까? 기도의 시간을 늘려야 합니까? 이런 형식도 중요하지만, 자칫 겉모양만 치중하다, 바리새인처럼 알맹이가 사라진 죽은 안식일, 거룩하지도, 복되지도,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도 못 하는 비어버린 안식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열매 맺지 못 해 결국 불에 던져지는 나무처럼, 헛된 시간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일요일이 아닌 주님의 날로 보내야 하는 우리는, 바리새인의 안식일이 아닌, 예수님의 안식일처럼 지켜야 합니다. 이 날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정하고 많은 시간 찬양, 예배, 기도를 드리는 것도 좋지만,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이웃에게 고통을 준다면, 그 찬양은 거룩하지 않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자주 앉아 있으면서도, 이웃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지 못 하고, 긴 시간 동안 기도하는 우리 입술이 지치고 낙망해 있는 이들을 위로하지 못 하고, 격려하지 못 하면, 그 기도는 주님께 다다르지 못 하는 헛된 기도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안식일,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단순히 형식과 시간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이 삶의 자리까지 들어와, 이웃을 격려하고, 생명을 살리고, 지친 이들에게 주님의 힘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일상에서 우리의 입술과 기도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안식일, 주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거룩한 주일을 지킴으로써, 우리 모두가 약속된 복을 받고,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