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뒤돌아 버리시는 곳이 되지 않도록
성경: 마가복음 3장 7-12절(신 56쪽)
찬송: 311장(내 너를 위하여; 통185), 208장(내 주의 나라와; 통246)
설교: 2017062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최근 교회들의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옵니다. 예전엔 교회 건물만 지으면,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생각이 당연시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지을 때, 빚도 내고, 작정 헌금도 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짓곤 했습니다. 그렇게 무리되더라도 일단 지어만 놓으면,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그 자리를 교인들로 채우게 되고,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고 자랑하듯 간증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런 생각과 방식으로 지은 교회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심하면 경매에 넘어가는 모습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교회를 지어도, 자리를 채우기는커녕, 교회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예전엔 신앙생활하는 분들 중에는,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고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를 찾아가서, 교회답게 세워가려고, 고난과 희생을 각오하는 분들이 비교적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자기 희생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마음으로 작고 어려운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이 적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곳저곳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작고 어려운 교회를 만나면, 그곳에서 자기가 분담해야 하는 부담과 어려움을 겁내서 더 크고 안정된 교회를 찾아갑니다. 큰 교회에 출석하면, 자신에게 지워지는 부담이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고, 고난과 십자가를 각오하는 이들은 적어지고, 편하고 쉬운 길만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대다수의 교회들은 교인이 부족해서, 또 재정이 부족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속한 노회에서, 교회마다 세례 교인의 수를 파악해서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보고되었던 때와 비교해 보니, 그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인 까닭은, 먼저는 자기 교회의 규모를 자랑하거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실제 세례 교인보다 과장해서 보고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실제로 몇 년 전에 비해 교인 수가 많이 줄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노력들을 기울입니다. 알파코스, 아버지학교, 두 날개 전도법, 노란손수건 전도법, 진돗개 전도법, 셀 모임 등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많은 방법들을 시도합니다.
또 어느 교회에서는 전도를 장려하기 위해 전도상을 엄청 크게 시상합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끌어오는 사람에게 자동차를 상품을 주는 경우도 있고, 해외 여행을 시켜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크게 시상하니, 1등 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매일 영업하듯 전도에만 매달리기도 하고, 교회에 나오는 조건으로 일당을 지급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까지 끌어들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 전도왕을 하면, 전국의 많은 교회들을 다니면서 전도법을 강의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는 교회가 작고, 교인 수도 얼마 안 되고, 재정도 부족하니, 그런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됩니다. 어쩌면 여러 전도법들이 남의 이야기로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런 사업과 전도법 등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그런 방법을 통해서라도 교인 수를 늘리고, 교회 규모를 늘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마다 교회마다 이에 대한 생각과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주님의 눈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사람의 몸은 여러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생각과 판단은 머리가 하고, 몸의 각 지체는 머리가 명령한 대로 움직입니다. 만일 손과 발을 비롯한 각 지체가 머리의 판단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다르게 움직인다면 다쳤거나 몸이 병든 것입니다.
가정이나 회사는 주인인 가장이나, 회사의 주인인 사장의 뜻과 판단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가정이 가장의 뜻과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회사가 사장의 뜻과 판단대로 움직이지 못 한다면, 교육이 잘못된 가정이고, 잘못 운영되는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주인이십니다. 물건은, 그것을 구입한 사람이 주인입니다. 땅과 건물도 역시 그것을 산 사람이 주인이 됩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 땅과 건물을 그 누가 샀든지, 얼마나 많은 공로를 들였든지, 누가 담임 목사든지 전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도 부르지만,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누구를 주인으로 삼고 순종하고 나아가야 하는지 분명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 주인이신 예수님이 명령하신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교회에 수십 만 명의 교인들이 오가고, 예배하고, 또 크고 좋은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과는 다르게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닌 사업체나, 아니면 규모가 아주 큰 친목 모임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교회의 건물은 허름하고, 예배하는 이가 한두 사람에 불과하더라도,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바라시는 대로 움직이고 노력하고 있다면, 마태복음 16장 18, 19절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주님이 허락하신 권위를 갖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 열쇠를 받고, 주님의 권위를 갖게 된 까닭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처럼 사람에게 좋은 가르침을 준 사람으로 보지 않고, 엘리야처럼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고, 예레미야처럼 선지자로 보지 않고, 구원자시오,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즉 주인으로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최근 여러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전도법이나 교육 등,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 이상 해야 한다는 생각하는 프로그램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에 속하는지, 주님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역사하시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동안 교회들이 교회의 여러 사업과 프로그램들, 전도법들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교회가 그 동안 부흥하고 성장한 것은, 무슨 사업을 통해서도 아니고, 무슨 전도법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물론 무조건 자기가 속한 교회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던 당시,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요즘 말할 수 있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전도를 많이 하면 상품이나 상금을 주는 일은 더더구나 없었습니다. 자기 교회에 많은 수를 끌고 오면, 눈에 보이는 보상과 보답이 주어진 일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아졌습니다. 요즘의 시각에서 ‘예수님의 리더십,’ ‘초대교회의 공동체’ 등 여러 이름을 붙이고 있지만, 사실 이런 것도 극히 부분적인 것을 강조하는 입장일 뿐입니다. 당시 교회가 그렇게 부흥하게 된 까닭은, 예수님이 계신 교회가 되고, 성령님 충만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교회가 무슨 프로그램이나 사업을 잘 펼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 내에 예수님이 주님으로 계시고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계시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모시는 교회가 되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가 되니까 사람들이 자연스레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을 멈추었으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무슨 전도법을 만들거나 행하는 게 아니라, 교회가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참된 교회인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인지를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안 계시는 교회,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는 교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교인들이 모여서 함께 여러 가지 전도와 행사를 함에도, 그것 자체가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보이신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여러 특징들 중에서, 우리가 읽고 있는 본문인 마가복음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이 있는데,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또 예수님을 향해 다가오면,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한적한 곳, 사람들이 없는 곳을 향해 가시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예수님은, 한적한 광야 즉, 사람들이 없는 곳을 향해 가셨고, 오늘 본문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혼잡스럽게 되자, 예수님은 언제나 그러신 것처럼 한적한 바다를 향해 가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작은 배 한 척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다시 찾아옵니다. 그 이유는 각자의 삶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통과 어려움, 질병 등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예수님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사람들이 몰려올 때마다 한적한 곳을 향해 나아가셨겠습니까? 예수님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얻기 원하셨다면, 기도할 수 있는 회당도 있고, 기도와 제사를 목적으로 세워진 성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회당이나 성전을 향해 나아가신 게 아니라, 한적한 광야를 향해 나아가셨고, 한적한 바다로 나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회당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고, 성전이 기도할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세우신 성전이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 있는 곳이 되지 못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부인하고 반대하십니다. 이것을 신학 용어로 ‘반성전주의’라고 하는데, 마가복음에서는 특히 성전을 부정하고, 외면하시는 모습이 강합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의 중심지였습니다. 전국에 오직 한 곳만 있었고, 이 성전은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귀한 것들로 만들어지고 치장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성전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겨졌고, 신앙과 정치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세우라고 하신 것이고, 또 성전을 세우려고 다윗이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으로 하여금 첫 번째 성전을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대곡교회의 두세 배 크기밖에 안 되지만, 이것을 완성하는 데 무려 7년이 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헌신이 들어갔고, 귀중품과 보물들로 장식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반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이루어진 일들로 인해 성전이 전혀 성전답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나는 성전은, 더 이상 기도하는 곳이 아니라, 장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가시면 이를 감시하는 사람들,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의 사나운 눈초리가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위로를 얻고, 힘을 얻고, 소망을 얻어야 하는 병든 사람들, 약한 사람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찾아가면, 오히려 그곳에 있는 제사장들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당하고, 쫓겨나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뒤로하고 한적한 곳을 향해 가시고, 성전을 마주 대하고 앉으시며, 그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저주의 예언을 하고 계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제는 교회가, 예수님 당시의 성전이나 회당과는 달리, 주님이 바라시고, 함께하실 만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고 있습니까? 교회에 있어야 할 것들이 있고, 없어야 할 것들이 모두 사라진 교회가 되었습니까? 한국 교회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 하는 한국교회의 문제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우리가 속한 이 교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입니까?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교회입니까? 성령님이 충만한 교회입니까?
많은 사업과 행사가 이루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만일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되는 교회가 못 된다면, 더 이상 하나님과는 상관없어지자, 예수님이 외면하시고 떠나버리신 성전처럼, 교회에 대해서 역시 예수님이 칭찬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곳, 예수님이 위해 싸우시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이 맞서 싸우시는 교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교회를 떠나셔서 한적한 곳을 향해 나아가실 것입니다.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지만, 베드로에게 주님이 허락하신 천국 열쇠가 없는 교회가 되고 말 것이고, 더 이상 주님을 가까이하거나, 주님을 만날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하나님이 주인이신 교회, 예수님의 뜻대로 이끌리는 교회가 된다면, 아무런 사업이나 행사가 없어도 사람들은 이곳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자 제 발걸음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교회에 예수님이 계심으로써 사랑과 용서, 거룩함으로 가득해지면, 주님이 이 교회를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해 주실 것이고, 이 교회를 해치려는 원수들과 예수님이 맞서 싸우실 것이고, 교회에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천국의 열쇠가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자신과 교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주님이 거하시는 교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교회를 만듦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복을 충만히 받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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