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내 삶에서 결실되어야 합니다
성경: 마가복음 4장 10-20절(신 58쪽)
찬송: 449장(예수 따라가며; 통377), 204장(주의 말씀 듣고서; 통379)
설교: 20170730. 주일낮예배
한 해 중 가장 덥고 바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약 10일 전 즈음에 ‘노컷뉴스’에서, 우리나라 성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참고로 ‘노컷뉴스’는 기독교방송인 CBS 뉴스의 이름인데, 국내 다수 언론들이 정부와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보도하는 일이 많았음에도,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평을 많이 받는 언론입니다. 내용이 길지 않으니, 그 내용을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영상)
어떻습니까? 이 보도의 핵심은, 국민들 100명 중에서 70명 정도가 기독교를 안 좋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전국민이 5000만 명이면, 3500만 명이 기독교에 대해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앵커가 말한 것처럼,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는 갑자기 나온 게 아닙니다. 기독교가 한창 성장하고, 교회를 세우기만 하면 교인들이 몰려오던 때는,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기독교 성장이 멈추고, 신도 수가 줄어드는 까닭은, 기독교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통계로 보면, 교회의 성장이 멈추거나 확연하게 더디어진 것이 20-30년 정도 되었으니,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안 좋아진 것은 몇 십 년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녀를 보낼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면, 부모들이 어떤 학교로 보낼까요? 할 수만 있으면, 좋은 선생님, 좋은 학생이 있는 곳으로 보내려고 노력하겠죠? 대부분의 학생들이,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매일 싸우고,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문이 나는 학교라면, 할 수만 있으면 안 보내려고 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사람은 함께하는 사람들에 따라 영향을 받고, 바뀌기 때문입니다. 바르고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곁에서 함께 있으면, 좋은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쁜 사람들 곁에 있으면, 괜찮은 사람들도 나쁜 쪽으로 물들고, 악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옥에 가면 나쁜 것들에 물들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감옥은 본래, 법을 어기고 잘못한 사람들을 벌해서, 좋은 쪽으로 바꾸려는 목적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좋은 쪽으로 바뀐 사람들보다는, 안 좋은 쪽으로 물들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옥에는 사회에서 법을 어기고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그 악에 물들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져서, 교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또 앞으로의 전망도 안 좋다는 이야기도 당연합니다. 교회를 다니면, 사람들이 좋은 쪽으로 변한다고 해도,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는데, 나가면 더 안 좋아지고, 나쁜 것을 배운다고 하면, 누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버려가면서까지 교회에 나오려 하겠습니까?
그러면 예전엔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좋았는데, 지금 왜 이렇게 나빠졌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교회의 시설이 안 좋아져서 그런가요? 기도와 예배 등이 과거에 비해 적어졌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교인들이 좋은 설교를 덜 듣거나 성경공부를 덜 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마다 한창 성장하고 부흥하던 때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 이전과 지금의 시설을 비교해 보면, 현재의 교회가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습니다. 예전엔 에어컨과 난방 시설이 된 곳이 몇 곳이나 되었겠습니까? 지금처럼 좋은 의자, 앰프, 화면, 식당 등의 시설이 갖춰진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엔 성경공부도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제대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글을 못 읽는 이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성경공부를 잘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성경 자체를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것들을 보면, 지금 기독교가 어려움을 겪는 까닭이, 모이는 횟수나 성경공부 때문도 아니고, 교회의 시설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CBS에서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안 좋아진 그 까닭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원인 도표 보여주기)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원인에 대해 38.2%의 응답자, 100명 중 38명 정도가 목회자의 생활태도라고 답했고, 27.4%는 기독교인의 생활태도, 11.3% 교회 봉사활동, 8.6%는 전도방식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설문조사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밝히지 않아서, ‘교회 봉사활동’ 때문이라는 게 교회들이 사회에서 봉사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라는 뜻인지, 다른 뜻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을 제외하고, 목회자와 교인들의 생활태도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65.6%였습니다. 교회와 기독교를 나쁘게 생각하는 3명 중 2명이,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목회자와 교인들의 잘못된 생활 태도를 가장 큰 문제로 보고, 또 이것 때문에 기독교는 앞으로도 힘들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결과를 보고, 목사로서 기독교인으로서 너무 창피하고 답답하지만,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와 교인들을 판단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까요? 예배를 얼마나 많이 드리느냐 하는 것으로 해서, 예배를 많이 드리면 좋은 교인, 예배를 별로 안 드리면 나쁜 교인으로 구분합니까? 기도를 얼마나 잘 하는가로 구분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인들이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얼마나 드리고, 성경을 얼마나 읽고 공부하느냐 하는 것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교회 다니는 사람답게, 삶과 생각이 바뀌었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착하고 순하게 살아가는지에만 관심이 있고, 이것만으로 좋고 나쁨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기독교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좋은 면보다는 나쁘게 여겨지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교인들이, 우리들이 지금 잘못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식들이 마음 답답하게 만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구원의 소식 때문에 싫어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숙제와 더불어 희망도 줍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기독교의 다른 것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상하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그 이야기들이 너무 허황돼 보여서, 기독교의 진리 때문에 믿지 못 한다면 기독교에는 해결책이 전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잘못되어서 믿지 못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도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과 같은 진리를 못 믿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교인들의 잘못된 행동들 때문에 못 믿는 것이라고 하니, 우리의 잘못된 행동들을 바꾸고, 선하고 의롭게 삶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의 도를 전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평가가 지금도 그렇고 전망도 밝지 않지만, 기독교인들이 말씀대로 살고, 그렇게 살면서 전도하면, 세상 사람들도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바르고 착하게 사는 게,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왜 수많은 교인들은 그렇게 살지 못 할까요? 이에 답도 분명합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교회 속에 있는 우리 모두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 등 사역자나 교회 중직이 아니더라도, 아니, 이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사람들도 알고, 어린 아이들조차도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에서 듣고 배운 말씀대로 살지 않고, 교회는 다니면서도 말씀에서 떠나 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잘 나아와 예배와 찬양과 기도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대로 살지 못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여러 말로 핑계를 대며, 책임을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열매 맺지 못 하는 삶’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마음의 땅이, 길가처럼 사탄에게 말씀을 금세 빼앗겼기 때문이고, 돌짝밭처럼 잠깐 반짝하고 말랐기 때문이고, 가시덤불처럼 가시에 막혀 성장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생과 복이 약속된 말씀을 들었으니, 그 말씀이 열매가 될 때까지 갈고, 가꾸고, 다듬고, 참고 기다려야 함에도, 이 과정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이 과정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쉬운 길, 복 받고 잘된다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복 받고 잘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힘들다고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 하는 씨앗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땅에 땅콩을 심었는데, 새가 그 씨앗을 파먹어버리면, 그것에서 무엇을 거두겠습니까? 잠깐 싹이 나고 죽거나, 한참 자랐어도 열매를 맺지 못 하고 죽거나 사라지고 말면, 수확할 때가 되었을 때 거기에서 무엇을 거둘 수 있겠습니까? 빈털터리고, 남는 것이라고 해봤자, 잡초 무성한 땅일 뿐입니다.
농부가 논밭에 농작물을 심는 까닭은, 심은 것에서 열매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열매를 얻으려는 목적 때문에, 작물을 심을 시기에 맞춰 심는 것입니다. 열매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고, 그저 싹이 나고 잠깐 자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아무 때나 상관없이 심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심은 것의 수십 배, 수백 배를 거두려는 목적 때문에, 싹이 잘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시기에 따라 뿌리고 가꾸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우리 속에 뿌리신 까닭은, 우리 마음 밭에서 말씀들이 열매와 삶으로 맺어지기를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경삼아 우리 속에 말씀을 뿌리시지 않습니다. 아무런 의미없이 우리 속에 믿음과 말씀의 씨앗을 뿌리신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의 밭으로서, 말씀의 열매를 맺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열매 맺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열매 맺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달아야 하고, 열매 맺지 못 하는 것들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알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람으로 마땅한 길로 살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길이 맞음을 인정하며, 자기의 고집과 욕심을 철저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설교를 듣고 보고 공부하는 것까지는 잘 합니다만, 열매를 맺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 합니다. 설교도 필요 이상으로 너무 자주 들어서, 그 말씀을 되새기고, 고민하고 자기 삶으로 적용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럴 겨를마저 부족합니다. 그저 설교 많이 듣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설교 많이 듣고, 설교 많이 듣는 것이 자랑거리입니다. 성경을 읽고, 쓰고 공부하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보고, 읽고, 쓰기 위한 목적으로 주신 게 아닙니다. 20절에서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는 것처럼, 그 말씀들이 열매를 맺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열매를 맺기 위한 세 가지 단계를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고,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달아야 하고, 그 말씀을 정답으로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 결단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대로 살아서, 우리 각자의 삶이라는 밭에서 결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까지는 아주 잘 하고, 말씀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보다 덜 하고, 말씀대로 살아서 열매를 맺는 데까지 살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교회가 욕을 먹고, 손가락질 받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귀로 듣기만 한다고 해서 말씀을 듣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 읽는다고 해서 말씀을 읽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소리로 들린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읍내에서, 동네에서, 가정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열매로 맺어지게 됩니다. 그저 듣고, 말하고, 쓰는 것만으로는 열매로까지 성장하지 못 합니다.
양파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품종으로 할까 고민하는 중에, 농업기술센터에 갔더니, 기존의 것보다 훨씬 좋은 품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새로운 품종은, 병도 잘 안 걸리고, 이전의 것보다 더 굵고, 여러 해 이어서 심어도 잘되어서, 심으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품종이 나왔을 때, 이것으로 내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품종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듣기만 하면, 수확이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새로운 품종에 대해 내가 연구하고 많이 안다고 이익이 생기는 것 아닙니다. 남이 좋은 품종을 심고 가꾸고 거두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해서 수확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품종이라도, 내 것으로 수확하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밭에 직접 심어야 하고, 자신이 직접 가꾸어야 하고, 가르쳐 주는 방법대로 애쓰며 노력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수십 배, 수백 배 열매로 거두기 위해서는, 예배나 기도를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설교를 많이 듣거나 성경을 공부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도 안 되고, 내 삶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받아들이고, 뿌리고 가꾸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이 뿌려진 것으로 끝나고 마는 길가 같은 땅이지 않고, 돌짝밭처럼 잠시 좋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가시덤불 가득한 땅처럼 자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과 같은 우리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삶을 바꾸시기 위해 생명의 말씀을 우리 속에 뿌리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의 씨앗, 생명과 결실을 위한 거룩한 씨앗을 품었으니, 이에 합당하게 더욱 거룩하고, 선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복을 누릴 길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 말씀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욱 거룩하고, 의롭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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