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고대하며 기다리십시오
성경: 마가복음 4장 26-29절(신 59쪽)
찬송: 314장(내 구주 예수를; 통511), 208장(내 주의 나라와; 통246)
설교: 2017081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약 2주 전에, 전에 사역했던 교회의 한 집사님이 여기까지 오셔서 오랜 만에 뵙게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자녀의 신앙문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고등학생인 두 자녀가 있고, 며칠 전에 학생회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학생들을 담당하는 목사님이, 학생들의 신앙생활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염려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수련회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괜찮지만, 수련회에 참석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자유롭게 결정할 때가 되면 과연 신앙생활을 잘 할 것인가 염려된다는 겁니다. 그 집사님도,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보면, 매주 부모와 함께 교회에 나가고, 학생회 예배 시간에 앉아 있긴 하는데, 집에서의 모습을 보면, 신앙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집에서 함께 교회에 나가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면 과연 신앙을 유지할지 장담 못 하겠다는 겁니다.
특히 그 집사님과 부인 집사님은 비교적 늦게 신앙생활해서, 여러 아쉬움이 많았고, 그래서 자녀들을 더욱 신앙으로 양육하고 싶고, 이를 위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면서 기도하며 노력하는데, 아이들은 교회나 신앙이나 성경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교회 행사나 일에 소극적이고, 예배 시간에도 앉아 졸다가 오는 경우가 많다며 염려했습니다.
집사님의 고민을 듣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면서 “믿음은 스스로 자란다”는 말로 답을 드렸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몇 년간 중고등부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드는 생각은, 어른들의 눈에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같은 아이들이라고 해서 믿음이 좋고, 또 그 믿음이 계속 유지되는 것 아니고, 반대로 어른들의 눈에 모자라 보인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믿음을 버리고 신앙을 떠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른들은 주로, 아이들이 예배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고, 또 예배 시간에 얌전히 앉아있고, 어른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 믿음이 좋다고 칭찬합니다. 반대로 교회에 출석도 잘 안 하고,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안 듣는 아이라고 하면, 어른들은 자기들의 기준으로, 그런 아이들이 믿음이 없거나 안 좋은 아이들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신앙이란 어른들의 마음에 드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길을 뜻합니다.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 사는 게 신앙생활이 아니고, 각자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춰 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나,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눈에 차느냐 그렇지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과 별개의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신앙생활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신앙의 완성을 의미하지 못 하고, 지금 부족한 모습이 앞으로도 역시 부족한 신앙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여기에 있는 한 집사님도 저와 같은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했습니다만, 고향 모교회는 시골의 작은 교회입니다. 장년 교인은 30-40명 정도였는데, 중고등부 학생들은 비교적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좋은 목회자와 선생님들이 저희를 다양한 방향으로 교육시키기도 했고, 당시 유명 기도원에서 몇 년 계시다 오신 분이 가르치시기도 해서, 매일 통성기도하고, 방언기도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평일에도 교회에 가서 기도도 하고, 토요일 저녁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주일에는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그 열심을 보면서, 모두 교회의 큰 일꾼들이 될 걸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성경적 지식도 풍부하고, 성령 체험도 풍부하고, 예배도 잘 드리고, 학생회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그럼에도 이후의 모습들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바로 신앙생활을 그만 둔 이들도 있고, 조금 하다가 신앙을 떠난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꾸준하게 신앙생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신앙을 떠났다가,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돌아온 이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당시 중고등학교 때는 교회를 한 번도 안 나온 친구 하나는 목회자의 사모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모습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학생 때의 모습과 이후의 신앙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교회들이 여러 가지 많은 비용과 인력을 들여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알파코스, 두 날개 전도법, 셀, 아버지 학교 등, 여건이 안 되어 못 해서 그렇지, 하기만 하면 교회가 부흥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비용과 인력이 들어감에도 이런 프로그램을 하려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런 방법으로 교육하고 진행하면, 교인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그래서 교회가 부흥할 수 있을 거라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육과 프로그램을 통해, 믿음이 자랄 수 있다고 여기고, 그렇게 해서라도 교인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교회가 부흥하면 그만한 수고와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에서 만들어지고 행해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밑바탕은, 자녀나 청소년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생각과 많이도 닮아 있습니다. 신앙이나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으면서도, 어른들만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좋은 신앙이라 하면서, 자녀나 청소년들을 그 틀에 맞추려는 것처럼,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앙과는 동떨어진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놓고, 그 프로그램들에 열심히 참여하고, 그 기준들을 통과하면 마치 신앙이 완성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착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과 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어떻게 성장하고 완성되는지조차 모르는 가운데,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란, 그 과정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서 확인되지 않음에도, 어느덧 열매로 맺히고, 때가 되면 수확해도 좋을 만큼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농부가 만지는 대로 자라거나, 농부가 원하는 모양대로 자라는 게 아니고, 씨를 뿌린 농부조차도 어떻게 자라고 열매를 맺는지 모를 정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나 어른이나 목회자가 만들어 놓은 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게 아니고,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하나님의 나라는 다가오고 믿음이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후 일상적인 생활을 하시다, 드디어 이 세상의 구원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을 ‘온 세상을 위한 삶’이라고 해서 ‘공생애’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본의 지배를 받는 모습입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가장 큰 소원은 해방되고 나라를 되찾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했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의 희망이 얼마나 컸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당장이라도, 로마제국은 망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방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주셨습니다. 27절에서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라고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고, 완성되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마치 땅에 뿌려진 씨가 자라는 것과 같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자세를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는 각자가 어떻게 신앙생활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고, 다른 하나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기다려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먼저, 신앙인 각자는, 마음의 밭을 가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니, 농사 짓는 과정을 잘 아시죠? 농사란 기본적으로 논밭에 씨앗이나 모종을 심어서, 그것으로부터 수확하는 것을 뜻합니다. 시작은 뿌리고 심는 것이고, 마지막은 수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작과 끝은 이렇지만, 시작과 끝만 있으면 모든 농사가 완성되는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리고, 좋은 모종을 옮겨 심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열매와 수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중간 단계에서도, 때에 맞게, 그에 맞는 단계들을 잘 해야 합니다.
좋은 씨를 뿌렸어도, 그 중간에 필요한 일들을 다하지 못 하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 하고, 제대로 수확할 수 없습니다. 심은 씨앗과 새싹을 먹어치우는 새와 짐승들을 막고 쫓아내야 합니다. 작물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결국 말라 죽게 만드는 벌레를 막아야 하고, 다른 병이 오면 그에 맞게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때에 맞는 거름을 주고,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걸음을 시작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의 씨앗과 새싹을 먹어치우는 사탄과 악한 세력들을 쫓아내야 하고, 영혼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그래서 결국 심하면 말라 비틀어져 죽게 만드는, 물질에 대한 욕심과 거짓의 유혹을 막아야 합니다. 때에 따라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예배를 통해 영혼의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귀찮다며 이 과정들을 포기하거나 외면하면, 싹이 나자마자 곧 메말라 시들거나 죽어버린 작물처럼, 수확시기가 되어도, 그것으로부터 빈껍데기만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영혼의 수확이 풍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씨를 뿌리고 자라고 수확하는 과정과 같다는 이 말씀은, 다른 성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지를 말씀해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다른 성도들에게 심긴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머지않았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아직 추수할 때가 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정하신 추수 때가 되기까지는 기다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변할 시간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해질 여건이 필요합니다. 그때까지는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씨앗처럼 나와 이웃에게까지 이미 뿌려져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성숙해짐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밭에 씨가 뿌려졌다는 것을 안 이상,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습니다. 심자마자 싹이 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심어놓고 당장 잎사귀가 날 것을 기대하는 농부는 없습니다. 심고서 추수 때가 되기 전부터 열매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 안에 뿌려진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자고 깨고 하는 사이에 자라 싹이 나고, 이삭이 나고, 충실한 곡식이 될 때까지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의 밭에 뿌려진 하나님 나라의 씨앗에 소망을 품고 시간을 주고 기다리면, 28절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의 삶에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7절에서는 “자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씨로 시작된 것이,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성장하고, 열매까지 맺게 되는 것처럼, 여러 단계를 통해 성장한다는 의미입니다.
자라는 것과 달리,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만들어지는 것은 씨앗이나 성장이 필요 없습니다. 한 대의 차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품과 장비들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성장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집니다. 씨앗이 없고, 성장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진다고 하시지 않고, 자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이웃 안에 뿌려진 씨앗을 보고,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삶에 동참하는 것임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이웃 안에 뿌려진 이 씨앗의 가치와 가능성을 겸손히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심긴 씨앗의 가능성이 기다림을 통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씨앗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보고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뿌려 주신 아름다운 씨앗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씨앗이 자라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우리 스스로 급하게 만들어 가려고 하면, 거기에서는 열매가 아니라 가라지가 자라나고 잡초만이 무성하게 됩니다. 자신과 이웃에게 씨앗이 자라나게 하는 사랑과 인내를 제공하지 않고, 사랑 없는 훈계만 하고, 잘못을 판단하려고만 하면, 더욱 나쁜 열매만 맺게 됩니다.
오늘도 나의 삶 속에 하나님 나라가 너무 멀어 보입니까? 함께 신앙생활하는 다른 사람들의 성숙하지 못 한 모습들 때문에, 맘이 상하고 상처를 입으셨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더 기다립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어 보이고, 다른 교인들이 조금 부족해 보여도, 아직은 미완성의 모습이어도, 우리 자신도, 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씨앗이 심긴 사람들이며, 이후에는 반드시 그 씨앗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믿음의 씨앗을 품은 자들이 보여야 하는 마땅한 모습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어놓으신 그 씨앗의 성장과 열매로의 변화를 기대하며, 참고 인내하며 노력하고, 이웃의 성숙함과 결실을 믿고 기대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향함으로써 모두가 영생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열매로 맺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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