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음성에만 귀 기울이십시오
성경: 마가복음 4장 33-34절(신 60쪽)
찬송: 419장(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통478), 446장(주 음성 외에는; 통500)
설교: 20170827.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최근 TV 방송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는 ‘음식’입니다. 예전에도 좋은 음식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나, 주부들을 대상으로 음식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훨씬 더 다양해졌습니다. 맛있는 음식점 소개와 음식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낯선 곳에 가서 만들어 먹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도 많고, 음식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도 계속 만들어질 정도로 확장되었습니다.
음식에 관한 프로그램들이 이렇게 바뀌고 다양해지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은 음식을 즐기며 먹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활이 힘들고 어려워서, 끼니를 걱정해야 할 때는, ‘음식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이다’는 생각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먹는 것 자체보다는, 좋은 것을 먹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한 끼지만, 더 재밌고, 더 맛있게, 더 멋있게 먹는 것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맛있는 음식점을 찾는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저마다 자기들의 음식을 자랑하고, 맛있다고 하는데, 정말 맛있는 가게를 찾으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요? 좋은 음식점을 찾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같습니다. 하나는 TV에 맛있다고 소개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입소문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TV에서는, 맛있는 가게를 내보내는 게 아니라, 돈을 내는 집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저분하고 맛도 없는 가게인데도, 정말 맛있는 곳처럼 포장하고, 선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TV에 보이는 것만 믿고 몰립니다. 그리고 직접 가서 먹어보고서야 그 본모습을 알게 됩니다. 또 사람마다 입맛이 달라서, 다른 사람들이 정말 맛있다고 하는데, 막상 자신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꼭 맛있는 집이 아니더라도, 정말 맛없는 집을 피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맛없는 집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저 나름대로 맛없는 음식점을 피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먼저는, 기차역, 터미널, 입영소 등 손님들이 한 번 가면 다시 찾기 어렵고, 빨리 움직이는 곳 등은 피하라는 겁니다. 경험해 보기로는, 이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런 곳들은 보통 맛보다는, 배를 채우려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음식의 맛에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또 전문적으로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집에서는, 손님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시 찾아올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먼 길을 떠나면 다시 찾아오기 쉽지 않은 곳에 있으면 장사를 잘 하기 어렵습니다.
안 좋은 음식점을 거를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메뉴가 너무 많은 집을 피하는 겁니다. 음식점들 중에는, 메뉴가 100가지가 넘는 곳이 있습니다. 음식을 차려 보면, 단 몇 가지 메뉴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그렇게 100가지 넘는 메뉴들에서 주문받아 보통 20분 이내에 준비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통 이런 경우는,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보관하다가 데워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면처럼 이미 만들어지고 완성돼 포장되어 있는 것을 끓이거나, 냉동된 것을 데워서 내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메뉴를 내건 가게들은, 어찌 되었든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맛이나, 자신들이 마땅히 들여야 하는 정성에는 관심 없고, 어찌되었든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 돈을 남기는 데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잘 하는 것처럼 자랑하고 포장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정말 맛있는 좋은 음식을 만들어 내는 식당은 메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많아도 몇 가지고, 또 어떤 한 가지 메뉴만으로 장사하기도 합니다. 아예 메뉴판이 필요 없기도 합니다. 이런 곳은,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음식들 몇 가지만 하기 때문에, 그 맛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음식점으로 비한다면 어떤 음식점이 될까요? 맛으로 따지면, 신앙의 맛을 아는 우리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맛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고, 맛도 없는 곳이 될 것입니다.
전라도에서 최고의 음식으로 뽑히는 것은 홍어입니다. 예부터 잔칫날에 홍어가 빠지면 안 된다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좋은 홍어는 한 마리에 몇 십 만원이나 합니다. 요즘엔 크게 결심해도 한 점 먹기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 맛을 아는 사람에게는, 몇 십만 원을 들이고, 며칠을 걸리고라도 달려가 먹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그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심한 악취가 날 뿐, 도저히 돈을 주고 먹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 내놓으면, 상한 음식을 대접했다고 욕하기 십상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의 가치와 뜻을 아는 우리에게는 다른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릴 만한 귀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도 얻을 만한 고귀함이 있습니다. 우리 삶 전체를 걸고도 기다리고 이루어갈 만한 영생이 있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 가치와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가치는 세상의 실패자들이 가는 길 같고, 헛된 길로만 여겨질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앙인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잘못된 것 같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신앙인들이 어리석은 길로 가는 것 같아서 서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음식점에서 만들어 내는 맛으로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또 음식점에서 내놓는 메뉴로도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의 식당은 몇 가지 메뉴로 장사하신 것 같습니까? 아마 수십 가지 메뉴를 걸어놓은 식당은 아닌 것 같고, 많아도 몇 가지, 혹은 오직 한 가지 메뉴로만 운영하는 전문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엔 좀 적어진 것 같지만, 기독교 신문이나 광고지 등에, 기도원이나 부흥회 광고를 보면 재밌는 광고들이 많죠? 모든 질병과 장애가 치유되고, 부자가 되고, 귀신이 쫓겨나고,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고, 큰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치 그곳에 나가거나, 그런 목회자를 만나 안수기도만 받으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허위과대 광고를 그대로 내보내는 신문이나, 그것을 그대로 용납하고 있는 연합회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도 들면서도, 동시에 마치 수십 가지, 백 가지 넘는 메뉴를 나열해 놓은 싸구려 음식점을 보는 것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은 싸구려 음식점처럼, 무조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구원과 영생을 위한 전문점입니다. 전문점이기에, 영생과 구원에 초점을 맞춰 있고, 그 나머지는 말 그대로 부수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영생과 구원으로 이끄는 전문가로서 그 자부심이 대단해서, 찾아오는 손님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에 충실합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모습을 보면, 우리의 생각에,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더 자극적이고 극적인 방법을 사용하심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태어나신 것부터 그렇습니다. 권력자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좀 더 유명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으면 사역이 좀 더 쉽지 않았을까요? 사역하시면서도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친구보다는, 권력자들의 친구가 되셨으면 사역이 더 크게 확장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쉬운 방법들을 뒤로하시고, 항상 조용한 방법,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을 통해 사역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습니다.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를 통한다는 것은, 본래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다른 것을 빗대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이렇게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까? 또 34절에서는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해석해 주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떠나서 오직 제자들만이 남아있는 상황이 되어서야 말씀을 주셨겠습니까?
사람의 청각이라는 것이 참 놀랍습니다. 같은 크기의 소리라도,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느냐에 따라 듣는 것이 달라집니다. 자기가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 집중하는 것의 소리, 사랑하는 사람의 소리를 가장 크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는 중에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리,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 여러 소음에서도 어머니는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너무 많은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주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소리에 너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귀가 있어도 듣지 못 하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이 주는 것들을 너무 집중해서 보면, 주님께서 보여 주시는 이적도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첫째는 비유로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내용을 말씀하시지 않고, 네 가지 땅에 떨어진 비유, 등불 비유, 자라나는 씨 비유, 겨자씨 비유 등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비유의 특징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 하나는 앞뒤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듣는 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유를 말하면, 앞뒤의 내용을 모두 듣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으며, 엉뚱하게 오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비유를 들으면서도 자기의 생각의 한계대로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듣지 않고, 네 가지 땅에 떨어진 비유를 들은 사람은 씨를 어디에 뿌려야 하는가 하는 파종법에 관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등불 비유만 들은 사람은, 사물을 이용하는 지혜와 그렇지 못 한 사람의 어리석음이라는 상식에 관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하신 두 번째 방법은, 예수님 홀로 계실 때에야 제자들에게 해석해 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오직 제자들과 예수님만 남아 있을 때가 되어서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사람들이 많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한 마디씩 하겠지요. 이 사람은 이렇게 한 마디 하고, 저 사람은 또 저렇게 한 마디 했을 겁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좋았느니, 재밌었느니 한 마디씩 했을 것이고,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평가했을 것이고, 각자의 느낌도 덧붙였을 것입니다.
그렇다 보면 제자들의 생각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몸은 비록 예수님 곁에 있어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신경 쓰고, 관심을 갖느라, 일하느라, 생각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제자들은 주위 사람들의 소리에 먼저 관심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뭐라 하는 소리도 들어야 하고, 예수님께 아기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을 막아야 하고, 뒤에서 시끄럽게 예수님을 불러대는 사람들을 조용히 시켜야 하고... 그렇다 보면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예수님께서 비유를 어떻게 해석하셨는지는 귀에 들어올 리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밀집해 있고, 온갖 사람들의 소리로 복잡한 상황에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소리에만 귀 기울일 수 있는 상황, 아무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때인, 예수님 홀로 계신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해석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매일 매순간 함께하시고, 끊임없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우리의 분주한 일상 중에도, 하나님의 길이 보이고, 그 길이 정답처럼 여겨집니까? 그 음성이 우리 속 욕심의 소리가 아니라, 참된 하나님이 영생으로 이끄시는 말씀으로 들립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너무 많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늦지 않게 응답하심에도,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 한 것은, 세상의 너무 많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홀로 있으려 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너무 많이 관심을 기울이다, 주님의 음성도, 응답도 듣지 못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길을 혼자 걷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게 주신 길을 외면한 채 다른 사람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홀로 계신 곳에 함께하면 되고, 예수님께만 집중하면 소망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이야기, 하나님으로부터 먼 이야기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너무 소리를 많이 들으면 꼭 필요한 소리를 듣지 못 하게 됩니다. 낙망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생명을 해치는 세상 소리에 집중하면 주님이 주시는 소망과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번잡한 세상을 향해 열린 귀를 닫아야만 비로소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소리에 집중하기를, 주님과 함께함으로써 주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십니다. 번잡하고, 유혹하는 세상의 너무 많은 소리, 너무 큰 소리에서 한걸음 물러나고, 주님께만 집중하고, 세밀한 음성을 들음으로써, 오늘도 영생과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길대로 살아감으로써, 날마다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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