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믿음으로
성경: 마가복음 5장 25-34절(신 61쪽)
찬송: 405장(주의 친절한 팔에; 통458장), 420장(너 성결키 위해; 통 212)
설교: 2017100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다른 교회에 가보면, 대부분 출입문에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이단들이 교회에 드나들거나 활동을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전에는 이런 포스터나 경고문이 없었는데, 이단들이 교회에 들어와 몰래 활동하고, 또 많은 교인들을 자기들의 활동지로 데려가서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고, 영적으로 멸망하도록 만듭니다. 이렇게 일이 진행된 뒤에 교회에서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해도, 이런 안내문이나 경고문이 없으면, 여러 어려움이 있어서, 이런 안내문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이단의 출입과 활동에 대한 경고문이 교회에 많이 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단들이 곳곳에서 많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은 언제나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활동하는 시기와 그 영향력에 차이가 있을 뿐, 기독교 역사는 기독교의 정통 즉 바른 신앙과 이단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 이단이나, 이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 모임과 신앙에만 구원과 진리가 있고, 자기들 밖에 있는 교회와 신앙은 잘못되어서 구원을 받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작게 보면 이런 신앙관을 가진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 못해 나중엔, 자기 교회만 좋고, 다른 교회는 안 좋다고 말합니다. 자기 교회에 있으면 일이 잘되는 복을 받지만, 다른 곳으로 가면, 하나님이 복을 거두시고, 벌을 내리실 거라 저주하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더 커지고 심각해진 것이 바로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기존의 다른 교회는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헛되고, 진리는 자기 무리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와 영생을 알고 가르칠 수 있는 자기 무리에 들어와서, 자기들이 가르치는 대로 배우고 순종하며 신앙생활해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144,000명 안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유혹과 가르침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합니다. 또 성경에 나오는 예언과 계시에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만 있으면, 이단들의 이런 주장과 가르침이 잘못되었음을 아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이단들의 가르침에 쉽게 현혹되어 넘어가는 까닭은, 성경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3장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두 죄수도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한 죄수는, 예수님께 “당신이 그리스도면 당신 자신이나 구해봐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 죄수는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께 “예수님, 예수님께서 그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죄수의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고 답하셨습니다. 죄수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예수님이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과 생명과 복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구원과 생명과 복은 오직 하나님만이 정하실 수 있음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이 죄수가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죄수가 구원받는 과정에서는,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이 죄수는 구원의 주인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약속받았는데, 이 죄수는 구원을 얻기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이 죄수는 너무 큰 죄를 저질러서, 당시 가장 무서운 형벌인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또 세례를 받은 것도 아니고, 헌금한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이 한 것이라곤,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의지한 것밖에 없습니다.
죄수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약속받는 이 과정 하나만으로도, 이상한 교리를 내세우고, 자기들의 모임에 들어와, 가르친 대로 배우고 순종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단들의 주장들, 자기 교회만 참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원에는 다른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르게 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속 사건도, 구원을 얻기 위해 무엇인가 형식과 공로와 절차와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라는 지방에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으로부터 귀신을 내쫓으시고, 다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지방으로 건너오셨습니다. 배에서 내리셨지만, 아직 마을에 들어가시지 않고, 바닷가에 계실 때, 회당장 야이로가 급히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의 딸이 위급하니, 자기 집까지 가셔서 딸에게 손을 얹어 살게 해달라고 구했습니다. 이때는, 건너편 건라사 지방에서 있었던 사건이 알려진 데다, 마을의 지도자인 회당장이 그렇게 예수님께 간절하게 요청하는 모습 때문에,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호기심도 있고, 예수님이 진짜 능력을 행하는지 확인하고픈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야이로의 간절한 요청을 받고,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을 향해 가시자, 그 주위는 제자들과 기적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의 움직임에 따라, 그 주위는 혼란과 소란으로 가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소란스럽고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핏기 없고 바짝 마른 얼굴에 누추한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로 겨우 비집고 예수님 가까이 다가갑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예수님께 다가가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병으로 몸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에 대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다고 소개하는데, 이 외의 다른 소개들만 봐도, 이 여인이 겪는 삶의 여정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혈루증이란 여성이 만성적으로 하혈하는 병을 일컫습니다. 이 병은 이 여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고, 반대로 빼앗아 가기도 했습니다.
먼저 이 병은, 병에 걸린 사람을 불결하게 만듭니다. 단지 육체적으로 불결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불결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5장 19절에서는,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라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은 여성이 하혈하면, 칠 일 동안 불결한 사람으로 인정될 뿐만 아니라, 이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종교적으로 불결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이 사람이 누운 자리도, 이 자리를 만지는 사람마저도 불결하게 여겨지고, 출혈이 멈추면 한 주가 지난 후에야 정결한 사람, 만나고 상대할 만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일생에 한 번 출혈이 있어도, 이렇게 한 주간 기다려야 하는데, 이 여인은 무려 12년 동안 계속 하혈했으니, 성인이 된 후에 이 여인은 계속 불결하고, 그래서 만지거나 상대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여인은 12년 동안,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하지 못 했습니다. 부정한 사람인지라,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질병 때문에,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영적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또 불결한 사람이라고 선언되자, 다른 사람들을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지면, 마치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여겨지니, 그 누구도 이 여인을 가까이할 수 없었습니다.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 여인을 가까이하거나, 어른으로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또 하혈이 12년 동안 계속되었으니, 몸이 얼마나 약해졌겠습니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부족한 피를 보충할 수 있는 기술이나 시설이 전혀 없습니다. 이럴 때 12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피를 흘렸으니, 얼마나 약해지고 초췌해졌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12년 동안 계속된 이 병 때문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소문난 의사들을 찾아다니느라,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마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었더라도, 병이라도 나았다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병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재산은 모두 잃고 말았으니, 그 마음의 절망과 아픔은 또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 병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고, 몸은 약해졌고, 가졌던 돈을 잃었고,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얻은 것이라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감, 가난, 소외뿐이었습니다. 몸만이 아니라, 여인의 삶 전체가 불결하고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깊은 절망과 괴로움 가운데 살던 이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소문을 통해 예수님은 자기의 병까지 고쳐주실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이 들었는고, 예수님이 드디어 자기가 있는 지역까지 오셨는데, 그 주위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불결한 사람으로 알려진 지라, 감히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 드러내놓고 말하지도 못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 합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것에 정신 팔린 틈을 이용해, 겨우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예수님의 옷을 만집니다.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정말 병이 나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이 여인의 병이 나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옷을 만졌기 때문에, 여인의 하혈병이 나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예수님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옷을 만지고 스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여인의 병만 나았습니다. 이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병이 나을 수 있게 된 까닭은, 사실 옷을 만졌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4절에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병이 낫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한 일이란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도나 찬양이나 예배도 하지 않았고, 헌금도 하지 않았고, 무슨 교육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이 자기의 병을 고쳐주실 분이라는 것만 믿은 것뿐입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까닭도, 그렇게 하면 예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지, 옷을 만지는 행동 자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만 쳐다보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 믿었다면, 그렇게 똑같이 병이 나았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구원은 다른 어떤 종교적 행위들, 즉 기도나 찬양이나 예배나 공로를 통해 얻는 게 아니고, 오직 믿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배워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바쳐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모든 주장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착한 일 많이 하기 때문에 구원 얻는 것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 아닙니다. 헌금을 얼마 해야 하고, 예배를 얼마를 드려야 구원을 얻는 것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심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습니다.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지만, 그럼에도 기도하고 예배하고 신앙생활하고, 말씀하신 계명과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려 애쓰는 까닭은, 계속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고, 이런 모습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자기의 노력과 업적과 종교행위들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합니다. 어떤 조건을 채워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얼마나 드려야 하고, 무엇을 배워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교회에 있어야만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다른 곳으로 가면 벌을 내리실 거라며 말합니다. 자기들이 속한 교회만 진리의 교회라고 여기기도 하고, 자기들이 내세우는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이단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들 모두가 미신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만나고, 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기도로 구원을 얻는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헌금을 많이 해서 복을 받았다고 해서, 헌금 많이 하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새벽기도를 해서 복을 받았다고 해서, 새벽기도만 하면 모든 문제와 어려움이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도, 여인의 병이 나은 후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을 만져서 병이 나았으니, 만일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이 여인은 예수님의 옷만 만지면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옷을 만져서가 아니라, 믿음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주위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하게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따라 예수님을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입니다. 교회의 바른 교육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방법으로 주님과 구원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삶과 복과 생명의 주인이 되심을 바르게 믿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복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복과 평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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