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예수님 제자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성경: 마가복음 6장 6-13절(신 62쪽)
찬송: 538(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통327), 505장(온 세상 위하여; 통268)
설교: 2017110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신앙이 전해진 것은, 천주교로 보면 200년이 넘고, 개신교로 보면 130년 정도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시작된 나라들에 비하면 아주 짧은 역사입니다. 이렇게 짧은 역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부흥하고 발전했습니다. 조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교회 숫자만 해도 몇 만 개라고 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나 PC방과 편의점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교회는 PC방과 편의점보다도 더 많다고 합니다.
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밤에 도시 높은 곳에서 동네 주변을 보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빨간 십자가라고 합니다. 한 자리에서 십자가 일이 백 개를 셀 수 있을 만큼이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찌되었든 이것만 보더라도, 개신교 신앙이 들어온 지 130년밖에 안 된 우리나라의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교회들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교회들의 모습들에 대한 실망과 문제가 있다는 것은, 심지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목회자들까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그러면서도 신앙이 없는 사람도, 교회 안에 있는 이들마저도 모두가 인정하고 칭찬할 만한 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까? 어떻게 해야 가장 바르고 좋은 교회, 그저 겉모양만 교회 같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 교회들이 욕을 먹고, 부족하다고 여기는 까닭이 교회 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작은 마을에도, 몇 가구 안 되는 오지에도, 섬 지역에도 교회가 더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교회 수가 부족해서 모든 사람을 충족시키지 못 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교회들의 살림살이가 너무 작고, 그래서 교회 운영이 부족하거나, 이웃을 돕는 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겠습니까? 이것도 역시 진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전국에는 수천 명을 넘어, 수만 명 되는 교회들도 꽤 있고, 이런 교회들의 한 해 예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납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들은 재정이 많은 만큼 하는 일, 돕는 곳들이 크고 많습니다. 이런 문제도 역시, 지금 교회들이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고,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소리를 듣는 까닭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들이 비난을 받는 까닭, 교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을 말할 수 있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한다면, 교회가 교회답지 못 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비난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비난도 역시 교회가 교회답지 못 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바꿔 보면,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교회 안에서 오는 비난은 없어질 것이고,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비난도 역시 없어지거나, 아주 적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교회다운 모습입니까? 어떻게 해야 교회로서의 모습을 되찾거나 유지할 수 있을까요?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재정을 늘려야 할까요? 이것도 아니면, 예배와 기도하는 시간을 늘려야 할까요? 교인 수와 재정을 늘리면,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교회에 대한 비난은 사라지거나 적어질까요? 아니면 매일 예배와 기도회 시간을 만들고 늘려서, 교회가 예배와 기도회로 가득 채워지게 하면,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일까요?
이것도 역시 좋은 답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교인 수와 재정이 엄청난 교회들이 잘못되었다고 더 많은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고, 온갖 예배와 기도회와 집회를 많이 갖는 교회들도 역시 더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교회로서 마땅한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는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리고 지금 교회의 모습이 그에 합당한 모습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교회 모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주인이란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그 뜻대로 사용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니, 사람은 그 누구도 교회에서 주인 노릇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만들어지고, 이루어져야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라면, 교회를 사고파는 돈에 따라 주인이 달라지게 됩니다.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주인노릇하고, 사람의 판단과 계산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사람이 교회의 주인이라면, 교회를 좌우할 만한 권력에 따라 주인이 바뀌게 됩니다. 권력이 더 큰 사람이 교회를 차지하고, 교회를 자기 입맛에 따라 움직일 것이고, 이 사람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와서 교회를 갖게 되면, 또 이 통치자에 따라 교회가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셔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교회 건물과 물건은 돈으로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 교회에서 행해져야 하는 일들, 교회에서 전해지는 말씀들에 대해서는 자기 뜻을 내세우고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이런 생각으로 교회를 차지하려 하고, 교회를 자기 입맛대로 좌우하려 한다면, 그 순간 그곳은 교회가 아니라, 수련관이나 동호회밖에 안 됩니다.
권력과 지식이 아무리 크고 많은 사람도, 교회에서 왕노릇, 주인노릇해서는 안 됩니다. 권력이 커서 온갖 것들을 맘대로 할 수 있고, 세상에서 지식과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권력과 지식으로 교회를 좌우하고 이끌려 하면, 그곳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권력기관이나 교육기관밖에 되지 못 합니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든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주인 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들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를 통해 이루실 일을 잘 만들어 가기 위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들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
요즘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과 다른 동물을 같은 수준으로 봅니다. 진화되는 방향이 좀 다를 뿐, 인간이나 원숭이나 비슷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문제점들이 많지만, 그 중 하나가,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보이는 학습 능력에 대한 설명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조상들에게서 배운 것을 발전시키고, 또 그것을 그 다음 세대에 넘겨줄 능력이 있습니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대부분의 가정에 TV, 자동차, 냉장고, 에어컨 등이 있을 거라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20년 전만 하더라도, 전화기 하나로, 인터넷, 계산기, 컴퓨터, TV 기능, 우편 기능, 성경, 찬송, 시장 기능까지 할 수 있을 거라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래서 연세 드신 분들 중에 간혹 “이렇게 좋은 세상 두고 어떻게 떠날까?” 하는 말씀들을 하시지만, 또 10년, 20년만 지나도, 지금 생각하지 못 하는 좋은 기계, 제도, 모습들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전의 것을 유지하고, 거기다 더 좋은 것들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 편해지고 좋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아주 못 사는 사람들도, 100년 전 왕이 이용하고 누리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이용하고 누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나 자동차나 기차, 지하철 등을 이용할 수 있는데, 100년 가장 부자고, 권력이 큰 임금이 타던 것은 지금 것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됩니다. 당시 임금의 차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빠르고, 안전하고, 온갖 기능을 갖추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간은 먼저 배운 것을 익히고, 그 위에 더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에게는 이런 학습능력이 없습니다. 자기들 조상들로부터 배우고 익히고, 또 이것을 또 후손들에게 물려주긴 하지만, 동물들이 배우고 전해주는 것들은 그 수준이 너무 낮아서, 어쩌면 이것은 학습능력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진화론자들이 인간과 가장 가깝고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하는 원숭이를 생각해 보면, 100년 전 원숭이와 현재의 원숭이가 큰 차이를 보입니까? 1000년 전, 원숭이가 바나나를 좋아했다면, 지금의 원숭이는 바나나를 밭에 심고 가꿔서 먹을 수 있습니까? 100년 전 원숭이가 나무를 잘 타고 다니는데, 그래도 위험할 수 있어서, 지금은 안전장치를 하고 다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만 있는 학습능력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제자를 두는 것입니다. 그것도 영리하고, 좋은 조건을 갖춘 제자를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과정과 내용을 보면, 인간적인 계산과는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제자로 부른 사람들 대부분이, 갈릴리라는 외진 곳에서,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을 부르시면서,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그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곳이 교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해를 하든지 못 하든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 체면 때문에 하는 것도 역시 아닙니다.
그리고 7절에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라고 하시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을 향해 보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유지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만일 교회 자체에 머물려 한다면 그 순간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모습도 보이지 못 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교회다운 교회, 제자다운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성숙해져서 능력을 받으면 교회를 떠나 세상에 들어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제자가 아니라, 세상에서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만들어야 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과 능력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를 뜻하는 말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밖으로 불러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아직 세상 속에서 살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말고, 세상 밖에 있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자기 욕심을 위해 살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죄와 더불어 삽니다. 하지만 교회인 우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세상 밖으로 불러내신 사람들이니, 하나님을 주인 삼고, 거룩하고, 온전하게 살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밖으로 부름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세상을 등지고,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교인들끼리만 상대하고, 기도와 예배만 드리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과 심정을 가지고, 이제는 세상으로 나아가, 아직도 세상에 묻혀 사는 사람들, 악에 억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구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축구나 농구 경기를 할 때, 선수는 안에서 경기를 뛰고, 감독이나 코치는 밖에서 선수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감독이 크게 말해도, 선수가 운동에 너무 집중하거나, 운동장이 너무 시끄러워 감독의 지시를 못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감독은 지시를 내릴 선수를 운동장 밖으로 불러냅니다. 운동장 밖으로 불러냈지만, 아직은 경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의 지시를 받은 선수들은 다시 운동장으로 들어가, 감독이 지시한 대로 움직이며 남은 시간 동안 열심히 경기해야 합니다.
교회란, 하나님이 세상 밖으로 불러내신 곳이라는 뜻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경기장 안에 있는 선수는 감독의 말을 듣지 못 합니다. 세상 안에서 살면, 우리도 세상 소리에 파묻혀 사느라,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를 듣지 못 하고, 잊고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잠시 세상 소리와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과 지시에 집중하라고 세상 밖으로 잠시 불러내셨고,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진리를 알았으면 세상에서 그것을 실천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가르치시고, 훈련하신 까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하기 위해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첫째는 8-11절까지의 말씀에서 나온 것으로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먹고 사는 것과 관련한 것을 더 이상 준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약속으로서, 사람을 의지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를 고치는 능력도 주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주인 삼아야 하고, 부르심을 받은 자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고 온전하게 살아야 하되, 다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마땅한 것을 지키고 행하면, 우리처럼 작고 연약한 교회도,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가 될 것이고,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함께 주신 그 권능과 능력과 약속을 우리에게도 주실 것이고, 더불어 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복과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교회로 부르셔서, 교회답게 듣고, 지켜 행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귀 기울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상급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교회,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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