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방법이 성공의 길입니다
성경: 마가복음 6장 14-29절(신 63쪽)
찬송: 585장(내 주는 강한 성이요; 통384), 542장(구주 예수 의지함이; 통340)
설교: 2017111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말들 중에서, 기독교로부터 시작되어, 유행의 범위가 기독교를 넘어 일반 사회까지 이른 것들이 있습니다. ‘치유’라는 뜻의 ‘힐링’과 ‘긍정’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들을 기독교에서 새롭게 만든 것은 아니고, 이전부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만, 기독교에서 이 말들을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고 적용해서, 더 넓어진 의미가 일반 사회까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긍정’ ‘긍정의 힘’이라는 말은, 미국의 조엘 오스틴이라는 목사가 지은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까지 ‘긍정’이라는 말이 유행되었고, 그 영향력이 일반사회로까지 번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영향이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송에서 이 말들을 어렵지 않게 듣게 되었고,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 일이 잘되고 잘 풀린다’는 식의 생각을 많이 말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아예 이 책으로 신앙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그것도 체계적이고, 신앙의 수준이 상당하다고 평가를 받은 교회들에서도 이 책을 교인들에게 권장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유행시킬 만큼 널리 이용되고,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과 바른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맛과 빛으로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긍정’ ‘긍정의 힘’이라는 말과 영향은, 세상을 비추고, 세상에 맛을 내긴 했으나, 그 내용은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습니다. 목사가 지은 책이고, 근거를 성경에서 많이 찾아냈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나오는 것들은 전혀 신앙적이지 못 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미신이나 자기암시에 가까운 내용에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큰 내용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각’은 물론 사람이 하는 것이니, 각자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복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책의 표지에는 ‘Your best life now’라는 작은 제목을 덧붙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지금 당신의 최고의 삶’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이 목사가 지은 다른 책들을 보면, 「최고의 삶」 「잘되는 나」「나를 응원하라」등입니다. 결국 이 목사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복은, 구원과 영생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누리는 물질의 풍요와 평안과 성공이라는 겁니다.
이 목사가 쓴 책 몇 쪽만 읽어봐도, 이런 내용들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기독교가 왜 아무런 비판 없이 마치 성경처럼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이 사람을 정상적인 목사라고 부르기 어려운 점들이 꽤 많습니다. 신학도 공부하지 않았고, 예수님 아닌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 목사의 신학이나 목회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과 관련해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해 너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신앙이라 부르기 어렵거나, 최소한 기독교 신앙,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정반대의 삶을 산 두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헤롯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고, 또 그대로 산 선지자이고, 헤롯은 누리고, 자기 욕심을 채우며 산 권력자입니다. 이들이 태어나 살아간 과정도 역시 정반대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너무 가난해서, 들에서 메뚜기나 들에서 나는 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싶은 만큼 먹은 게 아니고, 겨우 죽지 않을 정도밖에 먹지 못 했다는 뜻입니다. 이에 반해, 헤롯은 돈이 많고, 권력이 많아서, 먹고 싶은 것 맘껏 먹고,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산 게 아니고, 하나님이 시키신 것만 행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 편한지, 자기에게 당장 유익한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나님이 시키신 것에는 목숨을 걸고 행하며 살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었고, 헤롯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고, 자기 뜻에 따라 산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사람이었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온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의 삶을 완전히 주님께 헌신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깨끗하고 가난했습니다. 그는 당시의 다른 종교지도자들처럼 얼마든지 호화롭게 살 수 있었지만, 화려한 성전에 가까이 있지 않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을 수 없는 광야를 선택하며, 그곳에서 마치 사람들에게 버려진 것처럼 살았습니다.
헤롯은 분봉왕인데, 당시 나라의 1/4이나, 혹은 일부를 다스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당시 유대 지역을 통치하던 로마의 권력 밑에 들어가 결국 자기가 원하던 정치적 욕심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람대로 잡은 그의 권력은 대단했습니다.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람을 마음대로 체포하고,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독재자였고, 살아있는 이복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의 아내로 삼을 정도로 도덕적으로도 몹시 파렴치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헤롯이 이복동생의 아내를 아내로 맞이했을 때, 모든 사람은 그것이 도덕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입을 닫았습니다. 그 지역의 최고 권력자인 헤롯의 권력과 재산의 힘이 무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나, 사회 지도층 사람들이 함께 나서서 헤롯의 처신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면, 아무리 권력이 큰 헤롯이라 하더라도, 세례 요한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고 선지자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헤롯은 세례 요한만 가두고, 결국 죽였습니다. 세례 요한만 헤롯의 잘못을 드러내놓고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똑똑한 듯, 바른 말, 좋은 말 잘 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들은 헤롯의 권력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한 마디 내뱉지 못 하고 침묵하고 있던 때에,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왕의 잘못을 지적하면 분명히 자신에게 손해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세례요한은 그의 깨끗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세례 요한은 여기서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 두 가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 같습니까? 여러 번의 기회가 있다면, 한 번은 이런 삶을 선택하고, 다른 한 번은 저런 삶을 선택해 살아보는 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우리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뿐입니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우리의 인생이 단 며칠만에 끝날 수도 있고, 높은 자리에서 좋은 것 먹고 누리며 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삶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세례 요한처럼 생명을 걸고, 진실과 하나님의 일을 위해 과감하게 나설 만한 용기가 있습니까? 아니면 세례 요한의 삶이 주는 고난이 두려워, 자기가 선택한 길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죄악의 길을 계속 고집하며 편한 길을 선택한 헤롯의 길을 선택할 것 같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각자가 걸어온 삶의 자취들을 통해, 우리가 선택할 길을 예상해 보면, 세례 요한의 삶이 아니라, 헤롯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내가 조금 더 누릴 것들이 아쉬워서, 혹은 세례 요한의 길을 선택했을 때, 겪게 될 고난과 아픔이 두려워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처럼 침묵의 길을 가고, 내가 가진 작고 하찮은 것마저도 잃을까 두려워, 혹은 이 세상이 마지막이라고 여기며, 그냥 이 땅의 삶만을 중요하게 여겨서 편하고 쉬운 길만을 선택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판단과 계산에 따르면, 이루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할 수만 있으면 편하고 누리는 헤롯의 길을 선택할 게 뻔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긍정의 힘」을 쓴 목사가 주장하는 것 역시, 헤롯의 길이 참된 복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합니다만, 과연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통 헤롯과 세례 요한의 갈등과 그 결과로만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성경이 오늘 본문을 앞의 내용 다음에 이어 기록한 까닭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앞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보내시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시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준비하지 말라고 하신 것들 중에는, 우리로서는 당연히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면서 가장 먼저 챙기는 것들은, 먹는 것, 돈, 잠자리, 옷들입니다. 이것을 잘 챙기지 못 하면, 그 여행의 과정들은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경험을 통해 이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여행하거나 외출하면 이런 것들을 빠짐없이 챙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런 것들을 골라서 오히려 준비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해도, 밖을 나가면 잠자리, 먹을거리, 돈, 옷 등도 필요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이런 것들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신 까닭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아갈 길이고, 이런 삶이 복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과 헤롯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자녀와 제자로 사는 길로 사는 사람과,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을 함께 두고 그 결과를 비교하게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헤롯은 자기 욕심에 따라 죄악이 함께 있는 권력을 선택했고, 그 피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세례 요한이 입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세상 권력에 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여행할 때 최소한의 것들마저 준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라는 말씀이 안 지켜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으로 세례 요한과 헤롯의 삶이 결론났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믿고 순종하고 살아도 결국 실패하고, 자기 욕심과 욕망대로 살면 잘되고 성공하게 되는데, 그 누가 어렵고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길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끝난 것 같았으나, 비극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 거짓으로 행복하게 살게 하시는 것 같으나 거짓의 사람이 행복으로 끝나도록 하시지 않습니다.
평생 이 땅에 있는 것을 최고로 삼고, 악을 행한 헤롯의 비참한 삶이 시작됩니다. 헤롯은 자기에게 가장 큰 걸림돌인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더 이상 거칠 것이 없고, 앞길이 탄탄대로일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의 고통은 오히려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죄의식과 두려움이 그의 삶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몸은 좋은 자리에 앉고 누울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으로 치장할 수 있었지만, 마음만은 항상 감옥과 지옥에 있는 사람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가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이적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이 알려지자, 16절에서 헤롯이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저 예수님을 뛰어난 선지자나 엘리야와 비슷하게 생각했지만, 헤롯만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헤롯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있었는지, 그 동안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헤롯은 죽어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악한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지옥 같은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춘향전’에서 많은 죄를 지은 변학도는 이몽룡이 암행어사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죽음과 같은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은 죄를 지은 정도가 아니라, 세례 요한을 아예 죽였는데, 자기가 죽인 이 사람이 엄청난 권능으로 살아났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이 일을 시작으로 헤롯은 살아서도 영원한 지옥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나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약하고, 무력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천하고 멸시 받는 자들을 택하셔서 있는 자들을 이기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놓인 두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삶을 살기에는 두려운 생각,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있어 선택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헤롯처럼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이 성공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길이 진리고 복된 삶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먹고 사는 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거나, 나중을 위해 아무런 것도 준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고, 눈앞의 삶만 생각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눈앞의 부와 편함과 이익이 있어도, 이와는 비교가 안 되는 하나님의 복과 사랑을 믿고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복과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것들은 길어야 몇 년의 것이고, 그것도 결국 실패와 좌절로 끝나고 말 것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기억하고, 주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먼저 찾고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171126)우리는 숨은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막 6장 35-44절) (0) | 2018.05.20 |
|---|---|
| (20171119)한적한 곳에서 생각하는 능력, 은혜(막 6장 30-34절) (0) | 2018.05.14 |
| (20171105)교회는 제자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막 6장 6-13절) (0) | 2018.05.14 |
| (20171029)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셨습니다(막 6장 1-6절) (0) | 2018.05.14 |
| (20171022)주님의 것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신앙(막 5장 35-43절) (0) | 201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