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71126)우리는 숨은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막 6장 35-44절)

청명하늘 2018. 5. 20. 23:57

우리는 숨은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경: 마가복음 635-44(63)

찬송: 263(이 세상 험하고; 197), 310(아 하나님의 은혜로; 410)

설교: 2017112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된 말 중 하나가 헬조선이라는 말입니다. ‘이란 지옥을 뜻하는 영어고, ‘조선이란 우리나라를 뜻해서, 우리나라에서 열심히 노력해도 마치 지옥처럼 살아가기 힘들고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이 생기고,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마저 최근엔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겁니다. 예전엔 나이를 먹으면,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녀 갖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장만 얻으면 먹고 사는 문제 없다” “방 한 칸만 있으면 결혼해도 된다” “아이는 낳기만 하면 저절로 크니 걱정할 것 없다는 말들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것들이 최근엔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많이 배우고 준비합니다. 학교교육만이 아니라, 그 외에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만이 아니라,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봉사활동 등 많은 것들을 준비합니다. 그럼에도 좋은 직장 얻기도 힘들고, 그러다 보니 연애와 결혼도 힘들고,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키우는 게 힘들어서 출산을 포기합니다. 집 가격도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그러다 보니 돈이 들어가야 하는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현실의 어려움들이 커져서,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이 마치 지옥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준비했어도, 평범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애하고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데도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아이를 키우고, 집을 구입하는 데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듭니다. 그래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거두고 이루는 것보다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진다는 말들이 안타깝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준비하고 애쓰고 노력해도 평범한 것들마저 이룰 수 없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들이, 어쩌면 욕심으로부터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요즘 젊은 세대는,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는 분야들이 다양해졌고, 그래서 이루고 성공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지만, 그럼에도 마땅하다 생각하는 것들의 크기와 높이를 좀 줄이면, 사실 우리나라의 삶은 전세계에서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헬조선이라며 불평하는 이들의 기준을 보면, 연애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자동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좋은 음식을 먹을 만한 여유가 있어야 하고,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결혼하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많은 돈을 들여서 자녀를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것을 이루지 못 한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여러 가지를 포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젊어서부터 자동차를 사고 끌고 다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젊어서부터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돈을 모으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아파트를 구입하고, 자녀에게 많은 돈을 들여 공부시킬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당연한 것들이 아님에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착각과 욕심에서 생긴 것이고, 욕심이 생기면 불만스럽기 마련이고, 불만스러우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욕심의 그릇을 채우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만족할 수 없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란, 우리의 바람과 욕심의 그릇을 채우는 것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고, 반대로 욕심과 욕망의 그릇들을 줄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갖고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우리가 선물로 받은 은혜임을 알면, 작은 것들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올해가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바라고 계획한 것들을 얼마나 이루고 거두었습니까? 2017년을 조금씩 결산하고, 2018년을 준비해야 하는 때에, 올해에 대한 감사와 내년에 대한 기대가 큽니까? 아니면 아쉬움과 불만, 그리고 내년에 대한 욕심이 더 큽니까?

 

올 한 해 교회도, 우리 각자도 모두 여러 가지로 애썼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물론 계획했던 것만큼 이룬 것도 있고,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먼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누구와 비교하면 부족할 수 있고, 계획했던 것에는 모자랄 수 있어도,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올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년을 기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기적과 같은 삶이 아니겠습니까? 더 작게 보면, 숨쉬고, 움직이고, 말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나아와 예배하는 것만도 당연한 게 아니고 사실은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고, 이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사람을 먹이셨다고 해서 오병이어이적이라 하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이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제자들에게 가지고 있는 것들 외에는, 돈이나 먹을거리나, 잠자리마저 준비나 약속 없이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계산엔 전혀 안 맞는 말씀이었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도저히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진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역하는 데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이 채워지고 준비되어, 일을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을 통해 큰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역을 잘 마치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는데, 그 기적을 보고, 또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들이 예수님 계신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정말 기적을 행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으로 몰려왔습니다.

 

당시 한 성읍의 인구가 약 2,000-3,000명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것을 감안하면, 예수님과 제자들 곁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남성의 수만 해도 5천 명이라는 것은 당시 보기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그만큼 각자가 겪는 고통과 아픔, 질병 등이 많다는 것이고, 더불어 사람의 힘으로는 이를 해결할 만한 힘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여자와 어린이까지 포함하면 만 명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식사 시간이 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주위에서 몰려든 사람들 대부분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인지라, 끼니까지 준비하지 못 한 이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예수님이 있는 곳까지 먼 걸음을 했지만, 그 먼 거리를 돌아가려면 굶주림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서도, 자기들이 가르친 것들을 듣고 먼 걸음을 한 사람들이니, 이들의 식사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200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성인 남자 한 사람이 하루 일하면 받을 수 있는 돈이 한 데나리온이니, 200데나리온을 요즘으로 계산하면, 성인 남자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200일을 일한 돈 2,000만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돈이 제자들에게는 없습니다.

 

제자들이 급하게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나온 것이 겨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였습니다. 이것은 한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밖에 안 됩니다. 먹어야 하는 사람 수에 비하면 있으나 마나할 정도로 너무나 작디작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이것이 진짜 가능할 수 있느냐?’고 부정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람으로서는 이것이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이신 예수님이 이것을 행하지 못 한다면, 이것이 더 이상한 것입니다. 만일 이런 일도 할 수 없다면, 예수님을 신으로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신이시기에,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한두 끼니밖에 안 되는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셨고, 남은 것들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습니다. 남은 것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했다는 것은,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는 광야라는 곳에서, 먹은 식사가 풍성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자리가 광야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위치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오늘은 35절부터 읽었지만, 크게 보면, 오병이어 사건은 그 앞 30절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는,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이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이 속에는 헤롯이 베풀었던 잔치 자리가 나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오늘 본문의 오병이어 기적은, 헤롯의 잔치 자리와 비교시키기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서열 몇 번째였던 분봉왕 헤롯이 베푼 잔치는 가장 기름지고 좋은 음식들로 가득하고, 귀한 그릇들로 화려하게 장신된 자리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 역시 가장 부유하고, 힘 있고, 똑똑한 사람들이었고, 그 자리에서 몇 명이 먹은 것만 해도 200데나리온이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고,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들과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만큼, 그 속은 더러움과 죄악과 탐욕으로 가득했습니다. 술 취한 후 게워낸 토사물의 더러움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거짓이 가득했고,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추악함이 가득한 자리였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께서 베푸신 식사 자리는 참 보잘 것 없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제대로 된 식사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식사로서 주어진 물고기와 떡은, 우리나라로 바꿔보면, 밥 한 그릇에 김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식사하는 자리는, 햇빛과 비와 이슬을 그대로 맞아야 하는 황량한 곳이었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주님이 선하고 충실한 목자로 다가오신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기적이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의 자리에 있던 제자들, 또 그것을 지켜보고 먹어 배부른 사람들의 반응이 좀 이상합니다. 작은 빵 조각 다섯 개,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먹었다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우리말로 난리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이들의 반응은 우리가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차분합니다. 마치 아무 일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합니다. 제자들도 물론, 기적의 현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 역시 엄청난 이적 앞에서 당연한 일인 것처럼 그냥 지나칩니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행하실 때마다 드러내지 않고 행하신 것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기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장소에서, 그것도 너무나 익숙하고 가난한 한 끼 식사로 주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헤롯의 잔치 자리에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행하셨다면, 그곳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온나라가 들썩이고 난리였을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은, 언제나 사람의 눈과 계산으로 놀랍고 이해되지 않는 모습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뭔가 이상한 소리를 내든지, 한 순간에 이상하게 변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이롭게 하고,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단 신기하고 놀라운 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너무 당연한 일처럼, 혹은 알지 못 할 정도로 숨어 일어나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베푸시는 이적과 은혜의 모습입니다.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특별해 보이지 않아도, 눈에 두드러져 보이지 않아도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얻는 기적 같은 삶입니다.

 

논밭에서 흙과 풀에 앉아, 김치 하나만 놓고 밥을 먹는다 할지라도, 우리 삶에 헤롯이 걸어간 거짓과 죄악이 없다면, 그것이 부족한 게 아니고 기적과 같은 삶 아니겠습니까? 비록 우리의 삶이 산해진미로 가득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거스르고, 죄악인 줄 알면서도, 잠깐 동안의 편함과 누림을 위해 죽음의 길을 가는 삶이 아니라면, 그것이 숨은 기적의 자리이지 않겠습니까? 비록 우리 삶이 화려하게 편안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헤롯의 잔치 자리가 되지 못 했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배고픔으로 굶주릴 것을 염려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화려하고 웅장한 헤롯의 궁전 같은 집은 없다 할지라도, 비바람을 피할 초라한 집이 있고, 그것이 남의 희생을 통해 주어진 게 아니라면, 더 큰 기적이지 않겠습니까? 비록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누군가와 비교하면 너무 사소한 것이라 내세울 것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넘치는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크고 화려하고 멋진 헤롯의 잔치가 끝난 뒤에는 지옥과 같은 두려움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고, 작고 소박한 예수님의 자리가 끝난 뒤에는, 하나님의 나라 같은 소망과 영생이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헤롯의 잔치 자리가 주어지는 게 복이 아니라 저주고, 광야에서 오병이어 기적 같은 일상의 삶이 저주가 아닙니다. 당연한 게 아니고, 그 자리와 그 때가 바로 기적의 현장이고,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죄악을 계획하는 자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바라며 돌이켜 볼 수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바라고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더라도, 바람만큼 충분히 이루지 못 했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적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올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할 때에, 여러분은 어느 자리에 있고 싶습니까? 좋은 음식들 가득하나 죄와 거짓으로 가득한 잔치자리입니까? 소박한 일상의 한 끼 식사 가운데에 주어지는 소망의 자리입니까? 헤롯의 잔치자리에 있고 싶습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의 자리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 가운데, 모든 유혹을 이기고 죄악의 자리에서 벗어나, 주님이 베푸시는 영생의 자리에 머물고, 삶에서 주어지는 작은 것들마저 은혜와 기적처럼 귀히 여기며 감사함으로써, 감사하는 자녀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