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71203)주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막 6장 45-52절)

청명하늘 2018. 5. 21. 00:23

주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성경: 마가복음 645-52(64)

찬송: 435(나의 영원하신; 492), 405(주의 친절한 팔에; 458)

설교: 2017120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신학대학을 다닐 때, 한 친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교인들의 기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신학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전도사였지만, 친구는 시골의 작은 교회의 담임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담임으로 있으면서, 몇몇 교인들이 기도를 참 많이 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예배나 모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교회까지 와서 기도하기도 하고, 새벽마다 나와서 오랫동안 기도한다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교인도 있고,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하는 이도 있고, 기도하는 자세도 다양하지만,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겁니다.

 

그때 제가,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자기 문제가 해결되고 잘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기도하는 내용들을 보면, 대부분이 나 잘 먹고, 잘 살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들이고, 내 가족과 자녀들 잘되고 성공하기 바라는 것들입니다. 아마 이런 기도를 빼면, 기도하는 시간의 대부분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교인들의 기도는 자기중심적이고, 그것도 잘되고 성공하고 돈 많이 벌도록 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기도로 자기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고, 게다가 모든 사람은 약해서, 자기의 아픔과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으니,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게 수준이 낮거나, 기복적인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기도에 대한 이 두 가지 입장 중 어느 것이 맞는 것 같습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이 하는 기도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중심인 것은 맞죠? 그리고 자기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되고, 성공하고,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도 맞죠? 문제는,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는 게 과연 적절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 받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역시 이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하는 까닭도, 원칙과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구원을 받아, 우리 몸이 죽은 이후에 저 멀리 있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은 이에 대한 관심과 생각은 나중 생각할 것이고, 이보다는 나와 내 가족이 지금 당장 잘되고 복 받기 위하는 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 멀리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거창한 목적이 아니어도, 너무나 작고 사소한, 먹고 사는 것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하는 게 당연하고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한 게 친구였고, 지금 이 땅에서 먹고 잘 사는 것을 먼저 찾고 구하는 것은 수준이 너무 낮으니, 더 크고 높은 것을 위해 기도하자는 게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는 저의 생각이 맞다고 고집하고, 그런 신앙이 수준이 높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목회하면서 당시 저의 생각과 판단이 부족했다고 여깁니다.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성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까닭은, 우리의 몸이 죽은 이후에, 부활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게 더 큰 까닭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건강하고, 잘되고, 성공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물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은 다음에 두어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문제와 어려움을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과 영생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계시지만, 이것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간혹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면 밥 먹여주냐?”는 말을 듣죠?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입니다. 혹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할 때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마치 취미생활이나, 마음의 안정을 위해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일과 신앙생활에 너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핀잔하고 비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바로 하나님이 밥 먹여 주냐?” “교회에 다니면 밥 먹여 주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밥 먹여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도 관심이 많으시고, 이것이 가장 큰 소원이지만,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영생, 구원, 하나님의 나라, 바른 믿음과 삶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우리가 매일 세 번씩 먹어야 하는 식사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역시, 수준이 낮거나 나쁜 기도가 아니라, 좋은 것이고, 하나님도 이런 기도도 기뻐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이것을 예수님이 알려주신 기도문이라고 해서 주기도문이라고 하고, 이 기도로 자주 기도합니다.

 

이 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가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먼저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문제,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가 수준이 낮거나, 미신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이마저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약하고, 그래서 이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 일 많이 하면 밥 먹여주냐?”고 묻는다면, 교회 일이 자기 욕심과 욕망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순수한 마음이라면, 밥 먹여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으면 밥 먹여주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신 분임을 믿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밥 먹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 가운데에서 큰 파도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파도를 잠잠케 하심으로써 제자들을 구해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앞에 있던 것과 연결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오천 명, 여성과 어린아이까지 포함하면 1만 명 정도를 먹이신 사건이 등장합니다.

 

당시 제자들로서는 기적의 자리에 있고 싶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선교 현장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이 낫는 기적들이 일어났고, 이후에 주님이 계신 곳으로 와서, 자신들이 겪고 행했던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제자들이 행한 기적을 보고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자리에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많이 모으길 바라시는 것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모든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제자들에게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만이 아니라, 제자들까지 높이고, 칭찬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상황을 위기로 보셨습니다. 오늘 본문 45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라는 말씀처럼, 즉시 제자들이 떠나야 할 때라고 여기셨습니다. 다른 것 생각하고 계산할 여유가 없이, 다른 문제 처리하는 것보다 당장 떠나야 할 정도로 큰 위기로 보셨습니다. 심지어는 몰려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그 자리를 정리하고 처리하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급했는지, 사람 돌려보내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처리하실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건너편 벳새다로 급하게 가던 제자들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건너고 있는 호수에 맞바람이 강하게 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 제자들 대다수는 어부 출신입니다. 호수도 잘 알고, 바람도 잘 알고, 배를 움직이는 능력도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큰 곤경에 처했다는 것은,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바람이 거세고 거칠었다는 뜻입니다.

 

어부로서의 경험이 많았던 제자들마저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큰 곤경에 처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을 구하러 오시는 예수님, 자기들의 스승이시고, 단 몇 시간 전에 곁에서 함께 먹고, 기적의 현장에 계셨던 예수님이 오셨음에도, 제자들은 유령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52절에서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자기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 해 유령인 줄로 알고, 바람을 잠잠케 하심으로써 자기들을 구하신 것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 해 크게 놀란 제자들에 대해, 성경은 왜 오병이어 사건과 연결해서 말씀하시겠습니까? 예수님 곁에서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제자들은 왜, 주님을 더 잘 알고, 잘 믿는 게 아니고, 오히려 주님을 알아보지 못 할 만큼 마음이 둔해졌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많은 양식이 어디에 왔는지 모를 수도 있고, 관심이 없을 수도 있지만, 제자들은 어디에서 구한 게 아니고,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셨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전혀 감동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작고 사소한 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하려면, 그것이 도움이 되느냐와는 상관없이, 뭔가 크고 웅장하고 신기해야 하는데, 오병이어 기적은 너무나 조용히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흔하고 소박한 한 끼 식사로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끼 식사를 안 먹으면 배고프긴 하지만, 당장 죽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능력을 인정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한 끼 식사 정도만 채워주시는 분, 예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조금 어려울 뿐이지만, 목숨이 오가는 일까지 도우실 분으로는 인정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어부 출신인 제자들이 모여 있어도,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파도가 크고 강해서 빠져 죽을 수도 있는 큰 위험에서는, 주님을 의지할 만한 마음도 없고, 주님을 찾고 부를 만한 여유도 없고, 심지어는 직접 찾아오신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이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또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는, 우리가 먹고 사는 작은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이를 위해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고, 제자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이것을 보고 아시고, 직접 오셔서 기적으로 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능력은, 우리의 크고 작은 문제와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를 향해 행해집니다. 제자들이 주님이 가라고 하신 곳으로 가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일들에 순종하자, 한 밤중에다 바람과 파도가 거센 때였음에도, 주님의 눈과 마음은 제자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이 모습대로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신 곳을 향해 나아가고, 주님이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들을 지켜 따르고 행하면,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문제의 크고 작음은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잘되고, 건강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도 주님은 관심을 가지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이보다 훨씬 더 작은 일인, 한 끼 밥을 먹느냐, 굶주리느냐 하는 것에도 주님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하라며, 주님은 기도의 모범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매일 세 번씩 먹는 식사마저도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기도하라고 하셨으면, 주님께 기도하지 못 하고, 도움을 청하지 못 할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너무 크고 힘들어서,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주님은 관심을 기울이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과 능력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될 만큼 크고 무섭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주님은 관심을 보고 계시고, 주님이 개입하시는 한 해결하지 못 하거나, 이루지 못 하는 문제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려운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죽음 이후의 세상과 생명에 대해서도, 부활과 영생에 대해서도 주님은 준비하고 계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주님이 곁에 계심으로써 해결됩니다.

 

우리에게는 예상치 못 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을 경험하기도 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곁에 계시면 풀리지 않고, 해결될 수 없는 문제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너무 작고 사소한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고, 해결해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 그 누구도,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서, 구원과 영생의 문제 앞에서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해 줄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에 대해 이 말로 안심시키고, 해결해 주실 분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아픔과 문제는 주님만이 유일하고도 최고의 해결이 되십니다.

 

우리가 겪는 문제에 대해, 크고 작은 것과는 상관없이 주님을 언제나 큰 관심과, 해결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믿음으로써, 주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움을 해결받고, 영생과 구원의 문제까지 해결받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