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408)주님을 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막 9장 38-41절)

청명하늘 2018. 8. 27. 14:17

주님을 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성경: 마가복음 938-41(70)

찬송: 456(거친 세상에서; 509), 321(날 대속하신 예수께; 351)

설교: 2018040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잘되고 성공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못된 본성을 알려주는 속담임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촌을 이야기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보통 삼촌 이내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 형제자매, 그리고 그 자녀들과의 관계니, 말 그대로 일가친척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과 가정마다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사촌이 되면, 한 다리 더 건너고, 그리고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엔 이런 모습이 더 두드러져서, 사촌들의 관계는 훨씬 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남남이 되기 시작하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사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촌이 되면, 돈을 어떻게 쓰든지 전혀 상관할 수 없습니다. 사촌이 돈이 있든지, 권력이 있든지, 그 영향이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 보니, 촌수로는 아주 가깝지만, 땅을 사든, 논을 사든 그 이익이 나에게까지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촌이 논이나 밭을 사는 것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부러워하고, 내가 사지 못 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오히려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배우자, 부모, 자녀가 논과 밭을 산 것을 배 아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논과 밭을 사들이고, 많은 이익을 얻을수록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논밭을 사면, 그 이익과 소득의 일부가 자기에게까지 올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삼촌이라는 관계까지는 서로의 재산이나 소득에 대해 주인의식이 있고, 사촌 정도부터는 자기와는 별개로 생각하기 때문에, 주인의식이 많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이 논과 밭을 산다는 점은 똑같지만, 주인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어느 한 쪽은 부러워하면서 시기할 뿐이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오히려 더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면 주인의식이 무엇이고, 교회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전 대통령이, 대형교회에서 장로가 되는 과정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습니다. 교회가 크고, 성도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자신을 알린다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그런데 34개월 동안 주일마다 새벽부터 주차관리를 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본 성도들이 장로로 뽑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큰 교회에서는 마치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이 있습니다. 교회의 중직자가 되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아봐주는 곳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주차장에서 일한다든지, 아니면 교인들의 경조사가 있을 때, 앞장서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습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행동 같습니까? 왠지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하기엔 어색하지 않습니까? 교회에도 주차장에서 봉사하는 사람, 식당에서 봉사하는 사람, 화장실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필요에 따라 수고하고, 노력했습니다. 교회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칭찬하실 것이라고 말하기엔 꺼림칙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주인의식으로 한 행동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개인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어떤 분은, ‘주인의식주인공의식으로 구분했습니다. 주인의식과 주인공의식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속한 모임이 잘되고 성장하는 것에 가장 큰 목적을 둡니다.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기가 인정받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칭찬받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인정받지 않아도, 자기가 속한 모임이 잘되고 성장하는 것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은, 공동체가 성공하고 발전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더 두드러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공동체가 잘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어떤 사람이 많아야 하겠습니까?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겠습니까?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겠습니까? 모임을 자기의 것처럼 맘대로 하려는 주인행세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하는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공동체가 화합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으면, 공동체를 자기 것처럼 아끼고,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동체가 잘되도록 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까?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은 공동체는 점차 분열되고, 그리고 점차 나빠지게 됩니다. 자기가 이익을 얻고, 자기가 두드러져 보이도록 하기 위해, 공동체의 손해에 대해서는 눈감게 될 것이고, 자기만이 높아지기 위해,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더 심해지면, 거짓과 음모를 꾸며서라도, 남을 짓누르고 자신이 높아지려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대곡교회는 어떻습니까?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이 많습니까?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까? 여러분은 주인의식을 가진 성도입니까? 아니면 주인공의식을 가진 교인입니까? 이 두 종류가 구분되십니까? 긴가민가하십니까? 이 둘을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만약 대곡교회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어떻습니까? 반갑죠? 함께 신앙생활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함께 좋은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도가 오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든지,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이든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사람의 능력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고, 그래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여기에서 주인의식을 가졌는지, 주인공의식을 가졌는지에 따라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오는 것을 반깁니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교회에 더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일할 때는, 교회가 별로 성장하지 못 했지만, 새로운 사람이 잘 해서 교회가 훨씬 성장했습니다. 이럴 경우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잘되는 것보다는, 교회가 잘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발전한 것으로 함께 기뻐하고, 일을 더 잘 하는 사람을 높여주고 인정해 줍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회사를 예로 들면 더 분명해 보일 것입니다. 사장이라면, 자기가 유명해지고, 사람들의 인정을 많이 받느냐 하는 것보다는, 누가 더 회사에 이익을 끼치고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으로 좋은 직원, 나쁜 직원으로 구분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회사의 사장이라고 하면, 신입사원이 자신보다 더 능력이 있고, 그래서 회사가 발전하고, 돈도 잘 벌 수 있도록 도움을 줄수록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의식을 가진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의 목적은 오직 자기 자신이 두드러지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이 와서 일하는데, 자기보다 일을 더 잘 하고, 그래서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관심과 칭찬이 이 사람에게로 쏠리게 되니, 이것을 견디지 못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일을 잘 하면 잘 할수록 더 미워합니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칭찬 받는 꼴을 못 봅니다. 그래서 시기도 하고, 이 사람이 두드러져 보일수록, 어떻게 해서라도 이 사람을 깎아 내리려 하고, 심지어는 모임에서 쫓아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주인공의식으로 무장된 사람이 많을수록, 모임은 점차 분열되고,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만 많아지고, 망해 가게 됩니다.

 

그러면 대곡교회는 어떤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까? 새로운 교인이, 그리고 다른 성도가 자기보다 더 인정을 받으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기분이 좋습니까? 아니면 괜히 시기 나고, 질투심이 생깁니까? 다른 사람이 더 인정받더라도, 교회가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업이 확장되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 성도가 많을수록 대곡교회는 주인의식으로 무장된 교회, 그래서 좋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더 좋아지고, 발전하더라도, 내 자신이 주인공처럼 높아지지 않는 것 때문에 시기심이 생기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이 교회는 주인공의식으로 채워진 교회, 그래서 나쁜 교회가 됩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의 공생애를 마감하는 시점이 다가와서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두 번이나 밝히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들의 이익과 출세와 자랑뿐이었습니다. 제자들 대부분이 못 배우고 가난한 어부출신이었음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쉽게 교만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교만은 위대한 사람과 학식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유한 사람의 마음속에만 자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에게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큰 교회와 모임에서만 교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무리들 속에서도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생각과 이익은 누구에게나 최대의 관심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는 그럴 만한 건수가 전혀 없어 보여도, 자기 눈에는 그렇게 위대해 보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직접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섬기는 사람이 더 위대하다고 말씀하셨고,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위대한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요한은 이전에 있었던 한 가지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는데, 이 사람이 자기의 일행이 아니기 때문에 귀신을 내쫓는 것을 금하였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67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라는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자기들만의 특권으로 여겼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애매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이 사람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그 동안 제자들에게만 주어졌던 능력이었는데, 어떤 경로를 통해 이런 능력을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은 악한 영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을 괴롭게 하고, 고통을 주고, 그리고 결국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파괴하게 됩니다. 그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었으니 얼마나 유익합니까? 뿐만 아닙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나 이익을 위해서 귀신을 내쫓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단지 자기의 무리가 아니라는 이유 한 가지 때문에 이 일을 금했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판단기준이 어떻게 다른지가 분명해집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들의 높아짐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이름을 높여줄 수 있고, 이익이 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만을 가까이 두려고 합니다. 반대로 자기보다 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나, 인기를 더 많이 받는 사람, 자기들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어서, 같은 목적을 둔 사람들마저도 경쟁상대로 여기고, 시기하고 질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40절에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행하는 사람의 출신이 어딘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출신과 직분 자체가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인지, 그것이 어려움에 처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중요시하고 내세우는 우리들 나름의 기준은 어떻습니까? 제자들의 이기적인 기준을 닮았습니까? 예수님의 기준을 닮았습니까? 또 예수님 제자들의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기준들이 혹시 우리들에게는 없습니까? 오직 내가 높아지는 것, 내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한 적이 없습니까? 나의 하찮은 지식을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몇 년 동안 신앙생활했다는 세월을 자랑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직분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다른 성도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싶어 한 적이 없습니까?

 

자기중심적인 기준들에서 조금 확장되면 어떻습니까? 내가 있는 교회, 우리가 있는 교회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우리 교회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생각도, 우리 교회만의 중심적인 기준도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작든, 하나님의 자녀를 살리는 일이면, 좋은 것이고, 자기에게 도움이 되든 손해가 되든,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은, 41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는 말씀에 잘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에게 베푸는 보잘것없는 베풂마저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반드시 상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받는 자가 복된 게 아니라, 베풀고 섬기는 게 복되다는 말씀이고 약속입니다. 직분이 크고 중한 사람이 복된 게 아니고, 낮은 자세로 섬기는 사람이 복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의 욕심, 자랑, 명예를 희생해서라도, 주인이신 주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희생하며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사람이고, 이 땅에서 보잘것없는 작은 섬기마저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복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욕심과 자랑을 향해 가려는 우리의 악한 본성을 이기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낮아지고, 더 섬기고, 더 협력해서, 하나님만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