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616)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삼상 7장 5-14절)

청명하늘 2019. 6. 16. 16:17

하나님의 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73-14(418)

찬송: 300(내 맘이 낙심되며; 406), 540(주의 음성을; 219)

설교: 2019061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여러분 편의대를 아십니까? 쉬운 것 같기도 하고, 잘 사용하지 않아서 그 뜻이 어려워 보이기도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국어사전에서는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복 차림으로 적지에 들어가서 몰래 활동하던 부대를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백과사전에서는 침투하는 적을 탐지 색출하기 위해 그 지역의 환경에 맞도록 농민, 약초채취꾼, 행상, 나무꾼 등으로 가장하여 주민과 동일한 행동을 하는 임시 특별 부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들으니 오히려 뜻이 더 어려워지죠? 최근 갑자기 이 말이 많이 언급되었습니다. 지난 달 5.18민주화운동념일을 앞두고, 당시 미국의 CIA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분이 당시 있었던 일을 고백했습니다.(편의대 영상)

 

이해가 안 된 분들을 위해 부연설명 드리면, 전두환의 명령을 받은 군대가 광주에 왔습니다. 군인들은 총과 총알을 가지고 있고, 또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시민들을 향해 무작정 총을 쏘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먼저는 위에서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아무런 명분이 없으면, 그 순간에는 위기를 넘기고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엔 발포한 것 때문에 반드시 조사와 처벌을 받게 됩니다.

 

또 그런 명령을 받은 군인들도, 명령을 받았다고 해서 무작정 총을 쏘지 못 합니다. 총이라는 게, 한 번 쏘면 되돌릴 수 없이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도구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군인들이라면, 발포 명령을 쉽게 따르지 못 합니다. 그래서 이때 필요한 게 편의대라는 것입니다.

 

위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군복을 입지 않고, 보통의 옷을 입어서 신분을 속입니다. 그리고는 시민들 무리에 섞여서 과격하게 행동합니다. 화염병을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고,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흔히 말하는 정도를 넘어서 시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변장한 군인들이 일부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다른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진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발포하라고 명령한 사람들에게도 명분이 생깁니다. 그대로 놔두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게 되니, 희생이 더 커지는 걸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발포하도록 명령했다고 하는 거죠. 또 명령을 받은 군인들도 명령을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보통 사람에게 총을 쏜 게 아니고, 총기를 가지고, 폭동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이들에게 쏘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편의대라는 게 사건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편의대는 직접 시민들을 해치거나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했습니다. 총을 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고, 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실행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얼마나 잘 해냈는지, 사살 명령을 내린 자들이 그에 맞는 처벌조차 받지 않고 있고, 또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편의대가 한 일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발포 명령이 내려지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편의대가 총을 쏘도록 명령을 내린 것 아니죠? 또 편의대가 직접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발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발포가 이루어지는 데 있어 간접적인 역할을 해냈다는 것입니다. 만약 편의대가 심각한 상황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발포 명령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테고, 또 군인들이 그 명령을 받았더라도 총을 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처럼 결과가 만들어지도록 원인을 제공하는 것을 영어로 trigger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일으키다’ ‘유발하다등의 의미와 더불어 총의 방아쇠를 뜻합니다.

 

총알을 발사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방아쇠를 당겨야죠? 방아쇠를 당기면, 연결된 몇 장치들을 통해서 총알의 화약 부분을 폭발시킵니다. 그러면 총알의 앞부분에 있던 탄두라는 게 발사됩니다. 총의 원리에서 보면, 발사되어 파괴시키는 역할은 총알이 하는 건가요? 방아쇠가 하는 건가요? 총알이죠. 바꿔 생각해 보면, 총알이 없거나, 불발탄이라서 발사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방아쇠를 많이 당겨도 총알이 발사되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방아쇠 자체가 발사되고, 목표물을 맞혀 파괴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목적하는 바처럼, 총알을 발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아쇠라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목적한 바를 얻고 이루기 어렵습니다. 목표로 한 일을 얻기 위해서는, 목표한 일이 일어날 만한 계기와 상황을 만드는 게 먼저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모습이 등장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블레셋 민족에게 억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말씀과 계명대로 살면,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게 할 거라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가축을 잘 기르게 하고, 농사를 잘 짓게 해준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서 다른 신들을 함께 섬겼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만 행하면 지도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길로 돌아서도록 충고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때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는지, 종교와 정치 지도자였던 이들까지 철저히 타락했습니다.

 

정치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앞장서서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가장 무시하고 망가뜨린 인물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하는 엘리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엘리 본인은 크게 타락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두 아들이 행하는 죄악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 하고 놔두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삶의 방식들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까지 물들고, 이에서 벗어나 살려고 하는 이도 없고, 백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인물도 없어지자, 하나님께서는 이들로부터 모든 관심과 사랑을 거두시고 맙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죄를 깨닫지 못 하자, 블레셋 민족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복과 평안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만이 가득함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등장합니다. 사무엘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에 새로운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복과 평안은 우상을 통해서 오는 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통해서 온다는 바른 가르침이 전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가 된 사무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처럼 섬기거나, 하나님과 함께 섬겼던 모든 우상들을 철저히 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온 세상과 삶의 주인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사무엘은 온 백성을 미스바라는 지역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 동안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고 결단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블레셋이 다시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극심한 억압과 고통을 당해왔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이기도록 하심을 기억하고 반격해서 블레셋 민족을 철저히 물리칩니다. 이 전투를 통해 이전에 빼앗겼던 지역까지 되찾게 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긴 후 사무엘은 표지석을 하나 세우고, ‘에벤에셀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도움의 돌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도우셨음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벤에셀을 통해 사무엘이 의도한 것은 단지 전쟁에서 이기고, 억압을 벗어나는 기쁨을 얻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새로운 시대가 왔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의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고, 빼앗겼던 지역과 성읍들을 되찾았습니다. 고통과 슬픔의 시대에서 벗어나와 기쁨과 은혜가 가득한 시대를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하나님과 상관없는 민족으로 살았던 시대가 지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시대를 살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을 받아서, 영적 고아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둘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에벤에셀을 세워 기억하고 전하고자 했던 것들이고, 지금 우리에게 전해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살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입니까? 좋은 지도자가 나오기도 했고, 그 동안의 잘못을 깨달은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거짓 유혹에 속아서 함께 섬겼던 우상을 철저히 버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한 마디로 바꾼다면 미스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스바에 모이고, 그 동안의 모든 잘못된 것들에서 철저히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유일하신 참 신으로, 온 세상을 뜻하신 바대로 이끄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미스바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미스바라는 지역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 아닙니다. 미스바에 머물기만 하면 저절로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 동안 미스바라는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고, 또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과 생각의 변함이 없는 미스바는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 했습니다. 다른 지역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철저히 단절되고, 하나님을 향한 모습과 각오로 모이자, 이를 기점으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동안 겪어보지 못 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겪게 되었습니다. 수백 년 전 먼 조상들에게서나 나타나시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그 자리에 나타나시고 역사하시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아픔을 당합니까? 육신의 온갖 질병과 고통에 억눌려 살기도 합니다. 때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가족이나 이웃이나 다른 이들과의 문제가, 이리저리로 얽히고 설켜서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고 고쳐야 할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나름, 날마다 수고하고 애써서 뭔가를 이루고 세우려 노력하는데,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뭔가를 하나 이루었다 싶어서 잠깐 기뻐하다 보면, 어느새 다른 한 쪽이 더 크게 무너지기도 합니다. 평생 앞만 보고 쉴 새 없이 수고하고 애썼더니, 돌아보니 어느새 정말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모두 잃어버린 빈털터리로 남은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모든 모습은, 돈과 성공을 위해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이, 오히려 블레셋의 극심한 억압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사탄의 사탕발림에 속아 고통과 억압 속에서 살아왔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아픔과 후회만 안고 살다가 그렇게 죽으면 됩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에벤에셀이라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승리의 돌을 세울 수 있었던 까닭이, 먼저 미스바라는 자리에 모였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도 이제 삶의 미스바라는 자리로 모여야 합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이 남아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하고, 그런 것들이 있으면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위에 두었던 것이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돈이나 명예나 교만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두고 살고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영생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도우셨음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영적 에벤에셀을 놓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이 에벤에셀의 돌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이를 위해 먼저 필요한 미스바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은 크게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신앙인들 대부분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향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마음을 두고 시선을 고정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시고, 어떤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지에 대한 것들뿐입니다.

 

그러나 미스바로 나아가지 않으면서도, 크고 우람한 돌을 놓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함께하시겠습니까? 크고 화려한 돌을 놓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계산 자체가 우상이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시선을 돌려버리신 까닭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고,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크고 좋은 에벤에셀의 돌을 찾고 준비하는 것보다, 철저한 회개와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모두 찾아서, 우리 삶과 생각에서조차 철저히 벗어내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미스바에서 옛 습관과 잘못을 모두 버리고, 그 자리에 모임으로써 새로운 시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처럼, 우리의 죄와 고집과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이 직접 우리의 삶을 간섭하실 것입니다. 모든 고통과 억압의 시대를 끝나게 하시고, 복과 은혜의 시대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속에 가득한 죄와 교만과 어리석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철저히 하나님만 섬기고, 의지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함으로써, 자녀를 향한 넘치는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간섭 가운데, 모든 아픔을 어려움을 이겨내고, 날마다 에벤에셀이라는 도움과 기쁨의 돌을 놓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