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90630)하나님의 통치에 따라 사십시오(삼상 8장 1-9절)

청명하늘 2019. 6. 30. 14:08

하나님의 통치에 따라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81-9(419)

찬송: 286(주 예수님 내 맘에; 218), 438(내 영혼이 은총 입어; 495)

설교: 2019063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2000년대 초반에 한 교회에서 중고등부 담당 교육전도사로 사역했습니다. 그 교회는 주일예배에 출석하는 장년 교인 수만 500-600명 정도 되고, 또 교회 이름으로 신협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나 재정이 괜찮은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정확한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만, 담임목사님과 두 부목사님이 장년과 중고등부와 아동부까지 전체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저를 포함한 다른 두 전도사님이 처음으로 교회학교를 담당하는 전도사로 부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는 부서 담당 교역자를 처음 부른 것이라, 무슨 일을 어디까지 맡겨야 하는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부가 부장 체제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곳이라, 저로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절이 돼서 재밌게 사역했고, 좋은 기억들을 많이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제가 아는 교회들 중에서 좋은 점이 가장 많은 곳으로 기억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2년 사역 가운데, 납득되지도 않고, 가장 황당한 일로 기억되는 게 있습니다. 당시 중등부와 고등부가 나뉘어 있었고, 두 부서를 저 혼자 담당해야 했습니다. 두 부서가 같은 시간에 따로 예배를 드리고, 또 교사 회의를 진행하니, 어쩔 수 없이 한 주는 이 부서, 다른 주는 다른 부서 예배에 들어가서 설교합니다. 그리고 설교하지 않은 부서에 가서 교사 회의에 참석하는 형식이었습니다.

 

1년 중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들 중 하나는 수련회라고 할 수 있죠? 첫해 여름수련회를 어느 단체에서 개최한 곳으로 참석했는데, 학생들도 좋아하고, 또 효과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여름수련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할 때의 일입니다.

 

먼저 고등부 교사들과 회의해서, 이전 해에 갔던 곳으로 다시 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학생들도 좋아하고, 또 학생들의 신앙이 많이 성장한 것 같으니, 올해는 더 많은 학생이 참여할 것 같다며, 그렇게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중등부 교사회의에 들어가서, 고등부에서는 작년과 같은 곳으로 가기로 했으니, 중등부도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중등부 교사들의 이야기가, 고등부는 작년과 같은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며, 중등부도 고등부처럼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중등부교사 회의를 마치고, 고등부 교사들에게 가서, 중등부에서는 왜 그렇게 알고 있냐고 확인했더니, 제가 없을 때 고등부 교사들끼리 다시 회의했다는 겁니다. 이전 해에 갔던 곳으로 가기로 결정한 후에, 다른 곳에서 좋은 수련회가 개최된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나 봅니다. 한 해 전에 갔던 곳으로 가는 것도 좋지만, 다시 가기로 한 곳으로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결정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절차나 방법이 잘못되었음에도, 교사들이 무리수를 둬서라도 수련회 장소를 바꾼 까닭이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을 보내기로 한 수련회에서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잘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광고했습니다. 수련회를 주최하는 분이 서울대를 나올 만큼 공부를 잘 했는데, 공부를 잘 하는 비법을 알려줄 것처럼 광고했습니다. 교사들로서는 학생들을 그 수련회에 보내면, 신앙도 성장하고, 게다가 학생들에게 중요한 공부까지 잘 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큰 유혹이 될 수밖에 없었겠죠?

 

물론, 그럼에도 담당 교역자와는 아무런 상의나 동의 없이, 이미 결정된 것을 일방적으로 바꾼 것도, 또 알리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문제가 될 만큼 무리수를 둬서라도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진단이 잘못되니 엉뚱하고 이상한 처방이 나온 것입니다. 학생들의 학력이 안 좋은 까닭은 공부하는 비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대치보다 성적이 안 나오는 까닭은, 믿음이 안 좋아서가 아닙니다. 바라는 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학생이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종일 기도하고 성경만 읽으면, 좋은 성적이 저절로 나오겠습니까? 실제로 고등부 교사들의 바라는 곳으로 수련회를 갔지만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신앙에도 물론이고, 공부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원인을 바르게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원인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눈을 덮고 있는 욕심과 욕망이라는 안경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상관없는 것을 원인으로 계산하고,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종으로 살다가 탈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북쪽 사람들이 배를 타고 삼척항에 들어와서 논란이 되었죠? 하지만 북쪽에서의 삶이 가난하고 억압되었긴 하더라도, 종살이만큼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단 몇 사람이 탈출하는 것도 얼마나 어렵습니까? 목숨을 걸고 탈출한다고 하죠?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이집트에서 종으로 400년을 살다가 탈출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기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에, 오히려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거나, 다른 신과 더불어 믿거나, 형식으로만 섬기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온갖 고난을 겪게 됩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강대국의 도움을 받으면, 삶이 평탄해지고 부유해질 거라는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이런 세월이 300년 정도가 지속되다, 사무엘이라는 좋은 지도자가 세워졌습니다. 사무엘의 가르침을 통해, 잊고 살았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평안은 우상을 섬기거나, 강한 자들을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말씀에 따라 사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무엘이었지만, 사무엘은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을 전혀 부리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이용해 남의 것을 빼앗은 일도 없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백성들을 괴롭힌 적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모두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복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쏟았습니다.

 

문제는, 사무엘이 늙어 활동이 어려워지고, 그의 두 아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때 생겼습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은 아버지 사무엘과는 달랐습니다. 왕이 없던 때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 지도자인 재판관의 자리에 있었으니, 엄청난 권력이 생긴 것이죠? 이 권력을 자기의 욕심 채우는 데 이용했습니다.

 

재판에 따라 삶 전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판 과정에서는 절대 욕심과 부정이 틈타지 말아야 않아야 합니다. 신명기 117절에서도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재판이 사람들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치니, 하나님을 대신해 재판하는 것처럼 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신명기 1915절에서는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건에 따라 재판을 달리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두 아들은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무시하고, 돈을 받고 재판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주면, 죄가 있어도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죄가 없어도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최고지도자가 이 정도로 부패했다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를 경험한 백성의 대표자들이 사무엘을 찾아와서, 상황을 설명하고, 새로운 정치 제도를 들여오자고 요구합니다. 주위의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고, 왕이 나라를 다스리게 해달라고 합니다.

 

문제는 지금 장로들의 이 진단이 바르고, 요구가 정당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사 대신에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 부정과 부패가 없습니까? 사무엘의 두 아들이 재판을 부정하게 한 까닭이 왕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이 다스리면, 왕이 훨씬 더 심하게 억압할 것이고, 왕은 법 위에 서는지라 부정과 부패가 더 심해질 것입니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사사 제도 대신에 왕정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게 전혀 없습니다.

 

이들은 지금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인을 잘못 진단했고, 잘못된 결과물을 내놓았습니다. 재판관들이 재판을 부정하게 했으면, 제도를 바꿀 게 아니라, 부정한 재판관을 바꾸거나, 부정을 저지르지 못 하도록 감시하고, 또 바르게 재판하도록 요구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든 원인이 사사 제도 때문이라고, 왕만 세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 요구했습니다.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죠? 당시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사고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 했다고 해경을 해체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이 해경에 있었던 것 아니죠? 해결하지 못 하는 것도 모두 해경의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책임과 비판을 피하려 해경을 해체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표자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제도가 잘못된 게 아니고,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잘못했음에도, 제도 자체를 바꾸면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백성 대표자들의 잘못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문제의 원인을 잘못 판단해서 잘못된 결론을 만들어 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까닭은 바로 자신들의 욕망을 섞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상징하는 사사들이 있는 한, 자신들의 욕심대로 나라가 될 수 없기에, 엉뚱한 해답으로 내놓았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본문 7절에서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 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철저히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원죄의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살아 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높아지고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본성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욕심과 거짓의 안경을 온전히 없애지 않으면, 바르게 보고, 바른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처음 부임해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기도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해서 거침없이 말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면 하나님의 뜻이고 기도 응답입니다. 조금만 불리하거나 불편한 것이면, 기도해 보니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 한 예가, 옥외 십자가의 불이 안 들어왔을 때입니다. 몇 분은 그때 자리에 계셨고, 지금까지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광고 시간에 십자가는 교회를 상징하고, 십자가 한 쪽의 불이 안 들어오는 것은 교회가 영적으로 병들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되고 미신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인 말이 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 그런 문제가 생겼으니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불이 안 들어온 것은 전기나 전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원인이 분명함에도, 교회가 영적으로 병들고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목사로 있을 때는 교회가 문제없이 잘되었는데, 후임 목사가 자신의 말도 안 듣고, 높여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자기 이익이 곧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라 착각하기 쉽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사들의 부정을 마치 하나님의 지도와 재판이 잘못되었기 때문으로 오판하고,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복되고 잘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을 잘못 파악하는 것도 안 되고, 자기 욕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고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하심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 같으나, 이 길이 소망의 길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13,14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따라 사는 것은 처음이 힘들 뿐입니다. 세상의 방법과 인간의 계산대로 사는 것은, 처음은 넓고 평탄해서 쉽고 좋은 것 같으나, 그 끝은 결국 죽음과 멸망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길은 좁고 포장이 안 된 길처럼, 곳곳에 여러 걸림돌과 장애물이 가득한 것 같지만, 그 끝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과 사람들의 방식에 따라 사는 게 이기는 길이 아니고, 우리의 고집과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그 길을 묵묵히 따라 사는 게 이기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다스림을 피하려다가는 결국 더 큰 고난을 겪게 될 것이고, 그것도 아무런 열매나 의미 없는 고통 자체만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좁고 험한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따라 사는 길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아픔과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철저히 우리 자신의 욕심과 판단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하심이 생명의 길임을 인정하며 순종하며 살아감으로써, 삶의 모든 여정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와 생명의 열매를 받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