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통치가 사는 길입니다
성경: 사무엘상 8장 10-22절(구 419쪽)
찬송: 419장(주 날개 밑; 통 478), 406장(곤한 내 영혼; 통464)
설교: 20190707.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1,2년 전에 한 여성 방송인의 결혼이 많은 화제와 논란을 낳았습니다. 유명인들이 결혼할 때는 화제가 되긴 하지만, 논란까지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죠? 이 결혼 발표가 나자 논란까지 생긴 까닭은, 결혼한 상대 남성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혼하기로 한 남성에 대한 의혹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본인은 큰 기업 회장의 서자라고 했는데, 촌수를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남남에 가까웠습니다. 자신이 큰 회사를 운영한다고 했는데, 이름만 있고, 실제 어떤 회사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나이, 본명, 친부모에 대한 사실도 모두 속였습니다. 게다가 몇 차례의 전과가 있었습니다. 강도, 상해, 성폭행, 특수강도강간죄로 12년 징역을 살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죄질이 아주 나쁜 성범죄자들이 차야 하는 전자발찌를 차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혼할 상대가 이 정도의 전과와 거짓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인은 당연히 결혼하지 않아야 하고, 결혼하는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남남이라 하더라도 결혼을 말려야 하겠죠? 방송과 신문 등에서 이렇게 남자의 실체를 밝히자, 모든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그런 남자와 결혼한 사람의 앞날이 너무 쉽게 눈에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결혼한 여성의 반응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 과거를 다 알면서도 결혼했다고도 했고, 남편의 과거 행적들이 실제 사실이든 아니든, 두 사람의 사랑 앞에서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여러 매체나 지인들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본인들의 관계를 망가뜨리려 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말처럼, 사랑에 눈이 멀면, 그 사람의 단점과 본모습이 쉽게 눈에 안 들어오죠? 이 여성의 모습을 보면서, ‘상대의 모든 범죄와 거짓과 행적까지 모두 감싸 안고 살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랑이 있는가 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방송과 신문에서도 확인해 보도할 정도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최소한 확인해 봐야 하고,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모든 보도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채 1년이 안 되어, 여자 쪽이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결혼 전에 많은 사람들이 말렸는데, 그때는 몰랐나?”는 질문에 “몰랐다. 다들 왜 저러나 했다”고 답했다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저 여자는 몰랐던 게 아니고, 모르고 싶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거짓으로 속아 넘어가는 것도 어느 정도죠. 저 정도로 살아온 행적들이 모두 거짓이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마저 명백히 알고 말렸는데도, 당사자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이 여성이, 남편의 과거 행적과 결혼 후에 있을 삶의 궤적마저도 모두 무시하게 만든 게 뭘까요? 욕심입니다. 배우자가 가지고 있다고 하는 돈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욕망입니다. 그 사람과 결혼하면, 남자가 가지고 있는 돈과 명예를 나눠 갖게 될 거라는 욕심이 너무 커서, 모두가 알고, 모두가 보여주는 진실마저도 안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릴 만큼 욕심이 컸던 것입니다.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약속된 앞날의 풍요와 편안함과 누림이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로 온갖 증거와 사실들이 있음에도 믿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의 더 좋은 증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을 가져오고 확인시켜 주어도, 진실의 눈을 가리고, 욕망의 안경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이고, 원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사는 것보다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삶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습니다. 이때 순수했던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의 작전은, 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못 하도록 금지하신 열매를 아담과 하와가 먹은 까닭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와 가르침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 행동하고, 결정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살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고통과 억압을 주셨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님이 못 하도록 막으신 적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아무리 사랑과 권위를 받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이것 하나조차 따르지 못 합니다.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뱀이 유혹한 대로 결정합니다. 사탄의 결정을 따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지도와 보호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에 따라 살아도 좋은 것이란 하나 없습니다. 인간에게 좋은 것을 줄 만한 능력이 사탄에게는 없습니다. 온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지도하시지, 사탄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얻은 것들 중에 좋은 것이란 하나 없습니다. 본인들만 저주를 받은 게 아니라, 모든 인류와 온 세상에 저주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에게는 원죄가 있습니다. 인간이면 그 누구도 틀림없이 같은 성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습성 때문에, 아무리 크고 확실한 증거들을 가져오고 말해도, 변하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좋은 것들을 주신다고 말씀하시고 확인시켜 주셔도, 인간은 무조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려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 길은 고통과 죽음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길만 고집합니다. 사탄이 준다는 것들이 일단 마음에 들어오면, 봐야 할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들어야 할 것들을 듣는 게 아니라, 듣고 싶어 하는 것만 골라 듣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죄의 속성은 오늘 본문에서도 그대로 확인됩니다. 사무엘이라는 좋은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 민족이 살 만해졌습니다. 오랫동안 괴롭혔던 블레셋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사무엘의 나이가 많아졌을 때가 되었다는 겁니다. 정직과 믿음으로 민족을 다스렸던 사무엘의 나이가 많아져, 그의 두 아들이 사사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지만, 아버지 사무엘처럼 좋은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돈을 받고 부정하게 재판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이, 사사가 최고지도자라 할 수 있는데, 조건에 따라 판결을 달리할 만큼 부패했으니, 그 앞날이 캄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민족을 대표하는 몇 사람이 사무엘을 찾아갑니다. 먼저는 사무엘의 두 아들이 어떤 부정을 저질렀는지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지도층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일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 동안 왕이 없이 사사가 나라를 이끌다가 문제가 발생했으니, 이제는 왕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상황에 대한 진단도 잘못되었고, 당연히, 처방도 잘못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 앞 7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어떤 생각으로 왕을 요구하는지도 아시고, 그럼에도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간섭과 지도에서 벗어나고, 자기들 보기 좋은 대로 행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분명하게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사를 통해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방식 대신에, 왕이 나라를 다스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왕정제도가 되면 생기는 의무들 몇 가지들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을 불러 들여 왕의 일을 시키고, 군인으로 삼고, 젊은 여자는 왕궁에서 일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또 열심히 일해서 수확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왕에게 바쳐야 하고, 거기다 수확한 것의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집에서 부리는 종들, 또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부역을 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바쳐야 하고, 아들은 군인으로 만들어 전쟁에서 목숨 걸고 싸우게 하고, 딸은 왕이 명령한 부역을 담당하게 해야 합니다. 귀하고 좋은 것들을 훨씬 더 많이 희생하고 바쳐야 합니다. 아무리 봐도,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는 게 좋은 까닭이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설명을 들었으면, 사사를 통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왕이 다스리는 제도 중에 어느 것이 자신들에게 유익한지 확실해지지 않습니까? 머리를 많이 써야 할 만큼 복잡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이 두 제도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이 자신들에게 나쁠 게 하나 없고, 왕이 다스릴 것이 좋을 게 하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설명을 들은 지도자들의 반응은 19절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였습니다. 왕의 통치 아래에서 온갖 고통을 당하고, 많은 의무와 과중한 억압을 받는다 할지라도, 모두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의 어리석은 고집이 어떤지를 아시기에 결국 이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첫 번째 왕이 되고, 이후에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갈리기도 해서 많은 왕이 등장합니다만, 좋은 왕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왕들은 자신들의 누림을 위해 백성들을 억압하고, 백성의 것들을 빼앗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손해가 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요구였고 결정이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면 나름 똑똑한 사람들이었을 것임에도, 이처럼 어리석을 결정을 내린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왕이라는 세상의 권력자가 약속한 것들이 크고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왕이 함께하는 세상이 되면, 자기들이 받을 수 있는 밥그릇이 더 커 보였을 것입니다. 왕이 다스리는 세상이 되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때와는 달리,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 맘껏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왕이 다스리는 때가 되면, 자기들 밑에 두고 억압하고 빼앗을 다른 사람들이 생길 거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왕의 통치를 바랐던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통치와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거부하려 합니다. 이것을 인간의 자유의지라고도 하고, 성공이라고도 하고, 존엄이라고도 하지만, 모두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무시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든지, 무엇을 약속하든지 관심이 없고, 지금 내가 내 삶을 직접 만들어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약속하고, 그에 따라 사는 인간의 삶이 실패와 멸망이라고 성경에서 수없이 반복해 말씀하시지만, 원죄에 눈이 가려진 터라 여전히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을 따라 삽니다.
하지만 이 원죄의 속성을 벗고, 한 걸음 떨어져 보면, 하나님의 약속만큼 확실하고도 수익이 좋은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가진 모든 재산을 내놓으라 하시지 않습니다. 가족과 일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만 하라고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분이고,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음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이 죄와 고통이 없는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무리 봐도, 하나님을 나의 주인 삼고 살아가는 것만큼 이익 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피해, 하나님의 방식을 등지고 세상의 길을 따라 사는 것만큼 손해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인형이나 로봇처럼 살게 하지 않으시고, 각자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 누구에게가 아니라, 우리 각자 본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선택하면 복될 것이고, 나쁜 길을 선택하면 실패하고 결국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좋은 약속을 우리의 삶에서 누릴 수 있도록, 욕심과 거짓의 안대를 벗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속에 담긴 본모습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드러나고, 사탄의 것은 사탄의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구원과 영생과 더불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복까지 줄 수 있습니다. 사탄의 것은 아무리 좋은 것들로 포장해도, 결국 패망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약속이 복된 길이고, 영생의 길임을 바로 보고 따를 줄 알아야 하고, 세상이 주는 잠깐 동안의 성공과 편안함이 영원하지도 않고, 참된 복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책임까지 반드시 우리 본인이 져야 합니다. 욕망에 따라 겉에 발라진 것들로 선택하면 결국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욕망의 안대를 벗고, 진리의 눈으로 보고 선택하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길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약속과 길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세상의 주인이시고,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날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소망과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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