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신앙
성경: 사무엘상 21장 1-9절(구 445쪽)
찬송: 214장(나 주의 도움 받고자; 통349), 338장(내 주를 가까이; 통364)
설교: 2020030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1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클릭’이라는 제목의 미국 영화가 있습니다. ‘클릭’이라는 말은 ‘찰깍’하는 소리를 뜻하기도 하고, 단추를 누르는 행동이나 소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직장과 가정에서 바쁜 일상을 보냅니다. 워낙 바쁘고 정신없을 때 흔히 “몸이 두 개라면 좋겠다”는 말들을 하죠? 이 주인공도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리모컨 하나를 얻습니다. 리모컨이라는 게 TV나 전등, 에어컨 등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조종하는 것을 도구죠?
그런데 주인공이 얻은 리모컨으로, 시간을 뒤로 돌릴 수는 없지만, 시간을 멈추게 하거나, 빠르게 지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주인공은 자기 아내나 부모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심하게 할 때 이 리모컨으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합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면 보통 은 그냥 넘어가죠? 주인공은 이 리모컨을 이용해 시간을 멈추고, 사장의 뺨을 때려 복수하기도 합니다.
만약 시간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으면 어떻게 할까요? 기분 좋고, 행복할 때는 시간을 멈추거나, 아니면 느리게 가도록 만들겠죠? 반대로, 힘들고, 고통스럽고, 슬플 때는 시간을 빨리 지나게 하겠죠? 나쁜 경험과 힘든 시간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어서 참고 견디는 것이지, 할 수만 있으면, 빨리 보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바람과 마찬가지로, 주인공도 시간을 조종하며 리모컨을 계속 씁니다. 그렇게 열심히 리모컨을 이용하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늙었고, 병이 들어서 곧 죽음을 앞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상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배울 수 있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는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보다는, 힘들고, 슬프고, 싫은 일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기쁘고 좋은 일이 많고, 또 시간을 맘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시간을 자꾸 늘리고, 느리게 가도록 만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끝없이 길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싫고,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아, 이것들을 빨리 지나가도록 만들고 보니, 어느새 죽음을 앞둘 만큼 나이가 많아지고 연약해졌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는 어렵고, 힘들고, 슬픈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삶이란, 누가 어려움과 슬픔과 고통을 덜 당하느냐 하는 싸움이 아니라, 어차피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질고들을 어떻게 이겨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 땅에서 사는 한, 그 누구도 아픔과 어려움이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원하는 모든 것을 모두 갖고, 모두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고, 아무리 발달하고, 살기 편한 세상이 온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사는 한, 그 누구도 기쁨과 즐거움 하나 없이 사는 경우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누군가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지 몰라도, 또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작은 일들이 기쁨과 행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구약성경에서 만나를 거두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40년을 지냅니다. 이집트에서 나와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메추라기와 더불어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출 16장). 그러면서 한 사람당 2.2리터인 한 오멜씩 거두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욕심이 그대로 따를 리 없죠? 특히 광야라는 먹을 것이 풍성하지 못 한 곳에 있으니, 언제 굶을지 모른다는 염려에 열심히 만나를 거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 욕심에 따라 더 거두고자 했던 사람들의 방식이 더 그럴 듯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오멜로 측량해 보니 결국 한 오멜에 불과했습니다. 몸이 안 좋고, 만나를 거둘 사람이 없는 가정에서는 적게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염려하고 한탄했겠습니까? 그런데 이들도 역시 집에 돌아와 얼마 안 되는 만나를 오멜로 달아보니 가족 모두가 먹고 살 만한 양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여정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금수저로 태어나서, 온갖 좋은 것들을 잔뜩 가지고 누리며 삽니다. 어려움과 아픔을 모르고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고, 또 부모의 삶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삶을 하나님의 잣대로 측량해 보면, ‘인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 누린 사람도 한 인생이고, 가난의 고통을 안고, 못 먹고 사는 사람도 한 인생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만나를 더 많이 거두고, 그래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던 사람도 결국 한 오멜밖에 거두지 못 했습니다. 몸이 아프고, 활동할 사람이 없어 실망하고 좌절했던 이들도 역시 한 오멜을 거두었습니다. 정해진 것보다 더 거두려 했던 사람들은 욕심에 헛심을 쓴 것입니다. 덜 거둔 것 같아 염려했던 사람들은 괜한 염려에 헛심을 쓴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여정들은 비슷합니다. 많은 것 같아도, 한 인생이고, 못 가진 것 같아도 한 인생입니다.
신앙인들도 마차가지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소망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신앙인들이라고 해서, 아픔과 어려움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역시 이 땅에서 온갖 어려움과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다 하소연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억울한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아픔과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 고민하고 애써도 소망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시간들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잠깐의 행복과 기쁨을 누렸다 싶으면, 훨씬 큰 어려움이 뒤에 닥쳐오곤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이겨내야 합니까? 보통 이런 어려움과 사정을 겪을 때, 일부 신앙인들은 “기도하면 된다.” “성경을 읽어라. 하나님이 이길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등으로 답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답이 너무 동떨어진 답이 되곤 합니다. 믿음 안에서 신앙인들이 겪는 시험과 고난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난과 병마 자체를 고난으로 받아들입니다. 고난 자체가 견디기 힘든 시험거리입니다. 하지만 신앙인들에게는, 고난 자체보다,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에 대해 고민이 되고, 의구심을 품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이 함께 옵니다. ‘내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나님이 안 계시거나, 내게 무관심하시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함께합니다. 고난이 고난 자체로 끝나지 않고, 염려가 염려만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과 확신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무엇으로 메울 수 없기 때문에 흔들리고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고,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이 너무 흐릿해 보일 때, 그래서 우리 마음속 깊은 밑바탕으로부터 흔들리고, 어긋났을 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을 때, 그 누구의 말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을 때, 이 같은 때에 지난날에 내가 겪었던 하나님의 은혜와 기도의 응답을 되돌아봄으로써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다윗이 지난 날 자신이 체험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 군인들이 적 앞에서 겁을 먹고 숨어 있을 때 다윗이 등장하고, 엄청난 거인이자 장수였던 골리앗을 무찔렀습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 다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어린 소년에 불과하고, 전쟁의 경험이 전혀 없던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담대할 수 있었던 까닭도, 사울을 이어 왕이 될 거라는 약속과 기름 부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다윗은 오히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과 위협을 계속 겪게 됩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앞 3절의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다윗은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죽었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울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다윗은 사무엘 선지자가 있던 라마 나욧으로 피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세 차례나 부하들을 보내고, 결국 자신도 다윗을 찾아 죽이러 왔습니다. 사울은 잠시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예언을 하기도 했지만, 이미 악령에 붙잡혀 있어서, 이게 오래 가지 못 할 것을 다윗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제 놉이라는 곳을 향합니다.
이때 다윗의 형편은 아히멜렉의 눈에도 이상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요즘으로 보면 국방장관이라 할 수 있고, 게다가 왕의 사위입니다. 국가 서열로도 서너 번째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수행원 하나 없이 온 것도 이상합니다만, 얼마나 굶주렸는지, 가장 먼저 먹을 것을 찾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다윗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윗의 억울함과 고난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만, 다윗 자신은 얼마나 원통하고 고통스럽겠습니까? 다음 왕이 될 거라 약속되었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왕의 자리에 더 가까워져야 합니다. 지위는 점차 올라가고, 하는 일은 더 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지금 정반대로 되고 있습니다. 왕의 자리가 아니라, 무덤 자리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더 옅어지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어렵습니다.
이처럼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고, 지치고 낙담해 있던 다윗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새 힘을 얻는 도구가 있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보관하고 있던 칼인데, 이것의 본래 주인은 골리앗이고,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얻은 것이었습니다. 이 칼을 달라면서 다윗이 9절에서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 같은 것이 또 없다”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은 왜 이 칼을 이처럼 반기며 받았겠습니까? 당시는 쇠로 만든 칼은 왕과 요나단이 가진 것이 전부였을 만큼 귀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그 무엇보다도 이 칼 속에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 가셨던 증거와 체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골리앗은 그 누구도 맞서 싸울 수 없을 만큼 거인이고, 어려서부터 전쟁터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가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겁을 먹고, 싸우기를 포기하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만큼 크고 강했습니다. 하물며 이제 소년에 불과한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윗이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눈에 보이는 적의 강함과 거대함보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믿음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랬더니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어났습니다. 크고 강한 자가 싸움에서 이기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작고 약한 자가 싸움에서 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작은 소년에 불과한 다윗과 함께하셨고, 다윗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본문에서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받은 칼은 바로 이를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계속된 고난 때문에 점차 희미해져서, 쉽게 확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볼 수 있게 하고, 확인시켜 주는 도구입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죽음 가까이 오가느라,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말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을 때, 그 약속을 다시 마음속 깊이 되새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난 가운데 있음에도, 여전히 한 나라의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진행되고 있음을 기억하고 확인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골리앗을 무찌르고 빼앗았던 칼은 단순히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무기를 넘어,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과 함께하시고, 지키시고, 왕으로 세우신다는 증거입니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던 골리앗을 작고 약한 다윗이 이기도록 하신 하나님이라면, 지금 까닭 모를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과 보호하심 가운데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다윗은 이 칼을 통해, 자신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함께하시고, 자신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그 약속을 책임지실 것임을 다시 확인해서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칼과 같은 체험이 필요합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내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것일 수도 있고, 고난과 아픔을 이겨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체험은 단 한 번의 의미와 가치가 아니라, 우리의 앞날에 큰 힘과 확신을 심어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고, 구원과 영생을 향한 과정들이 흔들거릴 때마다 이 체험이 우리로 하여금 곁길로 가지 않게 만들 것이고,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고 지키심을 확인시켜 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를 복과 구원으로 이끄실 것을 약속하셨음에도, 삶의 여러 질고와 가난으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내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과 응답을 다시 확인함으로써, 믿음과 소망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날마다 풍성히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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