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길대로만 사십시오
성경: 사무엘상 29장 1-11절(구 458쪽)
찬송: 266장(주의 피로 이룬 샘물; 통200), 406장(곤한 내 영혼; 통464)
설교: 20200719.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제가 92년에 입대했는데, 6주간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란 군인이 소속되어 있는 부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병의 경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곳에서 제대할 때까지 생활하게 됩니다. 자대에 가면, 다시 소대에 배치됩니다.
좀 기다리니, 누군가가 저를 불러서 따라가는데, 갑자기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기독교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갑자기 “환자네?”라고 말해요.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소대로 들어가는데, 저를 인솔한 사람이 다시 “환자다. 환자 왔다” 그럽니다. 그렇게 짐 정리하며 기다리니, 같은 소대원들이 들어오면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그러다가 어디 대학을 다녔냐고 물어서, 신학대학교를 다녔다고 하자, “중환자가 왔다”며 조롱했습니다. 정확한 이유와 계기를 알 순 없지만, 군대 문화에 쉽게 동조되지 않는 것이, 저들의 눈에는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가진 환자로 보였을 터입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좀 잦아들지만, 갑자기 많아질 때가 있습니다. 회식 때입니다. 회식을 한두 달에 한 번 하는데, 이때 술을 마시죠? 이상하리만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안 마시는 사람을 마시게 하려 애쓰죠? 그래도 안 마시면, 싫어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다시 ‘환자’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처음엔 그냥 버티며 흘려보냈는데, 별것 아닌 일로 조롱과 무시를 받는 게 싫었습니다. 고민하고 갈등하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또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판단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을 안 마시던 제가 자기들의 뜻대로 마시기 시작하자,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좋아했습니다.
그 후부터는 회식 때마다 주저하거나 사양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렇다고 인사불성이 되거나, 주정을 부릴 만큼 마신 건 아닙니다. 반합 뚜껑으로 몇 번 마실 뿐이었습니다. 작은 막걸리 한 병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어울리니 제 앞에서 더 이상 환자니, 중환자니 하는 말이 안 나왔습니다. 그런 소리 듣기 싫어 술을 마셨으니, 저 나름의 방법과 결단이 꽤 도움이 되었을 터입니다.
그렇게 회식이 있을 때마다 제가 술을 마시게 되자 점차 저들의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뭐라 이제는 제가 안 마신다 뭐라 하는 게 아니고, 반대로 술 마신다고 비난합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자들은 금주하는 경우가 많고, 게다가 나중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술을 자연스럽게 마시면 되느냐는 뜻이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자, 자신들과 다르게 행동하며 어울리지 않는다고 무시했습니다만, 술을 마시자 이제는 자신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어울린다고 불만을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술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술을 자주 마시지도 않았고, 즐기지도 않았습니다. 2년이 넘는 군생활 중에 술 한 잔 안 해도 술 생각 안 났을 터입니다. 그럼에도 몇 잔씩이라도 술을 마신 까닭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들과 비슷해지고, 어울려서, 싫은 소리 안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던 대로, 몇 잔의 술을 마시고, 어울리자, 처음만 잠깐 좋아하고, 칭찬해 주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는 신앙인답지 못 하다고 비난했습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인들이 어떻게 하든, 사람들은 불평하고,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과 달리 살면, 자신들과 어울리지 못 한다고 불만을 갖습니다. 자신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신앙인이 왜 자신들과 다를 바 없이 사냐고 욕할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혹시 그렇게 된다는 것 자체가 언제나 좋은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길은,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게 아니고, 오히려 신앙인답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철저히 살아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과 닮고, 비슷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잠깐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만, 참된 칭찬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정은 철저히 믿음 안에서 사는 길뿐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이 처한 상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사울을 두 번이나 살려두는 은혜와 자비를 베풀었지만, 사울은 여전히 다윗을 죽이려 쫓아다닙니다. 결국 다윗은 최후의 수단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적국이었던 블레셋의 가드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16개월을 지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장차 왕이 될 곳이라 약속받은 곳 역시 이스라엘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전에도 가드로 갔다가 비참한 실패를 경험한 바 있습니다. 쳐다보기 싫을 터였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겼기에, 이스라엘을 떠나 향했던 것입니다.
가드에서 16개월을 지내면서 몇 가지 어려움은 있었지만, 꽤 괜찮게 지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울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안에 있을 때는, 한 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 할 정도로, 조바심을 안고 살아야 했지만, 이제는 사울에게서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간혹 가드 왕의 환심을 사고,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철저히 숨겨야 하는 어려움은 물론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을 공격할 때마다 그곳 사람을 하나 남기지 않을 만큼 철저했습니다. 다른 지역을 공격했으면서도, 고국인 이스라엘 지역을 공격했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이것을 감추느라 역시 조심하고 긴장겠지만, 사울에게 쫓기던 때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평탄하다 할 수 있습니다.
또 가드지역에서 다윗은 꽤 인정을 받았습니다. 처음 가드에 갔을 때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고 경계해서 미친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습니다만, 이번엔 전혀 달랐습니다. 다윗이 많은 군사들을 데리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한 지역을 다윗에게 맡길 정도라면 의미가 다르죠? 단지 함께 자기 땅에서 살게 하는 것을 넘어, 아예 일부 땅을 맡길 정도였으니, 겉으로 보기에는, 다윗을 믿고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기간이 오래지 못 합니다. 1년 4개월만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다윗으로서는 자기 고국과 싸우는 전쟁에서 블레셋 편에 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편에 서서 싸우면, 다윗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적이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편에 싸우려 하면, 이미 적국에 있으니 빠져 나오기도 전에 몰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윗은 블레셋 군사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나섭니다. 그러자 그 동안 감춰져 있던 다윗에 대한 블레셋 사람들의 본심이 드러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인데, 자기들과 같은 편으로 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같이 싸우는 듯하다가, 갑자기 배신하면 블레셋으로서는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아예 다윗을 전쟁터에서 멀리 보내버리라 합니다.
다윗이 가드로 두 번째 망명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사울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가 가장 큽니다. 이것을 바꿔 보면, 이제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먹고 살면서, 그들과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이 행동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계획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자, 다윗에 대한 저들의 생각이 어떠했는지 확인됩니다. 다윗을 여전히 믿지 못 하고, 미워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해서,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 고국 사람들과 싸우지 않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블레셋 땅으로 피하고, 어울려 살며, 그들처럼 행동하면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할 거라는 다윗의 계산과 판단은 너무나 잘못되었습니다. 특히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싫어하고, 끝까지 믿지 못 한 까닭은, 자기 고국을 떠났기 때문이었을 터입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한 번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떠난 사람이라면, 블레셋은 자기 민족도 아니라, 훨씬 더 쉽게 떠나고, 배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했지만, 예상치 못 한 큰 위기를 겪는 이 과정에서 무엇을 보고 배워야 하겠습니까?
먼저는, 교회와 신앙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괄시 받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이 신앙인들을 당연히 미워하니, 미움 받는다고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비난과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 세상으로부터 욕먹을 만한 일을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간혹 교회와 교인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들이 있죠? 이럴 때는, 그 누구보다도 더 심각하게, 또 민감하게 뉘우쳐야 합니다. 아예 비난과 욕을 먹을 일을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 빌미 자체를 제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욕 먹을 만한 일이 아님에도, 그것 자체만으로도 세상에서 욕하는 경우들이 많죠?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들 많죠? 하나님을 믿는다며 조롱하는 이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교회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고 뭐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을 비롯한 몇 분이 15년 넘게 어려운 분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무료로 해드렸는데, 미안해하며 못 오시는 경우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500원을 받고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좋은 일이 분명하죠?
그런데 이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겁니다. 식사하는 분들이 줄을 서면, 주위에서 영업하는 가게에 방해가 된다고 불평하고, 그렇게 식사를 대접하면, 다른 식당들의 매출이 떨어진다며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또 자신들은 온갖 오물을 하수구에 버리면서도, 식당을 찾은 분들이 버린 담배꽁초로 행정기관에 민원을 넣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와 신앙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떤지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할 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싸우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속 다윗을 통해, 신앙인들이 살아가야 하는 방향과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인답게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씀 안에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는 분명하게 다른 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으로 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손해와 억울함이 분명 있죠?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직분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할 말 안 하고, 참고 지나쳐야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자신들은 온갖 나쁜 일들을 저지르면서도, 신앙인들이 작은 실수와 잘못만 저지르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비난의 화살을 쏘아댑니다.
이를 견디지 못 해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신앙생활을 하긴 하지만,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무시를 당하지 않고, 손해를 입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동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떠나 블레셋으로 향한 일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똑똑하다고 인정받을 것 같지만,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은 비난과 조롱을 겪게 됩니다. 그 동안의 신앙마저 철저히 무시 받게 됩니다. 그 동안 헛것에 시간과 힘을 썼다며, 어리석다 조롱만 받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굳건하게 믿음의 자리를 지키며, 그 어떤 것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동안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던 사람들도, 이제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며 따르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 한 까닭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같은 땅에서, 먹고 마시며 생활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처럼 살면, 안위를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 때문에 다윗은 더 큰 위기를 겪습니다. 차라리 이스라엘 땅에서 머물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적국인 블레셋 사람들도 모두 다윗을 두려워하고 인정했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거인 골리앗을 죽인 영웅으로 인정하며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 과정에서 겪는 고난을 견디지 못 하고, 블레셋 편으로 갔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더 큰 무시와 조롱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세상과 어떤 관계에서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믿음으로 담대하게 걷고, 묵묵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의 선택, 이후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고, 오직 믿음과 말씀 안에서 행하며 살아감으로써, 자녀를 지키시고, 복을 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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