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726)믿음으로 이기는 사람(삼상 30장 1-15절)

청명하늘 2020. 7. 26. 13:56

믿음으로 이기는 사람

 

성경: 사무엘상 301-15(459)

찬송: 380(나의 생명 되신 주; 424), 540(주의 음성을; 219)

설교: 2020072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작년(2019) 4월에 강원도에 큰 불이 나서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7개월 후에 그곳을 다녀왔는데, 그때까지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만한 흔적들이 곳곳에 가득했습니다.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서, 가장 멀리서는 해남에서 소방차가 가는 등, 전국에서 872대의 소방차가 산불 진화에 참여할 정도로 산불이 컸고, 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당시 산불과 관련해, 국회에서의 일이 논란과 공분을 일으켰습니다.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치면, 전체를 총괄 지시하는 자리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라 합니다. 산불이 점차 심각해질 때, 이 책임자가 국회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산불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하고, 이 책임자를 보내서, 산불 피해를 막자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야당의 원내대표가 이를 막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였습니다. 하나는, 당시 산불이 그 정도로 심각한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변명은 전혀 타당해 보이지 못 하죠? 산불 상황이 어떤지 인터넷과 방송 등에서 속보로 끊임없이 내보냈습니다. 혹시 이를 확인하지 못 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보좌관들마저 보고하지 않았다면 더 큰 문제고 잘못입니다.

 

두 번째는, 청와대가 국회에 업무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 이를 먼저 마치게 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하는 일을 감시하고, 확인하는 책임과 권력이 국회에 있죠? 국회에서 정부의 일을 듣기 위해 정부 관계자를 불러 듣는 업무 자체를 잘못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관점에서 보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상황에 맞지 않는 판단이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두를 필요 없는 평시라면, 국가안보실장이 국회에 최선을 다해 보고해야 하고, 질의에 답해야 합니다. 보고와 질의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남아야 합니다.

 

하지만 당시 산불은 평시라 부를 수 없을 만큼 거대했고,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산불이 점차 확대되어, 주택가까지 가까이 갔고, 많은 시민이 몰려 사는 도심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막지 못 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총괄 책임자가 꼭 필요할 때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만사를 제쳐두고, 산불을 진화할 수 있도록 보내야 하겠죠? 가장 시급한 문제로 여길 만한 판단이 서야 합니다.

 

같은 상황에서, 책임자를 보내지 않으려 한 쪽을 과거 지향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의 업무를 보고한다는 게, 주로 그 동안 해온 사업과 행정들의 내용을 묻고 답하는 일입니다. 지난 시간에 무엇을 했고, 어떻게 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잘못을 고쳐야 더 나은 앞날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이를 지나치면, 과거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되고, 결국 실패하고 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학자이자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보고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잠시 멈추고, 책임자를 한 시라도 빨리 보내 산불을 진화해야 한다고 하는 입장은 미래 지향적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보내야 산불 상황이 바뀐다는 계산입니다. 지난 시간들의 일과 업적에 매달리기보다는, 나중을 위해 지금을 이롭게 이용하자는 판단입니다. 시간은 흘러 이미 과거가 되었는데, 거기에 매달려 집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위 환경과 생각도 걷잡을 수 없이 빨리 흐르는데, 생각과 행동이 더디고 늦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좀 더 나은 사람, 발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를 잘 조화시켜야 합니다. 지나간 시간에서 앞날을 위한 교훈을 배워야 하고, 그러면서도 앞날을 향한 시선도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매달리는냐, 아니면 앞날에 중심을 두느냐보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과 형편입니다. 무작정 이미 일어난 일에 매달려서는 안 되고, 지금의 형편이 어떠한지를 함께 판단해야 합니다. 무작정 앞날을 준비하기보다는 지금의 처지와 형편까지 계산에 넣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 하면, 과거에서 더 나아지지 못 합니다. 허망한 꿈만 꾸다 끝나는 허무맹랑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같은 상황과 처지에 놓였지만,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입니다.

 

다윗이 이웃 민족이자,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으로 망명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지역을 받아, 16개월을 지내며 안정을 찾아갈 즈음,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이고, 이스라엘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 왕이 될 거라 약속하신 땅 역시 이스라엘이지만, 이제는 엄연히 블레셋 안에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블레셋 편에서 싸워야 합니다. 다윗도 이스라엘 왕이 되는 희망을 포기하고, 블레셋 군인으로 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계산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제 완전한 블레셋 사람이 되었다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여전히 온전한 자기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윗 속에 이스라엘의 흔적들이 가득하다고 판단합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군인이고, 또 그와 함께하는 600명의 군사들이 있었음에도, 싸움이 한참일 때 다윗이 배신할까 두려워 시글락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 다윗의 발걸음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 고국을 떠나 적진 한복판에 머물며 살기로 결심하는 게 어디 쉽고 간단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는 자긍심,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소망과 기대마저 모두 버리고 블레셋에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모든 기대와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지치고 고민으로 가득한 발걸음으로 3일 걸려 본거지 시글락으로 돌아왔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시글락에 머물러 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다윗이 전쟁터까지 나가 있는 동안에, 그 틈을 이용해 아말렉이라는 민족이 침략했습니다.

 

결의를 다지고, 승전을 꿈꾸며 나섰던 싸움에서, 아무것도 이루지도 못 하고 돌아온 것도 힘겨운데, 게다가 가족과 가축과 재산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그 동안 이루었던 모든 것이 타서 없어졌습니다. 이를 보고 참고 진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다윗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노와 절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더 이상 울 수 없을 정도로 목 놓아 울었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리자, 심지어는 자신들의 대장인 다윗을 향해 돌을 던져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절망과 슬픔이 너무 커서,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다윗은 이들과는 달리 행동합니다. 본문 6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는 말씀처럼,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묻습니다. 묻고 하나님의 응답이 있자, 다윗은 주저하지 않고, 모든 군사들을 데리고 아말렉 군대가 간 방향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보면, 다윗과 그 부하들이, 똑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눈으로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블레셋 군대들이 모인 자리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자신들의 본거지인 시글락까지 헛걸음질한 것 역시 똑같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아말렉 군사들에 의해 초토화되어 있는 본거지를 보는 일까지 다윗이나 부하들이나 다를 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부하들과 다윗은 정반대로 행동하며 대처하고 있습니다. 재산과 가족까지 빼앗긴 현장을 본 다윗의 부하들은 앉아 좌절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대장으로 섬기고 있는 다윗에게 분노합니다.

 

시글락에 있던 본거지를 공격하고, 가축과 가족들을 데려간 사람은 다윗이 아니죠? 게다가 다윗이 이들을 부하로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각자 형편에 따라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사무엘상 22장을 보면, 어떤 사람은 빚을 감당하지 못 해서 도망해서 왔고, 사울의 억압을 견디기 힘들어 오기도 했고, 원통한 일을 당하고 도망해 다윗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둘 모인 군사만 600명이었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원해서 왔고, 자신들이 원해서 다윗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족과 재산을 모두 빼앗기자 주저앉아 울더니, 이에 그치지 않고 다윗을 향해 돌을 던지려 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전혀 옳지 않기도 했지만, 또한 쓸데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주저앉아 운다고 해서 빼앗긴 재산과 가축을 찾을 수 있습니까? 다윗을 죽인다고 포로로 잡혀간 가족이 돌아옵니까? 그럼에도 다윗의 부하들은 이미 일어난 일에 집착하고 절망하느라,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들만 합니다.

 

이런 중에도, 다윗만은 전혀 다릅니다. 이때 가장 힘들고 마음 아픈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해, 빈손으로 돌아오는 오는 길에, 가장 힘든 이가 누구겠습니까? 부하들이 겪는 어려움의 크기에 비하면, 600명의 부하들을 책임져야 하는 다윗의 아픔과 어려움은 그의 몇 배로 클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게다가 본문 5절에서 보면, 다윗의 두 아내도 모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부하들이 당하는 아픔과 어려움을 모두 똑같이 겪었고, 거기다 지도자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더 많은 책임감과 아픔이 다윗을 더 힘들게 만들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좌절감, 절망감, 분노 모두 그 누구보다도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마치 이런 아픔과 고난을 겪지 않는 사람처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6절의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는 말씀처럼, 절박한 때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에, 부하들처럼 절망하지 않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에 쓸데없이 후회하고 절망하지 않고, 대책을 마련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다윗과 부하들이 겪는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 애썼음에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기도 합니다. 뭔가 이루었다 싶은데, 돌아보니 좌절감과 절망감만 덩그러니 남을 때가 있습니다. 부와 재물과 성공을 향해 애쓰다 문득 돌아선 자리에 물거품처럼 무너진 삶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버리듯 일하고 나니, 오히려 이 때문에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윗의 부하들처럼,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로 채우겠습니까? 뒤돌아보고 후회하면, 문제가 해결됩니까?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증오로 분풀이하겠습니까? 고난과 절망을 대할 때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후회와 원망과 분풀이하는 길을 선택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어려움과 아픔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기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다윗처럼 선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부하들처럼 현실의 장벽과 어려움에 억눌려, 포기하고 주저앉는 사람이 아니라, 다윗처럼 해결하는 방향, 좋아지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의 이유를 밝히고, 지난날들을 살피고 배우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이 크고 중요할수록, 다급할수록 다윗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을 찾고, 해낼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과 용기를 얻는 일입니다. 다급한 때일수록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가진 원죄 때문에, 다급하고 어려울수록 자꾸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습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니, 어려움과 고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과 소망이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시선을 고정해 봤자 해결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해결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다윗과 600명의 군사들은 같은 모습을 보고, 같은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둘은 전혀 달리 판단하고, 달리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우리는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00명의 탄식과 원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해결해 주신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부하들을 보시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 게 아닙니다. 다윗을 향해 원망의 돌을 던지려 했던 이들의 분노 때문에,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 다윗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믿음과 지혜로 결단하고 준비하고 애쓴 다윗 한 사람 때문에,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다윗의 부하들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그럼에도 단 한 사람 다윗처럼 살아야 할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더 큰 어려움과 고난 중에 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 받은 다윗처럼,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모든 문이 닫히고, 좌절의 늪에 빠질 때마다 더욱 하나님을 붙잡음으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 받고, 날마다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