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0823)바른 방법과 방향으로(삼하 1장 1-16절)

청명하늘 2020. 8. 23. 14:00

바른 방법과 방향으로

 

성경: 사무엘하 11-16(463)

찬송: 292(주 없이 살 수 없네; 415), 285(주의 말씀 받은; 209)

설교: 2020082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TV 광고는 보통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여러 가지를 담곤 하죠? 제품이 가진 장점과 특징은 물론이고, 그 외의 재미와 감동을 주기도 하고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간혹 그 광고가 선전하는 제품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거기에 사용된 음악이나 풍경이나 혹은 재밌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곤 합니다.

 

제게는 이에 해당하는 광고 하나가 있습니다. 다만, 저는 거기에 나온 배우와 장면들이 비교적 잘 그려지는데, 그 내용으로 찾아봐도 결국 찾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이 모두 맞다고 할 수 없고, 과장되거나 혹은 빠진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전혀 없는 내용을 상상으로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뒤에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꽤 나이 든 여성이 끌고 길을 안내하며 엄청 힘들게 산을 오릅니다. 젊은 사람들도 산에 오르는 게 어려운데, 연세 많은 여성이 오르는 것은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죠? 그렇게 거의 절벽에 가까운 산에 오르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죽을힘을 다해 겨우 겨우 정상에 올라서 한 마디 합니다. “여기가 아닌가벼...”

 

다음 광고는 여기가 아닌가벼...”라는 내용에서 이어지는데, 그렇게 힘들게 올랐던 곳에서 내려와, 다른 봉우리를 향해 갑니다. 높고 험한 곳에 오른 만큼, 다시 내려와 다른 봉우리로 올라가는 게 힘들겠죠? 또 이미 많이 지쳐서 다른 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처음보다 훨씬 힘겹습니다. 그래도 아주 힘들게 새로운 정상에 도착하면서 다시 한 마디 합니다. “아까 거기가 맞는가벼...”

 

이 광고는 물론 본인들의 제품을 선전하는 목적이긴 하지만, “여기가 아닌가벼...”아까 거기가 맞는가벼...”라는 말이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까닭은, 목표와 향하는 목적지가 잘못되면, 그 동안의 수고와 노력과 희생이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재밌게 그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는 까닭은, 성과와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에 밖에서 일하는 게 너무 힘드시죠? 그럼에도 참고 견디며 일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해야 수고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일하시는 까닭 역시 그래야 수고의 대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고하고 애쓴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열매를 얻는 건 아닙니다. 방향과 목적에 맞아야 합니다. 고추에 탄저병이 왔으면, 탄저병을 해결하는 약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에 들이는 비용과 수고의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탄저병이 왔는데, 거기다 풀약을 하거나, 벌레약을 매일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예 약을 쏟아 부어도 아무런 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에 들인 모든 게 헛되게 됩니다. 그래서 삶에서 수고와 노력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향과 목표가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죽을힘을 다하였으나, 방향과 목표가 잘못 설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상을 받지 못 한 것은 물론, 오히려 이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사무엘하서는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인 사울의 죽음 소식을 다윗이 전해 들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사울은 왕의 자리 하나만을 위해 인간적인 신의를 버렸고,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마저 뒤로했습니다. 사울로서는 그것이 자기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길로 여겼기 때문이었을 터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40년이라는 긴 시간 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상당한 시간을 귀신에 휘둘렸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애착을 넘어 집착했던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던 세 아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때 다윗은 이스라엘의 적국에 망명해 있었고, 결국 그 전쟁에 참가하지 못 하고,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본거지인 시글락을 공격해 모든 것을 빼앗아간 아말렉을 공격해 되찾아 오게 됩니다. 그리고 사흘의 시간이 지난 때 젊은이 하나가 급히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이 청년은,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이 전쟁터에서 세 아들과 함께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아느냐고 묻습니다. 이 군인은 사울 왕이 큰 부상을 입고 죽을 때 곁에 있었다면서, 사울의 요청을 받아 사울을 죽이고, 왕관과 팔찌를 그 증거품으로 가져왔다며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은 분노하면서, 이 청년을 죽이도록 명령합니다. 칭찬과 넘치는 보상을 기대하고 왔음에도, 다윗이 이 청년을 죽이라 명령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거짓으로 자기 공로를 포장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마지막 모습은, 사무엘상 마지막장인 31장에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블레셋 군인이 쏜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었습니다. 웬만한 전쟁이라면, 왕이 적의 화살을 맞을 만큼 가까이 가지 않겠죠? 또 혹시 가까이 갔다 하더라도, 부상을 입으면 빨리 옮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왕이 적 가까이 가야 할 만큼 불리하고 지는 싸움이었고, 왕이 화살을 맞고도 옮길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중상을 입은 사울은 더 이상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없고, 다른 곳으로 피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자, 자기의 무기를 들고 따르는 부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합니다. 살아 있을 때 적군에게 붙잡히면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여겼습니다. 다른 민족을 불결하다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것도 가장 높은 왕으로서, 불결한 민족의 손에 죽는 치욕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무기를 든 부하는 너무 겁이 났습니다. 감히 왕을 죽이지 못 했습니다. 결국 사울은 자기 칼을 뽑아 자결했습니다. 그리고 무기 당번병도 역시 자결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젊은이는 전혀 달리 설명합니다. 전쟁터에 갔더니 사울 왕이 중상을 입어 겨우 버티고 있었고, 적군이 뒤를 쫓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죽여 달라 요청했고, 살 가능성도 없고, 피할 길도 없고, 게다가 적이 탄 병거와 기병이 달려오고 있어서 사울 왕을 자신의 손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이처럼 거짓말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공로를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해 듣고 다윗에게 알리는 것, 사울 왕이 죽는 과정을 보고 다윗에게 알리는 것, 사울 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고 다윗에게 알리는 것 중에, 어느 경우가 가장 확실하고 큰 공로로 인정받을까요? 이 군인은, 자기 손으로 확실히 죽였다는 말이 가장 큰 공로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계산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계산과 계획 속에 한 가지가 빠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자긍심과 선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것입니다. 사무엘상 314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내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를 보면,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울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한 게 아니고, 하나님을 알지 못 하는 사람의 손에 조롱당하며, 죽임 당함을 큰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왕관과 팔찌를 가지고 온 군인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아말렉 출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는 거나, 아말렉 사람의 손에 죽는 거나 다를 바 전혀 없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는 수치를 당하기 전에 차라리 죽기 바라던 사울이, 아말렉 사람의 손에 마지막을 맡기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아말렉 청년은, 더 큰 상을 받고, 또 인정을 받고 싶어, 나름의 계산으로 거짓을 꾸며 다윗에게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급이 주어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분노와 죽음으로 이끄는 길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죽게 된 까닭은, 단순히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죽인 것만이 아닙니다. 자기 공로와 업적을 거짓으로 만들고, 자기 목적을 위해, 하나님 백성의 아픔과 고난과 죽음마저 조롱거리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거짓과 과장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 욕심을 위해 악용하는 죄를 절대 가벼이 여기시지 않음을 배워야 합니다.

 

이단과 사이비들, 혹은 거짓 목회자들의 특징이 이것입니다. 욕심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이용합니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과장하고, 거짓으로 만들어 냅니다.

 

올해 어려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초부터 전염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장마와 홍수로 인한 재난도 많습니다. 이 과정들을 보면서, ‘종말을 앞둔 재앙이라며 선동하는 이단 사이비들이 생기겠구나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거의 틀림없이, 자기들의 능력과 신앙에 대한 과장과 거짓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느니, 예언의 능력이 있다느니, 환상을 보았다느니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자기 업적을 위해 거짓으로 꾸민 아말렉 청년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이 임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는 이런 방향으로 삶을 세워가서는 안 됩니다. 이런 방법으로 더 많이 갖고, 이루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도 속지 않은 작전에 하나님께서 속아 넘어가시겠습니까? 다윗마저도 용서하지 않고 죽음을 명령했다면, 하나님께서는 훨씬 더 엄중하게 판결하심을 기억하며, 진리와 사실을 기반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군인이 죽임을 당한 또 다른 까닭은, 목표와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손으로 사울 왕을 죽였다 하면, 다윗에게 칭찬을 받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다윗은 그 동안 죄가 없음에도,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았고, 적국 블레셋으로 망명할 만큼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다윗만큼 사울을 미워할 만한 이유가 많은 사람도 없겠죠? 바꿔 보면, 사울의 죽음 소식을 다윗에게 전하며, 엄청난 보상과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이 젊은 군인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는 사울 왕의 왕관과 팔찌를 가져왔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돈을 받기 위했다면, 왕관과 팔찌를 가져올 필요 없이 그냥 다른 사람에게 팔면 됩니다. 왕관과 팔찌는 상당한 가치로 팔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왕관과 팔찌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직선거리로만 해도 15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습니다. 전쟁 중이라 목숨을 건 여정이었습니다. 2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는 말씀처럼, 험난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에게는 칭찬과 보상과 상급이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다윗의 분노를 일으켰고, 결국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선택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자신을 기준으로 삼고 삽니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자신에게 못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에게 달려온 기준도 이와 같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기준은 자신에게 잘하나, 못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과 방향이었습니다.

 

사울이 자신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로 미워하고, 죽이려 협박하며 쫓아다녔으나, 그런 사울을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인정했습니다. 협박과 고난의 화살이 오직 자신만을 향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만드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세우신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울은 죽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인정하며 기다려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의 죽음을 확인하고, 왕관과 팔찌를 가져온 아말렉 청년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힘들게 다윗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전쟁에서 벗어나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왕관과 팔찌를 팔아서도, 자기 삶을 부유하게 만들어 갈 수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아니고, 자기 본향인 아말렉으로 돌아가면, 적국인 이스라엘의 왕을 죽인 영웅으로 인정하며 후하게 대접했을 것입니다.

 

이 청년이 다윗을 찾아온 까닭은, 잘되고 성공하기 위해서였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복되고 성공하기 위한 방법과 방향을 전혀 잘못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공하고 칭찬과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복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죠? 하나님만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받고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복 주실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실 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약속하신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노력하고 애쓰며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방향과 방법이 잘못되면, 오히려 패망과 죽음을 향해 달려간 꼴이 됩니다.

 

각자의 삶에서 노력하고 애쓰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만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의 기준, 자기 욕망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아야 합니다. 자기의 높아짐과 성공과 자랑을 위한 거짓을 멀리하고, 하나님이 복 주시기로 약속하신 길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복의 길을 말씀하시고, 그 길에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잘 기억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고 말씀대로 진리와 바른 방향을 향함으로써, 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인정과 약속하신 복으로 삶을 채워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