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초보자처럼 행하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2장 1-11절(구 464쪽)
찬송: 419장(주 날개 밑 내가; 통478), 401장(주의 곁에 있을 때; 통457)
설교: 2020090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분야들에는 자동차와 도로도 포함됩니다. 예전엔 자동차의 성능이나 안전성 등의 수준이 낮았습니다. 좋은 차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수가 아주 많았습니다. 통계를 찾아보니, 1990년대는 매해 1만 명 이상이 교통사로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2019년에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3,349명이었고, 매년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수가 매년 이렇게 줄어드는 여러 원인이 있겠죠? 먼저는 도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웬만한 곳은 왕복 4차선 이상이고, 도로면이 고르고 반듯합니다. 또 중앙분리대가 잘 설치되었습니다. 차도 많이 좋아졌죠? 차의 상태를 알려주는 기능들이 잘 갖춰졌고, 사고가 나더라도 탑승자를 지켜주는 안전장치가 많이 갖춰졌고 발달했습니다. 최근엔 위험에 처하면, 차가 스스로 판단해 사고를 막아주는 여러 기능까지 추가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로와 차의 성능 등 여러 가지가 발전해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줄긴 했지만, 교통사고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죠? 교통사고 자체는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차가 많아지고, 운전자가 많아지는 까닭도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고, 운전면허 시험을 빨리 따도록 너무 쉽게 만든 제도의 문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운전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운전경력에 따른 교통사고 비율로 보면 분명하게 확인됩니다. 운전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과, 꽤 오랫동안 운전한 사람들 중에 어느 쪽이 교통사고를 더 많이 낼까요? 운전경력이 5년이 안 된 사람과, 10년 넘게 운전한 사람들 중에 어느 쪽이 교통사고를 더 많이 낼까요? 보통은, 운전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더 많이 낼 것 같죠? 그런데 2018년 통계를 보면, 운전경력이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 일으킨 교통사고가 약 6.5배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는 통계의 오류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운전면허가 필수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대다수는 20대에 운전면허를 취득합니다. 20대에 운전면허를 따고, 10년을 운전한다 해도 30대입니다. 보통은 6,70대까지는 운전하니, 운전경력이 10년 이상 된 운전자가 몇 배 많고, 당연히 교통사고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통계에서, 운전 경력의 장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운전할 때는 모든 것이 낯섭니다. 앞으로 가고, 방향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그 외의 대처능력이라든지, 차량 흐름에 맞출 수 있는 능력 등은 서툽니다. 그래서 초보 운전자가 운전하는 차량이나, 운전학원의 차량을 보면 바짝 긴장됩니다. 너무 느리게 운전할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방향지시등을 켤 때도 늦고, 차선을 바꾸는 데도 느립니다. 방향지시등을 켜야 할 때 갑자기 와이퍼를 켜는 때도 있죠? 때에 맞춰 필요한 일을 하는 데 미숙하거나 무능합니다.
하지만 10년 이상 운전하면 어떤가요? 운전에 대해서는 익숙의 단계를 넘어 능숙의 단계에 이릅니다. 10년 동안 운전하면서 쌓이는 경험들이 많습니다. 비오는 날, 눈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포장이 잘된 도로, 비포장도로까지 대부분의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크고 작은 고장도 겪기도 하고, 운전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운전을 잘 하는 단계에 이릅니다.
그런데도 왜 10년 이상 운전자들이 5년 이하 운전자들과 다를 바 없는 비율로 사고를 일으키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오랜 시간 운전하면서 경력이 쌓임에 따라 자신감을 얻고, 함부로 운전하는 단계에 이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예측 운전하기 때문입니다.
초보 운전자들은 속도만 느린 게 아니라, 비교적 원칙을 잘 지킵니다. 규정속도를 넘어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자칫 규정속도 미만으로 운전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거리가 아직 한참 남았을 때부터 방향 지시등을 켭니다. 정지선보다 훨씬 앞서 정지합니다. 원칙과 규정에 지나치다 할 만큼 철저합니다.
하지만 운전 경력이 늘고, 운전이 익숙해지면 정해진 속도보다 훨씬 빨리 달립니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방향과 차선을 바꾸고, 감시 카메라가 없으면 정지선마저 무시하며 지나치곤 합니다. 차에 대해 익숙해졌고, 조작에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사고 확률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측 운전, 짐작 운전도 사고의 원인이 되곤 합니다. 운전을 배울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가 짐작 운전입니다. 용어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달리 사용될 수 있습니다만, 도로나 신호 등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 먼저 계산하며 운전하는 것입니다. 교회 앞 삼거리를 생각해 보면, 어느 쪽으로 가든 반드시 천천히 멈춰서 좌우를 살펴야 하죠? 그런데 ‘좌우를 확인 안 했지만, 동네에 차가 많이 안 다니는 곳이라고 차가 안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무작정 가는 것입니다.
좌우가 안 보일 때는 속도를 늦추고 최대한 조심히 좌우를 살피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든 운전자가 배웁니다. 경력이 짧은 운전자들은 비교적 잘 기억하고 실천합니다. 그런데 경력이 많이 쌓이고, 익숙해지면서 가장 먼저 잊는 원칙이 이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고가 나거나, 사고 위험에 처한 경험이 대부분의 운전자들에게 있습니다.
저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억이 있습니다. 부교역자로 있던 교회에서, 권사님들 몇 분을 태우고 집으로 모셔다 드리던 때였습니다. 큰 도로에서 주택가로 접어들었고, 밤 9시가 되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주택가 골목길이었기 때문에 과속한 건 아닌데, 뒤에 앉아 계신 분들이 너무 시끄럽고 말씀을 너무 많이 하셔서 운전에 집중을 못 했습니다. 좌우 골목이 안 보이니, 차를 멈추거나 속도를 완전히 줄여서 확인해야 하는데, 시간도 늦고, 작은 골목이라 차가 없을 거라 판단하고 그대로 지나려는 순간 차 한 대가 너무 빨리 지나갔습니다. 1초 정도의 차이로 사고가 안 났지만, 만약 그 차가 조금만 늦게 나오거나, 제가 조금만 먼저 지나갔다면, 피할 수 없이 큰 사고로 이어지고 말았을 터입니다.
초보운전자보다는 훨씬 능숙하고, 많은 경험을 쌓았으면서도, 경력이 오래된 운전자들이 초보 운전자들과 별다를 바 없이 많은 사고를 내는 까닭이 이것입니다. 함부로 운전하고, 함부로 예측하며 운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무엇이 위험할까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가장 큰 위험에 빠지게 할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익숙해짐을 능숙으로 판단해 함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습성입니다. 교회와 성경에 익숙해지면서부터 자기 삶을 쉽게 예측하며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어떤 사람들은 ‘분별의 능력’이라고도 하고, ‘믿음의 확신’이라고 포장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교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16장 18절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는 말씀에 비춰 보면, 스스로 판단할 만큼 성장했다 생각하면서, 믿음의 순수성과 조심성을 잃어버리면, 어느 순간 패망과 멸망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본문에서 다윗의 순수함과 순결함을 함께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 동안 사울에게 쫓기며 죽음의 위기를 넘기느라 블레셋에 망명해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후의 모습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두 가지를 기도로 여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쪽에 있는 유다 땅으로 올라가도 되는지, 그리고 올라가라는 응답을 받고서는,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여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로 묻고, 응답을 받는 이 장면을 보면서, 많은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어떻게 확인했을까 하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확인하고픈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응답이 빨리 이루어지는 방법이 아닙니다. 다윗의 믿음과 자세입니다. 자기 삶의 문제이면서도, 자기 맘대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아무것도 결단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한 사람처럼 하나님께 기도로 묻고 답을 기다립니다.
본문 4절에서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고 하는데, 이때 다윗의 나이가 30세였습니다. 자기주장과 계획이 분명할 만한 나이입니다. 뿐만 아니죠? 다윗 자신이 먼저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을 말한 적도 없고,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지금 다윗이 고국 땅에서 살지 못 하고, 블레셋이라는 남의 나라로 도망해 살고 있는 까닭은 사울 왕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사울이 죽었으니, 시험과 고난의 시간이 끝났다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갈 것인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 하는 질문은 할 필요조차 없어 보입니다. 이제 다윗이 스스로 판단하고, 더 자신감을 갖고 왕이 되기 위해 노력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유치하다 못해 불필요해 보이는 질문을 드립니다. 당연한 상황처럼 보이는데도, 다윗은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유치하게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가다리며, 심지어는 가야할 지역까지 추가로 묻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질문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다윗이 상황을 판단할 만한 능력을 갖지 못 해서입니까? 블레셋에 머무르면, 블레셋의 왕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일까요? 그렇지 않죠? 계산하고, 상황을 읽을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숱한 경험도 쌓았고, 시기를 봐도 이제 이스라엘 왕이 되는 게 맞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당연한 것마저 기도로 묻는 까닭은,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보다 앞서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경력과 연륜이 쌓였다고 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함부로 자기 삶을 만들어 가는 교만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가진 믿음이기도 하고, 위대한 점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은, 8절부터 나오는 이스보셋이 왕이 되는 과정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죽자, 사울 밑에서 국방부장관이 사울의 아들들 중 하나인 이스보셋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땅 전체가 둘로 나뉘고, 각기 왕을 두었습니다. 사울의 아들이 차지한 곳은 훨씬 크고, 지지 기반도 훨씬 컸습니다.
이에 반해 다윗은 겨우 자신이 속한 유다족속에서 왕이 될 뿐이었습니다. 12지파에서, 11지파를 이스보셋이 다스리고, 다윗은 유다 족속만 다스리게 되었으니, 누가 다윗이 잘되고 성공할 거라 여겼겠습니까? 한 민족에 두 왕을 둘 수 없으니 싸울 것이고, 싸우면 크고 많은 지지기반을 둔 이스보셋이 이길 거라 예상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7년 반이 지나자, 다윗은 결국 자신이 다스리는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강한 지역 모두를 흡수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뤄 주지 않으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왜 하나님이 여전히 한 구석에 머물러 있는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만드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10배 이상 크고 강한 이스보셋을 거부하시고, 보잘것없는 유다 지파 하나만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통일케 하신 까닭은, 다윗과 이스보셋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모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보셋은 사람의 힘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인구의 많음과 땅의 넓음을 지지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물을 필요도 없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이유도 없습니다. 철저히 인간적이고, 눈에 보이는 숫자로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땅의 넓음과, 사람의 많음과 강함을 의지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다윗도 이제는 판단할 만한 능력도 되고, 여건도 그래 보임에도,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자기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묻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히 믿고, 어리고 순전한 믿음으로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계획이 있고, 그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초보 신앙인처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이 이 뜻입니다. 당연한 것도 기도로 묻고, 우리의 계획과 뜻에 어긋나도 묻고, 잘되는 것 같아도 묻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신앙의 경력이 길어지고, 믿음이 좋아진다는 뜻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믿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앞세우며 사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응답을 많이 받아서, 자기 뜻을 많이 이룬 사람이 위대하고, 복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응답 앞에 자기 뜻을 굽힐 줄 아는 사람이 더 복되고 위대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과 함께하시고, 복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 오늘도 찾으시는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와 간구로 자기 뜻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모든 조건과 상황을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 같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할 만한 것 같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믿고 따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과 인도하심을 받고, 넘치는 복과 은혜를 받은 다윗처럼, 오늘도 더욱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다려 행함으로써, 살아가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복과 은혜로 삶을 채워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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