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1018)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삼하 3장 22-39절)

청명하늘 2020. 10. 18. 13:5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322-39(468)

찬송: 320(나의 죄를 정케; 350), 204(주의 말씀 듣고서; 379)

설교: 2020101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격언이나 속담들 중에는 효도에 관한 내용들이 많이 있죠? 또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효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님이 좋은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잘 섬기는 것도 효도 중 하나겠죠? 또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람이 되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가정을 이루는 일도 좋은 효도라 할 수 있습니다.

 

효와 관련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암행어사 중에는 박문수라는 분이 가장 유명하죠? 이분이 효자가 많다는 지역으로 갔습니다. 저녁때에 오두막집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때 아들로 보이는 더벅머리 총각이 나무를 해 와서 내려놓고는 마루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총각의 얼굴을 닦아주고, 신발과 버선을 벗기고 물로 씻겨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총각은 만류하지도 않고, 어머니가 하는 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박문수가 저런 불효자식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에 분을 참지 못 하고, 총각을 불렀습니다. “다 큰 놈이 늙은 어머니가 땀을 닦아주고, 발을 씻겨 주시는데도, 손 하나 까딱 않고, 가만히 누리고 있으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총각은 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저 하나를 바라보고 사십니다. 저를 위해 해주시는 것으로 낙을 삼고 계시는데,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가 하시는 대로 저는 그대로 두고 보고 있을 뿐입니다.”고 답했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아들이 효자입니까? 불효자입니까? 효자죠? 암행어사가 보고 전해줄 만큼 큰 효자입니다. 그러면 이 총각의 어떤 모습이 효일까요? 오두막집에 살고, 나무를 해오는 걸 보면, 어머니께 비싸고 귀한 것들로 봉양하지 못 했습니다. 또 더벅머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좋은 가문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은 것도 아니고, 당연히 가문을 빛내지도 못 했습니다. 흔히 를 위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조건을 채우지 못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총각이 효자라고 인정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주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어머니가 무엇을 가장 좋아하시는지를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잘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일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보통은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아주 어릴 때가 아니면, 자녀가 부모님의 땀을 닦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효도로 봅니다. 사리판단이 안 되는 어린 나이가 아니면, 가만히 앉아 섬김을 받는 쪽은 부모고, 섬겨야 하는 쪽은 자녀라고 생각합니다. 자녀가 부모님의 얼굴과 손발을 씻어주어야 하고, 부모님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질서고 도리라 여깁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늙은 어머니가 자신의 손과 발을 씻기고, 땀을 닦아주고, 시중드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남들은 그런 생각과 행동을 나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어머니가 가장 기뻐하시는 일임을 알았고, 받아들였습니다.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한 모습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자기 어머니에게는 가장 기쁜 일임을 알았고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총각은 어머니를 잘 섬기는 효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기쁘시게 하는 게 가장 큰 효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좋은 것, 맛있는 것으로 섬기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좋은 가정을 이루고, 가문을 빛내는 일도 참 중요합니다. 부모님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도 좋은 효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더 큰 효도입니다.

 

이를 바꿔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 넘칠 만큼 돈을 드리고, 가장 맛있는 것으로 대접하고, 좋은 가정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님이 원하는 좋아하시는 일은 안 하고, 싫어하시는 일만 해서, 만날 때마다 부모님의 기분이 상하면서도, 돈과 물질로 잘 섬긴다고 해서, 어떻게 이를 두고 좋은 관계라 하고, 부모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이란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언제나 함께하시는 분으로 믿는 걸 뜻합니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 하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물질과 시간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을 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하고 좋은 모습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요압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7년 반가량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양쪽 모두 왕이 있었지만, 실직적인 힘은 국방장관들이 더 셌습니다. 다윗 쪽에서는 요압, 이스보셋 쪽에서는 아브넬이 국방장관으로서 더 큰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양쪽의 갈등과 전쟁이 있은 후, 북쪽의 권력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국방장관 아브넬을 책망했는데, 아브넬은 자신이 나라의 기반을 다졌고, 죽을힘을 다해 섬겼는데, 왕의 첩 때문에 비난을 받으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충성을 포기하고, 다윗에게 가려는 마음을 갖고, 이에 필요한 사전작업을 펼쳤습니다.

 

북쪽의 국방장관이 귀순하겠다는 뜻을 들은 다윗으로서는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동족이면서도 남북으로 갈려 있는 일도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고 힘으로 싸우는 것도 상처와 고통을 남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으로서는 포기할 수도 없고, 힘으로 통일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아브넬, 북쪽을 좌우하는 권력자인 국방장관이 먼저 귀순의사를 밝혔으니, 다윗으로서는 얼마나 기쁘고 좋았겠습니까? 다윗이 아브넬을 불러 극진히 대접하고, 아브넬도 그 동안 섬기던 왕을 포기하고,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는 작업을 펼치겠다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로서도 그렇고, 다윗에게도 좋은 일이죠? 모두 만족하고 좋아하는데, 딱 한 사람은 이 과정에서 분노합니다. 다윗 편의 국방장관인 요압입니다. 남쪽의 실질적 권력자인 요압이 아브넬을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남북이 통일되는 데 아브넬의 공이 훨씬 크면, 아브넬이 더 높이 인정받고,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터입니다. 요압에게 아브넬은 정치적 경쟁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에 전쟁터에서 아브넬이 자신의 동생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전쟁터에서 죽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고 당연함에도, 요압은 이 일로 원한을 품습니다. 이런 중에 아브넬이 다윗에게 귀순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때 요압은 다윗과 함께 있지 않았고, 전쟁터에 나가 있다가, 돌아와서 아브넬의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왜 아브넬을 그냥 보냈냐며 항의한 후, 돌아가고 있던 아브넬을 쫓아가 결국 살해합니다.

 

이 과정에서 보면, 요압은 충성스러운 신하입니까? 불충스러운 신하입니까? 좋은 신하입니까? 나쁜 신하입니까? 이때 요압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 본문은 22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력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입니다. 요압은 전쟁에 나가서 돌아왔는데, 많은 노략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전쟁의 성과가 대단했다는 뜻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가장 잘 높이 평가받는 기준은 성과입니다. 성과에 따라 평이 갈립니다. 좋은 성과를 거두면 좋은 군인으로 인정받고, 나쁜 성과를 거두면 나쁜 군인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전쟁에 나가 많은 노략물을 얻어 돌아온 요압은 좋은 군인, 좋은 장군이고, 뛰어난 국방장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압이 좋은 신하였느냐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답이 달라집니다. 좋은 부하, 좋은 신하로 인정되려면, 그의 주군인 다윗의 판단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과연 본문 속에 나오는 요압을 좋은 신하로 인정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충스럽고, 나쁜 신하로만 봤습니다. 오죽했으면, 이때는 다윗의 힘이 약해서 요압을 처리 못 했지만, 자신이 죽으면서 아들에게 요압을 처리해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뛰어난 군인이고, 훌륭한 지도자이지만, 요압이 좋은 신하가 되지 못 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어떤 이유보다도, 왕의 마음을 알지 못 했고, 왕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왕의 뜻과 계획보다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앞세우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군인으로서 그 누구보다 더 많은 공적을 쌓았고, 많은 일을 해냈고,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지만,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왕인 다윗에게는 미움과 원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신앙생활에서 꼭 기억해야 할 점들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이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일하고, 많은 업적을 쌓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일이, 하나님의 마음을 드는 일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무조건 힘껏 일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 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요압이 나라를 위해 많은 업적을 쌓고, 많은 노략물을 얻어 돌아왔으나, 다윗 왕을 오히려 무시하고, 다윗의 미움을 받게 된 이유가 된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한 일이 동시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일이 되지 못 할 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만약 공로와 업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삼는 사람은, 기회마다 이를 목표로 살아갑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대단한 일을 했음에도,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한 말씀들 중에, 마태복음 721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가 있습니다. 이때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게으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 22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는 말씀을 보면, 대단한 일들을 해낸 사람들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예언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은 사람들입니다. 다른 누구의 이름이 아닌,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으로 이끄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을 내쫓고, 기적을 행하는 게 절대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죠? 이런 일을 행하기만 하면, 지금도 수십만 명의 신자들을 둘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 아닙니까?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룬 곳의 목회자가 바로 이런 사역을 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기적을 이루고, 대단한 역사를 만든 사람들마저도, 주님은 버리실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대단하고 엄청난 일을 이루는 것보다 주님의 마음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 복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을 주님은 더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큰 교회를 세우고, 수만 명의 교인이 있는 교회를 만드는 것보다, 주님의 마음을 읽고, 주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신앙생활에서 순위가 우리의 계산과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가장 먼저 대단한 일들을 해내는 사람들을 두죠? 그 아래에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둡니다. 그 아래에서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신앙인을 둘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판단과 순위가 아주 잘못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그래서 가장 위에 두시는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해내는 위인도 아니고, 많은 일을 해내 공적을 많이 쌓은 사람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기준이면, 우리도 넉넉히 할 수 있는 수준 아닙니까? 교회의 대단한 공사를 해낼 만한 여건이 안 되더라도, 엄청나게 헌신할 만한 힘과 여력이 안 된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과 삶의 자세만은 하나님을 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을 다 떠나, 마음만이라도 주님을 향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대단한 일을 해냈다 칭찬하시지 않고, 마음뿐인 연약한 자녀를 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의 판단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바른 기준, 판단이 중요합니다. 이게 올바르지 못 하면, 전혀 엉뚱한 일에 힘쓰다, 정작 꼭 필요한 일에는 게으른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늘 요압이 다윗을 향한 자세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바르게 기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이를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