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1101)믿음의 헤브론을 기억하며(삼하 5장 1-5절)

청명하늘 2020. 11. 1. 13:17

믿음의 헤브론을 기억하며

 

성경: 사무엘하 51-5(470)

찬송: 428(내 영혼에 햇빛; 488), 347(허락하신 새 땅에; 382)

설교: 2020110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 한 운동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엄청난 인기를 끄는 종목들이 있죠? 그중 하나가 테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대회에서 우승하면 받는 상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20억 원이 넘는 정도입니다. 이런 대회가 매년 개최되고, 또 이 정도 규모의 대회가 1년에 4, 이보다는 약간 작은 규모의 대회는 더 많습니다.

 

특별히 잘 하는 선수들은 대회에서 받는 상금만 해도 엄청지만, 유명 선수들은 광고로 상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을 벌어들이기도 합니다. 큰 기업 등에서 후원을 받기도 합니다.

 

몇 달 전에 기아 자동차 기업에서 세계에서 최고의 선수인 나달을 계속 후원하기로 하고, 조인식을 가졌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대회에서 받은 금액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금액임은 분명합니다.

 

계속 후원한다는 뜻은 그 동안 후원해 왔다는 뜻이죠? 이미 15년 동안 후원 관계를 유지했고, 이번에 다시 5년 연장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선수는 세계적인 선수라서, 더 많은 금액과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기업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아 자동차와 20년 넘게 후원 관계를 유지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이 선수가 18살 때인 2004년에 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아니지만, 당시 세계 1위 선수를 이기는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때 기아 자동차의 마케팅 팀이 이 선수의 가능성을 알아봤습니다. 아직은 어리고, 최고 선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세계 최고 선수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후원 계약을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이 선수는 세계 순위가 49위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그때 이 선수는 부상 때문에 대회는 물론 테니스 선수로서 앞날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이런 선수에게 1,2년도 아니고, 10년이라는 계약을 기아 측에서 먼저 제안했으니, 주변에서는 물론 선수 본인도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두 번 잘 한 모습을 보고, 앞날을 예측하다가 실패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위험과 실패가 있기 때문에, 웬만한 배짱이나 판단이 아니었으면, 10년이라는 엄청난 후원을 제안하지는 못 했을 터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 선수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한두 해 잘 하고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선수로 지내고 있습니다. 나달 선수의 입장에서는, 처음 계약을 맺을 당시 최고의 선수도 아니었고, 부상 중이었음에도, 자신을 알아주고, 엄청난 계약을 제안한 기아가 고마워서, 20년 후원 계약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수준의 선수들은 움직이는 광고판이라 불릴 만큼 엄청난 효과를 나타냅니다. 차는 말할 필요조차 없죠? 세계에서 비싸고 좋은 차들이 많은데, 최고 선수가 차를 타고, 말 한 마디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광고 효과는 예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기아에서는 좋은 선수 하나를 선정하고, 과감하게 10년을 후원한 게 얼마나 큰 효과와 이익을 남겼는지 계산하기도 어려울 터입니다.

 

이를 보면, 안목과 믿음에 따라 판단과 결과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안목이 부족하면, 좋은 선수를 놓치고, 나쁜 선수를 택하게 됩니다. 기업 측에서는 엄청난 금액을 쏟아 부어도 아무런 효과나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니 쏟아 부은 금액만큼 손해를 입게 됩니다.

 

또 좋은 선수를 알아봐도, 믿음에 따라 계약 기간과 조건이 달라지겠죠? 정말 가장 좋은 선수가 되고,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에 머물 것을 확신한다면 당연히 좋은 조건과 많은 금액을 투자합니다. 반대로, 좋은 선수긴 하지만, 그 기간이 오래지 못 하리라 판단하면, 짧게 후원하려 하고, 많은 금액을 제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안목에 따라 투자 기간이 달라지고, 믿음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사역에 투자하는 규모와 시간이 달라집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주제로 하고, ‘믿음이라는 말이 반복되어 사용되어 믿음장으로 부릅니다. 또 믿음으로 산 여러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방주를 지은 노아에 대해 7절에서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인정된 까닭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일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확인되지도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거대한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 때는 홍수의 기미가 전혀 안 보였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데 수십 년 걸렸음을 계산해 보면, 그 기간 동안에는 여전히 맑은 날이 있었고, 땅에는 식물과 동물이 평시처럼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자기 할 일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부르시고, 거대한 방주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미쳤다고 말했을 상황입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행동은 달라집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이라면, 명령을 듣고도 마음조차 주지 않았겠죠? 어느 정도 믿는 사람이라면, 설계하다가 중단하거나, 시작은 잘 했다가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또 그 시간들이 힘들어질수록 중단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노아는 믿음이 크고 확실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인정했습니다. 자기의 계산과는 너무 멀어 보이는 약속마저 중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수십 년이 시련과 유혹으로 가득했음에도, 노아는 포기하지 않고 사명을 마쳤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왜 하나님이 노아를 택하시고, 그 믿음을 인정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인정받지 못 할 만큼 연약한 믿음을 가진 이들이 등장합니다. 당시 잠시 분열되었던 이스라엘이 다윗 아래에서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북쪽의 국방장관이 다윗에게 귀순하려다 살해되었고, 북쪽의 왕인 이스보셋마저 살해되었습니다. 북쪽을 지탱했던 국방장관과 왕까지 살해당하자, 각 지파를 대표하는 장로들이 와서 다윗을 만나 다윗의 통치를 받아들이겠다고 합니다.

 

이들이 다윗에게 말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전체는 한 민족이라는 것이고, 다윗 왕은 일찍부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으신 인물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제는 왕과 국방장관을 잃어, 다윗 통치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 아부의 말을 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이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 이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지도자를 잃고 휩쓸리 듯 다윗 왕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2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는 발언을 보면, 무엇보다도 이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노아였다면 이럴 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었겠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기 판단과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며, 그 밑으로 들어가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분열되었다고 하면, 지금 분단된 우리나라처럼 전혀 오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지금처럼 국경이 분명하지도 않았고, 경계나 봉쇄도 엄격하지 않았습니다. 분단되었더라도 언제든지 오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부터 백 년가량 지난 후에 다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됩니다. 그럼에도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려고 북쪽 사람들이 남쪽까지 오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북쪽의 왕이 북쪽에 단을 쌓아 남쪽에 가지 않고도 북쪽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도록 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지도자였음을 들어 알고 있음에도, 다윗에게로 가지 않고, 사울의 통치를 받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믿음이 크고 확실했다면, 기를 쓰고 다윗 밑으로 가려 했을 것입니다. 사울 가문의 통치 아래 있어봤자, 그 앞날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바꿔 보면, 이들의 믿음은 확실하지 못 했습니다. 그저 듣고 아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현재와 미래를 걸 만큼 믿음이 크지 못 했고, 확실하지 못 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이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겠다는 약속을 전혀 안 믿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이들의 믿음을 아무리 높게 평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정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이처럼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머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다윗에게 가지 않고, 왜 하나님이 버리신다고 선포하신 사울과 그 가문 아래에서 여전히 머물렀겠습니까? 다른 무엇보다 사울과 그 아들이 가진 권력이 대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왕이 가진 힘과 권력이 자신들의 삶을 복과 평안으로 이끌 거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판단에는 하나님의 힘보다는 왕의 힘이 더 강해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왕의 말이 더 그럴 듯해 보였습니다. 왕의 역사는 자기들의 눈과 손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못 하다고 봤습니다. 왕의 명령은 며칠이나 몇 달이면 영향을 미치지만, 하나님의 명령은 너무나 막연하고 멀어 보였습니다. 이루어질지 전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왕의 권력은 수십 만 명, 수백 만 명을 움직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힘이 자기들의 삶까지 영향을 미칠지 확신하지 못 했습니다. 왕의 힘은 자기들의 힘보다 분명 크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들의 능력보다 큰지는 꽤 고민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는 백성들이라고 하지만, 믿음의 수준이 이 정도였으니, 이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무엇을 바치고, 얼마나 기다릴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은 이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역사에 대한 다윗의 믿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이어 살펴보고 있는 성경 곳곳에서 쉽게 확인됩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도 다윗이 서른 살에는 왕이 되었지만, 76개월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오직 유다 지파 하나만을 다스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미움을 받고, 여기저기로 도망해야 했던 시기는 물론, 헤브론에서 다스렸던 76개월의 시간도 역시 불투명하고 답답하기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고작 12분의 1을 다스리는 사람이 나머지 전체를 다스린다는 게 쉽습니까? 11개를 가진 사람이 나머지 한 개마저 빼앗는 게 쉽습니까?

 

그럼에도 다윗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의심하지 않으니, 지금 당장 고난이 덮쳐오고, 지금 당장 가진 것이 너무 작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과 확신이 얼마나 크고 대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만한 믿음이었고, 자신의 생명과 수십 년을 바라볼 만한 안목과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의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단지 설교 내용으로 듣고, 성경에서 읽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믿습니까? 우리의 계산으로 안 되고, 어려워 보여도, 기다림과 고난의 시간이 끊임없이 이어져도 이길 만합니까? 돈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우리의 결국을 결정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끌어 가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판단과 계산보다 늦어지고 밀린다 할지라도, 우리가 세운 방향과는 달리 간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믿고 기다릴 만한 수준으로 믿고 있습니까?

 

그래서 이제 우리는 믿음의 헤브론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들었으면 믿을 줄 알아야 하고, 믿었으면 과감히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 정도가 되어야만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믿음이 되고, 하나님이 복 주실 만한 수준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알면서도, 확신하지 못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 하는 미지근한 사람들이 아니라, 확신하고 우리의 삶을 모두 걸고 따를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을 통과하고, 이런 수준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인정과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헤브론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서, 왕을 비롯한 세상 권력과 돈에 대한 의지력과 확신이 더 커서, 헤브론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이들을 하나님은 외면하십니다.

 

세상의 길과 방법은 언제나 가까워 보입니다. 돈과 권력의 유혹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 더욱 멀리 보이고, 더 막연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위인들처럼, 고난과 세상 유혹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확신하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어떤 장애에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자리를 향해 싸우며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푸셨던 은혜와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