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01108)신실함과 겸손으로 삶을 세우십시오(삼하 5장 6-12절)

청명하늘 2020. 11. 8. 14:41

신실함과 겸손으로 삶을 세우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56-12(470)

찬송: 288(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04), 204(주의 말씀 듣고서; 379)

설교: 2020110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롯데월드타워로서 높이가 무려 555미터입니다. 63빌딩이 오랫동안 최고층 건물로 여겨졌습니다. 높이가 249미터로서 현재는 고층 건물 순위에서 10위 안에도 들어오지 못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높은 건물이 많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63빌딩은 1980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985년에 완공되었는데, 높은 건물을 버틸 수 있도록 땅 아래로 50미터 가량을 파내고 기초를 쌓았다고 합니다. 롯데월드타워는 123층이고 높이가 555미터로서, 63빌딩의 두 배 이상인데, 땅 아래로 어느 정도로 깊이 파야 할까요? 단순한 수치로만 본다면, 절반 높이 건물이 50미터를 파서 기초를 쌓았으면, 두 배 높이의 건물은 100미터 가까이 파야 할 것 같죠? 그런데 롯데월드타워는 오히려 63빌딩의 깊이보다 더 낮은 38미터를 파서 기초를 쌓았다고 합니다.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고 해도, 건물이 높을수록 땅 아래 기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두 잘 압니다. 건물을 높이 올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땅 아래를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땅 아래 기초가 깊을수록 건물은 안전하고, 낮을수록 건물은 불안합니다. 기초가 깊지 못 하면, 홍수나 태풍이나 지진 등에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높은 건물이 절반 높이밖에 안 되는 건물보다 오히려 더 얕게 파고 기초를 쌓았다고 하니 좀 의외죠? 그렇다고 그렇게 고층 높이를 짓는 데 부실하게 짓지는 않았겠죠?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롯데월드타워가 30년 늦게 지어졌으니, 그 동안에 건축물을 짓는 지식과 기술이 발달한 것도 한 이유겠죠? 또 그 동안 건축 자재들이 크게 발전한 것도 이유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든다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지반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63빌딩의 지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롯데월드타워는 워낙 크고 높은 건물이라 안전성에 대한 조사가 강도 높게 이루어졌다고, 지반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알려졌습니다.

 

그러면 500미터가 넘는 건물이, 높이에 비하면 너무나 얕은 38미터만 파고 기초를 세웠다는 것은 지반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인가요? 크고 단단한 돌, 암반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암반에도 여러 특성이 있는데, 무게를 잘 버틸 만큼 단단하고 잘 깨지지 않는 암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을 짓는 데 무엇보다도 지반이 중요하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7:24-27). 왜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지혜롭고, 모래 위에 지으면 어리석습니까? 다른 무엇보다 기초의 단단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암반 위에 집을 짓는 게 단점이 훨씬 더 많습니다. 모래나 진흙이나 무른 땅에 집을 짓는 게 장점은 훨씬 더 많습니다. 무른 땅일수록 파내기 쉽고 간단합니다. 요즘처럼 건축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때여도, 모래나 부드러운 흙이나 진흙을 파내는 건 쉽고 간단한 작업에 들 것입니다.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동력이 크지 않고, 당연히 비용도 적게 들어갑니다. 주인이나 업자로서도 나쁠 리 없습니다.

 

반대로, 암반을 파고, 깎아 내는 건 어렵고 힘듭니다. 요즘처럼 기술과 장비가 발달했어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당연히 비용도 훨씬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비용과 노동력을 들여야 하는 이들에게 모두 단점입니다.

 

그럼에도, 모래나 진흙 위가 아니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까닭은 단 한 가지입니다. 이에 따라 안전과 집의 수명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쉽고, 빠르고, 돈이 적게 든다고, 모래나 진흙이나 부드러운 흙 위에 수십 층의 건물을 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잠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홍수가 나고, 거센 바람이 불면 흔들리게 되고, 점차 땅이 내려앉게 됩니다. 결국 건물이 기울어지고 내려앉다가 무너지게 됩니다. 그 동안 들인 모든 수고와 노력과 비용이 쓸모없게 됩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과정은 너무 힘들고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바람과 홍수가 나도 너끈히 버팁니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그 속에 사는 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단단하고 파내려 가기 어려운 암반이라 하더라도, 그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인생이라는 자기만의 건물을 세워갑니다. 건물을 세우기는 하되,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땅을 파지 않고 건물을 세우기도 합니다. 삶의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이 막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해도 나름의 건물을 세울 수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절대 튼튼하고 오래가고, 안전한 건물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창고나 비닐하우스나 축사처럼 막 짓고, 막 쓰다, 무너지면 다시 지을 수 있는 하찮은 인생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찮은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 튼튼하고, 안전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삶을 세워 가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건물을 막 짓지 말고, 땅을 파는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땅을 파는 수고를 들이되, 삶을 더 단단하고 안전하게 지켜줄 만한 수고를 들여야 합니다. 당장 편하자고 기초를 파지 않는 삶도 실패하게 되고, 지금 더 쉽자고 무른 땅이나 모래 위에 기초를 파는 삶도 실패하게 됩니다. 오직 온전한 삶, 이 땅과 내생의 삶을 위해, 지금 힘겹고 어려움을 헤치고 깊이 파내려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삶이라는 건물을 쌓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한 부류는 여부스 족속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본문은 그 동안 헤브론에서 76개월간 유다 지파만 다스렸던 다윗이, 이제 12지파 전체를 다스리기 시작하면서 있던 일입니다.

 

그 동안은 유다 지파만 다스렸기 때문에 헤브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만, 이제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려야 했기 때문에 수도를 옮겨야 했습니다. 당시 지리를 쉽게 풀이하자면, 우리나라의 남한을 이스라엘 땅으로 생각할 때, 헤브론은 전북 임실 정도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대전 정도의 위치인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기는 과정입니다.

 

문제는 예루살렘의 시온 성을 여부스 민족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변 전체를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차지해 둘러싸고 있음에도, 여전히 여부스 민족이 거기에 머물렀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그 곳이 천연요새였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그곳을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곳이 지키기에 얼마나 유리했는지, 그곳을 공략하려는 다윗에게 여부스 민족 사람들이 너는 여기에 들어올 수 없다. 눈 먼 사람이나 다리 저는 사람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는 말로 조롱할 정도였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시온 성을 공격하고 빼앗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 한 전략을 세웠습니다.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을 타고 올라가도록 한 것입니다.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은 가파릅니다. 옛날 우물을 생각하시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을 뜨기 위해서는 벽이 완만해서는 안 되죠? 직각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릅니다. 지키는 쪽에서는 이보다 좋은 요충지도 없었고, 빼앗으려 하는 쪽에서는 이보다 더 어려운 지형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앞을 못 보고,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사람들조차 다윗을 너끈히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곳을 공략해 빼앗고, 그곳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습니다. 자신이 빼앗은 시온 성을 다윗 성이라 이름 붙이고, 새로운 시대를 펼쳐갑니다.

 

다윗이 이렇게 시온 성을 빼앗아 자기 성으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을 본문 10절에서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우연히 된 게 아니고, 다윗의 지혜와 능력으로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를 해석하는 방법이 여부스 사람들과 다윗이 다릅니다. 여부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차지한 천연요새가 자기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졌다고 봤습니다. 자기들의 능력이 대단하고, 자기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 곳에 거주했고, 그곳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 동안 많은 적들이 공격해 왔지만 모두 이겨냈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고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적을 무찌르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심지어는 자기들의 주위를 이스라엘 전체가 에워싸고, 다윗이 많은 군사를 이끌고 왔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자기 지혜와 능력 위에 삶을 세웠습니다. 차지한 땅과 요새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 하던 민족으로서, 당연하고 쉬운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혜와 능력은 모래와 진흙 같았습니다. 쉽게 빨리 파내려 갈 수 있는 지반이었습니다만, 폭풍처럼 몰아치는 고난 앞에서 얼마나 빨리 내려앉고, 기울어지게 되고, 무너지게 되는지를 이들은 알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12절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고 기록된 바처럼, 다윗은 그 과정이 자기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결정과 능력이었음을 알고 인정했습니다.

 

사실 다윗처럼 의롭게 살고, 능력마저 뛰어나면 모든 과정을 자기가 해냈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라는 부분을 떼어버리고,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는 부분만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다윗 자신이 작전을 세웠고, 자신이 명령했고, 자기 부하들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빼앗았으니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잊기 십상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이 과정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였음을 인정하며 따릅니다.

 

다윗이 시온 성을 빼앗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쉬운 일이었다면, 얼마 안 되는 여부스 사람들은 진작 패하고 쫓겨나거나 멸망했겠죠? 물을 길어 올리는 바위벽을 오르는 건 분명 어렵기가 바위를 깎아 터를 세우는 것처럼 어렵고 고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 이스라엘을 번영하게 하신다고 해서, 다윗이 아무것도 안 해도 이루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가파른 바위벽을 오르는 수고와 고통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기희생과 수고를 통해서라도, 결국 목표한 바를 이루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고 사랑임을 인정했습니다.

 

다윗이 자기 삶의 지반을 어떻게 닦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를 인정하는 믿음으로, 자기가 이룬 것을 부인하는 겸손으로,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신실함을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처럼 고난이 계속될 때마저도, 결국 하나님이 내 삶을 복과 영생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철옹성 같은 고난과 아픔과 슬픔이 겹겹이 둘러 있어도, 어디를 봐도 출구 하나 없는 것 같을 때도, 하나님의 능력과 개입을 인정하며 사는 건, 곡괭이로 단단한 바위를 내려치는 것처럼 거칠고 힘겹고 아픈 일입니다. 내가 힘쓰고 애써서 원하는 바를 이룬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하나님 덕분으로 인정하고 물러서는 건 우리의 입맛에 안 맞는 일입니다. 이 과정들은 암반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 작업처럼 어렵기 짝이 없습니다. 우뚝 솟은 적의 요새를 향해 목숨을 걸고 올라야 하는 작업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과 감사로 지반을 다지게 되면, 그 위에 세워진 삶은 복과 은혜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자 점점 강성하여 간 다윗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됩니다. 물 긷는 암벽의 가파름이 이제는 나를 지키고, 내 삶을 안위해 줄 좋은 무기가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 삶으로 바쁘고 힘듭니다. 풀리지 않는 일들 때문에, 해결될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 어려움들 때문에 실망하고 낙망하며, 뒤척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이려 발버둥 치며 사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목표한 바를 이루고,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삶의 지반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내가 세워가는 인생의 높이보다 내 삶이 무엇 위에 세워져 있느냐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한 없이 높고 거대하게 세웠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자만심 위에 세워졌다면, 머지않아 내려앉고 주저앉게 되고 맙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쌓아 올린 벽돌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답답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면, 암반 위에 세워진 건물처럼 높이 세워질 것이고, 단단히 세워질 것입니다. 다윗을 붙잡으시고, 날이 갈수록 강성하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도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여정들을 강성하게 해 주십니다.

 

이제 삶의 바닥을 살펴보고, 하나님이 복 주실 만한 삶으로 새롭게 세워가야 합니다. 당장의 성공과 실패보다, 그 아래에 있는 기반이 더 중요합니다. 기반만 단단하면, 앞으로는 더 높고 큰 건물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과 겸손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더 크고 좋은 삶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함으로 하나님이 이끌어 주심을 알고 인정하며, 바른 믿음 위에 삶을 세워감으로써, 넘치는 복과 은혜를 받은 다윗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날이 갈수록 복되고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