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10905)자기 죄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삼하 19장 16-30절)

청명하늘 2021. 9. 5. 14:28

자기 죄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

 

성경: 사무엘하 1916-30(495)

찬송: 484(내 맘의 주여), 426(이 죄인을 완전케 하시옵고)

설교: 2021090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지난 주일에도, 화려하고 다양한 경력을 가진 한 전직 정치인의 인터뷰를 통해, 기대하는 수준에 턱없이 부족한 안목과 철학을 가졌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또 지난주에도, 유명한 교수의 인터뷰가 전해져,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1920년생으로서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102세나 됩니다. 요즘처럼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진 때에도, ‘쉽게보기 어려울 만큼 장수했죠? 여러 방송에서 소개되었고, 몇 년 전에는 유명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보니, 오래 사는 정도가 아니라, 아직도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아주 건강해 보였습니다. ‘고견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안목과 지혜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분이 일본의 한 우익 성향의 언론과 인터뷰했는데, 여기에서 이 교수는 한일관계가 악화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고 소개되었습니다. “김 명예교수는 해방 후 친일파를 배제했던 북한과 다르게 한국은 친일파를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정통성에서 뒤진다는 역사관을 문 대통령이 갖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가 안 좋은 이유가 우리나라 대통령의 잘못된 역사관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지가 채 80년도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끔찍하고, 악랄한 짓을 수없이 저질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죠. 2년 전에는 우리나라가 일본 업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반도체 재료들을 규제했습니다. “우리 물건 안 팔면 너희들 안 망하고 버틸 수 있는지 보자는 식의 치졸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2년이 지나, 오히려 우리나라 업체들이 개발해, 일본의 업체들의 수익만 줄어들었습니다만, 개인간에도 이런 짓을 저지르면, 손가락질 당하고, 욕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와 경제에서 이처럼 비열한 짓으로 문제와 고통을 안겨준 일본이 피해자들과 피해국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사과와 반성은커녕, 아직도 군사력과 경제력을 이용해, 약소국들을 무시하고, 빼앗고 점령하려는 야욕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만행 때문에 우리나라는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앞에서 말씀드린 우리나라 대학의 유명 교수마저, 오히려 우리나라 대통령을 비난하며,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을 탓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악행과 행적은 독일과 철저히 대조됩니다. 2차 세계대전을 일본, 독일, 이탈리아가 중심이 되어 일으켰습니다. ‘전쟁 범죄를 저지른 나라라는 뜻으로 전범국이라 불립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전쟁과 악행들에 대해 철저히 사과하고 배상했습니다. 지금도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합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이 잘 드러납니다.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이들에 대해서는 지위와 나이를 막론하고, 철저히 처벌합니다. 심지어는 나치를 추종하는 모습까지도 처벌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사죄와 배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국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다른 나라에 저지른 만행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욱일기를 자랑스럽게 내세웁니다.

 

전범국이라는 같은 죄와 잘못을 가지고 있는 나라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철저히 반성하고, 배상하는 독일이 잘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가해한 행적을 감추거나 침묵하며, 야욕을 드러내는 일본이 잘하는 것일까요? 이 두 나라가 보이는 대조적인 모습 중에서, 하나님은 어떤 모습을 인정하시고 받아들이실까요? 자기 잘못을 철저히 인정하는 모습을 좋아하실까요? 아니면, 자만심에 가득 차서,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인정하실까요?

 

예수님을 통해 알려주신 참된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살아야 하는 신앙인들은, 그 누구에게도 피해와 아픔을 주지 말아야 하지만, 연약함 때문에 죄를 범하고, 악을 행했다면,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 속 다윗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피신했던 다윗은 반역세력을 무찌르고, 예루살렘 성읍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서둘지 않고, 그 동안 반역에 가담한 사람들이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 줍니다. 반역에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이들에게도 기회를 베풀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의 내용입니다.

 

의도한 대로, 사전 작업이 이루어지자, 다윗은 군사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내용이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다윗이 반역 세력을 이기고 돌아오게 되자, 가장 두려운 시므이가 먼저 다윗을 맞이합니다.

 

사무엘하 16장에서, 다윗이 아들의 반역을 피해 급히 도망할 때, 시므이는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다윗이 반역을 제압하지 못 하고, 다시 왕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 할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므이의 계산이 어긋났습니다. 절대 불리할 거라는 다윗이 반역 세력을 무찌르고, 다시 왕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었던 사람이 왕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시므이로서는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후회해봤자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살 길은 오직 하나, 다윗의 자비와 용서뿐입니다.

 

피난길에 오를 때, 다윗이 시므이의 저주를 참은 까닭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비참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반란을 피해 궁을 버리고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끄럽고 비참한데, 반란의 주범이 자신의 아들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붓던 시므이의 비겁함마저 지나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싸움에서 이겼고, 다시 왕으로 돌아옵니다. 시므이를 본보기로 삼아 처벌함으로써, 나라 기강을 바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다윗 곁에 있던 장군 하나가, 시므이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람을 저주했으니, 용서를 구해도 죽이는 게 마땅하다고 조언합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부하의 의견을 거부하고, 시므이를 살려 줍니다.

 

다윗이 가장 어렵고 비참한 상황에 처했을 때를 악용해, 부당한 저주를 퍼부었다가, 상황이 바뀌자 용서를 비는 시므이를 용서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21절 말씀처럼, 단지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는 좋은 날이기 때문일까요?

 

다윗의 예상 밖 행동은 뒤에서도 이어집니다. 다윗 전의 왕인 사울 왕가는 므비보셋 하나만 남았습니다. 다윗에게 참된 우정과 희생을 베푼 요나단의 아들로서, 다리를 심하게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고, 재산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피난을 떠날 때, 므비보셋은 오지 않고, 그의 시종인 시바만 여러 음식을 준비해서 바쳤습니다. 므비보셋은 본래 자기 할아버지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자기에게로 올 거라는 기대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가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다윗은 그 자리에서 모든 재산을 시종인 시바에게 주겠다고 하고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귀환하는 중에 므비보셋이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내가 피난할 때는 함께하지 않더니, 내가 궁으로 돌아오자 맞이하러 왔느냐?”며 쏘아붙입니다. 므비보셋은 그간의 정황을 말합니다. 자신은 다윗과 함께 떠나려 시종에게 말했는데, 시바가 자신을 속이고, 왕에게 거짓으로 알렸다는 것입니다. 전후 사정을 보면, 므비보셋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반역을 통해 자신이 왕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갖지도 않았습니다. 시종인 시바가 므비보셋과 왕까지 속이고, 모든 재산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모든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짓을 꾸미고, 속여 재산을 차지한 시바를 벌하고, 모든 재산을 다시 므비보셋에게 주는 게 맞습니다. 거짓을 벌하고, 다윗을 향해 끝까지 지조와 충성을 보인 므비보셋을 칭찬하고, 보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다윗은 엉뚱하게도, 므비보셋과 시바가 재산을 반씩 나누라 합니다. 거짓을 꾸며 속인 시바를 벌하지도 않고, 모든 재산을 빼앗지도 않고, 절반을 차지하라 명령합니다.

 

저주를 퍼부었던 시므이를 살려주는 일도 이상하고, 시바와 므비보셋이 재산을 반씩 나누라는 결정도 이상합니다. 자비와 용서라고 보기도 어렵고, 공과에 따라 보상, 배상한다는 형평성의 원칙에도 맞지 않습니다. 혼란스러운 나라의 기강과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하는 왕으로서도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사무엘하 1611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는 말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시므이를 이용해 자신을 벌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그러나 하찮은 사람으로부터 저주와 조롱을 당할 정도로 큰 죄를 지었음을 인정합니다. 이런 마음이었기에, 왕의 자리로 돌아오는 자리에서 마주한 시므이를 제거하지 않고 살려둡니다.

 

반란이 일어나고, 피신하고, 시므이로부터 저주를 받는 모든 원인은 결국 다윗의 죄 때문입니다.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와 간음하고, 이를 감추려 충성스런 부하까지 죽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욕망이 잉태해서 간음죄와 살인죄를 낳았고, 이 죄가 더 커져서 죽어도 마땅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 죄를 벌하시려, 아들 압살롬을 반란의 도구로 이용하셨습니다. 시므이를 저주의 도구로 쓰셨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빼앗으려 거짓을 행한 시바에게 재산 절반을 허락한 이유도 마찬가집니다. 중간에서 속인 시바의 거짓을 책망하고,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재산을 모두 돌려주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시바같은 사람이 자신을 쉽게 보고, 속일 만큼,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먼저 인정합니다. 자신이 죄를 지어서, 가정에 말로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죄가 생겼고, 이게 원인이 되어 시바처럼 간사한 사람이 자신을 속여도 할 말 없는 처지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제 왕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죄를 저지른 이들을 책망하고, 나라의 기강을 잡으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이런 자세보다, 오히려 자신의 추악함과 연약함을 철저히 인정합니다. 구차한 변명을 내세우지도 않고, 남 탓으로 돌리지도 않습니다. 남을 정죄하기보다는, 모든 불행과 고통이 자신 때문으로 여깁니다.

 

이처럼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하고, 죄를 인정하는 사람은 다시 비슷한 죄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고통과 비극이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겪었으니, 다시는 죄의 근처도 가지 않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를 겸손으로 여기시고, 용서하십니다.

 

다윗의 반성과 회개를 본받아야 합니다. 죄와 멀어질수록 좋지만, 그러나 다짐에도 불구하고, 죄의 유혹은 거세고, 우리 모두는 유혹을 이기지 못 하고,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보다, 싫어하시는 일을 더 많이 행하곤 합니다.

 

이럴 때, 거창하고 복잡하게 죄를 덮고, 감추려는 본능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멋지고 강하고 좋은 모습만 드러내려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반성도 아니고, 회개도 아닙니다. 다시 죄와 욕망이 유혹하면, 죄의 무서움, 또 그로 인한 고통을 잊고, 죄에 넘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기억하고 인정할수록,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습니다. 죄가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 얼마나 큰 고통과 절망을 낳게 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복어라는 생선이 있습니다. 복어는 뛰어난 맛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대부분 생선은 아무나 원하는 대로 조리할 수 있지만, 복어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가져야만 요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복어의 맛 때문인지, 자기 지식과 실력을 믿고 복어를 요리해 먹었다 병원에 가고, 심하면 사망하는 사고가 간혹 일어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복어 요리를 특별히 조심할까요? 복어를 먹고 위험 지경까지 간 사람입니다. 복어를 좋아해,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요리해 준 음식을 쉽게 먹었던 사람도, 독이 가진 위험성과 그 고통을 직접 겪게 되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좀 배가 아픈 정도면 다시 먹으려 할 수도 있겠지만, 사경을 헤매는 정도까지 겪었다면, 다시는 복어를 먹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이 주는 고통을 크게 겪고, 잘 알수록, 복어가 주는 유혹을 거부하는 힘이 커집니다.

 

죄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죄가 주는 잠깐의 이익이나 쾌락 때문에 죄를 범했다가도, 그 결과가 주는 고통이 클수록, 상처가 깊을수록 죄를 멀리하고, 반복하지 않게 됩니다. 다윗처럼 자기 죄가 어떤 비극을 만들어내는지를 겪고, 알고, 인정할수록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힘이 커집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은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 죄 때문에 나라 전체에 엄청난 고통과 재앙이 내렸음을 인정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나의 죄 때문에, 나와 가족과 이웃의 삶까지 망가뜨릴 수 있음을 알고, 인정할수록, 같은 죄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실패와 고통에서 멀어지게 되고, 성공과 평안에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왕으로서 최소한의 체면까지 버리고, 자기 죄와 추악함을 인정함으로써,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실함을 회복한 다윗의 모습을 기억합시다. 모든 죄의 모양이라도 버리고 멀어져야 하나, 이미 저지른 모든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회개하고, 철저히 돌아섬으로써,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가운데, 날로 복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