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밑거름이 되십시오
성경: 사무엘하 19장 31-39절(구 497쪽)
찬송: 490장(주여 지난 밤 내 꿈에), 445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설교: 2021091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여러분. 사주, 운명, 팔자를 믿습니까? 교회에서, 그것도 설교 시간에 이를 묻는 일 자체가 이상할 정도로, 기독교에서는 미래를 알고자 점을 치고, 사주와 운명 등을 믿고, 행하는 모든 행위를 철저히 금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물어야 할 만큼, 신앙인들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진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연말, 년초가 되면, 앞날을 점치고, 사주와 운명을 풀어준다는 무속인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는다고 하죠. 그런데 통계를 낼 수 없지만, 이런 무리에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상과 이방신을 찾고, 점을 치는 일을, 철저히 금하시고, 그 무엇보다 싫어하시지만, 그럼에도 이를 찾는 까닭이 있겠죠. 믿음의 수준이 성숙하지 못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불어 지금의 상황이 어렵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죠. 무속인을 찾거나, 점을 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고 해서, 미래를 알고자 하는 잘못된 욕망을 모두 절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신앙인들 중에서도, 기도의 능력이 있다는 이들을 찾아다닙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능력 있는 사람의 축복 기도를 받으면, 잘되고,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으로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복과 기도응답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결정하신다는 사실을 보면, 절대 성숙하고 좋은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칫, 이름만 다를 뿐, 사실은 무속인을 찾고, 점을 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묻고 듣고 말하는 대상과 방법과 이름이 다를 뿐, 앞날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나, 기도 응답을 잘 받는 특별한 방법이나 수단이 있다며 의지하는 마음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 삶의 모양과 방향이 정해져 있고, 이를 풀고 알 수 있다는 게 사주와 운명입니다. 앞날을 확인하고, 대비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시작을 알기 어려울 만큼 오래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힘과 능력은 부족한데, 자연재난, 예기치 못 한 사고 등 어려움은 많기 때문입니다.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인간은 셀 수 없이 많은 방법들을 이용합니다. 별을 보고도 점을 치고, 생년월일, 카드를 뽑거나 쌀을 흩뿌린 후 나오는 모양으로 앞날을 점치기도 합니다. 거북이 등껍질을 불로 지져서 갈라진 무늬로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얼굴의 생김새로 점을 치는 관상, 손금으로도, 머리 모양새로도 점을 치는 등 셀 수 없이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되고, 또 신앙인들마저 쉽게 빠져든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그만큼 유혹이 크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을 이용해 풀이했는데, 계속 틀린다면 더 이상 이용되지 않을 테니, 풀이가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맞지 않다고 증명하는 일도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만약, 이런 모든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으면,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KBS [추적 60분]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본방송은 2014년에 있었고, 얼마 전에 인터넷에 다시 올라와서 시청하게 되었습니다.(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s48ov7lzFk)
사주와 운명과 팔자가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이 어려운 까닭은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이 효과가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투약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비교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각자 태어난 시간과 장소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 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채 한 살이 되기 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산 이들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동생은 우리나라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언니는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두 사람 모두 청소년기가 되어서야 쌍둥이었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합니다.(영상)
영상을 통해 보신 바처럼, 쌍둥이 동생은 우리나라에서 무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쌍둥이 언니는 미국에서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같은 연월일시에 태어났는데,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인 까닭이 무엇일까요?
영상 전체를 보여드리지 못 합니다만, 내용 속에 자라온 환경 이야기가 나옵니다. 동생은, 어려운 형편에서 자랐습니다. 쌍둥이 중 언니를 외국으로 입양 보내야 할 만큼 가난했습니다. 또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이후에 흔히 무속인들이 말하는 ‘신병’에 걸렸고, 살기 위해 무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언니는 좋은 집안에 입양되었습니다. 입양된 집안의 할아버지가 의사였고, 삼촌과 이모도 의사였습니다. 본인도 의사가 되려 했지만, 수술하는 과정들이 적성에 안 맞아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태어난 시에 따라 삶의 방향과 수준이 결정되었다면, 같은 날,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 쌍둥이 형편이 비슷해야죠. 하지만, 누가 봐도, 비슷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크고 분명합니다.
이처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 까닭과 원인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주위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당이 된 동생이 자란 환경에는, 분명 무당과 관련된 사람이나 운명이나 사주 등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렵고 힘들 때마다, 주위에서 많이 보고 듣는 바를 기준으로 삼아서, 결국 무당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란 언니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입양된 집안은 부유했지만, 그곳에서 피부색이 다른 사람으로 사는 과정이 절대 쉬울 리 없습니다. 고민되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 주위에서 자주 보고 듣는 일들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주위에 열심히 공부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모습이 쌍둥이 언니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이를 보면, 인간은 태어나는 시간에 따라 정해진 길을 걷는 존재가 아니라, 주위에서 많이 듣고, 보는 것에 따라 영향을 받고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난 시간이나, 관상이나 손금에 따라 살아가는 방향과 모양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방향과 모양에 따라 삶의 수준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부모의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닮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자녀들의 삶을 행복하고, 사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에게 모범이 되며, 복의 씨앗을 심어주며 살아야 합니다.
자녀들과 후손이 모두 잘되고, 윤택하게 살기 원하죠? 복되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살기 원하죠? 이를 위해 어려서부터 열심히 가르치기도 하고, 좋은 직업을 갖도록 일찍부터 준비시키기도 합니다. 먼저 살아본 어른으로서, 자녀손에게 하고 싶은 말들, 알려주고 싶은 사실들이 참 많습니다. 어렸을 때는 모르고, 경험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 안목과 지혜가 있습니다. ‘좀 더 일찍 깨달으면, 삶을 더 윤택하고 행복하게 만들었을 텐데...’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른, 부모의 바람대로 자녀들이 모두 잘되고 성공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렇지 못 한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부모가 평생 피땀 흘리며 물려준 재산을 탕진하거나, 부모가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가르쳐 이루어 놓았더니, 자녀가 성공한 후 부모의 은혜를 잊고, 떠나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가장 좋은 교육법이라고 말합니다. 당장에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효과 좋아 보이지만, 그러나 그 효과는 잠깐에 불과합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려면,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러나 삶을 유익하고 복되게 하는 좋은 기준과 방법이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와 후손에게 당장 좋은 것을 주는 일보다, 인생의 지혜와 안목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많은 재산을 넘겨주는 것보다, 성공이 보장된 길을 알려주고, 삶으로 직접 모범을 보여주는 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들에게 지혜와 안목과 성공의 기반을 제공한 아버지, 그리고 이로 인해 특별히 선택되고 복되게 사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사무엘하 17장에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마하나임으로 도망했을 때, 몇 사람이 다윗의 무리들을 대접했습니다. 급히 성읍을 떠나느라, 제대로 된 음식을 준비 못 하고, 험하고 먼 길을 가야 했으니, 배고프고 지칠 수밖에 없겠죠. 그럴 때 예상하지 못 한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음식을 받았으니, 또 얼마나 반갑고, 고맙고,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렇게 다윗은 꼭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은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 할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바르실래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함께 가자고 합니다. 왕인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데려간다는 의미는, 권력과 재산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바르실래는 80세의 고령이어서 거부합니다. 대신, 자기 아들 김함을 부탁합니다. 다윗도 바르실래의 이야기대로, 김함을 데려갑니다.
다윗은 김함을 데려가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여러 유언을 남기는데, 그 중 하나가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고, 왕의 상에서 먹게 하라(왕상 2:7)는 당부입니다.
성경에서 김함의 이름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나오는 3번이 전부이고, 예레미야 41장 17절에서 ‘게롯김함’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는 ‘김함의 여인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다윗이 은혜를 갚기 위해 김함에게 땅을 하사하고, 김함은 그곳에 여인숙을 짓고 운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레미야서는 약 400년 이후의 기록이니, 김함에게 내려진 땅은 최소 400년 이상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함의 행적은 성경에 상세하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도와준 사람도 김함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입니다. 물론 아버지가 고령이라, 아들 김함도 함께 수고했겠지만, 그럼에도 바르실래의 이름이 기록되었음을 보면, 아들보다 아버지 바르실래가 주도해서 다윗을 도와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르실래보다는 그의 아들인 김함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르실래보다는 아들인 김함이 더 안락하고, 명예롭고, 복되게 살았습니다. 바르실래의 이름보다, 아들 김함의 이름이 수백 년 동안 유지되고 기억되었습니다.
김함이 복받고, 잘되고, 성공한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본인 자신이 애쓰고 베풀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버지가 덕과 은혜를 심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인 바르실래가 지혜와 사랑의 씨앗을 심었고, 그 열매를 아들인 김함이 받았습니다. 김함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함께했으나, 그러나 김함은 자신이 심고 뿌린 분량에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왕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던 김함이 대를 이어 왕의 식탁에 함께 앉아 식사하는 영광을 누린 까닭 역시, 아버지 덕분입니다.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여관을 짓고, 많은 사람에게 쉼터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도, 김함 자신의 수고보다는 아버지의 희생 때문입니다.
이를 보면, 자녀와 후손의 삶을 복되고, 부유하고, 은혜롭게 할 수 있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른이 젊은이들에게 삶으로 모범을 보이는 길입니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자녀와 후손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와 선조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습니다. 부모와 어른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자녀손에게서 거의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부모와 어른이 믿음과 선행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수고와 믿음의 열매를 지금 얻지 못 한다며, 씨 뿌리는 수고를 게을리 하면, 자녀들이 이후에 거두고 누릴 게 없습니다. 고되고 힘든 시간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에 따라, 자녀와 후손의 삶이 바뀌는 게 아니고, 지금 우리가 심는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믿음과 선행과 지혜를 심으면, 후대에 믿음과 복의 열매를 얻습니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방향과, 행하는 모습들에 따라, 사랑하는 이들의 삶의 모양과 규모와 방향이 달라집니다.
바르실래는 많은 재산을 가졌습니다만, 그러나 이로 인해 아들 김함이 복되고 성공하고 이름이 높아진 게 아닙니다. 다윗 왕이 살던 시대, 이스라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큰 부자가 어디 이 가문뿐이었겠습니까? 수많은 부자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바르실래 가문과 자녀가 특별한 선택과 은혜를 받은 까닭은, 바르실래가 아버지로서 지혜와 높은 안목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지혜롭게 분별하고, 믿음과 사랑을 심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수고와 헌신과 믿음의 수고를 그 아들 김함이 복의 열매로 거두었고, 성공과 명예와 존귀함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고정된 틀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각자의 믿음과 수고에 따라 모양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주 보고, 듣는 모습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고 달라집니다. 선하고 의로운 모습을 자주 접하면, 선과 의를 닮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에 따라 자녀와 후손의 방향과 내용이 크게 달라집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과 사랑과 헌신으로 모범을 보여야 하는 까닭입니다.
바르실래의 헌신과 지혜를 통해 아들 김함이 더 큰 영광과 기쁨을 누렸음을 기억하며, 자녀와 후손이 잘되기를 바라는 대로, 지금 삶과 믿음으로 씨앗을 뿌림으로써,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고, 자녀와 후손으로 하여금 더욱 복되게 살 수 있도록 믿음의 초석을 놓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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