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곧 복의 영역입니다
성경: 열왕기상 8장 54-61절(구 527쪽)
찬송: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28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설교: 2022051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예배에는 여러 순서가 들어 있습니다만,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내용, 사람이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보통은, 예배 전체가 별다른 차이가 없이 진행되죠. 예배 시작과 마지막 순서에 일어서는 모습조차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처음부터 끝까지 앉은 채 예배가 진행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예배 속에 담긴 세 가지 종류를 구분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단상 위에 강대상이 두 개를 두는 교회들이 있는데, 예배 중에 이를 이용하는 순서를 달리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순서일 때 이용하는데, 쉽게 ‘주강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순서이거나, 교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순서에 사용하는데, ‘부 강대상’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부 강대상’을 사용하는 시간들에는, 기도, 찬양, 성시교독, 헌금, 신앙고백, 성도의 교제, 교회소식 등의 순서가 포함됩니다. 이 순서들은 모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내용들입니다. 기도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립니다. 찬양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립니다. 헌금과 신앙고백도 모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순서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순서에서는 인도자가 부 강대상에 서게 됩니다.
주 강대상에서 이루어지는 순서로는 성경봉독과 설교와 축도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순서들입니다. 예배 인도자가 설교까지 담당한다면, 다른 순서들은 부 강대상에서 하다가, 성경봉독, 설교와 축도 순서가 되면, 주 강대상으로 옮겨서 합니다. 한편으로는 ‘왜 번거롭게 자리를 오가면서 예배를 드리냐?’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단순히 예배에 앉아 참석했다는 데에 가치를 두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예배의 형식이 고정되고 단순해졌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꼭 지켜야 하는 모습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시간에 맞춰 와서 자리에 앉아 있으면, 모든 순서가 자동으로 진행됩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방식은 다양해지더라도, 단순히 예배 관람자에 그칠 위험이 커졌습니다. 실제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꼭 갖추고 해야 할 모습은 없기에, 그저 정해진 시간만 보내면 예배를 드렸다 착각합니다.
하지만 예배는 공연이 아닙니다. 공연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공연은 돈만 내면, 가만히 앉아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내용을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이를 드러내고, 또 주인의 뜻을 듣고, 주인의 뜻대로 살겠다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순서를 달리하는 이유와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또 성도들이 잘 이해하면, 강대상을 두 개로 나누어 예배 순서를 구별하는 모습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를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주시는 순서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순서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순서 속에도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음을 감안하면, 예배 중 어느 순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구약시대에는 반드시 흠이 없는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병이나 장애가 생겼거나, 혹은 다른 이상이 있는 제물로는 드릴 수 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집니다. 예배 속에 있는 순서들은 하나 빠지지 않고 거룩합니다.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거나 거부한다면, 이는 흠이 있는 제물로 드리는 제사와 같습니다. 흠이 있는 제물로 드려진 제사는 하나님께서 거부하시 듯이, 예배의 일부 순서를 인정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예배의 일부 시간만 드릴 수밖에 없다면, 어떤 시간에 맞춰야 할까요?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기도와 헌금 순서가 좋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주시는 설교 시간이 좋을까요? 이도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복을 주시도록 하는 마지막 축도일까요?
세 가지 모두 나름의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서 큰 복을 받은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단을 쌓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믿음의 제사를 통해 가장 큰 복을 받았다면, 지금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역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찬양과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설교가 가장 중요하다는 설명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예배를 시간으로 구분해도 설교 시간이 가장 길죠. 교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주일낮예배 시간을 60분으로 잡으면, 설교 시간은 25-30분정도입니다. 예배 시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합니다.
설교가 단순히 성경 봉독 이후에 목회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성경 속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전해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록된 시기와 배경은 지금과는 차이가 너무 큽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반드시 해석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읽고,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뜻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유나 분유를 먹이죠. 조금 더 자라면 이유식을 먹입니다. 이유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시간도 걸리고 귀찮죠. 그럼에도 복잡하게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아기가 음식을 먹고 소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기들한테 아무리 비싸고 맛있는 고기를 먹여봤자, 오히려 아기의 건강만 해치게 됩니다. 채소가 건강에 좋다고 해도, 아기들은 먹고 영양분으로 바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채소를 그대로 먹이지 않습니다. 이유식을 만드는 과정이 귀찮고 힘들어도, 아기들의 소화 능력을 생각해야 합니다.
설교는 마치 이유식과 같습니다. 성경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글씨로 읽을 수는 있지만, 그러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훨씬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성경을 수없이 읽어도 엉뚱하게 해석하는 이들이 많은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기록된 배경과 역사를 배운 목회자들이, 성경과 신학 지식과 능력이 부족한 성도들이 듣고 이해할 만한 이유식으로 풀어 줍니다. 이를 ‘설교’라 합니다.
설교를 통해, 수천 년 전 먼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개신교가 말씀 중심으로 예배가 변화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배 순서 중에 축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도 많죠. 축도를 들어야만 예배가 완성된다고도 합니다. 축도가 예배의 마지막 순서에 들어 있고, 마무리되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인들은 다른 시간은 엉뚱한 생각에 있거나 관심이 없다가도, 축도 시간만은 집중하고, “아멘”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순서, 축도 세 가지를 교인들이 좋아하기로 순위로 매긴다면, 당연히 축도가 첫 번째입니다. 교인들의 가정이나 가게를 가면, 축도문을 달아 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민수기 6장 24-26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아론의 축도’나 ‘구약의 축도’로 불립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는 ‘신약의 축도’이자, 지금도 예배에서 이용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한 축도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백성들을 모아 축제를 열며,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앞의 두 축도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큰 복과 은혜를 덧입었던 솔로몬이었으니, 백성들 모두가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바라는 소원과, 동시에 당부가 담겨 있습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두 가지로 들 수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의 삶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태어난 시기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향과 방법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한 마디로 한다면, ‘복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곧 복이라 여기며, 돈을 향해 인생을 바칩니다. 또 누구는 건강을 가장 앞세우며 삽니다. 건강한 삶이 가장 복된 모습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내용이 가장 큰 복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믿음이 커지면, 돈과 건강까지 뒤로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솔로몬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가 넘쳤습니다. 또 오래 사는 복도 받았고, 게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까지 누렸습니다. 모든 복을 받은 만큼, 복 받는 방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솔로몬은, 모든 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합니다. 본문 56절에서는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고 합니다. 60절에서는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복을 받고, 그 누구보다도 넘치는 복을 받은 솔로몬은 하나님만이 만복의 주인이심을 알려줍니다. 하나님도 복의 주인이시라는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뜻대로 복을 주시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십니다. 복을 주시고픈 이들에게는 복을 주시고, 원치 않으시면 어떤 복도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복의 주인이시라는 말은, 사람이 아무리 많은 축복을 하고, 또 받아도, 그 축복이 복으로 이뤄지는 여부는 오직 하나님만이 결정하신다는 뜻입니다.
솔로몬의 축복 속에 담겨 있는 두 번째 중요한 의미는, 복을 계속해서 누리는 길을 알려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복을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임을 인정하며, 그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과 율법을 지키며 사는 길입니다.
요즘 전염병과 관련해 60세 이상 되시는 분들은 4차 백신까지 접종하도록 권장하고 있죠. 백신이 처음 나왔을 때는, 한 번만 맞으면 해결된다 기대했는데, 점차 2차 이야기도 나오고, ‘부스터 샷’이라는 말로 3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고령자를 중심으로 4차까지 맞으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백신의 유효 기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백신을 맞은 후 항체가 유지되는 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겨우 몇 개월만 지나면 약효가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전염병의 고통이 크고, 오래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도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일부 이단에서는, 한 번 인정받으면, 어떻게 살아도 복과 구원을 받는다 말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인정하시는 선택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포기하시거나 어기시는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을 복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맺은 약속은 파기됩니다. 더 이상 계약으로서 효과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계속해서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과 뜻대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본문 58절에서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라고 축복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영원토록 복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살아서 바라는 대로 복되게 살라는 기도이자 당부입니다.
우리 모두는 복 받고 살기를 원합니다. 이 때문에, 예배 속 축도를 좋아하고, 축복의 말씀이 담긴 성경 구절을 좋아합니다. 또 좋은 말을 많이 할수록 복 받을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온갖 복을 받고, 누리고, 방법을 체험한 솔로몬의 당부는 좀 다릅니다. 축복을 통해 복을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통해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셔서 주인으로서, 뜻하신 바대로 이끄시는 바처럼, 복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의 주인이시기에, 원하시는 이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복의 주인으로 삼고, 말씀과 계명과 뜻대로 살아가는 자녀에게 복 주신다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는 복을 받고, 영원히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있습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하며 전해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복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여, 복과 은혜를 누리되,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순종하여, 복의 영역 안에 영원토록 머무는 자녀들 모두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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