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 되어야
성경: 열왕기상 8장 22-53절(구 526쪽)
찬송: 315장(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212장(겸손히 주를 섬길 때)
설교: 20220508.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은 은혜와 복을 빕니다.
한때 신앙생활을 하다 중도에 그만둔 분들이 많습니다. 조사하지 못 해서 그렇지, 우리의 계산보다 훨씬 많을 듯합니다. 우리나라는 여러 종교가 있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바꿔 보면, 기독교 신앙을 가졌다는 의미는, 그만큼 특별한 선택이고, 어떤 계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어렵게 선택한 믿음을 버리고 돌아설 만한 특별한 이유와 계기가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서 돌아서게 된 이유도 개인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겠지만, 교회가 매매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더 이상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건물과 땅이 매매되는 일은 흔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건물과 땅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로 충격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교회 매매가 신앙을 포기하고 돌아설 만큼 충격을 줄까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 건물 자체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연세가 많은 교인들 중에는, 교회와 관련된 모두를 특별하게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교회에서 받은 교육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 신앙과 관련된 모두를 특별히 여겨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심지어는 매주 나오는 주보조차도 버려서는 안 되며, 모두 정성스레 모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나오는 주보조차도 특별하게 여겨야 한다면, 다른 물건들은 어떨까요? 교회 안에 있으면, ‘성물’ 즉 ‘거룩한 물건’처럼 여기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피아노가 교회 밖에 있으면, 그냥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지만, 교회 안에 들어오면, 함부로 만지거나 치면 안 된다 했습니다. 마이크가 교회 밖에 있으면, 단지 소리를 크게 해주는 물건에 불과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마이크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다며 만져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지만, 차마 버리지 못 해 자리만 차지하고 먼지만 쌓이는 물건들이 많습니다. 넘치는 화분이 그렇고, 누군가가 헌물한 강대상이 그렇고, 누구의 이름으로 구비된 의자가 그렇습니다.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물건과, 순서와 정보를 담은 주보마저 이처럼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면, 교회 건물은 말할 필요가 없죠. 신앙인들 대부분 교회를 ‘성전’으로 부르곤 합니다.
교회 안에서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물건마저도 특별하다 여기는데, 교회가 일반 건물처럼 돈을 주고 사고판다고 하니 충격을 받습니다. 교회 매매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일반 거래와 다른 점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여기에서부터 혼란스러워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원하고 가르친 이들이 누구일까요?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교인 스스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죠. 거의 틀림없이 목회자가 가르치고 세운 기준들입니다. 신앙생활의 기초와 기준을 교회 건물과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기구들에 두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거룩하고 특별하다고 하면서도, 교회 매매를 할 때는 세상 기준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라 했던 교회가 사고파는 과정에 이르면, 돈이 목적이 되고 기준이 됩니다. 거룩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고, 돈을 향한 욕심을 줄이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쪽으로 나아가려 하는 경우는 지극히 희박합니다.
이 정도로도 시험에 들게 할 만큼 충격인데, 너무 부끄럽게도 교인 수에 따라 이루어지는 매매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교회 땅과 건물의 가치가 5억이라 하면, 거기에 교인 수에 따라 추가 금액이 있습니다. 교인 100명이면 1억 원을 더 받을 수 있고, 500명이면 5억 원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또 교회가 세워진 곳의 생활수준에 따라 금액이 달라집니다. 신앙인으로서, 목사로서 너무 부끄럽고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하물며 교회와 신앙인들로부터 세상과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순수한 신앙인들에게는 얼마나 실망스럽고 무섭겠습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목회자들과 교회에 환멸을 느껴 교회를 떠나도 이해될 만하죠.
그래서 교회가 가지는 가치와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향하는 자리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함께하는 자리가 되고, 하나님의 눈에 맞는 곳이 되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피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이 길어서 한 절씩 의미를 살피지는 못 하고,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본문 27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는 말씀을 통해, 성전은 하나님도 아니고, 무조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규모와 능력과 가치로 나눈다면, 성전이 하나님을 포함시키지 않고, 하나님이 성전을 포함하십니다. 성전 없는 하나님은 전혀 지장이 없지만, 하나님이 없는 성전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성전은, 모양과 쓰임새가 조금 다를 뿐, 궁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 세상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하나님을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성전도 마찬가집니다. 성전이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졌다 하더라도, 그곳에 계시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오직 하나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함께하시고, 원치 않으시면 외면하십니다. 선택과 결정권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만약 선택과 결정권이 성전 자체에 있다면 정반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무조건 성전 안에 함께하셔야 합니다. 성전이 지어질 때마다 하나님은 의무적으로 그곳에 함께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늘처럼 끝없는 공간도 하나님을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인간이 만든 건물 안에 하나님께서 무조건 속하시겠습니까? 성전이 하나님을 포함시킬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성전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성전을 받아들이실 수도 있고, 외면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 자체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상징하는 곳이지, 성전 자체가 하나님일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본문 29절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를 통해서,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통해 비로소 온전해지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 필요한 부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모양에 꼭 맞는 돌도 있어야 하고, 언약궤를 보관하는 지성소가 계획대로 지어져야 합니다. 제사할 수 있는 자리와 여러 기구들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하게 지어지고, 필요한 모든 도구와 기구가 있어도,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성전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그저 성전처럼 보이는 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전이 사람의 손을 통해 지어진 건물과는 달리, 거룩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어야 합니다. 성전의 완성은, 계획과 설계에 따라 건물이 세워지는 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비록 그곳이 작고 초라한 곳이라도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단순한 건물에 불과합니다. 그곳에 아무리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그곳에 아무리 많은 제사와 헌금을 바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와 수술을 받죠. 병원에는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공부하고, 훈련을 잘 받은 의사가 있습니다. 또 의사를 돕는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면, 진찰과 여러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러나 병원 자체가 무조건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병원이나 의원이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그곳에 의사가 없으면 어떻습니까? 그곳은 병원이나 의원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혹 ‘병원’이나 ‘의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하더라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크고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의사가 없으면, 그곳에서 치료와 수술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전에 필요한 모든 시설과 도구와 공간이 완벽하게 갖추어졌어도,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성전이 되지 못 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와 생명도 역시 얻을 수 없습니다.
본문 23,24절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는 말씀을 통해서, 성전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보응하심을 믿는 이들이 모이고, 기도하고, 은혜를 받는 곳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란, 언제 어디에서나 하신 말씀을 잊거나 외면하시지 않고, 그대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흔히 쓰는 표현으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믿을 만’합니다. 시간을 알 수 없는 창조 때의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구약 아브라함과 다윗에게도 그대로 지켜졌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지내실 때도 역시 하나 어긋나지 않고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창조시대, 구약시대, 신약시대에 그대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다음 시대에도 변질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신앙인들에게 이만한 복과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지키시고, 복과 은혜와 생명으로 인도하셨으니, 이만큼 큰 이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무조건 기도하고, 제사하는 자녀에게 복 준다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웃에게 범죄하면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여러 재앙과 고난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복과 은혜와 평안을 받는 이유와 결과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벌과 재앙과 징벌을 받는 이유와 결과에서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통해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지금 향해 나아가고 있는 길과 방향이 어떤 길인지를 확인했습니다. 삶에 따라 복과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기준에 자기 삶을 비춰보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잘못된 길이면, 고통의 길에서 돌아서 복과 생명으로 돌아섰습니다.
성전이 교회와 완전히 같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성전이 보이는 특징들은 교회에서도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교회 건물 자체가 거룩하지도 않고, 교회라 해서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하시지도 않습니다. 다만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건물이 세워지고, 여러 시설물이 갖추어지고, 교인들과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완성은 오직 하나님이 함께하시는지 여부 하나만으로 결정됩니다. 아무리 크고 멋진 교회를 세우고, 그곳에서 아무리 많은 교인들이 기도와 예배가 드려도,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없으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전해지고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래서 교회가 됩니다.
교회에서 복과 은혜와 평안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하고 예배하면 무조건 복과 생명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통해 결정한다 약속하셨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복과 평안을 약속하신 길대로 우리가 삶을 채우면, 변치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에 따라 복과 은혜를 누립니다.
교회와 이 속에 있는 여러 물건을 아끼고, 정성을 들여 가꾸는 일도 귀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안에 있는 물건에 목적을 두면, 어느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건물로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데도, ‘성물’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쓰레기를 보물처럼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볼 때마다 기도와 예배를 기억하며 드려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온전한 교회가 되지 못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약속하신 말씀과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약속하신 바를 변치 않고 이루어 주심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삶을 바꾸어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주님의 약속대로 기쁨과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 바대로,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와 약속을 믿고, 이 말씀에 따라 매일 수고하고 애씀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와 평안을 날마다 누리며 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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