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20501)약속의 온전한 증거인 성전(왕상 8장 14-21절)

청명하늘 2022. 5. 1. 14:31

약속의 온전한 증거인 성전

 

성경: 열왕기상 814-21(524)

찬송: 390(예수가 거느리시니), 546(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설교: 2022050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산을 오르내리기는 무척 힘이 듭니다. 산을 오를 때 힘든 이유야 당연한데, 내려올 때마저 힘든 까닭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체력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과정이 더 힘들긴 하지만, 초반이라 힘이 남아 있습니다. 힘이 있으니, 어느 정도 힘든 산길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이미 지치고 힘듭니다. 지쳐 있어서, 다리는 떨리고, 걸음을 내딛기가 어렵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운 까닭은 단지 체력 때문은 아닙니다. 이에 못지않게 마음가짐의 영향도 아주 큽니다. 산에 오르기 위해 각오하고 있습니다. 평지보다 힘들고 어렵다는 계산이 되어서, 웬만한 험한 길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마음이 급해진 데다, 길은 빨리 끝나지 않아서 더 힘들어 합니다. 이렇게 지치고 급할 때, 갑자기 오르막길을 만나면, 몇 배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작은 산이야 오를 때는 모두 오르막길이고, 내려올 때는 내리막길이죠. 하지만 산이 좀 클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상을 향해 가는데, 중간에서 갑자기 한참을 내려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하산길인데, 갑자기 오르막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중에, 잠깐 내리막길을 만나면 반갑고 기분이 참 좋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서 잠깐 오르막을 만났을 때는, 그 어떤 때보다 힘듭니다. ‘이 길이 내려가는 길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고, ‘좀 더 편하고 쉬운 길로 가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생깁니다.

 

하지만 산을 오가는 과정에서 실망하지 않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산을 여러 번 올라 잘 아는 경우입니다. 작은 산이야 한 번만 올라도, 웬만한 길과 형태를 알 수 있습니다만, 지리산처럼 큰 산은 경우가 좀 다릅니다. 산을 가로질러 가려면, 젊은 사람도 이틀은 꼬박 걸어야 할 만큼 높고, 크고, 넓습니다. 그만큼 몇 번 올랐다고 해서, 산을 세세히 알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큰 산에서는 조난 사고가 간혹 일어납니다.

 

그런데 같은 산을 매일같이 오르는 사람들은 산의 구석까지 잘 압니다. 산에 있는 대피소에서 일한다든지, 아니면 산을 좋아해 셀 수 없이 자주 오르는 사람들은 산의 지형과 크고 작은 길을 모두 알겠죠. 어디를 지나면, 다음에 어느 길이 나오는지를 잘 아니, 오르는 중에 만나는 잠깐의 내리막길에도 방심하지 않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중에 만나는 잠깐의 오르막길에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산을 자주 오르지 못 해도, 산의 세부 지도를 보고, 지형과 길을 철저히 살피고 기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산을 많이 오르지 않았어도, 산의 모양과 높이와 길들을 잘 기록해 놓은 지도를 보고 공부해도 길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가보지 않았어도, 몇 번을 오간 만큼 잘 알 정도가 되면, 어떤 길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평지든,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이미 알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실망하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습니다.

 

삶은 마치 높고 험한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과 같습니다. 평탄한 길이라 하더라도, 지치기 마련인데, 험한 고갯길을 곳곳에서 마주해야 합니다. 편하고 쉬운 길이 없습니다. 잠깐 편하고 쉬운 길 걸었다 싶으면, 갑자기 바위투성이의 험한 길을 마주하곤 합니다.

 

예상과 예측이 안 되다 보니,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삶을 해석합니다. 누구는 사주와 팔자와 운명으로 삶을 설명합니다. 태어나면서 각자 정해진 길이 있으며, 이에 따라 살다 죽는다 합니다. 또 누구는 어떤 질서나 이유 없이 우연히 태어나서, 정처 없이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끝이라고도 합니다.

 

삶을 되풀이하거나 시간을 뒤돌릴 수 있다면, 인생이라는 큰 산을 반복해 올라보면 답이 쉽게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누구도 반복해 살 수 없습니다. 한 번 태어나고, 이 세상의 끝을 향합니다.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이 때문에, 모든 일을 겪어보고, 해결책을 마련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모든 일을 겪지 않더라도,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그래서 앞선 이들의 경험과 선택을 보고 참고하는 길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마치 인생의 지도와 같습니다. 영생의 안내서와 같습니다. 이 땅에서의 수십 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고, 다음에 이어지는 영생까지 가는 지도를 그려 주십니다. 하나님이 그려 주신 안내서를 따라가면,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피할 수 있고,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이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각자 나름의 목적과 방법에 따라 살고, 세상을 떠나다 보니, 누구의 말이 맞고, 틀린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나름의 이유로 모두 자기가 걸어가는 길과 방식이 맞다고 할 뿐, 그 결국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누구의 지도와 안내가 맞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방법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약속과 그 결말을 비교하면 됩니다. 검증기간이 길수록 답은 더 분명해집니다. 잠깐의 효과는 좋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하찮은 본색을 드러내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 무슨 말을 하고, 누구의 말이 가장 그럴듯한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되고 이루어졌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정도가 되어야 한 번뿐인 삶을 모두 맡기고 따를 만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이 땅과 내생의 안내서와 지도서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방향을 정하고, 선택합니다.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습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그 끝까지 보장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13,1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시작과 끝이 전혀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후 백성들에게 한 연설입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자 상징물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역사가 이루어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건축 기간만 해도 7년이 소요될 만큼 정성을 다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그 누구도 짓지 못 한 성전을 건축했으니, 솔로몬으로서는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누구도 해내지 못 한 일을 해냈다며 가장 먼저 자랑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성전을 지은 후는 무엇에 중점을 두고 나라를 다스릴지 계획과 목표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지은 후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하며 먼저 꺼낸 말은 16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입니다. 성전을 지은 후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대로 되었음을 인정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삶을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합니다.

 

본래 성전은,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이 지으려 했습니다. 다윗의 믿음과 여러 여건을 봐도, 성전을 짓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왕으로서 40년을 나라를 다스렸고, 왕이 되기 전에도 사울 왕의 사위로서, 장군으로서, 골리앗을 이긴 영웅으로서 여러 해를 보냈으니, 시간과 능력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다윗의 계획을 거부하시고, 솔로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준비를 마련해 주고, 솔로몬에게 왕위를 넘겨주었습니다.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 다윗이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마련해 놓았으니, 다윗의 뜻과 계획대로 완성된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후에 자신이 이웃 민족과 협상을 통해 성전을 건축했으니,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는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오직 하나님의 뜻과 선택이라는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바라고 준비하였으나, 19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 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하셨는데, 그 선택과 말씀대로 자신이 지을 수 있었다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21절에서 솔로몬은 성전건축 이유를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61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는 말씀처럼, 성전은 출애굽 이후 500년 되어가는 시점에 완성되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가장 큰 이유는, 가깝게 보면, 수십 년 전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멀리 보면, 500년 전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이었으며, 그 약속대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관점에서는, 이 믿음과 확신에 기반을 두고, 나라와 자기 삶을 세워 가겠다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지혜와 지식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당시 이웃 나라의 왕들마저 놀랄 정도였습니다. 바꿔 보면, 솔로몬은 당시 가장 좋은 방법과 지혜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비롭고 놀라운 이야기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까지도 수없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듣기 좋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이야기들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 끝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통해 보니,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정답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전 아버지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자신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수백 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 빠지거나 어긋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만이 믿을 만하고, 이에 따라 살면 실패가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나라를 이끌었고,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시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기 후손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성전의 가장 큰 가치가 있습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 다윗은 준비하고, 솔로몬은 수고와 헌신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한 치의 실수나 예외 없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확인하는 자리로서의 가치가 훨씬 큽니다. 그래서 성전을 볼 때마다, 성전을 오갈 때마다, 수십 년 전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전에 가서 제사와 기도를 드릴 때마다, 수백 년 전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어떻게 나타났는지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 위에 삶을 계획해야 합니다.

 

우리의 각자 삶에도 솔로몬의 성전 같은 눈과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이 땅의 복만이 아니라, 다음 세상에 주어질 영생까지 인도할, 오차 없는 지도와 안내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따른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장애와 아픔과 수고의 파도는 여전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겪어야 했던 억울함의 크기만 하겠습니까? 다윗이 마주해야 하는 시련의 크기와 기간 하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그 틀 안에서 살았더니, 결국은 자신은 물론, 그 후손까지 수백 년 동안 왕으로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시간과 장애의 모든 벽을 초월해 이루어졌으니, 또한 지금 우리가 겪는 시간과 장애의 벽도 모두 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는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살면, 이 땅의 삶도 세세히 간섭하시고, 복과 평안으로 인도한다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녀를 모두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준다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모든 일을 알 만한 지혜가 없어도 되지만, 그러나 가장 잘살게 하는 지혜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어도 괜찮지만, 그러나 모든 어려움과 장애를 넘을 만한 길은 찾아야 합니다. 모든 일을 분별할 수는 없지만, 참되고 영원한 유익을 분별하고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기 삶과 나라의 방향을 세웠습니다. 모두가 이를 기억하며 살 수 있도록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 때문에 솔로몬은 그 누구보다 큰 부귀영화를 누렸고, 이스라엘은 가장 큰 번성을 이루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통해 알려준 바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변치 않고, 파기되지 않는 영원한 진리임을 알고 믿으며 살면, 우리의 지혜와 능력 밖에 있는 모든 험난한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함으로써, 복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더불어 내생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사는 자녀들 모두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