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20522)이웃들이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게 하십시오(왕상 8장 62-66절)

청명하늘 2022. 5. 22. 13:51

이웃들이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게 하십시오

 

성경: 열왕기상 862-66(528)

찬송: 335(크고 놀라운 평화가), 502(빛의 사자들이여)

설교: 20220522.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성경을 알고 해석하기는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읽고 기억하는 과정과는 많이 다르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을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고, 글자 그대로 읽고 해석한다고 해서 모두 맞다고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단이나 잘못된 신앙관을 가진 이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입니다. , 믿음이 바르게 세워지지 못 한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게 된 까닭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실례(實例)를 들어볼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좋아하실까요? 싫어하실까요? 신앙인이 세상과 더불어 살기를 원하실까요? 아니면, 죄가 많은 세상을 떠나서, 소수의 신앙인들끼리만 따로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모습대로,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실까요?

 

요한일서 215-17절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나 세상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세상을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까지도 싫어하신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519절에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역시 세상은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며, 그래서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들까지도 미워합니다. 반대로, 세상의 사랑을 받으면,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뜻한다고까지 말씀합니다.

 

이 말씀들만 보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살기를 바라신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316,17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알려주는데, 곧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기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으로 여기시거나 미워하신다면, 구원하시지는 않겠죠.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은 세상을 멸망시키고, 없앨 곳이 아니라, 구원할 생명들이 있는 곳으로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심지어는 자신의 외아들인 예수님을 희생시켜서라도 구원하기 바라실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미워하시고, 우리 역시 세상과 분리되어 살기 바라시는 말씀들도 모두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우리도 받은 그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말씀 역시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로 정반대의 말씀이 함께 들어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기도 하시고, 미워하기도 하신다고 할 수는 없죠. 우리도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해야 한다고 뜻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세상은 각기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구원하기를 바라실 시는 세상은, 구원받아야 하는 생명들이 사는 곳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며, 또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을 받을 생명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시키셨습니다. 자녀들이 살았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갈 세상을 하나님은 아끼시고 사랑하십니다. 시편 335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와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알고, 이를 닮아 실천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고, 이웃을 사랑하며,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세상은 미워하거나 멀리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잠시 권세를 잡는 곳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맞섭니다. 자녀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싫어하며, 방해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만을 기억하며 사는 이들을 좋아합니다. 요한복음 15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는 말씀처럼, 세상의 방법과 방향대로 사는 이들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녀를 미워하고 싫어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간혹 신앙인들 중에는, 세상 자체가 무조건 악하다며,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무조건 나쁘고, 교회는 무조건 옳다고 여깁니다. 유행가를 부르면, ‘세상 노래라며 싫어합니다. 교회 안에서 찬양만 해야 한다고도 주장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사탄이 잠시 권세를 가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또 하나님이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생명들이 수없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언제나 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악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세상을 향해 나아가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언제나 등지고 멀어져서도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인들끼리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교회 밖에 있는 이웃들과의 관계 역시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만으로 완성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솔로몬이 세상을 어떤 시선을 바라보고 행하는지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한 후, 봉헌식을 치르는 내용입니다. 봉헌하면서 제사를 드리는데, 제물로 이용된 소가 이만 이천 마리, 양이 십이만 마리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3천 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물로 바친 소나 양의 수가 엄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63절에서 이 많은 제물을 화목제로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를 드리는 방법과 목적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었는데, 솔로몬은 다섯 가지 형식 중에서 화목제로 드렸다는 뜻입니다.

 

번제는 신앙 고백과 경배가 목적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친교, 또 이웃과의 친교를 목적으로 드립니다. 이를 보면, 성전을 봉헌하며 드릴 수 있는 제사로 보면, 번제와 화목제 두 가지 형식이 가능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까닭이, 하나님을 참된 신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번제로 드리는 형식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번제로 드리지 않고, 오히려 화목제로 드렸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번제와 화목제는 목적도 다르지만, 형식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하고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화목제는 기름, , 콩팥 등만 태우고, 나머지 부위는 나눠 먹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 형식 중에서 유일하게 제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면, 봉헌식에서 번제가 아닌 화목제로 드린 솔로몬의 지혜와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드리는 제사 속에서도, 백성들을 위하는 사랑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헌신과 복종을 다짐하는 번제로도 드릴 수 있었지만, 백성들까지 생각하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고기를 먹는 빈도와 양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신약시대에도 이 문제가 신앙 문제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약 1천 년이 지났을 때도, 서민들은 고기를 쉽게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상에게 바치고 시장에 싸게 나온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두고,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며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 때문에 시험에 빠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이처럼 고기가 비싸고 귀해서 쉽게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면, 이보다 1천 년 전인 솔로몬 시대에는 어땠을지 짐작됩니다. 아마 평생 고기를 먹지 못 한 이들도 있었겠죠.

 

그래서 솔로몬은 평소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백성들을 생각해서 제사 형식을 화목제로 정했습니다. 그 많은 제물을 모두 태워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지만, 백성들의 형편을 생각해 고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형식으로 바꿔도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았습니다.

 

솔로몬의 지혜 때문에, 14일간 계속된 봉헌식이 단순한 종교행사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왕가나 고위직 혹은 제사장처럼 몇 사람의 행사로 그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65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과 칠 일 도합 십사 일간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라는 기록처럼, 무려 2주 동안, 전국에서 온 모든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축제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평생 한 번 먹기 힘든 고기를 맘껏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잔치가 되었습니다.

 

봉헌식을 소수의 기념행사로 그치지 않고, 함께 기뻐하며, 즐겁게 먹고 즐긴 후 돌아가는 백성들이 왕을 축복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다윗과 이스라엘 땅에 베푸신 은혜 때문에 기뻐하며 각자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자신들이 고기를 맘껏 먹을 수 있는 이유를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백성들에게 은혜와 복을 베푸셨음을 알고 인정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만약 솔로몬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생각해서, 그 많은 제물을 모두 번제로 드렸다면 어땠겠습니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믿음과 헌신 때문에 기뻐하셨겠지만, 백성들은 모두 남의 이야기처럼 여겼겠죠.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이 얼마나 많은 제물을 드리든, 그게 백성들의 삶과 무슨 상관있겠습니까?

 

러나 솔로몬이 화목제물로 드리는 지혜 때문에, 백성들은 모든 복과 은혜가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제물을 드릴 만큼 부해진 이유를 왕의 정치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봉헌식이 치러지는 며칠 동안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즐겼다는 사실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유익이 되고,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임을 인정할 수 있는 방향과 방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복과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저들로 보게 해야 하고, 인정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들에 어려움과 문제가 많죠. 여러 가지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오늘 말씀과 관련해 보면, 교회가 점차 자기들끼리라는 함정에 빠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더 이상 사회에 유익을 끼치지 못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 하고, 오직 자기들끼리 뭉치는 사람들,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사는 무리들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을 악하다며,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서도, 그 수준은 오히려 세상보다 못합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교회마저도 각 교회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와 교인들이 어떻게 되든, 자기 교회만, 자기 교인들만 잘되고, 성공하면 된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웃 교회를 생각하지 않고, 다른 교인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고 있고, 여전히 자녀로 선택되어 구원받아야 하는 자녀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 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주어,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녀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교회에 있습니다.

 

솔로몬의 신앙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백성들을 향한 자비와 긍휼이 있었습니다. 이를 지혜롭게 행함으로써,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지혜롭게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게 만드는 은혜의 도구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