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20619)복을 실패의 도구로 삼은 솔로몬(왕상 10장 1-29절)

청명하늘 2022. 6. 19. 14:20

복을 실패의 도구로 삼은 솔로몬

 

성경: 열왕기상 101-29(530)

찬송: 258(샘물과 같은 보혈은), 588(공중 나는 새를 보라)

설교: 20220619.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미국은 마약 관련 사고와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약 관련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나 접하지만, 미국에서는 뒷골목에서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피해도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마약으로 인한 사망자 수만 해도 1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가장 건강한 나이라 할 수 있는 18-45세 인구 사망 원인 1위가 마약일 만큼 심각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유한 미국에서 이처럼 마약 중독자가 많고, 사망자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의외로 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 때문에 중독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이해조차 안 되죠. 병원에서 일반 환자에게 마약을 처방할리는 없습니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진통제는, 큰 수술을 받거나, 심각하게 다쳤거나, 말기암 환자처럼, 고통이 극심해서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경우에 제한해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약을 만들고, 또 이 약을 일반 환자들에게 쉽게 처방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두통이나 허리가 아픈 환자도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약을 처방받고, 복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약이라 하면, 기분을 좋게 하는 약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실제로는 고통을 느끼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역할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몸이 다치거나 병들면 아픔을 느끼게 되는데,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진통제만 먹으면,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인간이 가진 여러 감각 중에서 통증만은 모두가 싫어합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통증을 없애준다면, 이처럼 좋은 약이 어디 있겠습니까? 의술이 발달했다는 말은, 곧 고통의 수준과 시간을 줄인다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통증을 없애줌에도 불구하고, 마약이 오히려 더 많은 피해와 죽음을 가져오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만성이 생기고, 점차 더 강한 약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한 번만 먹으면, 며칠 혹은 훨씬 더 오랫동안 통증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간격이 짧아집니다. 나중엔 처음의 몇 배의 약을 먹더라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더 강한 약을 찾게 되고, 더 심해지면, 이제는 약 때문에 더 큰 문제와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이를 보면, 통증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고, 진통제가 기대만큼 좋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통증을 모두가 싫어하고, 피하고 싶긴 하지만, 그러나 통증 자체가 죽음까지 몰고 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진통제가 주는 효과를 모두 좋아하고, 누리고 싶긴 하지만, 그러나 진통제가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고난과 복의 경우도 이와 비슷합니다. 세상에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죠. 고난을 줄이고, 즐거움을 키우기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바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신앙인들 역시 고난에서 벗어나, 복과 평안을 누리게 해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을 여기에 두는 교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죽음, 구원, 부활처럼 나중에 있을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지금 당장 겪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에 가장 큰 관심을 둡니다. 하나님이 이를 해결해 주시기를 목적 삼아 신앙생활하는 분들도 아주 많습니다. 정확한 비율을 나눌 수 없어서 그렇지,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이 훨씬 많을 듯합니다.

 

하지만 복이 삶과 신앙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려움을 해결받고, 또 많은 복을 받도록 기도해야 하지만, 이 자체가 목표가 되면, 우리 삶은 어느새 더 큰 고통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솔로몬의 삶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뉩니다. 1-13절까지는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한 기록이고, 14-29절까지는 솔로몬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스라엘이 누린 부귀영화입니다. 앞에 나오는 스바 여왕의 방문은 설교 본문으로 자주 이용되는 내용입니다. 반면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큰 관심을 받지 못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능력 때문에, 이스라엘이 부강해진 내용은 여러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별개의 이 두 이야기를 이어 기록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이야기를 통틀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에 올라 여러 가지 뛰어난 업적을 쌓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땅은 더욱 넓어졌고, 군사력은 점차 강해졌고, 경제력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솔로몬이 이뤄놓은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솔로몬의 지혜와 능력에 관한 소식을 듣고 스바 여왕이 찾아왔습니다. 스바는 이스라엘 지역으로부터 약 2,000km가량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당시 여러 신하들과 또 선물 등을 가지고 오가느라, 오가는 데만 해도 몇 달이 걸릴 만큼 먼 거리입니다.

 

이처럼 먼 나라에서 이스라엘을 찾은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업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솔로몬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또 신하들이 솔로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본 후 스바 여왕의 반응은 6,7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였습니다.

 

소문은 전하는 과정에서 쉽게 과장되거나 축소되곤 하죠. 대단하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절말 아무것도 아닌 경우도 많고, 반대로, 별로라 생각했는데, 대단한 경우도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잘 다스려서, 나라가 부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스바 여왕은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좋아도, 결과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바 여왕이 막상 솔로몬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라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소문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14절부터는 솔로몬이 이룬 여러 결과물이 기록되었습니다. 수입이 얼마나 많았는지, 금으로 만든 큰 방패가 이백 개, 작은 방패가 삼백 개였습니다. 또 솔로몬이 이용하는 대부분은 금이나 상아 등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보석과 보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21절에서는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이라 하고, 27절에서는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까지만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려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귀영화와 지혜를 제한해 보면, 솔로몬만큼 복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6-29절에서는 솔로몬이 병거와 기병을 모으는 데 힘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을 탄 군사만 해도 만이천 명이고, 병거가 천사백 대였습니다. 이를 마련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솔로몬이 나라를 지킬 군사력까지 마련했다는 점으로 판단한다면, 칭찬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716절에서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힘은 군사와 무기에서 오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관심을 거두시고, 더 이상 지키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 119절에서 여호수아는 적을 물리치고, 빼앗은 말 뒷발의 힘줄을 끊었고, 병거를 모두 불태웠습니다. 사무엘하 84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라는 말씀처럼,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 역시 블레셋 민족과의 싸움에서 빼앗은 말의 힘줄을 끊었고, 병거를 모두 없앴습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의지해 살겠다는 다짐이며,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솔로몬은 엄청난 돈을 투자해 말을 모으고, 병거를 사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죄인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보다는 군사의 힘을 의지하겠다는 교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나 여호수아와는 달리, 군사력에 힘을 쏟은 까닭이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부귀영화와 지혜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복을 주신 까닭은, 백성 모두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세상이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름을 알고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 때문에 오히려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군사력과 사람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 그 누구보다 크고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지혜와 부귀영화로 보면, 솔로몬만큼 넘치게 받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넘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복이 넘치다 보니,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복을 통해 하나님의 길과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의 길을 향해 기울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죄와 실패를 향하는 데 쓰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아니라, 복 자체에 힘쓰는 결과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좋은 선물을 넘치게 주셔도, 그 선물을 오히려 죄악과 실패를 향한 연료로 쓸 뿐입니다. 차라리 솔로몬의 지혜가 대단하지 않았다면, 차라리 부귀영화가 크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수준이었다면, 솔로몬의 죄와 실패도 크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스바 여왕이 찾아와 인정할 만큼 크고 대단했습니다. 솔로몬의 부귀영화는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부귀영화가 주는 힘과 능력과 쾌락을 맛본 후, 솔로몬은 오히려 더 큰 힘과 능력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지혜와 부귀영화를 복으로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받아 누린 복이 크고 오래 계속될수록 솔로몬의 타락은 더욱 커지고 깊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죄악의 재료로 쓴 사람이 어디 솔로몬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바라는 복들 중에는, 재물, 장수, 부귀영화가 포함되죠? ‘돈만 있다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면...’ ‘부귀영화만 얻을 수 있다면...’ 등의 소원을 매일 수없이 기도합니다.

 

그러나 바라고 원하는 대로 받고 누렸을 때, 과연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까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가장 많이 버는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삽니까? 여전히 돈을 더 버는 일에 힘씁니다. 100년을 넘게 산 사람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까요? 건강과 장수입니다. 부귀영화와 권력을 가진 사람 역시 이를 위해 향한 발걸음을 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바의 끝에는,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더 큰 욕심과 교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욕심의 그릇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욕심의 그릇을 줄여야만,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만족하며, 영원하고도 복된 걸음들이 됩니다.

 

그래서 잠언 307-9절에서, 아굴은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고 기도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아굴과 같은 믿음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어려움과 문제를 풀 만한 힘과 지혜를 구해야 하지만, 그러나 이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게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이길 힘과 방법을 간구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 이상 욕심 부리면, 어느새 탐욕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기도의 응답과 받은 부귀영화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고, 받은 복에 만족하며, 이를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참된 복은, 더 많이 받아 누리는 데에 있지 않고, 반드시 절제와 인내와 순종과 함께 있습니다.

 

솔로몬은 모든 복을 넘치게 받았으나, 오히려 더 큰 욕심과 죄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원인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참된 행복과 기쁨과 은혜는 그래서 소원과 바람이 이루어지는 크기에 따르지 않고, 욕심의 그릇을 줄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넘치는 복을 받았음에도, 지혜롭게 이용하지 못 하고, 끝없는 탐욕의 도구로 삼은 솔로몬의 모습에서 멀어지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맞춤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안식과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