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에 절제와 충성을 더해야
성경: 열왕기상 11장 1-25절(구 531쪽)
찬송: 491장(저 높은 곳을 향하여), 321장(날 대속하신 예수께)
설교: 2022062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성경에서 성령님을 통해 크게 두 가지가 주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말씀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에 기록되었는데,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 방언, 통역으로 말씀합니다.
은사와 열매 중에, 여러분은 무엇이 더 좋고,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은사입니까? 열매입니까? 아니면, 둘 다 성령님이 주시는 것으로서,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똑같이 좋고, 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기와 관심은 어느 쪽이 더 클까요? 이에 대한 답은 너무 쉽고 간단합니다. 요즘은 기독교 신문끼리 합의해서 많이 줄었습니다만, 예전엔 신문의 절반가량이 집회 광고로 채워졌습니다. 집회 광고에 실린 모임의 목적이 어느 쪽을 향했을까요? 성령의 은사일까요? 열매일까요?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은사를 위한 집회들이 가득했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대규모 집회가 중단되었다 회복하는 단계인데, 지금도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신앙인들의 집회라면, 거의 틀림없이 성령의 능력, 은사들을 얻기 위한 모임들입니다.
80,90년대는 우리나라 기독교의 기도원이 크게 활성화되었고, 열기가 대단했는데, 저도 학생 신분으로서 수차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저를 포함한 여러 학생들이 성령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흐름에 맞춰, 은사 체험이 최고이자 최종 목적이라 여겼습니다. 이후에도 기도와 금식을 통해 은사를 받고자 하는 바람과 노력이 한참 이어졌습니다.
이에 반해, 성령의 열매를 향한 노력과 모임은 바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위해 어떤 모임에 참석하고,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기억하려 해도,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이 성령의 은사에 치중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만, 저와 상관없는 모임이나 노력들이 무엇일까를 떠올려 봐도, 쉽게 기억되지 않기는 마찬가집니다. 성령의 열매를 위한 집회를 찾지 못 해서라기보다는, 성령의 열매를 위한 노력과 모임이 그만큼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신앙인들의 관심이 기울어지고 쏠린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시선은 성령의 열매를 향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을 많이 행하는 자녀가 아니라, 열매를 맺는 자녀를 좋아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는 예수님이 산에서 8가지 복을 선언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를 산에서 하신 설교라 해서 ‘산상 설교’라 하기도 하고, ‘산상 수훈’이라고도 하며, ‘팔복선언’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복되다” 선언한 8가지 복을 받는 이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이들일까요? 은사와 능력을 갖춘 이들일까요? 온유함, 의에 주림, 긍휼히 여김, 마음이 청결함, 화평 등을 보면, 성령의 열매와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똑같습니다.
은사는 여러 모습으로 대체 가능합니다. 언어를 바꿔 전해주는 통역, 병 고침, 지혜와 지식의 말씀 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식과 기술 등을 통해 점차 대체됩니다.
심지어는,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가 큰 표적과 기사를 보임으로써,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사탄과 그에 속한 자들은 대단한 능력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고 놀라운지, 구세주인 줄 알고 믿고 따르는 사람이 엄청납니다.
이처럼 사탄의 무리의 능력이 대단하지만, 절대 흉내내지 못 하는 게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탄의 무리들이, 악의 세력이 사랑하고, 기뻐하고, 화평을 이루고, 오래 참고, 온유하고, 절제하는 모습을 보거나 들어 보셨습니까? 그래서 성령으로부터 온 능력인지, 귀신으로부터 온 능력인지 구분하는 기준은, 능력의 형태와 크기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통해서만 확인됩니다.
은사는 수단으로서 주어지고, 선택적으로 주어집니다. 은사 자체는 절대 목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픈 사람에게 선택적으로 주십니다. 은사와 능력이 클수록, 더 큰 유익을 주고, 많은 일을 해내어 업적을 쌓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주십니다.
반면, 성령의 열매는 그 자체가 목적이고, 자녀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모습입니다.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은사와 능력과는 달리, 열매는 은혜처럼 모든 자녀들이 받아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없는 신앙인은 구원받는 데 문제가 전혀 없지만, 열매가 없는 신앙인은 마태복음 7장 22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는 말씀처럼, 주님이 버리십니다.
은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매가 중요한데,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이 열매가 아니라, 은사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습니다. 만약 성경에 성령의 열매와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말씀하지 않았다면,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은 성령의 열매로 포함시킬 듯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속에서, 세상 그 누구보다 지혜와 지식이 대단했던 솔로몬이 결국 실패와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통해,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왜 수단과 도구인 성령의 은사에 포함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에 다시없는 대단한 업적을 쌓습니다.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또 군사력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크기에 비하면 지나칠 만큼, 많은 병력을 마련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강해지자, 주위에 있던 많은 민족이 이제는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조공과 선물로 들어오는 재물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스라엘에는 은은 더 이상 귀금속으로 인정받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스바의 여왕이 찾아와 직접 눈으로 확인할 만큼, 이스라엘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강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강해진 이유를,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모르는 이들은, 이 모든 일이 오직 솔로몬의 능력과 지혜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솔로몬의 이야기가 열왕기상 1장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오늘 본문 앞 10장까지, 솔로몬의 지혜가 13차례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든지, 이스라엘 사람이든지 하나같이 인정할 만큼 솔로몬의 지혜는 뛰어났고, 지혜로부터 나온 성과와 업적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10장까지는 지혜를 통해 이뤄낸 온갖 결과를 나열하더니, 오늘 본문에서는 갑자기 솔로몬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과정과 모습이 나오게 됩니다. 솔로몬이 여러 가지 복을 받았고, 이전이나 이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지만, 그러나 이 때문에 오히려 교만해지고,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세상에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오늘 본문 1절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는 말씀처럼, 솔로몬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여색을 밝혔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외국 여자들을 더 많이 사랑했습니다.
왕이 다스리던 나라에서는, 왕이 많은 후궁과 첩을 거느렸습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다른 나라 공주나 권력자들의 딸들과 결혼하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이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사람이니, 왕으로서 후궁과 첩을 많이 거느려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권력과 업적이 클수록,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기준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기준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에 따라 삶을 만들어 가야 하는 하나님의 민족과 백성들은 철저히 멀어져야 하는 모습입니다.
신명기 17장에는, 왕이 갖추어야 할 모습과 조건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바처럼, 16절에서는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라고 하셨고, 바로 뒤이어 17절에서는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민족의 기준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에는 왕이 많은 아내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가정을 이루는 질서를 세우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많은 아내를 두면 점차 신앙의 영역까지 침범 당하고, 점차 죄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솔로몬도 이 유혹을 이기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민족의 여성들과 거리낌 없이 결혼했습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결혼식으로 맞아들인 아내가 칠백 명이고, 별다른 절차 없이 맞이한 첩만 해도 삼백 명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이 정도로 많은 여성을 두었다는 말은 곧 하나님이 주신 기준과 계명과 질서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몇 명이야, 당시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라고 양보한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둔 여인만 해도 천 명이라면 그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신명기에서 경고하신 바처럼, 솔로몬은 수많은 아내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인들이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신을 이스라엘 땅에서 섬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이후에는 자기 신들을 섬길 수 있는 신전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점차 솔로몬도 이들과 함께 우상의 신전에 들어가,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도,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첫 번째 계명과,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 죄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모두의 부러움을 샀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이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지혜와 지식과 능력 때문에, 죄를 향한 걸음을 재촉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좋은 운전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빨리 달릴수록 운전을 잘 하는 사람일까요? 이 점도 조건이라 할 수 있지만, 더불어 장애물을 봤을 때, 빨리 차를 세우는 능력까지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 장애물을 발견했을 때 빨리 멈추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솔로몬이 세상 그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와 능력과 지식을 가졌음에도, 죄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못 한 모습을 보면, 지혜와 지식의 능력이 왜 성령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은사에 포함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보다 성령의 열매를 가장 중요한 기준과 법으로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왜 우리의 신앙이 성령의 열매를 통해 완성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지혜와 지식과 능력이 하나님의 은혜를 향하는 기준이었다면, 솔로몬만큼 완성된 사람은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솔로몬만큼 뛰어난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에게는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는 어리석은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음에도, 솔로몬에게는 성령의 열매인 절제를 맺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절제를 이루지 못 하니, 성령의 또 다른 열매인 하나님을 향한 충성마저 맺지 못 했습니다.
대단한 업적과 지혜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죄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비춰 봐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좋아합니다. 능력과 은사가 클수록 높이 인정합니다. 또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위한 기도와 노력은 어느 교회에서나 어느 때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생명의 기준인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과 노력이 없습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녀를 더 찾으십니다. 은사를 받지 못 해도 구원을 얻는 데 전혀 지장 없지만, 그러나 열매를 맺지 못 하면 하나님이 외면하십니다. 아니, 성령의 열매 없는 믿음이란 자체가 이미 죽었고,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지식과 지혜가 가장 뛰어난 사람입니다. 이를 통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을 만큼 여러 일을 해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나, 이보다 더 중요한 절제와 충성의 열매를 맺지 못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없어,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고 인정했던 지혜와 지식이 오히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와 실패를 향한 도구와 재료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지혜와 지식과 은사를 구하는 간절함보다, 절제와 충성을 먼저 찾고 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큰 능력을 얻고, 이를 통해 큰 업적을 쌓는 이들을 찾고, 기뻐하시지 않고, 신앙과 삶 가운데,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자녀를 찾고 기다리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는 충성과, 욕망을 거스를 만한 절제가 있는 자녀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와 복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 함으로써, 죄와 고통의 씨앗을 심은 솔로몬의 어리석음과 실패를 기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대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참된 지혜를 갖춤으로써,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복과 은혜와 구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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