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을 기억하며 지혜로 준비해야
성경: 열왕기상 11장 41-43절(구 534쪽)
찬송: 538장(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486장(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설교: 2022072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욜로’ ‘욜로족’이 유행했습니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다’(You only live once)는 뜻을 가진 영어의 줄임말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욜로족’이라고 합니다. 본래 이 말은 2011년 캐나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에 나와서 유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은 한 번만 산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생은 한 번뿐이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뜻은, 우리가 알고 있는 뜻과는 좀 다르다는 의미죠. “어떻게 살든 한 번만 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행복만 생각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언제나 다음을 생각하며 대비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부모들은 자녀를 잘 가르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한글은 물론, 수학, 피아노나, 태권도 등을 가르칩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이라 해봤자, 8세에 불과한데도, 좋은 교육법을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나중을 위해서입니다.
만약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한글을 못 읽어도, 불편하기는 하지만, 살기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산수를 못 해도,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어 알파벳을 전혀 몰라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에게 당장 필요하지 않는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나중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을 보면, 가르치는 부모에게는 헛돈을 쓰는 과정처럼 보이고, 아이들에게는 괜한 짐만 안겨다 준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몇 년 후, 혹은 몇 십 년 후를 생각해 보면, 훨씬 더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봐도, 지금 당장보다는 다음을 위해 준비하며 애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 500만원의 수익을 얻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500만원을 벌었다고 해서, 한 번에 다 쓰지는 않죠. 돈이야 500만원이 아니라, 5,000만원도 얼마든지 한 순간에 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축을 하든지, 남겨둡니다. 나중을 위해서입니다.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 논밭에서 일하기 얼마나 힘듭니까? 나가기만 하면, 땀은 줄줄 흐르고, 목은 마르고, 덥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이럴 때 편하기로는, 시원한 나무 밑에서 선풍기를 켜놓고, 편하게 누우면 됩니다. 집에서 에어컨을 세게 틀어넣고 쉬면 얼마나 시원한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덥고, 습한 날에도, 밭에 고추를 수확합니다. 밭에 나가 풀을 뽑거나, 농약을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얼마든지 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덥고 힘든 일을 하는 까닭은 단 하나입니다. 나중을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편한 길이 있음에도, 나중을 위해, 지금 더 어려운 길을 선택합니다. 나중의 쉬운 길을 위해 지금 어렵고 험한 길을 선택합니다. 지금 당장 먹고 쓰고 즐기고 싶은 바람이 크지만, 그러나 나중을 위해 참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움을 참고, 지금 돈을 쓰지 않고 아끼는 이유는 모두 다음의 더 나은 시간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욜로족들은 생각을 달리합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니, 불확실한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모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중을 위해, 지금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참고 준비하다가, 결국 누리기 전에 세상을 떠난 경우들도 있죠. 젊었을 때 죽을힘을 다해 돈을 모아서 누릴 만해졌는데, 갑자기 중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마냥 나중을 위해 지금을 희생시키는 과정이 무조건 옳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 어느 순간 무슨 일을 만나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욜로족들은 나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음이라는 시간이 주어질지, 주어지지 않을지 모르는데, 이를 위해 지금 당장의 즐거움과 행복을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당장의 행복과 기쁨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해 벌어들인 돈을 저축하지 않고, 지금 당장 누리고 즐기는 데 모두를 지출합니다.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나중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보다는, 보장된 당장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데 열중합니다. 그래서 욜로는 “오늘을 즐겨라”(카르페디엠)는 말과 뜻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지금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다음의 영원한 세상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음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데,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고, 다음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거짓으로 여기는 교만이고 죄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으로 산다는 말은, 지금이 끝이 아니고, 더 나은 다음을 기억하며, 준비하며 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크게 발전시켰던 솔로몬의 죽음을 기록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 위에는 여러 형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전통에서는,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큰아들부터 가문을 이어갑니다. 이에 따르면, 솔로몬이 왕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은 없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보다 먼저 태어난 형들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복여동생을 범한 이도 있고, 아버지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댄 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많은 아들들 중에서 열 번째인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웁니다.
솔로몬의 어머니는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본래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아가 전장에 나가 있는 사이에, 다윗이 바셋바와 간음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죽음에 내모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솔로몬은 바로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다윗이 자기 체면과 입장만 생각한다면, 솔로몬을 왕에 앉히지 않았겠죠. 어찌되었든 다윗 자신도 그렇고, 백성들도 솔로몬을 볼 때마다, 다윗의 죄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왕에 앉힐 만큼, 솔로몬의 자질과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기대에 맞게, 솔로몬은 지혜롭고 또 신실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다윗이 끝내 처리하지 못 하고, 유언으로 남긴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뿐만 아니라, 나라를 크게 부흥시킬 만큼 솔로몬의 지혜와 능력은 대단했습니다. 솔로몬만큼 능력과 업적이 뛰어난 왕은 없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솔로몬이 이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는 세 절로 짤막하게 기록했습니다.
41절에서는 “솔로몬의 남은 사적과 그의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지혜는 솔로몬의 실록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은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뒤를 이어 왕에 오른 내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열왕기상 1장부터 오늘 본문까지 11장에 걸쳐 솔로몬의 여러 행적과 업적을 중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 비슷한 내용이 역대하 1장부터 9장까지 기록되었습니다. 솔로몬의 행적만큼 성경에 많이 기록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이외 이스라엘 역사에도 솔로몬의 업적과 행적이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업적을 쌓은 왕이기에 그럴 만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삶의 과정과 내용이 기록된다는 사실을 배우고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세계나 나라의 역사를 바꾸거나,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못 되기 때문에, 우리의 기록은 세상에 많이 남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과 내용을 그 누구도 기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행적과 언행은 하나님의 책에 기록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에서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들은 모두 심판의 자리에 서는데, 심판의 증거는 세상에서 행한 바들이 그대로 기록된 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살아 생명을 얻을 만한 이들에게는 생명책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을 등지고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살생부가 됩니다.
생명의 책이 되느냐, 죽음이 책이 되느냐 하는 문제는, 다른 무엇이 기준이 되지 않고,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와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라는 말씀처럼, 우리 각자의 행동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말씀과 약속에 따라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의 모든 과정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부인하고, 세상만을 향해 사는 사람은, 죽음과 심판의 증거가 됩니다.
이 말씀은, 곧 지금 우리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처럼 대단한 업적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언행과 선택을 낱낱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앞으로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우리의 말과 선택과 행동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생명의 책에 기록될 만한 사람으로,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 땅은 한정되었음을 기억하고, 나중을 위해 유익하게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42절 말씀처럼 솔로몬은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40년 다스렸습니다. 요즘이야 수명이 크게 늘었습니다만, 이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만 해도, 60살을 살면 크게 축하를 받을 만큼 수명이 짧았습니다.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솔로몬 다음에 약 1천년이 지난 후 예수님이 사셨는데, 당시 평균 수명이 40살가량이었다고 합니다. 솔로몬 시대는 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짧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40살을 사는 시대에, 솔로몬은 40년을 왕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요즘으로 계산하면, 평균 80세를 사는 시대에 80년 동안 왕으로 다스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수만이 아니라, 모든 과정이 특별하다 할 만큼 복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살고, 더불어 나라를 다스렸던 솔로몬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왕의 자리가 아무리 높고, 화려하다 할지라도, 결국은 떠나야 할 때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관이 아무리 황금빛으로 빛나고, 가장 귀한 보석으로 치장되었다 할지라도, 왕관을 벗어놓아야 할 때를 맞이해야 합니다.
왕의 자리에 올라 큰일을 해내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왕관을 벗고,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평가와 결과가 달라집니다. 솔로몬이 좋게 시작했으나, 결국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은 까닭은, 자기 자리가 끝없이 이어질 줄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을 향해서는 큰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지금 갖고 누리는 일에는 끝없는 욕심을 부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의 건물을 아무리 높이 세웠다 하더라도, 내려올 때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와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주인공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가난해도, 이 또한 내려올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자리와 성과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땅이, 이 땅의 삶이 영원하리라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처럼 최고의 자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누린 사람도, 결국은 화려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면, 우리처럼 자랑거리 없는 사람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솔로몬은 뛰어난 왕으로서 많은 행적이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정하신 책에 모든 행적과 선택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 역시 모든 언행과 행적이 기록됨을 기억하고, 생명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지혜롭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또한 삶의 수준과 내용과는 별개로, 언젠가는 마지막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를 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과 진리를 대신 전해주는 솔로몬의 삶과 선택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실 만한 길로 살아가되, 지혜와 겸손한 자세로 살아감으로써, 이생과 내생을 기쁨과 열매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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