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220815)좋은 길을 선택하는 지혜(왕상 12장 1-20절)

청명하늘 2022. 8. 14. 13:22

좋은 길을 선택하는 지혜

 

성경: 열왕기상 121-20(534)

찬송: 250(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449(예수 따라가며)

설교: 20220815.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기독교 교리 중에 예정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과정이 모두 이해되지는 않죠. 물론, 하나님을 믿기로 먼저 마음을 먹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하려는 계획이나 의도가 전혀 없다가, 특별한 계기로 신앙을 갖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미국인 중에 조지 포먼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헤비급 권투 선수였고, 엄청난 실력으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중에 권투를 그만두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권투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목회자가 되었다고 사실 자체가 특별하다고 보긴 어렵죠.

 

1977년 푸에르토리코라는 나라에서 경기를 펼칩니다. 이 나라는 아주 무더운 곳인데, 상대 선수 측의 작전 때문인지 냉방장치가 없이 경기를 치렀다고 합니다. 결국 이 경기에서 패하고, 탈진과 열사병 때문에 선수 대기실에서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까지 신앙심이 없었지만, 이때 살려달라고 기도해 살아나는 기적을 겪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목사가 되고, 청소년을 교육할 수 있는 센터를 세워 교육했습니다. 나중엔 권투선수로는 너무 늦은 나이에 복귀해, 45살에 세계 챔피언이 됩니다. 이후에는 주방기구를 만들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게 됩니다.

 

이분의 경우는 신앙생활하려는 생각이나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특별한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목회자가 됩니다. 이를 예정론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분을 자녀로 선택하시고, 일꾼으로 부르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는 권투를 잘 하는 선수들이 많고, 패배 자체로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처럼 패배를 통해,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나고, 목회자가 되는 경우는 특별할 만큼 드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 중에 예정론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예정론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집니다. 하나는, 기도를 많이 하고, 능력을 받으면, 하나님이 누구를 선택하시고, 누구를 버리셨는지를 안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어려움과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버리셨기 때문이다고 하거나, “하나님의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큰 죄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우리의 안목과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거부하거나 부인해도 멈추지 않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하나님이 버리신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버리셨다고 단정해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단정하든, 결국 선택과 결정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예정론과 관련한 두 번째 잘못은, 숙명론, 운명론으로 오해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다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우리의 삶의 과정과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오해합니다. 이는 사주와 운명과 운세에 따라 살게 된다는 무속신앙이나 미신의 생각과 방향이 같습니다.

 

신앙인들이 어떻게 미신과 같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이런 오해는 적지 않습니다. 더 과격하게 표현하면, 아주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능력이 뛰어난 신앙인들을 높이고, 의지하는 경우들이 많죠. 능력이 있는 분들을 통해 기도 응답을 받으려 합니다. 직업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중에 어떤 일을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는지를 고민하고, 기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 묻습니다. 어떤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누구를 배우자로 선택하셨는지를 묻습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묻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직업과 배우자를 비롯한 모든 과정과 결과까지 정해 놓으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셨다는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주셨습니다. 인간에게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철로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 살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듯이,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고, 멈추고 싶은 대로 멈추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직업과 배우자나 앞날을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과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무슨 일을 해도 괜찮습니다. 목회자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다른 직업을 가졌다고 싫어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배우자를 택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더 좋아하시거나 싫어하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양심에 어긋나지 않으면, 목회를 하든, 장사를 하든, 농사를 짓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키가 큰 사람과 결혼하든, 작은 사람과 결혼하든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이나 배우자나 앞날을 이미 정해 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이 있고, 응답을 잘 받는다는 사람들을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응답을 더 많이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삶을 우리에게 맡기고, 자유롭게 선택하게 하셨는데, 하물며 기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 우리 앞날을 맡기셨겠습니까? 하나님조차도 우리 삶을 가두지 않으시는데,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들, 기도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한들, 어떻게 우리 앞날을 알 수 있겠습니까?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우리의 앞날을 맡기실 만큼, 하나님은 무책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도에 따라 우리 삶이 좌우되게 할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선택하셨음을 기억하면, 어떤 상황에 처해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내생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지키시고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되었음을 기억하면, 이 땅에서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누릴 만한 길을 선택하며 살게 됩니다. 지난날들의 선택이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 내었듯이,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삶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르호보암의 선택과 이후 결과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둘로 나뉘게 되는 이유가 등장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신실하고, 하나님의 꼭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가문이 이스라엘을 계속 다스리게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에 따라 솔로몬이 다윗 다음의 왕이 되었지만,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와 같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비록 나라가 발전하고, 부강해졌지만, 나라가 점차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다윗의 신실함 때문에, 솔로몬 시대에서는 나라가 나뉘지 않았지만, 다음 르호보암이 왕이 되면서부터 나라가 나뉘게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왕에 오르자, 백성들이 찾아와, 부역과 세금 등 여러 짐들을 줄여달라고 부탁합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있을 때 이스라엘은 가장 부강했습니다. 성전이 지어진 시기도 솔로몬 왕 때였고, 13년에 걸쳐 궁전이 지어진 시기도 역시 솔로몬 때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꿔 보면, 백성들의 부담과 고통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로, 힘과 돈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백성들로서는 이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한두 해로 끝나는 공사도 아니고, 20년 동안 연이어 공사가 계속되니,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목표를 위해 강하게 밀어붙이는지라, 백성들은 말도 못 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들의 대표가 왕을 찾아갑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나오면, 어느 정도 타협과 조종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듣고, 르호보암은 두 무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먼저는, 그 아버지 솔로몬 시대부터 있던 노인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원로들은 백성들의 요구대로 부역과 세금을 줄여 주자고 합니다. 왕은 다시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젊은이들은, 원로들의 답과는 반대로, 솔로몬보다 더 강력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답합니다.

 

르호보암은 14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고 답합니다. 자기 아버지보다 훨씬 더 강하게 다스리겠다는 답입니다. 요즘 자주 쓰는 표현으로 한다면, “찍 소리 못 하게 하겠다는 답입니다.

 

이 답을 들은 백성들은 실망하고, 더 이상 르호보암의 통치를 받지 않겠다며 떠나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나라를 세웁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둘로 나뉘었고, 수백 년 동안 유지되다 각자 망하게 됩니다(북이스라엘 253년 유지, 남유다는 389년 유지). 120년 동안 한 나라로 유지되었던 나라가 둘로 나뉜 자체만으로도 비극인데, 더 큰 문제는 떨어져 나간 지파들이 훨씬 컸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나뉘었는데, 르호보암에게 남은 지파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뿐입니다. 나머지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고 북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노인들은 지혜롭고, 젊은이들은 즉흥적이고, 어리석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까요?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결정과 이스라엘의 분열을 통해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을 15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배덕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가문에 벌을 내리신다 말씀하셨고, 시간이 지난 후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분열이 모두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르호보암은 무조건 실패와 분열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셨고, 그래서 분열이 하나님 탓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선택과 결정에 따라 삶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르호보암이 나라의 대부분을 빼앗기고, 악화된 이유는, 조상 탓도 아니고, 운명이거나 숙명으로 정해져서도 아닙니다. 오직 르호보암이 자기 욕심과 욕망에 따라 어리석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왕이라는 자리는, 백성의 고통 위에 업적을 쌓아서는 안 되고, 백성들이 안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지운 짐을 덜어 주어야 합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에게 짐을 덜어주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지혜롭게 결정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내릴 징계와 분열을 거두십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자기 권력과 업적을 더 높이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 노인들의 해결책을 거부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라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따랐습니다.

 

결국 르호보암에 이르러,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고, 나라의 5/6를 빼앗긴 채, 겨우 두 지파의 왕이 되는 지경에 이른 까닭은, 운명도 아니고, 숙명도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으셨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르호보암 스스로 어리석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고, 우리 스스로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복과 은혜가 약속된 길을 따라 선택하면, 지금 어떤 처지와 형편에 있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복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징계와 고통으로 이끄는 길을 따라 살면, 지금 무엇을 누리고, 무엇을 가지고 있든, 점차 망가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언제나 복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지혜롭게 선택하며 살면, 고린도전서 1013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 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보호와 간섭으로 모든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운명과 팔자로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복과 은혜로 삶을 계획하고, 튼튼하고 아름답게 세워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스스로 믿음과 양심에 따라 좋은 길을 선택하면, 지금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성공하고 복되게 됩니다.

 

르호보암이 분열과 고통의 길을 걸어간 까닭은, 어리석게 선택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 스스로도 얼마든지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었음에도, 자기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이미 정하셨기에, 우리가 지혜롭게 좋은 길을 선택하며 살면, 우리의 삶은 더욱 복되고 성공하게 됩니다. 기쁨을 얻으며 살게 되며,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욕심과 욕망에 따라 어리석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나라에 비극을 가져오고, 자신도 결국 기울어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르호보암의 길을 교훈 삼아, 하나님의 자녀로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살며, 지혜롭게 좋은 길을 선택하며 살아감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복을 받는 자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