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를 지혜롭게 이용해야
성경: 열왕기상 12장 21-24절(구 535쪽)
찬송: 524장(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456장(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설교: 20220821. 주일낮예배 설교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며칠 전에, 맥주병을 싣고 가던 트럭이, 문을 제대로 닫지 않고, 방향을 급하게 틀다가, 맥주병과 박스들을 도로에 쏟았다며 큰 비난과 질타를 받았습니다. 맥주병이 들어 있는 박스를 몇 층으로 쌓았다면, 옆으로 쏟아지지 않도록 잘 묶거나, 문단속을 잘 해야 합니다. 제대로 묶거나 문을 닫지 않아도 괜찮을 때도 있지만, 도로마다 모양과 상태가 달라,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트럭의 짐칸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귀찮아서인지, 아니면, 문을 닫으면 충분히 싣지 못 해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동안 계속 그렇게 다녀도 괜찮았는데, 그때는 방향을 더 급하게 틀거나, 혹은 빠른 속도로 틀어서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맥주병을 트럭에 싣고 가다 쏟는 일이 안쓰러운 일이지, 그렇게 많은 비난과 질타를 받을 일일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로에 맥주병을 쏟은 일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이 이야기를 듣고, ‘어? 얼마 전에 있었는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약 한 달 전에, 맥주병을 싣고 방향을 틀다, 맥주 박스와 병이 도로에 쏟아졌습니다. 비가 왔음에도, 지나가던 사람들 여럿이 힘을 합해서 함께 정리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착한 심성이 잘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당연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자주 보이는 모습인데, 외국인들에게는 신기한가 봅니다. 외국 여러 뉴스에 미담으로 소개될 정도였습니다.
여기까지였으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착한 마음으로 오래 기억되었을 텐데, 한 달이 지나고 똑같은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사고가 한 달만에 되풀이 되는 자체만으로도 답답한데, 더 큰 문제는, 이번에 사고를 낸 기사가, 한 달 전에 사고를 낸 트럭 기사라는 점입니다.
트럭에 짐을 높게 싣고 가다가 무너져,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흔하다고는 할 수 없죠. 평생 한 번 있을까 할 정도로 아주 드뭅니다. 어쩌다 한 번 트럭에 짐을 높이 쌓고 나르는 경우라도,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하물며, 맥주병과 박스를 싣고 나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매일처럼 하는 일이라면, 어떻게 해야 사고가 나지 않는지 더욱 살피고,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특별한 도움 때문에 사고를 이겨냈으면,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사는, 다른 사람은 한 번 겪기도 어려운 사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겨내는 이 일을 겪었으면서도, 같은 사고를 되풀이했습니다. 더 밧줄을 단단히 매야 하고, 더 조심스레 운전해야 했음에도, 이에 무관심하거나 방심했습니다. 이 운전기사의 사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비난을 더 많이 받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기회의 가치를 몰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짐을 싣고 나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짐을 제대로 쌓지 않거나 묵지 않으면, 쏟아진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죠. 백 번 괜찮았다 하더라도, 한 번 쏟아지면,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는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그런 일을 실수를 겪었다면, 다시는 그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지나치다 할 만큼 더 단단히 묶어야 하고, 더 조심히 운전해야 합니다. 매일 다니고,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도로라 하더라도, 빨리 달리거나, 차의 방향을 빨리 돌려서도 안 됩니다. 마치 빙판길을 달리 듯, 더 천천히, 더 조심히 운전해야 했습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지혜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은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고, 삶의 결국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장차 유익이 되는 일들을 선택하고, 이런 선택이 반복되면, 삶이 점차 풍성해지고, 평안해집니다. 반대로 해악이 되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다 보면, 그 삶은 점차 기울어지고, 어려워지고, 심해지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가치를 생각하지 않다가, 결국 엄청난 손해를 겪게 되고, 이를 만회하려 무리수를 두려 한 어리석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르호보암입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는, 르호보암이 솔로몬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의 아버지인 솔로몬은, 지혜와 많은 업적을 쌓은 인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졌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반 백성들의 희생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계획하고 지시하는 일은 왕과 지위가 높은 관료들이 하지만, 실제 공사에 들어갈 비용을 부담하고, 또 직접 노역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그렇듯이, 가장 힘이 없고 나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수를 차지하는 계층입니다.
게다가 솔로몬의 후궁만 칠백 명, 첩만 해도 삼백 명이었습니다. 왕의 여자들이니,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겠죠.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여인들이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우상들을 섬길 수 있는 시설을 해주었습니다. 솔로몬 시대가 길고 화려할수록, 일반 백성들의 희생과 고역이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백성들로서는 고역과 세금의 부담이 줄어들기를 바랐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왕권이 너무 강해, 제대로 건의할 수 없었지만, 이제 왕이 된 르호보암에게 말하면, 어느 정도 조율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솔로몬보다 더 힘들게 다스리겠다고 답했습니다. 백성들이 자기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수 없는 답이었습니다. 백성들로서는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더 붙이게 된 형국이라,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복수합니다.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지 않겠다며 돌아가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아 다른 나라를 세웠습니다.
문제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하는 무리들이 훨씬 컸다는 점입니다. 12지파 중에서 무려 10지파가 르호보암을 등지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아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르호보암의 모습이 얼마나 답답하고 어리석습니까? 왕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 한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문제를 맞이할 때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전혀 그렇지 못 합니다. 자기 답에 따라 백성들이 돌아선다는 사실도 예측하지 못 했고, 무려 10지파가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음도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그저 자기 욕심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말로 답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을 줄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견디기 힘들었던 솔로몬 시대보다, 더 힘들고 무겁게 통치하겠다는 답을 들은 백성들 다수는 왕을 등집니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던 왕에 올랐지만, 이제는 겨우 소수만 다스리는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상치 못 한 상황으로 흘러가자, 르호보암은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자기 쪽에 남아 있는 이들 중에서, 18만 명의 군사를 일으킵니다. 군사의 힘으로 떠난 백성들을 되돌리겠다는 계산입니다.
그러나 이 계획도 무리수에 불과합니다. 다른 문제를 떠나, 두 지파에서 18만 명의 군사를 일으켰다면, 나머지 10지파에서는 얼마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간단하게 계산해도 몇 배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군사력으로 싸워도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이 때부터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렸고, 통일을 이루지 못 하고, 모두 망하게 됩니다.
그 동안 120년 동안 하나로 이어져 오던 나라를 둘로 나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족끼리 서로 적이 되게 만든 장본인 르호보암의 행적을 보면, 너무 어리석어 보입니다.
르호보암이 군사를 일으켜 싸워 물리치려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 자기 아버지 밑에서 신하로 있던 사람들입니다. 자기 아버지 솔로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던 이들입니다. 모두가 자기 친척이고, 이웃이고, 같은 민족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기에게 어려움을 하소연하며, 부담을 덜어 달라고 하소연하던 자기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무기로 찌르고 죽이려 한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자기 실수와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욕심만 채우려만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르호보암의 가장 큰 실책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터무니없이 행동하고 결정했다는 데 있습니다. 백성들이 아무 이유 없이 반란을 일으키고, 여로보암으로 왕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시대부터 부역과 세금이 지나치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이 왕자로 있고, 자기 아버지인 솔로몬이 왕으로 있던 당시에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겠지만, 이제 왕에 올랐을 때는 얼마든지 백성들의 형편을 봐줄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지나친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왕이 된 후에도,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자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싶었고, 자기가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방법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왕이 된 후, 지혜와 경험이 있는 신하들의 조언을 듣고, 세금과 정책을 조율하거나 바꿀 수 있었지만, 르호보암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둘로 나뉘게 하는 원인이 되고, 동족끼리 서로 경쟁하고, 무기를 들고 싸우게 만든 이유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회로 생각하지 못 하고, 어리석게 반응한 르호보암 때문입니다. 자기 목표와 업적을 위해 백성들을 지나치게 억압한 솔로몬의 잘못도 있지만, 그러나 이를 지켜보았음에도, 반성하거나 고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르호보암의 탓이 더 큽니다.
자기 욕심과 욕망에 따라 행동한 결과가 본문에 기록되었습니다. 크게 잃게 됩니다. 대부분을 잃을 뿐만 아니라, 이를 회복하려 해도, 몇 배의 더 큰 고통과 희생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지혜롭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을 선택할 만한 지혜와 안목과 담대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워야 이런 실수와, 때늦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각자가 밟아온 행적들을 통해,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나쁜 선택과 결정이 반복되지 않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있을 때는, 나쁜 선택을 하게 되고, 기회가 사라졌을 때에야 비로소 이를 깨닫고 때늦은 후회에 빠지게 됩니다.
10여 일 전에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큰 비가 내려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자와 실종자만 해도 20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수해를 막을 만한 시설이 부족해, 거의 매년 수해를 입던 수십 년 전 이후에 가장 큰 피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수해를 입은 곳이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 있는 서울이라, 많은 정치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수해 복구를 위해 왔다는, 여러 정치인들의 언행이 방송되자, 논란을 넘어,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곳에서 모인 정치인들이, 서로 온갖 싸구려 농담을 주고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비 좀 왔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내뱉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도 너무나 터무니없게 “사진 잘 나오게”였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모자라거나, 혹은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도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누가 가르치거나 배우지는 않지만, 사람이라면 모두가 갖는 당연한 마음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도 여럿이고, 집이 물에 잠겨 좌절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피해 현장에 가서, 어떻게 비가 더 오기 바란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 논란이 커지자, 당사자는 사과 방송을 하고, 정당과 정부까지 나서서 온갖 말로 변명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정치인들이나 관료 등의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 수 있었지만, 더불어, 한 번 기회를 잃게 되면, 문제는 훨씬 커지고 어려워진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바른 말을 하고, 바르게 처신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지 못 하고, 어리석게 결정하고 행동하면, 이후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집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물론 무엇을 선택하든, 크게 의미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삶과 이후의 과정까지 나누는 시작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마주할 때마다, 가벼이 여기지 말고, 지금 당장의 안목으로만 보지 말고, 욕심을 기준으로 나누지 말고, 지혜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지혜로운 선택이, 이 땅에서의 남은 시간들과 과정만이 아니라, 이후에 마주해야 하는 생명과 죽음까지 나눌 수 있습니다.
당장은 조금 부유하게 하고, 즐겁게 하나, 나중은 결국 실패와 좌절로 이끄는 길을 선택하지 말고,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들어도, 나중은 좋은 열매를 얻을 만한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앞날이 점차 좋아지고, 얻을 열매와 복이 많아지게 됩니다.
기회가 있을 때 욕심의 안목에 따라, 어리석게 선택함으로써, 뒤늦게 후회하고, 자신은 물론 나라에까지 분열과 고통을 가져온 르호보암의 실패를 통해, 기회마다 복과 성공과 은혜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나날이 더욱 복되고,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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