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선택이 복된 길을 만듭니다
성경: 열왕기상 12장 25-33절(구 536쪽)
찬송: 288장(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484장(내 맘의 주여 소망 되소서)
설교: 2022090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길 빕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듯이, 제가 허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 동안도 안 좋은 편이긴 했지만, 이번엔 통증이 너무 크고, 또 계속되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수술만이라도 피하고 싶었는데, 통증이 견딜 수 없이 계속되었던지라,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 전에는 허리 통증 때문에, 후에는 계속되는 통증과 회복 과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허리에 대한 공부와 노력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허리는 남아 있고, 허리를 버리고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허리가 왜 안 좋고, 또 안 좋아질까?’를 고민하며 이유를 찾다, 어느 척추·관절 전문가의 재밌는 이야기를 봤습니다.
목이나 허리나 무릎 등 관절이 안 좋은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치거나 평소 자세가 안 좋은 이유가 가장 클 듯하죠? 그런데 전문가의 이야기로는, 유전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조상과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이 관절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뜻입니다.
이를 쌍둥이들을 통해 연구되었다고 합니다. 일란성 쌍둥이들은 태어나는 시간만이 아니라, 얼굴만이 아니라, 몸의 모양새가 아주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확인하지 못 할 정도입니다. 겉모양만이 아니라, 뼈와 근육의 모양과 크기도 닮을 수밖에 없겠죠.
쌍둥이들 중에 직업이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고 조사합니다. 한 사람은, 허리에 큰 힘을 쓰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다른 쌍둥이는 막노동이나 농사처럼 허리에 힘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가진 경우들을 비교해 조사했습니다.
이렇게 했더니, 직업과는 상관없이, 쌍둥이의 허리와 관절 등의 상태가 비슷했다고 합니다. 직업과 작업에 따라 허리와 관절이 크게 달라진다고 하면, 허리를 무리하게 쓰지 않은 쌍둥이는 허리 상태가 좋고, 허리를 반복해서 힘을 쓰는 다른 쌍둥이는 허리가 안 좋아야죠.
하지만 쌍둥이 중 하나의 허리 상태가 좋으면, 다른 쌍둥이도 좋고, 쌍둥이 중에, 한 사람의 관절이나 척추 등이 안 좋으면, 다른 쌍둥이 역시 안 좋은 경우가 70%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보다는, 태어날 때,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생김새와 건강이 더 많은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저의 친척과 가족을 보면, 이런 주장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한 번도 못 뵈어서 알 수 없고, 할머니가 장수하셨지만, 허리가 안 좋아서 많이 굽으셨습니다. 할머니의 자녀 6분 중에, 3분이 허리 문제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허리가 많이 안 좋으셨고, 저의 남은 형제자매들 모두 허리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허리 안 좋은 이유를 아버지 탓, 할머니 탓으로 돌려도 충분해 보입니다.
그러나 관절과 척추의 나쁜 증상을 부모와 조상 탓으로 여긴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습니다. 70%가 조상과 부모의 영향이라 인정하더라도, 바꿔 생각하면, 나머지 30%의 몫은 오직 본인이 책임져야 합니다. 안 좋은 허리를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오히려 더 조심하고, 관리를 더 잘 했어야 합니다. 허리에 안 좋은 일들을 피하고, 허리에 좋다는 운동을 꾸준히 했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삶을 받아들이고, 풀어가는 자세와 과정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태어나면서, 각자가 살아갈 과정과 내용이 정해졌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이유를 듭니다.
하나는, 얼마 전에도 다시 말씀드렸습니다만, 태어난 연월일시 즉, 사주에 따라 정해졌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또 누군가는 얼굴의 생김새에 따라 삶의 모양이 결정되었다며, 여러 가지로 해석합니다. 손바닥의 주름 모양에 따라, 살아갈 날의 방향과 모양이 정해졌다고도 합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방법으로 말하긴 하지만, 결국 삶이 이미 정해졌다고 보는 주장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를 보이는 생각과 관점도 있습니다. 태어난 연월일시나, 얼굴이나 손바닥의 모양새에 따라, 정해진 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부모로부터 받은 상황에 따라 삶이 대부분 정해졌다고 봅니다.
물론, 부모의 영향은 자녀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자녀의 입장으로서는, 태어나기 전에, 자기 부모나, 부모가 처한 상황을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자녀에게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영향을 끼칩니다. 외모나 성격이나 건강 등은 ‘유전’이라는 이름으로 자녀와 후손들에게 크게 영향을 주고, 평생 이어집니다.
뿐만 아닙니다.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 명예 등 대부분이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부모의 재산이 많으면, 대부분 그 자녀도 부유하게 삽니다. 부모가 가진 재산 모두가 자녀에게 그대로 주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아도, 자녀들은 또래의 다른 이들보다 훨씬 좋은 기회를 갖습니다.
좋은 직장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훨씬 많이 가질 수 있죠.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은, 공부할 시간과 상황도 어렵고, 다음을 준비하고 얻을 수 있는 기회마저 적습니다. 반대로 부유한 가정의 자녀들은, 일찍부터 좋은 직장을 얻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좋고, 훨씬 많습니다. 같은 시간 노력한다 할지라도, 부유하고 형편이 좋은 가정의 자녀가, 어려운 가정의 자녀보다 훨씬 유리합니다. 100m 달리기를 예로 든다면, 부유한 가정의 자녀가 이미 한참 앞서 출발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부모의 형편과 수준과 생각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절대적이라 여길 수 있을 만큼,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자녀의 삶이 크게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이라 할 수 있을까요? 자녀에게 끼치는 부모의 영향에 ‘절대’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부모의 재산과 형편과 방향이 무조건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해집니까?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에 따라, 하나 달라지거나 바꿀 수도 없이 그대로 유지될까요? 부모가 가진 재산 그대로 자녀들에게 전해집니까? 부자 부모를 둔 자녀는 무조건 부자로 삽니까?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무조건 가난하고 어렵게 살게 될까요? 술을 좋아하고, 중독에 걸린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 역시 술을 좋아하고, 중독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와는 정반대의 경우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각자가 이의 증거이거나, 주위에서 이런 경우도 수없이 봤습니다. 어려서는 부자로 큰소리치며 살던 가정의 자녀들이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어렵게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난하고 술로 인해 무너졌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여유롭게 사는 경우 또한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럴까요? 각자 처한 상황과 형편이 다를 수 있고, 해석도 다양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각자 선택에 따라 삶의 형편과 방향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좋은 형편에 태어났지만, 스스로 어리석고 나쁜 길을 선택하면, 결국 무너지고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그 누구보다 어렵고 힘든 형편에서 태어났어도, 스스로 지혜롭고 좋은 길을 선택하면, 결국 일어서고 성공하게 됩니다.
이는 오늘 읽은 본문에서 등장하는 여로보암의 선택과, 이후에 펼쳐지는 그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을 이어 왕에 오른 르호보암 때문에, 하나로 이어져 오던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었습니다. 이때부터 수백 년 동안 둘로 나뉘었고, 통일을 이루지 못 합니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에서 두 지파만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때 중심이 되는 지파가 유다인데, 남쪽에 자리한다고 해서 ‘남유다’로 부릅니다. 나머지 10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는데, 대부분 북쪽에 두었다고 해서 ‘북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그 동안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나라를 나누어 가져갔으니, 르호보암과지지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반역을 일으켰다고도 할 수 있죠. 하지만 르호보암 자신이 선택하고 어리석게 답했으니, 남 탓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10/12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된 여로보암에게 한 가지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 남쪽에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은 어느 곳을 가나 쉽게 교회를 만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당시는 전혀 다릅니다. 먼저는, 성전이 이스라엘에 딱 하나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요즘은 국경이 분명하죠.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리고, 철책이 세워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허락이 없으면, 이를 오갈 수 없고, 어기면 처벌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세계 그 어느 곳보다 가까운 곳에 가족과 친척이 남아 있음에도, 만날 수 없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가장 혹독한 경우라 할 만큼 특별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당시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3,000년 전입니다. 경계가 요즘처럼 분명하지도 않고, 백성들이 남북을 오가는 일까지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백성들이 성전으로 제사하러 갔다가, 마음이 남유다 쪽으로 기울어질까, 그래서 자기 나라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며 두려합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 백성들이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아도 되도록, 북쪽에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고, 신이라며 섬기라 했습니다. 십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제일과 제이 계명을 어기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자기 자리와 성공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죄악입니다.
여로보암이 이렇게 한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많은 백성을 오랫동안 다스리기 위해서입니다. 자기가 죽으면 자기 자손이 북이스라엘을 계속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은 209년가량 유지되는데, 왕에 오른 사람만 19명입니다. 한 사람당 11년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의 바람과는 달리, 그 아들은 겨우 2년 나라를 다스리고, 다른 가문에 왕의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이에 대해, 다음 장인 13장 33,34절에서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로보암의 죄악과 더불어 악영향은 계속 이어지는데, 그 아들의 모습을 열왕기상 15장 26절에서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고 합니다. 또 왕조가 바뀐 다음 왕들의 행적을 표현할 때, “OO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는 말이 반복 기록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나라를 이어받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얼마든지,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맞게 나라를 이끌어 갈 수도 있었습니다. 뒤이은 왕들이야, 기록된 대로, 여로보암의 악하고도 어리석은 행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 자신은 나라가 세워진 후 첫 번째 왕이니 “누구 때문이다”고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로보암은 나라 전체를 병들게 하고, 다음 왕들 이 모습을 되풀이 했습니다. 백성들과 후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길 수 있는 문을 열어주고, 그에 대한 벌을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도록 만든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행적을 보면, 한 사람이 자녀와 후손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점도 알 수 있지만, 이보다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집니다. 분명 우리는 주변 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바를 우리가 결정할 수 없고, 게다가 그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많은 이들이 그래서 앞으로의 과정마저 정해졌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우리 스스로 선택과 행동에 따라 우리 삶은 달라집니다. 우리 삶만이 아니라, 자녀와 후손들에게도 얼마든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 우리 삶을 만들어 가면, 우리 삶도 복되고, 자녀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고, 좋은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욕심에 따라, 하나님을 등지고, 어리석은 길을 택하며 살면, 지금 무엇을 가졌고, 어떻게 살아왔든지, 결국 실패하고 무너집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뒤이은 자녀들의 삶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실패하게 만드는 시작점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가 부모로부터 받은 바에 따라 살도록 정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선택에 따라 복과 저주가 나뉘도록 하셨습니다. 조상과 부모로부터 좋은 환경을 물려받았으면 감사하며, 더 지혜롭게 행하면 되고, 그렇지 못 했다 하더라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좋은 날들을 향해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와 안목과 결단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기억하고, 복과 좋은 날들을 위해 지혜롭게 선택하며 행하여, 지금의 형편과 상황을 넘어, 더욱 복되고 기쁨이 넘치는 자녀로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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