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법칙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경: 마가복음 1장 29-31절(신 53쪽)
찬송: 542장(구주 예수 의지함이; 통340), 545장(이 눈에 아무 증거; 통344)
설교: 2017043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말 중에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용이란 사탄의 또 다른 모습이라, 용을 좋게 이해하지 않습니다만, 일반 사람들은 가장 높고 좋은 것을 ‘용’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왕의 얼굴은 ‘용안’, 왕이 일할 때 입는 옷을 ‘용포’라고 했고, 지붕에 용머리를 두었고, 상여에도 용의 모양을 달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크게 성공하고 잘되었을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개천’은 어느 시골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냇가를 말합니다. 가장 큰 성공을 뜻하는 용이 나올 만한 곳이 못됩니다. 그래서 성공할 만한 조건이나 상황이 전혀 아님에도 혼자 노력해서 크게 성공한 것을 일컬을 때 ‘개천에서 용 났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자수성가’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고 크게 성공한, ‘개천에서 용 난’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크게 이루고 자수성가한 비율을 나라별로 조사해 봤더니, 중국이 97%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 100명 중에서 97명은, 부모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2위는 80%인 영국, 일본이 73%로 3위였습니다.
우리나라는 한참 아래, 그것도 너무나 큰 차이로 꼴찌를 차지했습니다. 심지어 인구 많고, 요즘도 카스트라는 사회적 신분 제도가 있는 인도의 33%보다 더 낮은 23%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 100명으로 계산해 보면, 23명은 자기 혼자 힘으로 성공을 이루었다는 뜻인데, 나머지 77명은 부모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이룬 성공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는 개천에서 용 날 만한 상황이 못 됩니다. 부모나 조상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할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크게 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좋은 조상,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한다는 서글픈 말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즘엔 이것을 두고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들은, 별다른 노력이 없이도, 부자 부모를 만나서 평생 편하게 살게 됩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은 직접 선택하거나 실수하지 않았음에도, 부모의 형편과 비슷하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들을 흙수저라고 부릅니다.
부모의 뒷받침이 없이 혼자 힘만으로 잘되고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자, 많은 사람들이 두 가지 길을 선택합니다. 하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일찍부터 연애, 결혼, 출산, 자기 집 마련, 인간관계 등을 아예 포기합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의 이런 모습을 세 가지를 포기한다고 해서 ‘3포세대’, 다섯 가지를 포기하고 산다고 해서 ‘5포세대’,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해서 ‘N포세대’라고 합니다.
또 다른 한 가지 모습은, 뜻밖에 얻는 행운을 바라고 기대하며 사는 것입니다. 흔히 쓰는 말로, ‘인생의 한 방’을 기대하며, 이것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가장 흔하게는, 당첨만 되면 수 억 원에서, 수십 억 원까지 받을 수 있는 로또 복권에 매달립니다. 이 외에도 운동 경기에 누가 이기고 질 것인지를 예측해서 돈을 걸고, 잘 맞힌 사람이 돈을 따는 것에 매달린 사람도 많습니다. 또 대부분 불법이긴 하지만, 서로 돈을 걸고, 이기는 사람이 돈을 가져가는 노름과 도박에 빠진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요즘의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유일한 소망으로 여기는 것은 어쩌다 한 번 찾아올지도 모르는 ‘요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또 1등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45개 숫자 중에서 6개를 맞혀야 한다고 합니다. 이 확률이 얼마냐 낮은지, 800만분의 1이라고 합니다. 로또만이 아닙니다. 누가 어떻게 이기느냐에 돈을 걸고, 맞힌 대로 돈을 가져가는 것도 역시 확률입니다. 도박이나 노름도 역시 확률을 다른 모습으로 나눈 것입니다.
물론 그 확률이 너무 낮아서 희박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당첨되는 사람이 있고, 노름과 도박에서 돈을 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희박한 확률에서 이기고 따고 잘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 주에 몇 명이 1등에 당첨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는 있겠지만, 1등에 다섯 명이 당첨되었다면, 그 나머지 수 백만 장을 산 사람들은 모두 헛돈을 쓴 것 아니겠습니까?
한참 ‘성공’이라는 말이 유행되었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많은 책들이 나왔습니다. 책에 ‘성공’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아직까지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발견하지 못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나왔다면, 더 이상 새로운 방법을 연구할 필요도 없고, 성공을 위한 다른 방법들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성공을 위한 모든 방법도 결국은 확실한 것이 아니고 확률에 불과합니다.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사는 것도 역시 확률입니다. 확률이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입니다. 쉬운 말로 보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고추를 밭에 심기 전에 대부분 하우스에 씨앗을 뿌려 모종으로 만들죠? 그런데 씨앗 봉투를 보면, 발아율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씨앗을 심으면 모두 싹이 나고 모종이 되는 게 아니고, 어떤 것은 싹이 안 나서 버릴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100개의 씨앗을 심었을 때, 보통 몇 개 정도가 싹이 나는지를 ‘발아율’이라고 합니다. 100개 중에서 85개 정도가 싹이 나오면, 발아율이 85%이고, 100개 중에서 90개가 정도가 싹이 나면 발아율 90%라고 합니다.
이런 확률과 대비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법칙입니다. ‘법칙’이라는 것은, 오류나 예외 없이 무조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중력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물건이 높은 곳에서 낮은 쪽으로 떨어지고 내려오는 것을 중력의 확률이라고 하지 않고, 법칙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세상 어디서든 똑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식사를 하다 수저를 놓치면 어떻게 됩니까? 아래로 떨어지죠? 주전자에 물을 담고 가다가 물이 밖으로 흐르면 역시 아래로 떨어집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에 가도 역시 똑같이 일어납니다. 더운 나라에서도 같고, 아무리 높은 산에 올라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에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만일 다른 곳에서는 다 똑같은 모습이 보였는데, 딱 어디 한 곳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 이것은 법칙이라 할 수 없고, 확률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이론이라는 말을 붙여야 합니다.
믿음을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들을 확률로 믿느냐, 법칙으로 믿느냐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들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약속을 법칙으로 믿지 못 하고, 확률로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그 약속을 법칙으로 믿으면 그 누구도 복음을 거부하지 못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성경 곳곳에서 주시는 약속들을 법칙이 아니라, 확률로 보게 만듭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아니면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을 심어줍니다.
이것이 첫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와 주었던 사탄의 계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것 다 해도 괜찮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첫 사람인지라, 죽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률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이 유혹하는 말이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이고, 사탄이 자기들을 더 잘 생각해 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만드신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 사탄은, 지금도 그 계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법칙이 아닌 확률로 보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하나님이 베푸시는 능력과 약속을 법칙이 아닌 확률로 보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것이 불확실하니 믿음도 사라지고, 담대함도 사라집니다.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열심히 수고했는데, 혹시 그 길이 잘못된 길이고, 그래서 헛수고가 된다면 얼마나 후회되고 아쉽고 원통하겠습니까? 요즘은 많이 사라진 것 같은데, 무슨 계를 만들어서 정말 힘들게 돈을 모아서, 받을 순번이 되었는데, 계주가 그 돈을 가지고 도망갔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일부인 돈도 이런데, 하물며 우리의 삶 전체를 바치고 수고했는데, 그것이 가짜고, 헛수고가 된다면, 그 누가 괜한 고생을 하겠습니까? 그 누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자기의 삶을 바치고,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 바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법칙이 아닌 확률로 보게 되면, 담대함도 사라지고, 믿음도 사라집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가 그 동안 뿌리고 투자한 모든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자기의 것을 바칠 수 있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반드시 그대로 된다고 법칙으로 믿으면, 가장 큰 약속인 영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순종할 수 있고, 확률로 보면 헛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약속과 우리를 향한 말씀이 어긋나지 않는 불변의 진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33절에서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법칙으로 믿지 못 하고, ‘그렇게 되길 원하지만, 혹시 만에 하나 천에 하나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는 확률로 믿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목숨을 걸 것이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등을 돌리고, 세상이 추천하는 방법을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약속도 확률이고, 인간적인 방법도 역시 확률인데, 인간적인 방법이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확률이 높은 방법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몬 장모의 병을 고쳐 주신 사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베드로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관습에서 보면, 결혼한 남자는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돌보고 책임져야 했습니다. 베드로의 그런 사정을 아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으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면서도,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자 베드로의 가정에 복 주셨습니다. 먼저는 베드로의 가정에 구원의 복을 주셨습니다. 형제인 안드레는 함께 제자가 되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9장 5절에서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게바는 베드로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를 통해 보면, 베드로가 그의 아내와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모든 가족들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에게 부담과 큰 어려움으로 남아 있던 장모의 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만일 가장인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느라 가정을 돌볼 수 없고, 장모는 병상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은 베드로를 비난할 것이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마음에 큰 부담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사정을 아시고, 장모를 고쳐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근심과 걱정, 아픔들까지도, 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모두 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육체를 입고 살고 있으며,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없이 살라고 하시지 않고, 마태복음 6장 32절에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말씀하셨고,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지만, 아직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마음의 부담과 걱정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또 세상적인 방법과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언제든지 실패하고 무너질 수 있는 확률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한 번이라도 틀리거나 어긋날 수 없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순종을 보시고,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 그 법칙대로, 우리의 모든 어려움과,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반드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과 은혜를 법칙으로 믿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모든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참된 성공을 이루고, 복으로 채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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