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장벽을 넘어야 주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마가복음 2장 1-12절(신 55쪽)
찬송: 542(구주 예수 의지함이; 통340), 543(어려운 일 당할 때; 통342)
설교: 20170521.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이번 5월 9일에 문제인 대통령이 우리나라 제 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전 정권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쳤으면, 당선된 후 3개월 정도 인수할 기간이 주어집니다만, 이전 정권이 탄핵되어서, 이번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곧 바로 대통령으로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정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도, 우려와는 달리,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한 것처럼 일을 참 잘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정권이 이제 한 주 일한 것에 불과함에도 많은 칭찬을 받는 것은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만이 아니라, 그 동안 이분을 겪어 아는 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인격과 품성에 대한 칭찬이 아주 많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대통령 후보들 중에는 나와서는 안 되는 자격 미달이 있었죠? 막말하고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TV 토론에서 막말하는 이 후보가 문재인 후보한테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을 펴며 공격했습니다. 그랬더니 문재인 후보가 “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막말을 하는 후보에 비하면 이 말은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잘 아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평소 화를 내는 경우도 거의 없고, 욕을 하거나 막말을 하는 경우를 한 번도 못 봤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이보세요”라고 할 정도면, 그분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착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다’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흔히 착하고 얌전하다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에서처럼 화가 전혀 안 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화가 나더라도 일단 참고, 가슴에 쌓아둡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면 폭발하기 때문에, 화내는 정도가 다른 사람들이 화내는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는 흔히 마지노선이라 부르는 마지막 한계선이 있습니다. 이 선을 넘으면, 아무리 얌전한 사람도 화를 내게 되고, 아무리 성인군자 같은 사람도, ‘사흘 굶어 담장 안 넘을 사람 없다’는 속담처럼, 배고픔이 너무 크면 남의 것을 탐내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계선이라는 것이 일반생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일상의 한계점이 무너지면, 그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던 나쁜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평소 온화하고 정직하게 살던 사람도, 인내의 한계점이 무너지면 화를 내고, 양식을 위해 양심을 희생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반대로, 신앙의 한계점은 무너져야만 우리의 아픔과 어려움이 해결되고, 주님이 까마득한 옛날 저 먼 나라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하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 무너져야 하는 신앙의 한계점이란 곧 의심의 장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신앙인들과 어울려 있을 때는 나름 믿음이 괜찮은 것 같고, 꽤나 기도도 하는 것 같고, 순종도 잘 하는 것 같은데, 내 속 깊은 곳을 조용히 들여다 볼 때가 있습니다. 내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양심의 작은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내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고, 또 보이는 것이 성숙하고 거룩하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 할 때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것까지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수 없다고 하는 장벽이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숨겨둔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미 해결될 수 없는 일로, 날마다 기도하면서도 평생 지고가야 하는 짐으로만 여길 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거나, 고쳐 주시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장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인생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안고 살았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중풍병으로 인해 몸에 심각한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이 환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지만, 3절에서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이 환자를 데리고 오기 위해 네 사람이 필요로 했습니다.
이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환자가 혼자 걸을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의 부축이 없이 혼자 왔겠죠. 어느 정도라도 거동이 가능했다면, 두 사람이면 부축해서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한 사람을 데리고 오기 위해 네 명이 필요했다는 것은, 이 환자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숨은 쉬고 있지만, 팔다리를 전혀 못 움직였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심각한 병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어떻게 했기에, 그 간절한 바람대로 고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죄 문제까지도 용서를 받았습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환자는 여러 가지 장벽을 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은 중풍으로 인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장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장애를 감추려 했습니다. 장애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받았고, 심각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밖에 나가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인데, 하물며 예수님 당시인 2천 년 전에는 얼마나 심각했겠습니까?
게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와 질병이 서로 연관된 것으로, 그리고 용서를 받으면 병이 낫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큰 질병이나 장애가 있으면, 그저 ‘아프구나, 장애를 가졌구나’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큰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았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본문의 환자도 병이 생긴 이후부터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멸시하는 태도가 두려워서, 바깥출입을 안 하고, 집에서 그렇게 숨어서 지내왔을 것입니다.
본문 속 이 환자도, 자신이 어떤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환자들처럼 평생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삶을 끝나고 말 거라는 높고 단단한 이 장벽을 이겨냈습니다. 모든 병자를 고치신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먼저 포기하고, 먼저 좌절하게 만드는 장벽, 스스로 비참하게 만드는 장벽을 과감하게 벗어났습니다. 첫 장벽을 넘어서고, 예수님을 향한 소망의 발걸음을 시작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기는 정죄하는 장벽을 벗어났지만, 다음 장벽이 있습니다. 바로 현실의 장벽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포자기의 삶을 살던 장벽을 넘고, 이웃에게 어렵게 부탁해 예수님만을 바라며 어려운 걸음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이 워낙 많아 예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지붕을 뚫어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합니다.
이때의 모습을 머릿속에 한 번 그려봅시다. 예수님이 어느 집 안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잡소리 하나 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봐 작은 움직임조차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간절하고 진지한 시간이 계속되는 중에, 갑자기 지붕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흙과 지붕을 덮은 것들이 떨어지더니, 지붕에서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 하나가 내려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태도가 어땠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큰 죄로 인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다, 그렇게 말씀을 듣는 중에 예고 없이 들이닥쳤으니 사람들은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을 쏟아냈을 것입니다. 이 환자도 분명히 이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현실의 벽을 넘어섰습니다. 그만큼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이겨내고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또 이 환자는 의심의 장벽을 넘어섰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왔는데,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거나,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말씀만을 전하고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혼란스럽고 의심이 들 수도 있었습니다. ‘혹시 소문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하는 의구심, ‘가벼운 병은 고치셨지만, 거동을 전혀 못 할 정도로 중한 병을 고치실 수 있을까’하는 의심의 장벽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애, 장벽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온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 환자를 깨끗하게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죄까지 사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여러 가지 질병이 어떤 특정한 죄와 상관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죄와 교만으로 인해, 우리는 온갖 질병과 고통, 사망의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치유된다는 것은, 죄와 사탄이 인간의 삶 속에 만들어 놓은 약함과 절망에서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현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먼저는 주님 앞에 나아오기까지 넘어야 하는 장벽들이 있습니다. 첫 장벽은 신앙의 길로 가겠다며 다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엔 신앙인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편하기로 따진다면 세상의 자연스런 흐름에 맡기고 따라가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바꿔 생각해 보면, 신앙생활이란 편하고 자연스러운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곳에 생명과 영생이 있으니 불편하고 어려운 이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큰 용기로 첫 번째 장벽을 넘어도 다음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현실의 장벽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천사처럼 살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필요한 것, 있어야 하는 것 많고, 먹고 입고 쓰기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힘쓰기에는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그러나 이 장벽을 넘지 못 하면, 주님께로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두 번째 현실의 장벽을 넘었지만, 기대와는 다른 주님의 모습을 발견한 중풍병자처럼, 우리도 역시 세 번째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우리의 기대와는 다를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교회에만 나오면, 바라고 기대하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어려움이 한번에 해결될 거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막상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해 보면, 주님은 나의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으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주님은 내 문제가 아니라,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너무 먼 이야기만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우리가 넘어야 하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모두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모두에게 말씀하신 주님이 곧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 주님 앞에 나아오며 여러 가지 기도제목들, 마음의 간절한 소망을 품고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응답이 늦어지고, 기도제목이 너무 오래되어, 마음 한 구석에 의심의 장벽이 쌓여 있지는 않습니까? 의심의 장벽뿐만 아니라, 그 외의 사람들의 시선, 현실이 장벽이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하지만 주님이 너무 멀리 계신 것 같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장벽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나의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는 넘을 수 없는 장벽과 한계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에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시는 것에는 장벽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인내의 장벽이 있을 뿐입니다. 이 의심의 장벽, 포기하게 만드는 이 장벽을 넘어서야 주님을 만날 수 있고,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의심과 현실의 장벽을 넘고, 주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질병과 아픔도 반드시 고쳐주시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며, 또한 슬픔과 죽음의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우리의 죄를 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서 온전한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여러 장벽 앞에서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은 온 세상의 창조주시고, 주인이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고, 모든 어려움과 장벽을 넘어서고,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써 치유 받고, 응답받고, 주님이 주시는 복으로 채워 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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