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 마가복음 7장 14-23절(신 64쪽)
찬송: 415장(십자가 그늘 아래; 통471), 540장(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통219)
설교: 2017122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세계에는 여러 종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무속신앙 등이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포함되어 있고, 비율로 따지면 25%정도, 즉 전세계 1/4정도가 기독교인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1/4정도지만,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나라들을 보면,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 브라질, 이탈리아 등입니다. 기독교의 비중이 가장 큰 이런 나라들의 이름들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대부분 잘 사는 나라죠?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 나라 전체가 만들어 내는 국민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봤더니,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해 내고 있는 10개 나라들 중에서, 기독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무려 일곱입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을 만들어 내는 열 나라들 중에서, 중국, 일본, 인도만 빼고, 나머지 7개 나라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다른 여러 종교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국민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사는 나라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물질의 복을 받아 풍요롭게 된다고 말하고, 이것으로 전도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것을 보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25%밖에 안 되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들 다수가 그만큼 선진국에 포함돼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들이 이렇게 풍요롭게 살아왔는데, 이들 나라들이 행한 일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기독교인들이 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들을 잘 지켜 행하며 살아왔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기독교인들이 많긴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신 바들과는 상관없이 지내왔을 것 같습니까?
제대로 된 기독교인들이라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지켜 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나라들도 역시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를 지켜 행하며, 이 나라들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기독교 나라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혀야 하고, 맛을 잃어버린 곳들에 맛을 낼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독교 국가들에 특별한 물질의 복을 주셨다면 이를 위한 것일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신다면 무엇을 위해서겠습니까? 혼자 잘 먹고, 배부르도록 하기 위해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욕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욕심을 채우고, 혼자 편안히 잘 살도록 물질의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도록 물질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신 까닭이 이렇다면, 기독교인들이 많은 나라들에게 특별히 물질의 복을 주셨다면 그 까닭도 분명합니다. 풍요로운 물질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나라처럼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무 가난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니, 풍요의 복을 주셔서, 선택을 받은 나라로서 더 잘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그 동안 기독교인들이 많은 나라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나라들처럼 행하며 살아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독교 국가로 불리는 나라들이 이런 면에서 턱없이 부족하게 살았습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나라들이 많았지만, 이들이 걸어온 길들은, 하나님의 계명이나 방법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과는 반대로, 세상의 빛을 막고, 소금 대신에 재를 뿌린 일들이 허다했습니다.
큰 전쟁이 많았지만, 가장 큰 두 전쟁을 ‘세계 대전’이라고 하고, 지금까지 두 번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1914년 시작되어 1918년까지 계속되었고, 이 전쟁으로 900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1937년)에 시작되어 1945년까지 계속되어 군인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는 3,000만 명이나 됩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이들의 수만 해도, 현재 남한의 인구수만큼 됩니다.
문제는 1,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제공한 나라들 상당수가 기독교 국가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을 모두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특히 히틀러 때에 ‘홀로코스트’라고 해서, 무려 1100만 명을 죽였고, 600만 명의 유태인들을 죽였습니다.
또 다른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멀리 보면, 회교도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이유로, 교회가 주도해 일으킨 십자군 전쟁은 무려 361년 동안 계속되었고, 얼마나 많은 고통과 피해를 주었는지 모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약 300년 전 즈음에 기독교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참여한 큰 사업이 있습니다. 노예 무역입니다. ‘노예’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을, 피부색이 다르고,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물건처럼 사고팔고 이용하는 것, 짐승보다 못하게 다루는 것을 뜻합니다. 이 사업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고, 그래서 막대한 돈을 모은 나라들 대다수가 안타깝게도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이것을 사업이라고,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라 여기고, 이 악한 일에 가장 열심히 참여한 대부분의 나라가 지금 보면 선진국들이고, 당시엔 기독교 국가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시고, 우리와 똑같이 귀한 사람들을 피부색이 검고, 총과 칼이 없다는 이유로, 짐승들보다 못하게 다루고 학대하고 죽인 행태가 어떤지 잠깐 영상으로 보겠습니다.(노예 운송 방법 영상)
이렇게 기독교 국가들이 기독교 정신과 믿음은 없이, 더 악독하게 행한 것도 마음 아픈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정부와 권력이 이런 잘못된 길로 갈 때는, 교회가 나서서라도, 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못 하도록 막으려 죽을힘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믿음의 길입니다. 그런데 당시 교회들은 이런 악행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악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곁에서 돕고 함께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는, 예루살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는 게 십자가 군병들의 사명이라 옹호해줬습니다. 흑인 노예들을 잡아들이러 떠나는 이들에게, 교회는 축복해줬고, 흑인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 그래도 괜찮다고 해줬습니다.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도, 유태인들이 히틀러에 의해 죽어가고 있을 때도, 교회들과 신학자들은 이를 옹호하거나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도, 일부 교회와 교인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교회와 교인들은, 권력에 복종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며, 일제의 편에 섰습니다. 선교사들 역시 광복운동하는 이들을 못 하도록 막았습니다.
이처럼 그 동안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많은 나라들이 왜 이런 잘못된 길을 걸어왔겠습니까? 하나님 탓입니까? 전쟁이나 큰 사고가 일어나면,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죠? ‘이렇게 죄 없는 이들이 죽어갈 때, 신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런데 이런 전쟁을 누가 일으켰습니까? 하나님이 일으키셨습니까? 사람이 일으켰죠? 대형 사고들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죠. 본문 21,22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라는 말씀처럼, 모두 인간의 속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죽이고, 속이고, 빼앗은 것들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피해를 입으면, 언제나 하나님 탓을 합니다.
이를 통해 사람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돈과 계명과 교훈으로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언제나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기에, 그 끝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살리는 게 아니고, 사람을 더럽게 하고, 짓밟고,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한다는 것은, 인간의 전통과 욕심을 따라 사는 길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앞에 두고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는 게 신앙생활이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처럼 포장된 사람의 계명에 속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처럼 목숨 걸고 지키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사람의 것에 속아서, 하나님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삶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떡을 먹으면서 손을 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장로들의 전통’ ‘장로들의 가르침’에서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밖에 나갔다오면 몸을 씻어야 했고, 이 외에도 지켜야 하는 것들과 금지된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이들의 기준에 따르면, 예전부터 내려오던 이런 전통과 가르침을 잘 지키고 따르면, 거룩해지고 깨끗해진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이런 생각과 가르침에 대해 “사람의 계명” “사람의 전통” “너희 전통”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이 만든 것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속에서 나온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기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전통과 가르침이 사람을 더럽게 하고, 해롭게 한다는 것이고, 영적으로 죽이기까지 한다는 뜻입니다.
힘들게 가르치고 지키는 일이라면, 사람을 돕고, 이롭게 해야 수고한 대가와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목숨을 바쳐 가르치고 지켰는데,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해롭게 하고, 더럽게 하고, 죽이기까지 한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망가지고 실패한 삶입니다. 이렇게 힘쓸 것에 힘쓰지 않고, 버려야 할 것에 목숨을 건 어리석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구해주시겠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살아온 모든 과정은, 결국 사람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것을 버리는 어리석은 삶이었고,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중요시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목숨을 걸고 힘써 노력했지만,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철저히 버림받고, 외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열심히 지키고 노력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거라 여겼지만, 복과 생명 대신에, 저주와 죽음만이 가득한 과정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처럼 어리석고 실패한 삶을 산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 만한 지혜와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겠습니까?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처럼 어리석고 미련한 길을 선택하고 걸어간 까닭은, 하나님의 계명으로 포장된 사람의 계명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만한 지혜와 깨끗한 양심이 있었다면, 화려하게 포장되었더라도, 그 속에 담겨 있는 사람의 계명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사람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릴 만큼 어리석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계명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포장하고, 그래서 썩은 것들에 집착하느라, 결국 사람의 계명에서 나오는 것들로 자신들을 더럽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더럽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이런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가 힘써 지킬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그 속에 있는 것들을 알 만한 지혜와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우리 속을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고 덧입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고 살다가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저주를 받고 말 것입니다. 그 동안 기독교 국가들이 행해온 죄를 우리도 똑같이 행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이라서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신앙인, 기독교인은 되어야 하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건물과 교회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설명이 좀 어려울 수 있고, 여러분이 오해하실 것 같아 염려되긴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라는 겉모양과 제도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속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라는 겉모양과 형식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가르침대로 살기 노력해야 하는 교인입니다. 기독교인은 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되는 것, 교인으로 사는 것을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고, 교회를 믿고 사는 것이 곧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삶이고, 주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고 실패한 삶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형식과 겉모양을 떠나, 우리 속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워지고, 바른 믿음으로 살아가길 바라십니다. 이것이 복되고, 구원받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겉모양에 힘쓰느라 속에 것을 버리는 자로 살지 말고, 우리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지고, 거룩해지기 위해 다짐하고 노력함으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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