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107)예수님은 무너진 것을 세우십니다(막 7장 31-37절)

청명하늘 2018. 6. 23. 00:43

예수님은 무너진 것을 세우십니다

 

성경: 마가복음 731-37(66)

찬송: 446(주 음성 외에는; 500), 384(나의 생명 되신 주; 424)

설교: 20180107. 주일낮예배

 

 

 

2018년 첫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공자의 가르침을 모아놓은 책인 논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 나라의 극자성이라는 사람이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은 이미 그 바탕이 갖추어져 있는데, 왜 겉모양까지 갖추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뜻은, 열심히 노력해서 그 속이 알차고, 좋으면 되었지, 왜 그 위에다 겉모양까지 더 가꾸고,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겉이라는 것은, 가죽 위에 있는 털과 같습니다. 만약 가죽의 털을 뽑아버리면, 그것이 호랑이 가죽인지, 개가죽인지 알 수 없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이해가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만, 먼저 말한 사람(극자성), 사람의 속과 겉 중에서는, 오직 속만 중요하지, 겉으로 포장하거나 꾸미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고, 이에 대해 다른 사람(자공), 물론 더 중요하기로 따지면 속이 더 중요하지만, 겉모양까지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겉이 있어서 그것의 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의 신앙에 대입해 보면 어떨 것 같습니까? 속이 중요합니까? 겉이 중요합니까? 속이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167절에서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에, 겉보다는 속이 먼저고 더 중요합니다.

 

당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울은, 겉으로 보면 여전히 왕의 자리에 있었고, 키 크고, 인물이 훤칠한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려 했지만, 그 속이 하나님을 떠나고 겉모양에만 치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포기하시고, 다윗을 새로운 왕으로 계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과 중심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이것으로 판단하십니다.

 

이것이 마가복음 7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논쟁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속은 어떻든, 겉으로 정결법을 지키면 깨끗해진다고 생각했고, 속이 아무리 깨끗하고 정결해도, 자기들이 정한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불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해 반대하십니다. 겉이 아니라 속이 중요하고, 그래서 속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음식들은 소화되어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속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악한 생각과 거짓과 음란과 질투와 교만 등이 사람을 해롭게 하고, 죽이는 등 사람을 더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로,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다투시고, 제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셨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 합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적으로 가장 더럽고 죄인들처럼 여겨지던 이방인 지역, 하나님을 알지 못 하거나, 믿지 않는 수로보니게 지역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믿음 때문에, 귀신에 들렸던 어린 딸을 구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그 동안 종교적인 업적이나 자랑거리 심지어는 아무런 믿음의 흔적조차 없던 사람이지만, 그 속이 하나님을 향하자 은혜 베풀어 주신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 과정들을 지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직 속과 그 믿음이 중요할 뿐, 겉은 별것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럼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속만 중요하다면, 그럼 지금 우리가 예배하고 찬양하고, 헌금하고 기도하는 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 ‘속만 중요하고, 겉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 동안 기울인 수고와 노력이 헛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겉모양만 중요하다고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주장에 반대하시며, 겉이 아닌 속이 중요하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 그리고 직접 현장까지 가서 보여주신 이 과정에서, 제자들도 역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또 신앙적으로 고민했을 것입니다. ‘속만 중요하다면, 그 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열심히 드렸던 제사나 기도나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을까?’ ‘지금 예수님을 따라 수고하고 노력하는 이 모든 일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지역에 가셔서 은혜와 기적을 베푸신 후, 곧 바로 다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지역에 돌아오셨고, 이곳에서 하나님의 자녀 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 오늘 본문 32절에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사람이 말 더듬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보면, 태어나면서부터 들을 수 없는 장애를 가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서는 말을 더듬었다고 해석해서, 말은 하지만 조금 더듬는 정도라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만, 본래는 말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말을 더듬는 정도가 아니라, 말을 거의 못 하는 정도를 뜻합니다.

 

우리가 말을 배우기 위해서는 입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말을 듣고 배우는 게 쉽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들을 줄 알아야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듣지 못 해서, 제대로 말을 배우지 못 한 사람은 커서도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말을 하더라도, 발음이 정확하지 못 해서 대화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온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라는 뜻은, 태어날 때부터 못 듣거나, 혹은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들을 수 없었고, 이 때문에 말을 거의 못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예수님께 도움을 받았더니, 듣게 되었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앞의 수로보니게 사건에 이어 나왔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앞의 수로보니게 여인의 사건은, 평생 하나님을 모르거나, 혹은 알았더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던 여인이, 자기의 어려움 때문에 예수님께 겸손하게 도움을 구하게 된 일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신앙생활에서 겉이 아니라, 속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종교적으로는 아무런 공로나 업적도 없고,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이 여인이지만, 자기의 어려움 때문에 겸손히 주님께 나아와 도움을 구했더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겉이 아니라 그 속이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행하신 사건은 제자들에게 충격과 큰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신실하게 살아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계명을 지키며 살아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냥 막 사는 것은 또 얼마나 편하고 쉽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안 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은 행하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그 모든 것이 겉이라 도움이 안 된다면 얼마나 허탈하고 속상하겠습니까?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면, 이제 편하고 쉬운 길대로, 하고 싶은 것 하고, 하기 싫은 것 안 하고 살면 될 거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질문을 우리도 똑같이 던지게 됩니다. 신앙생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 중에, 신앙인이기에 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 하는 것이 편하지만, 신앙생활을 위해 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당장 더 큰 유익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이익과 편함을 포기하고,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합니다. 신앙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합니다. 이렇게 추운 날에, 따뜻한 방에 누워 TV 드라마를 보며, 간식 찾아 먹으면 얼마나 편합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러 유혹을 이기고 예배하러 나아옵니다. 헌금하지 않으면,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먹고 입고 싶은 것들 살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참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까닭 역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겉을 치장하고 잘 보이기 위한 것이라 소용없다면, 힘들여서 편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참을 필요없고, 힘들게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하기 싫은 것 안 하고, 마음 수련만 쌓으면 될 것입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 하면, 전혀 잘못된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되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시기 위해서 다시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사람들의 자리인 갈릴리 지역으로 오셔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신앙생활하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복들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경험하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 수로보니게 여인은, 평생 하나님을 모르다가 아주 어렵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곳까지 찾아가지 않으셨다면, 평생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을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속 귀먹고 말을 못 하는 사람은, 평생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살았고, 그러면서 그곳에서 함께 계시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사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적과 예수님의 말씀은, 가깝고 친근하며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겪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베푸신 은혜를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예배하고, 기도하지 않고, 주님을 향한 마음이 없다면,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고, 언제 죄와 죽음을 기억하며, 구원과 영생을 생각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믿음과 구원과 영생이라는 신앙생활의 선물을 생각하며, 그곳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은혜와 복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복들 중 하나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녀를 어떻게 대하며 고쳐주시는지 오늘 본문에 잘 나옵니다. 33절에서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듣지도 못 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혼자 어디를 향해 가라는 것과, 어느 지점까지 물어서 찾아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가라거나, 어디까지 찾아오라고 하시지 않고, 직접 이 사람을 데리고 목표한 곳까지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방법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다른 종교나 가르침을 보면,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욕심을 버려라.’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니 집착을 버려라.’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니 인내하라등의 좋은 가르침을 내놓지만, 이 말대로 조절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이런 소리는,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말로 설명하고 어디로 오면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누군가에게 찾고 구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귀에 듣기에만 좋은 말씀만 주신다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라고 하시지 않고, 듣지도 못 하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을 직접 데리고 가신 것처럼, 가장 좋은 해결책을 내놓으십니다. 우리의 문제에 대해 막연한 답을 내놓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에 직접 개입하시고 해결책을 주십니다. 이를 더욱 강조하시기 위해서 이 환자를 다른 사람을 고치시던 모습과는 다른 방법으로 치유하셨습니다.

 

33절을 보면, 이 환자의 귀에 손가락을 넣고, 또 그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심에도 다른 환자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고치신 이유는, 고통 받는 한 이 사람의 삶에 대해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듣지 못 해 고통스런 두 귀를 만져주시고, 말하지 못 해 고통스런 혀에 손을 대심으로써 네가 겪는 고통에 대해 나도 같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듣지 못 하기 때문에 말씀으로 하시지 않고 만지심으로써 느끼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과 이 사람 사이에 영적 교감이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전해졌습니다.

 

이 사람은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함으로써 수로보니게 여인보다 더 큰 은혜와 사랑을 겪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을 잘 섬기며, 말씀대로 순종한 것들이 헛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귀한 도구와 영양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신앙생활의 겉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또 다른 통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도 속을 채우고,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더불어서, 우리 겉마저도, 하나님의 것을 지키며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베풀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 모두가 먼저 속사람을 채워가되, 더불어 겉마저도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감으로써, 자녀에게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자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