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506)믿음과 겸손으로 가는 하나님의 나라(막 10장 17-27절)

청명하늘 2018. 9. 3. 00:34

믿음과 겸손으로 가는 하나님의 나라

 

성경: 마가복음 1017-27(71)

찬송: 218(네 맘과 정성을; 369), 314(내 구주 예수를 더욱; 511)

설교: 20180506.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답은 다양합니다만, 그 중 하나가, 영어에서 온 ‘BD 사이의 C’다는 말입니다. 영어를 사용해서 죄송합니다만, 여기에서 영어 B탄생을 뜻하고, D는 죽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사이의 C는 선택을 뜻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 말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고 답하는 것입니다.

 

이 말처럼 우리 삶의 과정들을 보면, 언제나 수많은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무엇을 선택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를 고민하고, 다른 길을 선택하면 혹시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됩니다. 지혜롭게 삶에 유익이 되는 선택을 하면, 그 삶은 갈수록 번성하고 복되게 됩니다. 어리석게 나쁜 선택을 반복하다 보면, 그 결과는 삶을 무너뜨리고 점차 기울어지고 망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라는 말에 동의가 됩니다.

 

그런데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다는 말은, 선택의 반대편을 끊임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송현 마을 앞에서 청계로 가기로 선택하면, 무안으로 가는 길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안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면, 동시에 청계로 가는 길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갈림길에서 양쪽의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습니다. 한 쪽을 선택하면, 또 다른 한 쪽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 선택 그리고 반대편을 버림의 연속이라면, 유익한 길을 선택하는 게 곧 지혜입니다. 큰 것을 버리고 작은 것을 얻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고, 손해가 됩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게 되면 지혜로운 선택이고, 그래서 유익이 될 것입니다.

 

저는 화투를 비교적 늦게 배우고, 또 많이 친 것도 아니어서 잘 모릅니다만, 고스톱을 배우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이, 무엇을 버릴지 고민이 될 때는 비풍초똥팔삼순서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위해 덜 좋은 것을 뒤로하고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이 잘되고 복되기 위해서는, 좋은 것을 선택하고, 덜 좋은 것, 안 좋은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결국, 덜 좋은 것, 안 좋은 것을 팔아 좋은 것을 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이 그렇죠? 건강과 생명을 위해, 아깝고 귀한 돈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돈보다는 생명과 건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귀한 돈을 위해 수고와 피곤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수고와 피곤을 피하고 싶지만, 돈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위해 한겨울의 눈바람을 맞으며 일해야 하기도 하고, 한여름 뙤약볕에서 땀 흘리며 수고해야 합니다. 이것은 돈을 위해 몸과 시간과 수고를 희생하고 판다는 것을 뜻합니다. 편함과 즐거움을 희생하고 팔아서라도 돈과 건강과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돈과 건강과 생명이, 일시적인 편함과 즐거움보다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며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고,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팔고 희생해야 하는 과정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귀하고 좋은 것들을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하지 않은 것은, 푼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귀한 것일수록 그만한 대가와 희생이 커집니다. 몇 시간만 일해도 고무신 한 켤레를 살 수 있지만, 아주 좋은 구두를 사기 위해서는 며칠을 일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생명이죠? 생명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나머지 것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생명을 지키고 연장시키려 합니다. 돈도 참 중요하고 귀하지만, 돈을 들이고 희생시켜서라도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연장시키려 합니다. 더 많이 살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가진 모든 논밭을 팔 기도 하고, 더하면 집마저 팔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귀한 것일수록 그에 대한 희생과 가치가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는 우리 육신의 생명이 가장 귀하다면, 그 다음 세상까지 포함하면 무엇이 가장 귀할까요? 여기서도 생명이 가장 귀합니다. 다만 다른 점이라 하면, 이 땅에서는 단지 몇 십 년의 생명이지만, 다음에 주어질 생명은 시간의 한계가 없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귀한 몇 십 년의 생명보다 훨씬 길고, 그만큼 이 땅의 생명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귀하고 소중합니다.

 

좋은 것을 얻고 구하기 위해서는, 덜 귀한 것을 버리고 희생해야 하는 원칙을 영생에 적용해 보면 어떨 것 같습니까? 우리가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을 버리고 팔고 희생해야 하겠습니까? 육신의 생명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영생이 귀하고 소중하다면, 이를 얻기 위해 우리가 팔고 희생시킬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한 부자의 이야기와 고민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계명을 지키라 하시고,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이것들을 잘 지켰다고 답하자, 그러면 있는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이 이 부자에게 고민과 갈등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재산이 많은 까닭에, 재산을 모두 팔기엔 너무 아까웠고, 재산을 모두 갖고 살자니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큰 짐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무척 어려운 본문 중 하나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이 부담이 될 수 있고, 부자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까지 더해져 복잡하고 또 어렵습니다.

 

만일 본문 하나만 떼어서 보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더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중요하지, 지금 이 땅에서 사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나오게 됩니다. 돈이나 소유는 물론 가정까지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런 뜻으로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 몇 번 말씀드렸습니다만, 반드시 이 말씀이 나오게 된 앞뒤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앞뒤의 상황과 연결해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왜 돈 많은 사람이 고민했는지, 예수님이 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이지도 분명해집니다.

 

오늘 본문 앞에서는, 어린이에 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려고 하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를 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 아이들의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15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본문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린 아이 같다는 것은 기본적인 자세가 겸손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모두가 언제나 겸손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래서 어른이 도와줄 때 잘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이 도와줄 때, 자존심이 상했다면서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 같은 이런 마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 그 길을 열어주셨고, 성령님을 통해 끊임없이 도와주시고 함께하십니다. 영혼이 어리고 순수한 사람은, 이 사실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어른처럼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손길마저 기분 나쁘다며, 자기 힘으로 잘해 나갈 수 있다며 거부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더구나 하나님 나라와 영생에 관한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두 이야기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두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 비교되고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의 어린 아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비교하고 연결해서 살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속 부자를 앞의 어린 아이와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앞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예수님의 기준에 비춰 보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어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탈락할 것 같습니까? 본문 속 부자는 자신을 의지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 자신이 행한 것들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19, 20절의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는 것을 보면, 이 부자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잘 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경력과 수준으로 봐도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종교생활 즉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꽤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그 기본적인 생각과 방향이 잘못되고 교만했습니다. 17절의 뒷부분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는 질문을 보면, 이 사람은 무엇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계명들을 잘 지키고, 선행을 의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 중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여섯 가지 계명들을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 계명들은 지키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잘 지켰다고 해서 큰 칭찬을 받을 일도 아닙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도, 잘 지킬 수 있는 계명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살인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거짓 증언하지 않고, 속여 빼앗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는 게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지켰다고 해서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부자는 이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과 자긍심이 가득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행함에 대해 착각하고 교만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예수님은 18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를 범하신 일도 없고, 어떤 흠도 없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죄에서 멀고, 흠이 없이 완벽하신 예수님인데, 이런 예수님마저 선하다고 할 수 없다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선하고 의롭게 살려 해도, 그 본바탕이 이미 오염되었고, 죄를 향해 가기 때문에 그 속은 더럽고 추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꽤 괜찮고 착하고 깨끗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흠이 없거나 죄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깨끗하고 선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완벽하게 선하시다고 하시면서, 사람은 그 어떤 선행이나 행함을 통해 영생에 대한 자격을 갖출 수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두 번째 까닭은, 부자는 돈을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돈으로 신앙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인가 하나를 잘 하고,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최고인 줄 압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것 하나 없으면서도, 돈만 있으면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교만해집니다. 돈이 곧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 여기며, 그것을 의지하며 살려고 합니다.

 

이 부자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돈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마음이 겸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정말 사모하는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도 크게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보다 돈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컸기에, 결단을 내리지 못 하고 주저하며 슬픈 기색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이 부자는, 자기의 행함과 돈에 대한 교만과 집착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부자처럼, 선행과 계명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교만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 땅의 것에 더 집착하며 의지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어린 아이처럼 철저히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어린 아이들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구원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까?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길을 진리로 믿고 의지합니까? 우리는 절대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닌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천국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영생의 길을 열어주심을 믿고 의지함으로써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마음에 새기고, 신앙생활하는 것으로 교만하지도 말고, 겸손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들이되, 더욱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하고 따름으로써,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영생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