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이 소망이 되도록
성경: 마가복음 10장 28-31절(신 72쪽)
찬송: 310장(아 하나님의 은혜로; 통410), 314장(내 구주 예수를; 통 511)
설교: 20180513.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00년을 전후해서 정부나 기관에 새로 만들어진 위원회들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군사정권 등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의혹들을 조사해서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5년에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그 목적을 밝혔습니다.
작년 2017년에는 법무부에서 검찰 과거사 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여기에서는, 과거에 검찰이 저지른 인권 침해, 검찰권 남용 의혹 등을 선정하고 조사해서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런 위원회들은 모두 과거의 일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죠? 더불어서 진실과 진상을 밝혀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겠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즉시 제대로 조사하고 바로잡았으면, 몇 년, 몇 십 년이 지난 후에 복잡하게 위원회를 만들고,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대부분 정부나 권력자들에 의해서 부당하게 일어난 것들입니다. 반대로 피해자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 어디에 억울함을 호소하고 도움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그것을 바로잡아야, 억울한 피해자들의 명예를 살릴 수 있고, 다시는 그런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원회가 생기고 활동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찬성할까요? 이런 위원회의 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이들이 하려는 일들은, 잘하고 좋은 일들을 나쁘게 바꾸겠다는 게 아니고, 늦었고 그 피해가 이미 컸지만 늦게라도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입니다. 또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법의 폭력으로 부당하게 형벌을 받았거나 사망한 사건들을 바로잡겠다는 것입니다. 의도나 과정이나 방법까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고 바로 세우는 이 활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위원회를 만들려 하면, 예외 없이 반대하고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법을 바로 세우겠다고 하는데, 누가 왜 이런 일들을 방해하고 반대하겠습니까? 보통 가해자들의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든지, 혹은 그들의 후손이든지, 그런 자들과 관련된 정당에 속해 있는 자들입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만, 과거 친일 행위라는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된 재산을 국가의 재산으로 넣겠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때, 일본 정부, 그리고 그 밑에서 빌붙은 사람들이 불법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습니다. 그리고 그 재산들이 지금까지 이어졌고, 온갖 혜택과 이익을 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가문은 망하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배신자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이상한 모습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방법으로 남의 재산을 빼앗고, 돈을 모은 사람들의 것을 제대로 조사해서, 도둑질하거나 빼앗은 것에 대해서는 나라의 재산으로 넣겠다는 법입니다.
이유도 맞고, 목적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반대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국회가 18대인데, 16대에 이 법을 국회에 올렸는데,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149명 중 100명, 자민련 9명이 반대해서 통과되지 못 했습니다. 17대에는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반대했는데, 다른 의원들이 모두 찬성해서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고치는 것 등이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진실의 과정들이 피해가 아닌 기쁜 일이 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법과 진실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상황이지만, 어느 편에 있느냐에 따라, 진실을 기대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진실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와 진실의 편에 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모든 말씀이 위로와 힘이 됩니다. 경고의 말씀마저도 소망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말씀과 약속이 모두 무서운 경고로 다가오게 됩니다.
성경의 수많은 말씀들 중에서 가장 큰 소망이 되는 말씀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사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큰 소망과 힘이 됩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그래서 영생을 약속받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두려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소망과 힘이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의 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앞 15절에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이 주어지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증명하기 위해서, 재물이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모두 지켰고, 또 재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지지 않고, 영생을 생각할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어린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낡은 어른처럼, 오직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다 실망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의 이 모습을 보시고,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하기 위해, 바늘귀란 당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출입문인데, 낙타가 이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풀어야 할 만큼 좁고 낮은 것처럼,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무엇인가를 의지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전혀 구원이 안 될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마저도,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들은 베드로는 28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당시 베드로와 안드레는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다른 형제 제자들인 야고보와 요한도 어부로서 그물 깁는 것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들이 그물과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 동안 자신의 삶을 유지해 오던 수단과 방법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가정까지 뒤로하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3년 정도 직업을 포기했고, 돌봐야 하는 가족을 포기했습니다. 베드로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예수님께 말한 까닭은,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해 자기들이 포기한 것들, 그리고 자신들이 들인 그 수고와 헌신에 대해 칭찬과 보상을 약속받고 확인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들은 예수님께서는 29절-3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는 말씀으로 답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답하신 이 말씀이 어떤 것 같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을 따른 제자들을 칭찬하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제대로 행하지 않은 제자들을 훈계하시며, 제대로 하라는 경고와 촉구의 말씀처럼 보입니까?
예수님이 답하신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 기쁨과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제자들이 주님의 그 말씀과 약속처럼 살고, 또 앞으로도 그대로 살면 됩니다. 반대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약속대로 살지 못 했으면, 예수님이 답하신 말씀은 제자들에게 경고와 분발을 촉구하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제자들에 대한 칭찬과 훈계가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먹고사는 생업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마땅히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가족까지 뒤로하고 주님을 따른 것은 분명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 생계와 사랑하는 가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이런 믿음 때문에 이 땅에서 영적인 복, 물질의 복, 그리고 영생의 복까지 함께 받게 된다는 칭찬을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9절에서 자기의 것을 버린 자가 복되다는 말씀 앞에 “나와 복음을 위하여”라는 한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가진 것을 버리고, 가정을 뒤로하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무조건 복되고 상을 받는 게 아니라, 오직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위해, 또 복음을 위해 다른 것들을 버리고 희생한 사람에게만 복과 보상이 보장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개인의 이익과 명예와 욕심을 위해 자기의 것을 버린 사람도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 곳곳을 통해 보면, 제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가정까지 뒤로하고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위해 따른 경우가 있었습니다. 희생과 낮아짐으로 주님을 따른 게 아니고, 출세의 한 방법으로 주님을 따르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이 때문에, 마가복음 9장에서는 제자들 중에서 누가 더 큰 사람인가에 대한 문제로 서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또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본문 바로 뒤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좌우의 높은 자리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제자들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주님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칭찬을 받을 만 했지만,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는 조건까지 포함해서 보면, 제자들은 여전히 부족한 사람,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출세와 높은 자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은,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교만과 다를 바 없습니다. 희생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 하늘의 것보다는 이 땅의 보상과 칭찬을 받으려는 것은, 자기가 영생에 대해 공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자기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으려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이유로 영적인 자만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31절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냥 있다고 하시지 않고, 많다고 하셨습니다. 착각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적지 않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우리가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다고 하셨으면, 그나마 부담과 두려움이 크지 않습니다만, 주님은 그런 자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많다고 말씀하신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처럼 신앙생활하고, 말씀대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많다고 하셨으니, 신앙생활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자기와 욕심과 욕망을 위해 사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 많은 자들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구원을 나의 노력과 힘으로 얻으려고 하는 교만을 버려야 하고, 두 번째는, 헌신과 수고와 노력이 정말 주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인지 살펴야 합니다. 나의 자랑과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스스로는 여전히 주님과 복음을 위해 버린 자인 것처럼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이 땅에서도 복되고, 또 내세에서는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헌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적과 방향이 맞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이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복이 되고,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모습으로 수고하고 헌신하지만, 만일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면, 우리가 걸어온 걸음들이 헛걸음이 되고, 거기에 쏟은 수고와 열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저주와 경고의 말씀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 하게 됩니다. 방향과 목적이 잘못되면, 복음의 길이 아니라 저주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에 마음을 열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공로 없으며, 오직 주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구원됨에 감사하며,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보다는, 비록 고난과 핍박이 함께 있더라도, 오직 주님의 보상과 칭찬만을 목적으로 겸손하게, 또 바르게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고 애씀으로써, 하나님을 위해 애쓴 이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충만한 은혜와 복을 이 땅에서도 누리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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